지난 11월 중순 서울 상암동 tvN ‘이색뉴스쇼-스매쉬(Smash)’ 녹화현장. 방청객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보통의 MC와 달리 신해철(40)·김진표(31)는 손을 좌우로 흔들며 당당하게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검은색 양복,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오른팔에 완장을 찬 모습이 마치 영화에 등장하는 비밀요원 같다. 무표정하게 초등학생 과잉체벌, 독신여성 성폭행 등 리포터가 취재한 자료화면을 보던 두 사람은 격분하며 서로의 주장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손가락질과 욕설이 오가고 방청객에게는 “심각한 상황이니까 깔깔거리며 웃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스매쉬(Smash)’는 정보를 전달하는 지상파 뉴스와 달리 시사·연예·스포츠·문화 등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MC의 주관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프로그램. 두 시간 남짓 녹화를 마치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가끔 서로 의견 달라 애먹지만 적절한 웃음과 유머로 분위기 조절
신해철은 평소 거침없는 언변과 태도로 ‘마왕’ ‘독설가’라고 불리고, 김진표는 현실비판적인 노래가사로 방송심의에 걸리곤 한다. “공인으로서 비판적인 말을 하기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두 사람 모두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아왔다”고 답한다. 말투와 행동이 비슷한 두 사람의 다른 점은 선글라스 착용 여부. “답답하다”는 김진표와 달리 신해철은 “사흘 밤낮 써도 편안하다”고 말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라면 독설· 욕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신해철.
신해철(이하 신) 오늘 내가 좀 흥분했나? 그런데 아동폭행, 성폭행… 둘 다 웃을 일이 아니잖아.
김진표(이하 김) 분위기가 좀 살벌해졌지만 형의 의견에 동의해. 한마디로 우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건데, 어떨 땐 그 마저도 제대로 못 먹는 것 같아 민망하거든. 이참에 우리가 직접 발로 뛰어볼까?
신 난 절대 못해. 취재를 하려면 취재원을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아마 나라면 취재하다가 폭발할 거야. 아령을 집어던질지도 몰라.
김 그러고 보면 난 처음 이 프로그램 MC 제의를 받았을 때보다 사회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 얼마 전 리포터들이 취재한 ‘쌀 직불금’ 제도에 대한 자료화면을 보면서 형에게 “쌀 직불금이 뭐야?” 하고 물었다가 혼나서 어찌나 민망했는지…. 예전에는 뉴스를 보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고 넘긴 적이 많은데 요즘에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본다니까.
신 예전의 너라면 마이크 집어던지면서 안 한다고 난리 피웠을 텐데, 결혼하더니 개과천선했다.
김 대신 형 닮은 인형을 만들어놓고 수시로 바늘로 찌르고 있어. 하하.
신 어쩐지 요즘 온몸이 아프더라. 나는 제작진과 학연으로 얽혀 억지로 MC를 떠맡았는데 자유롭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어서 꽤 만족스러워. 대본 외울 필요도 없고.
김 나도 마찬가지야. 솔직히 처음에는 형과 삐걱거리는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인데, 요즘은 형이 흥분하면 내가 가라앉히고 달래면서 호흡이 잘 들어맞고 있다고 생각해.
아빠가 된 뒤 교육문제 등 사회 전반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김진표.
신 하여튼 착한 척은 혼자 다 한다니까!(웃음) 누가 봐도 어떤 게 옳고 그른지 명백할 땐 너와 의견이 쉽게 일치하는데, 그렇지 않을 땐 어떡해야 하나 싶어.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고민하고, 분위기 심각해지면 웃고 떠들면서 푸는 게 짜릿하다는 거야.
김 독설이나 욕설은 형의 콘셉트야?
신 아니. 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욕이 아니면 하질 않아.
김 그러면 형은 왜 꼭 선글라스를 껴? 난 프로그램 진행할 때만 착용하는데도 답답하고 어지럽더라. 그래서 자료화면을 볼 땐 벗거나 코에 반쯤 걸치고 있어.
신 속 편하니까. 선글라스 끼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상대방이 알 수 없잖아. 참고로 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꼈어.
김 형답다.
‘사랑의 매’는 있을 수 없는 일, 아이가 잘못해도 사랑하고 인내해야
초등학생 과잉체벌로 벌어진 사건을 두고 ‘사랑의 매’인지, ‘잔혹한 체벌’인지 의문을 던지는 자료화면을 본 두 사람은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특히 아이의 엉덩이에 피멍이 들고 그 충격으로 학부형이 실신하는데도 사과하지 않는 교사와 관계자들의 태도에 분노했다. 신해철은 지난 2002년 미스코리아 출신 윤원희씨(31)와 결혼해 두 살배기 딸과 생후 5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고, 김진표는 올 초 탤런트 윤주련(26)과 결혼해 지난 10월 아들을 낳았다. 두 사람은 “과잉체벌은 아동학대고, 범죄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신 아이가 울면서 선생님께 ‘잘못했다’가 아니라 ‘살려달라’고 빌었다는데 그렇다면 아이가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는 말이잖아. 한번에 80대 때리는 것도 잔인한데, 1교시에 20대, 2교시에 20대, 이렇게 네 차례에 걸쳐 때렸다는 부분에서 더 화가 치밀어오르더라. 수업시간 내내 다음 쉬는 시간에 매 맞을 생각을 하면서 공포에 떨었을 거 아냐.
김 대상이 초등학생이라는 게 더 믿기지 않아. 고등학생 때는 80대, 1백 대도 참고 맞잖아.
신 그런 생각부터 잘못된 거야. ‘일정 나이가 되면, 혹은 최소 몇 대까지는 맞을 수 있다. 견뎌야 한다’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근거가 뭐야? 아직도 일각에서는 ‘사랑의 매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쳐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너도 그래? 그럼 ‘지나치다’는 기준이 뭐지? 난 ‘하지만’이라는 말부터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
김 진정해. 나도 ‘사랑의 매’라는 단어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해. 나중에 우리 아들이 저렇게 맞고 집에 오면 “내 아들처럼 선생님도 똑같이 맞아야 한다”며 난리 피울 것 같아.
신 나 역시 합법적으로만 대응하진 않을 거야. 결혼하기 전에 이런 얘기를 하면 나와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결혼도 안한 사람이 뭘 아냐”고 반문했고, 결혼하고 이런 얘기를 했더니 “아이를 낳아봐야 안다”고 하더라고. 아이를 둘이나 둔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어. 오히려 아이들을 때리는 사람을 더 증오하게 됐지.
김 예전에 선생님께 매를 맞고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이 ‘훌륭한 사람 되라고 때린 거야’라고 하셨는데, 그런 시대착오적 발상 때문에 문제가 점점 심각해진 건 아닐까.
신 과잉체벌 문제로 얼마 전 MBC 시사 프로그램 ‘100분 토론’에 나갔는데, 한 패널이 “사랑의 매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미풍양속”이라고 주장하더라.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조선이 망한 거 아닙니까” 하고 되받아쳤어.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이해가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히 깨달았어. 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떼를 쓰는 경우는 없거든. 뭔가 잘못 돼 있거나 불편하다는 걸 호소하는 거야.
김 형 말이 맞아. 며칠 전 아내 대신 한 시간 정도 아이를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달래도 울고 보채기에 당황했어. 아내가 트림을 시키면 된다기에 등을 토닥였더니 금세 울음을 그치더라고. ‘이런 단순한 요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아빠구나’ 싶어 부끄러웠어.
신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트림이 필요한가, 기저귀를 갈아야 하나, 우유를 줘야 하나… 모르면 하나씩 다 시도해봐야 해. 몇 번 시도하지도 않고 자기 방식대로 해결하려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 나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선생님들한테 따지고 싶어. ‘사랑의 매’를 들기 전에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아이들을 달래고 어루만져봤냐고. 또 아이들을 때린 뒤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린 적이 있냐고.
김 부모는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자신들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생각하잖아. ‘아이가 체벌 때문에 그토록 힘들어할 때 나는 뭐했을까’ 하고 자책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겠어.
보수·진보 나누기보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고 싶어
토론의 두 번째 주제는 서울 일대에 퍼지고 있는 성폭행 사건. 보일러 점검이나 택배를 가장해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 손발을 묶고 성폭행을 저지르는 일명 ‘발바리’ 범행이 급증하는 데 대해 논의하던 두 사람은 무엇보다 수수방관하고 있는 경찰의 태도에 분노했다.
김 현재 서울 한 특정지역의 성폭행 피해여성만 해도 10명이 넘는다는데, 신고하지 않은 사람까지 합치면 피해여성이 꽤 많을 것 같아. 동일범의 소행이라는데, 피해자가 늘 동안 경찰은 뭐한 걸까.
신 다른 일 처리하느라 바쁘다면서 성폭행범들을 일부러 안심시킨 건 아닐까. 범인들이 안심할 때 갑자기 덮치려고. 하하.
김 일회용 커피잔에 ‘커피가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문구를 쓰지 않은 미국의 한 패스트푸드점은 그로 인해 화상을 입은 한 여성에게 엄청난 피해보상금을 지불했대. 여성들에게 미리 조심하라고 알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찰들에게도 피해보상금을 요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신 더 큰 문제는 그런 사건이 발생해도 쉬쉬한다는 거야. 피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 그제야 ‘이러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사사건을 조심하라’고 말하는데, 그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내가 경찰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메가폰을 들고 ‘동네 주민 여러분~’ 하면서 목이 터져라 외칠 거야.
김 도로교통표지판처럼 ‘독신 여성 피해 조심’ 같은 표지판이 붙으면 좋을 텐데…. 가스점검원은 있어도 보일러점검원이라는 사람은 없다며?
신 그러니까 ‘보일러 점검왔습니다’ 하면 무조건 112나 119에 신고해야지. 아이러니한 건 범죄신고를 112에 하라고 하지만 정작 112는 ‘발신자 위치 추적’이 안 된다는 점이야. 그럴 땐 위치 추적이 가능한 119에 신고하는 게 나아.
김 112에 아무리 신고 전화를 해도 내가 주소를 알려주기 전까지는 경찰이 도우러 올 수 없다? 끔찍하고 무서운데.
신 그런데 이런 부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 내년 예산이나 더 받으려고 멀쩡한 도로를 깨고 부수고, 잘 자라고 있는 가로수 뽑아 다시 심다니…. 국민의 혈세를 올바른 곳에 투명하게 쓰면 좋겠어.
김 난 가끔 이런 의견을 말할 때마다 괜히 긴장돼. 내가 과연 남을 욕할 자격이 있나 싶고.
신 지나치게 도덕주의에 사로잡힌 거 아냐? “백옥처럼 희지 않으면 얘기하지 말라”는 건 발언조차 하지 말라는 거잖아.
김 그런가…?
신 차 트렁크에 아내의 교복을 싣고 다니는 나를 보면서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그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유별나다’고 보는 게 맞아. ‘옳다, 그르다’는 과잉체벌이나 성폭행 문제에 해당하는 말인데, 정작 이 문제를 따끔하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더라.
김 그러게. 형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어?
신 사람들이 나를 두고 진보 세력이라고 말하는데, 보수·진보, 좌파·우파 이렇게 구분되기보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고 싶어. 아무리 약자에 내 감정이 치우쳐도 그들에게는 관심과 사랑이 턱없이 부족하거든.
김 계속 ‘마왕’ ‘독설가’로 남을 거지?
신 그럼. 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독한 놈이었어. 교회에서 연극을 할 때도 예수를 유혹하는 사탄과 유다를 도맡았지. 10월 말부터 뮤지컬 ‘마리아마리아’에 출연하고 있는데, 그 작품에서도 마리아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바리새인 역을 맡고 있어.
김 나는 독설과 욕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면 좋겠어. 그래서 머리 복잡하고 가슴 답답한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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