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잉꼬부부이자 ‘선행 부부’로 널리 알려진 정혜영(35)·션(36) 부부. 두 사람은 결혼 후 매년 결혼기념일에 1년 동안 매일 1만원씩 모은 3백65만원을 ‘밥퍼나눔운동’에 기부하고 있으며 3년 전부터 한국컴패션(www.compassion.or.kr)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컴패션은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로 아프리카·중남미·아시아 등 24개국 극빈 가정 어린이를 대상으로 양육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두 사람은 우간다·도미니크공화국·네팔·케냐·필리핀에 살고 있는 6명의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으며 지난 4월 말에는 정혜영이 필리핀에 있는 자신의 딸 클라리제(7)를 직접 만나고 돌아왔다. 그는 현재 세 살, 두 살배기 남매의 엄마로 아이들을 돌봐야 하지만,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또 다른 딸을 만나기 위해 장기간의 여행을 선택했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온 그를 지난 5월 중순 전화통화로 만날 수 있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아이들은 잠들었냐”고 조심스레 묻자 그는 “남편이 열심히 보고 있다”며 소녀처럼 웃는다.
“후원하는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는 걸 ‘비전 트립’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저 대신 남편이 갈 계획이었어요. 하음이, 하랑이가 아직 어려 제가 오랫동안 집을 비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클라리제가 보낸 편지를 보고 제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와 언니 손에 자라고 있는 클라리제는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먼 곳에 가 있어서 저를 진짜 엄마라 생각한대요. 아이 편지에도 ‘I love you, mommy’라고 써 있었어요. 그걸 보고 남편한테 ‘아무래도 내가 가야겠어’ 하고 말했어요.”
두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필리핀으로 떠나기로 한 그는 출국에 앞서 클라리제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고 한다.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예쁜 인형과 실용적인 물건을 두고 잠시 고민하던 그는 딸 하음이도 좋아하는 바비 인형과 미니 피아노, 분홍색 드레스를 구입해 비행기에 올랐다.
클라리제가 사는 곳은 필리핀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디뽈록 마을. 마닐라공항에서 한 번 더 비행기를 타고 아이가 살고 있는 섬에 도착한 그는 공항에 자신을 마중나온 아이를 먼저 발견하고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한다. 수줍은 표정의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그는 “막상 아이를 보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한순간에 내 마음속으로 확 들어왔다”고 말했다.
“후원하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집에 다 붙여놓고 종종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클라리제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많이 궁금했어요. 막상 보니까 사진보다 훨씬 많이 자라 있더라고요. 아이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먼저 다가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다음 날이 되니까 어느 순간 제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치고 달아나기도 하고, 손끝으로 제 팔을 살살 만지기도 하면서 장난을 걸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아이가 나를 많이 기다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자 아이의 할머니와 언니, 삼촌 등 어른들이 도리어 조바심을 냈다고 한다. 아이가 후원자에게 잘 보이기를 바랐던 것. 하지만 어른들이 아이한테 몇 번이나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해” “웃어봐” 하면서 아이를 채근하는 모습은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고 한다. 그는 급기야 어른들의 요구에 당황하며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안고 “괜찮아, 괜찮아” 하며 등을 토닥거린 뒤 가족들에게도 “애쓰지 마세요” 하고 안심시켰다고.
“아이가 저한테 편지를 쓰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만 어쨌든 저는 이방인이잖아요. 혹시라도 제가 자기를 데려가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평소 제가 우리 딸한테 하는 것처럼 놀아주려고 했어요.”
“후원받는 아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게 가장 보람돼요”
그는 2년 전 열린 컴패션 사진전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클라리제의 사진을 보게 됐다고 한다. 당시 지인 한 명이 그에게 “이 아이 참 예쁘지? 그런데 아무도 이 아이와 결연을 맺으려 하지 않아” 하면서 사진을 보여준 게 계기가 돼 클라리제와 인연을 맺게 됐다. 사진 속 아이는 검은색 생머리에 맑은 눈망울을 한 예쁜 소녀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그는 자신이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날부터 클라리제 후원을 시작한 그는 매달 3만5천원이란 돈으로 아이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의료혜택과 교육혜택 등을 제공해왔다. 그리고 필리핀을 다녀온 뒤에는 후원아동의 수를 6명에서 1백명으로 늘렸다.
“처음 클라리제가 사는 마을에 들어섰을 때, 숨이 턱 막혔어요. 위험하고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죠. 창문을 열면 바로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곳에서 갓난아이가 기어다니고, 악취가 코를 찌르는 샛강에서 아이들이 수영을 하며 놀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후원아동의 수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혹시라도 제 마음이 변할까 싶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컴패션에 신청을 했죠. 남편도 매우 기뻐했어요.”
이제 매달 3백5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해야 하는 그는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신 ‘내 집 마련의 꿈’을 잠시 뒤로 미뤘다.
“현재 전세로 살고 있어서 저도 남들처럼 내 집을 마련하는 게 꿈이에요. 예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고 싶죠. 하지만 클라리제를 만나고 온 뒤에는 멋진 집을 마련하는 게 제 꿈의 1순위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만약 아파트를 분양받는다면 어떻게든 매달 목돈이 나가야 할 테니 그 돈을 먼저 아이들을 돕는 데 쓰기로 한 거죠. 그러려면 앞으로 열심히 연기활동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해요(웃음).”
정혜영은 필리핀에서 딸 클라리제를 만나고 온 뒤 후원하는 아동의 수를 1백명으로 늘렸다.
앞으로는 1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일년에 두 번 선물과 편지를 보내야 하는 것.
“물질적인 지원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후원자의 편지라고 해요. ‘너를 사랑해, 너를 축복해, 너는 소중한 존재고 축복받아 마땅해’라고 말해줌으로써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거든요. 아이가 변하면 가정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면 사회가 변하고 또 나아가서는 나라와 인류가 변할 수 있어요. 개개인에게는 작은 봉사일지 몰라도 그것을 받는 아이에게는 생명처럼 귀한 선물인 거죠.”
그가 필리핀에서 보낸 시간들은 조만간 사진전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컴패션이 5월29일부터 6월3일까지 서울 광화문 KT아트홀에서 <허호 사진전 · 후원자들의 이야기-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를 개최하는 것. 이번 행사에서는 컴패션의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허호씨가 촬영한 후원자들의 모습과 사연 30여 점을 전시한다. 더불어 탤런트 차인표가 리더인 ‘컴패션 밴드’의 자선공연, 정원영 밴드·한상원 밴드 등의 재즈 콘서트, 설치미술가 강홍석의 ‘더 모바일 프로젝트-러브’ 전시 등이 함께 진행된다.
현재 컴패션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탤런트 신애라와의 친분이 궁금한데, 그는 “아, 애라언니요? 친해요. 며칠 전에도 하음이와 하랑이 데리고 언니네 집에 놀러갔다 왔어요. 정민이, 예은이, 예진이까지 다섯 명의 아이가 노는 걸 보면 정말 즐거워요” 하면서 밝게 웃는다.
정혜영·션 부부는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한 달에 한 번 복지관을 찾아가 갓난아이들을 돌보는데, 첫째 하음이에 이어 지난해 5월 둘째 하랑이를 가진 기념으로 홀트아동복지회에 1천만원을 기부했다.
“남편이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됐어요. 집에서 돌봐야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 자주는 못 가고, 한 달에 한 번 남편과 함께 가요. 하음이와 하랑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을 정도로 크면 그때는 네 식구가 함께 다닐 거예요.”
두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키우고 있는 그는 어디를 가든 가족과 함께하려 한다. 비록 아이들이 어리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냄으로써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의 사랑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이 다 크면 같이 놀자고 해도 놀지 않을 것 같다.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값비싼 교육보다는 엄마 아빠가 놀아주는 게 아이 인성발달에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혼 후 저를 변화시킨 남편,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할 거예요”
지난 2004년 결혼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웃 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간혹 TV를 통해 두 사람이 사는 모습을 공개할 때면 늘 남편 션은 아내 정혜영을 ‘천사’라고 부른다. 이처럼 남편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그는 오히려 “나보다 남편이 더 천사다. 남편을 통해 나누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됐다”며 수줍게 웃는다.
“결혼 전부터 남편이 보통사람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큰돈이 생기면 항상 좋은 일에 먼저 쓰려 하고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거든요. 저 같으면 제가 갖고 싶은 걸 먼저 취한 다음, 남은 돈으로 좋은 일을 하겠는데, 남편은 반대였어요. 남을 위한 삶이 먼저고 그 다음이 자신이죠. 또 누군가를 도와주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했어요(웃음). 부부가 된 뒤로는 당연히 남편과 뜻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남편이 하는 일은 뭐든 같이 하려고 하죠. 남편은 부족하던 저를 변화시킨 사람이에요.”
누가 봐도 부러울 만한 이 부부는 해마다 결혼기념일에 결혼식 당일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이 또한 남편 션의 아이디어인데, 처음 결혼기념일을 맞았을 때 남편은 그에게 “어떻게 하면 이날을 의미 있게 보낼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
“전 당연히 멋진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선물을 주고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날 우리를 축복해주신 분들께 보답하는 의미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베푸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최일도 목사님이 운영하는 ‘밥퍼나눔운동’을 설명하면서 아침 일찍 청량리 밥퍼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하루하루 모은 돈을 ‘밥퍼’에 기부한 뒤, 결혼식을 재연하며 그 길을 따라 걷자고 제안했죠. 미용실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결혼식을 올린 호텔 야외정원에서도 잠시 머물다가, 결혼사진을 찍어주신 사진작가분도 만나면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는 거예요. 첫 결혼기념일에는 저희 두 사람만 있었는데, 그다음 해에는 하음이와 함께했고, 그리고 올해는 하랑이까지 네 식구가 함께 나들이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정혜영. 그는 탄탄한 사랑으로 지어진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더욱 큰 사랑을 실천하며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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