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과 현재 방송 중인 ‘조강지처클럽’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은 모두 ‘아줌마’다. 그리고 아줌마의 사랑과 삶을 주목하는 이 ‘줌마렐라 신드롬’은 5월 말부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줌데렐라’로 이어질 예정이다. ‘줌데렐라’로 나란히 뮤지컬 무대에 도전하는 김지선(35)과 이재은(28)의 수다는 ‘아줌마 파워’로 시작됐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선희와 ‘조강지처클럽’의 화신이가 인생역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후련했어요. 아줌마를 남성,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그 말 속에 억척스러움이나 그악스러움이 담긴 것 같아 안타까워요. 큰 목소리로 대화하거나 물건값 깎는 모습을 가리키며 ‘아줌마나 하는 짓’이라고 말할 때는 아줌마를 비하하는 것 같아 속상하고요.”
결혼 3년 차로 아직 아이 없이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재은이 이런 하소연을 하자 결혼 5년 차 주부 김지선은 “아이 셋 낳았더니 얌전하던 성격이 나도 모르는 사이 괄괄해지더라”며 자신 또한 그런 모습을 닮아가고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줌데렐라’ 공연을 열흘 앞두고 만난 두 사람은 아줌마를 ‘제3의 성’이 아닌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름다운 여자’로 정의했다.
“사회일과 집안일 해내는 중년여자들의 다양한 모습 그려요”
지난 97년 KBS 오락 프로그램 ‘슈퍼선데이’의 코너 ‘금촌댁네 사람들’에 함께 출연한 뒤로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온 두 사람은 ‘줌데렐라’의 작가 고혜정씨와의 인연으로 다시 뭉쳤다고 한다. ‘유머1번지’‘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을 집필한 코미디작가 출신 고씨가 ‘금촌댁네 사람들’의 대본도 썼던 것. 두 사람은 지난해 고씨의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한 ‘친정엄마’를 보러 가면서 고씨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혜정언니가 뮤지컬 얘기를 꺼내기에 ‘해보고 싶지만 기회가 닿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더니 ‘줌데렐라’ 스토리를 풀어놓더라고요. 제가 아들을 셋이나 둔 엄마잖아요. 방송하랴 아이 키우랴 쉴 틈 없이 바쁘지만 딱 제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선뜻 도전했어요.”
뮤지컬 출연을 위해 얼마 전 KBS FM ‘행복충전’에서 하차한 김지선은 하루 10시간 이상 춤과 노래를 연습한다고 한다. ‘줌데렐라’는 주부·커리어우먼·대학강사 등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사는 다섯 명의 여고동창생이 죽음을 앞둔 친구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뮤지컬.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살던 여고동창생들은 20여 년 전 학창시절을 떠올리면서 행복을 찾는다.
김지선·이재은은 “가족의 응원 덕분에 마음 놓고 일한다”며 “뮤지컬이 끝나는대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진정한 줌데렐라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개그콘서트’에서 웨이브 댄스를 추기도 했지만 아이 키우면서 몸이 굳었는지 예전만큼 춤을 못 춰요. 그 점을 걱정했더니 혜정언니가 ‘아줌마들 얘기인데 노래와 춤이 완벽하면 오히려 거북할 수 있다. 음을 놓치거나 춤추는 순서를 잊더라도 즐기라’며 격려해줬어요.”
극중 완벽한 연애를 꿈꾸는 커리어우먼 역을 맡은 김지선은 요즘 다이어트 중이다.
“속옷차림으로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부르는 장면이 있어 벌써부터 긴장돼요. 비록 노처녀지만 섹시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했을 것 같아 얼마 전부터 밥 대신 고구마·닭가슴살·달걀흰자를 먹으면서 몸매를 가꾸고 있어요.”
가족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다 위암을 선고받은 전업주부를 연기하는 이재은은 김지선과는 조금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조금씩 변하는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야한다는 부담감 때문. “몇 차례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지만 동료배우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고 아이도 아직 없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 지인들의 조언을 받으며 캐릭터를 분석했다”고 말한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가 여섯 명인데, 연습 첫날에는 아줌마반, 노처녀반으로 갈려 어울렸어요. 저와 지선언니, 그룹 ‘수’ 출신인 새내기주부 이주현씨는 남편·시집 얘기를 하고, 미혼인 나머지 배우들은 연애·일 얘기를 주로 했죠. 그러다가 극중 여고동창생처럼 70~80년대 인기가수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땐 그랬지!’ 하고 과거를 떠올렸고, 이후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친해졌어요. 지금은 진짜 여고동창생 같은 사이가 됐죠.”
엄마 없이 의젓하게 생활하는 아이들과 “마누라 파이팅” 하고 응원하는 남편
김지선은 데뷔한 지 18년이 흘렀지만 연예계 친구보다 일반인 친구들이 더 많다고 한다. 학창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던 그는 가수 전영록의 열혈팬이었다고.
“오빠 노래를 흥얼거리다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보며 운 적도 있어요(웃음). 지금은 돈독한 오빠 동생 사이인 (변)진섭오빠도 무척 좋아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연예인이 돼 진섭오빠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심신, 김범룡, 이치현 같은 오빠들이 텔레비전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던 여고시절의 설렘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반면 다섯 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이재은은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충실하려 노력했지만 학창시절 추억이 부족해 아쉽다. 그래도 기쁠 때나 외로울 때 가장 먼저 달려오는 건 그때 사귄 친구들”이라며 “이번 뮤지컬에 친구들을 초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두 사람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이재은은 남편 이경수씨와 가사를 분담하는데, 요즘은 남편이 더 많이 맡는 편이라고. 얼마 전 대본 겉장에 “토끼 같은 우리 마누라 힘내! 오빠가 항상 응원할게요”라는 메시지를 적어놓은 남편 때문에 이재은은 동료배우들의 질투어린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
“안무가로 활동한 신랑은 무대에 오르기까지 배우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잘 알아요. 연습하던 중 약간 문제가 생겨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을 때 ‘지금은 트러블이 생길 수 있는 시기야. 조금 더 기다리면 저절로 다 풀려’ 하면서 다독여줬어요. 포스터 촬영일이 결혼기념일이라 신랑이 깜짝 방문했는데 그 일만으로도 특별한 이벤트가 됐고요.”
“아직 깨소금 냄새가 폴폴 난다”는 이재은을 바라보던 김지선은 “표현하지는 않지만 우리 신랑도 그에 못지않다”며 남편 자랑을 했다. 지난 2003년 사업가 김현민씨와 결혼한 김지선은 아들 세 명을 두고 있다.
“연습하다 보면 집안일과 육아에 소홀해지는데, 남편이 그런 제 빈자리를 잘 채워줘요.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한 막내 성훈이가 설사병으로 고생하고 있어 신경이 쓰이지만, 다섯 살배기 지훈이와 네 살배기 정훈이는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찾아요. 예전에는 남편이 아이 기저귀 가는 일이나 분유 먹이는 일을 도와주지 않아 많이 서운해했는데, 지금은 아빠보다 엄마가 필요한 일이 있고 엄마보다 아빠가 해줘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훈이와 정훈이는 요즘 함께 유치원에 다닌다고 한다. 두 아이 모두 처음 우려하던 것과 달리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특히 또래보다 듬직한 편인 첫째 지훈이는 두 동생을 잘 챙겨 김지선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든다고 한다.
“둘째 정훈이는 애교가 많아 재롱을 잘 피우는 대신 샘이 좀 많아요.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 아이 방에 들어가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요. 책에 나오는 소를 짚으면서 ‘이건 엄마소, 이건 아기소’라고 말하면 ‘아니야. 이건 정훈이엄마소, 이건 정훈이소야’ 하고 말하죠. 동생이 생긴 뒤로 유난히 저한테 집착하는 것 같아 안쓰러우면서도 미안해요.”
아이를 유달리 좋아하는 이재은은 세 아이의 엄마인 김지선을 부러워했다. 이재은·이경수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자신들의 이름을 하나씩 따 ‘은수’라는 이름을 미리 지어뒀다고 한다. 신혼을 좀 더 즐긴 뒤 3~4명 정도 낳을 계획이라고.
“지금은 너무 바빠 생각할 틈이 없지만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생기지 않을까요(웃음). 몇 달 전 남편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는데, 바쁜 저를 대신해 남편 혼자 그 일을 하다 보니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그 일을 접기로 했어요. 대신 둘 다 아이를 좋아해서 조만간 아동복·장난감·이유식 등 아이용품을 파는 가게를 열까 해요.”
이재은은 안팎으로 도움을 주는 남편 덕분에 행복하지만 사실 마음 한곳에 슬픔을 안고 살고 있다. 뇌출혈로 오랜 기간 고생한 아버지가 얼마 전 담도암 선고를 받은 것. 그는 “늦게 발견해 이미 암세포가 많이 전이된 상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병을 앓고 있는 아빠는 물론이고 곁에서 간호하는 엄마도 많이 힘들어해요. 애써 눈물을 참는 엄마에게 ‘무섭고 힘들다며 현실을 원망하지 말자. 우리가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아빠를 위한 가장 큰 효도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거잖아요. 남편과 알콩달콩 사는 모습 보여드리면서 용기를 북돋워드릴 거예요.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어요.”
“뮤지컬 끝나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아내·엄마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에요”
“공연 연습을 하면서 은연중 엄마에게 상처를 주던 일이나 남편에게 서운하게 대한 일이 떠올랐다”는 두 사람은 “50대 엄마와 20대 딸, 혹은 중년부부가 함께 공연을 보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누구에게나 근심과 걱정이 있지만 특히 주부들은 남편과 아이, 시집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불어나지 않는 통장과 늘어가는 카드빚 때문에 더욱 고달픈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도 유리구두를 신을 순 없겠지만 지금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잠시나마 고민을 내려놓고 멋진 인생을 계획하라고 외치고 싶어요.”
이재은의 말에 김지선은 “얼마 전 앨범을 정리하다가 셋째를 임신한 몸으로 당당하게 비키니 입은 사진을 발견한 뒤 놀라면서도 행복했다. 이런 게 아줌마의 힘인 것 같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뮤지컬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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