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겸 MC로 왕성히 활동하던 90년대 중반 돌연 모습을 감췄던 정소녀(53)가 11년 만에 가수로 돌아왔다. 오랜 세월 연예계를 떠나 평범한 주부로 지냈다는 그는 “가수라는 타이틀이 아직 낯설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가수로 활동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70년대 자신이 직접 노랫말을 쓴 ‘그 사람’을 가수 최병걸과 함께 불러 많은 인기를 모은 것. 이번에 발표한 앨범에도 그가 직접 작사한 노래 ‘계절이여’가 수록됐고, 타이틀곡 ‘깜빡’은 젊은 주부들을 타깃으로 하는 삼바풍 트로트라고 한다.
“올봄부터 음반작업에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노래 부르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녹음을 다 끝낸 뒤에도 몇 번이나 편곡을 다시 했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활동을 시작하는 거라 부담도 되고 해서 더 꼼꼼하게 준비했어요(웃음).”
그에게 가수활동은 ‘몸 풀기’에 불과하다. 앞으로 그는 본업인 연기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고 MC, DJ로서도 다시 활동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데뷔 초부터 쇼·오락 프로그램 진행자로 명성을 날렸고, 방송을 그만두기 전까지 7년 넘게 허참과 함께 KBS 간판 오락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을 진행했다. 또한 라디오 DJ도 6년 넘게 했기에 쉬는 동안에도 방송에 대한 향수를 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1년 만에 연예활동을 시작한 정소녀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면서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7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영화 ‘이름 모를 소녀’가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정소녀’란 예명도 그때 갖게 된 것이라고 한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인기를 모으다가 지난 96년 드라마 ‘파리공원의 아침’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괴소문을 접하고 참을 수 없는 절망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당해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특히 그 무렵 피부색이 다른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을 정도였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동안 나만 모른 채 살아왔다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사람들을 만나기조차 싫고, 모든 걸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고요. 대중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아무런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 도저히 방송을 계속할 수 없었거든요.”
“소문이 돌던 당시 아무런 대응하지 않은 게 소문을 키운 것 같아요”
당시 그는 매니저나 소속사 없이 혼자 활동을 해온 터라 그런 소문을 접하고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몰랐다고 한다. 상처가 컸던 탓에 움츠러들기만 했을 뿐 당당히 맞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소문을 더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차피 뭐라고 항변해봤자 ‘바위에 달걀치기’라고 생각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는 거라고 생각했죠. 가족들도 많이 힘들었지만 제가 더 상처받을까봐 집에서는 일절 그와 관련된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어머니도 그저 ‘진실이 아닌 건 언젠가 다 밝혀질 거다’ 하고 위로해주셨죠.”
그가 방송을 그만두게 되자 부모도 많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TV를 보다가도 “저 자리에 네가 있으면 잘 어울릴 텐데…” 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그럴 때마다 그는 “엄마가 그러신다고 제가 다시 방송을 할 것 같아요? 이제 포기하세요”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언제나 복귀에 대한 기대감이 꿈틀대고 있었다고.
“타고난 피는 못 속이는 것 같아요(웃음). 한동안은 연예인이란 꼬리표를 떼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편하고 좋았지만 가끔 TV에서 좋은 드라마를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거든요.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대중 앞에 설 수 있게 돼 감사해요.”
“긴 세월 지루한지 모르고 살았다”고 말하는 그는 그동안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3년 전까지 경기도 장흥유원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해왔고, 서른두 살에 이혼한 후 친정 부모와 함께 살며 딸을 키워왔다고. 딸은 호주에서 4년간 유학생활을 하다 3년 전 귀국해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는 딸 얘기가 나오자 “착한 딸을 둔 것도 복인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어려서부터 뭐든 혼자 알아서 해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어요. 어떨 때는 저보다 어른스럽고 친구처럼 엄마를 위로할 줄도 아는 딸이에요. 순수하고 정신이 건강한 아이죠. 가끔 아이한테 ‘혹시 섭섭한 거 없냐’고 물어보면 늘 ‘충분히 행복하다’고 그래요. 사실 어린 시절 아빠 없이 키운 게 늘 딸아이한테 미안하거든요. 그래도 지금까지 스스로 자기 앞가림 잘해온 딸이 대견스러워요.”
서른두 살에 이혼, 아빠 없이도 잘 자라준 딸 대견해
그가 음반을 내고 활동을 재개한다고 하자 가장 기뻐해준 사람도 딸이라고 한다. 음악을 들어보고는 “분명 ‘대박’이 날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워줬고 며칠 전에는 그의 기사가 인터넷에 뜬 것을 보고 자기 친구들이 연락해왔다며 엄마에게 자랑을 했다고 한다.
이런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오랜 공백기를 깨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할 수 있었던 정소녀. 하지만 그는 올 봄 음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제가 TV에 나오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기다리셨는데 끝내 그 소원을 풀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아버지는 TV를 보다가도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까워 죽겠다’며 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하셨어요. 이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그전에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걸 그랬어요. 어머니도 아버지를 잃고 상심이 크셨어요. 그러다 제가 음반을 내고 활동을 시작하니까 조금씩 활력을 되찾으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는 쉬는 동안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더욱이 아버지를 여의고 나니 가족과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실감이 난다고. 그는 방송을 쉬는 동안 돈과 명예 등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가족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는 그동안의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한다.
“쉬는 동안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어디를 가든 항상 네 식구가 함께했죠. 심지어 산책을 하더라도 네 사람이 같이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많이 부러워했어요. 아직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모르는 분들은 어머니와 저한테 ‘왜 요즘은 함께 안 다니세요?’ 하고 묻기도 하죠.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신앙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고 계세요. 올해 연세가 일흔넷인데, 아직까지 정정하시고 자태도 고우세요.”
그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는 동안 집안 살림에도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특히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고.
과거 세련되고 깔끔한 이미지로 사랑받은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게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에 대해 묻자 그는 “체중조절만 잘해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방송할 때에 비해 체중이 좀 늘었어요. 예전 몸무게로 돌아가려면 3kg은 더 빼야 하는데 앨범 발표를 앞두고 급하게 다이어트하려니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날마다 체중계에 오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한 번 과식해서 몸무게가 불면 다음 날 식사량을 줄여서 먹게 되거든요. 운동은 수영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평소 화장을 잘 안 한다는 그는 이날도 사진촬영이 끝나자 “오랜만에 두껍게 화장을 했더니 답답하다”며 화장솜으로 얼굴을 살짝 지워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옷차림도 청바지에 티셔츠, 모자 등을 매치한 캐주얼한 차림을 좋아한다고 한다.
가까운 친구, 형제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컴백을 준비해온 그는 현재 재기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스스로 과거만큼의 열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라고 한다. 과거와 비교해 방송 여건이 몰라보게 달라졌고, 실력 있는 후배들의 모습에 주눅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지만 더 이상 피하며 숨고 싶지 않다는 그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면서 나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방송을 그만두기 잘했다 싶어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도 있듯이 당시 오랫동안 방송을 해오면서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쉬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져 이젠 더 이상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고, 나 스스로 당당하다면 뭐든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