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은 기자는 방송기자의 체험담을 담은 책 ‘미녀 여기자 3인의 고군분투기’를 펴내기도 했다.(왼쪽) 경제부 국제부 등을 거치며 다양한 취재 경험을 쌓은 이주한 기자.(오른쪽)
KBS‘아침뉴스타임’이 전파를 타는 시간은 아침 8시.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에 보낸 주부들이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텔레비전 앞에 앉을 시간이다. 같은 시간대 다른 채널들이 ‘불륜’과 ‘복수극’ 등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를 선보이는 것에 반해 ‘아침뉴스타임’은 주부들이 관심을 갖는 사건과 이슈, 생활정보 등 주부들의 눈높이에 맞춘 뉴스거리를 전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신설됐을 당시부터 일명 ‘아줌마형 뉴스’를 표방해온 ‘아침뉴스타임’의 정체성에 대해 진행자인 이주한(37)·양영은(30) 기자는 “주부들이 이야기 나눌 화젯거리를 제공하는 게 우리 프로그램의 몫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시간대 뉴스에서는 시간 제약상 다루기 힘든 뉴스의 이면, 왜 사건이 일어났는지, 뒤에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첫 방송부터 현재까지 앵커를 맡고 있는 양 기자는 최근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예로 들며 일반 뉴스에서는 경찰 발표가 어떻게 났고 무엇이 밝혀졌는지 등이 30초 안에 간략하게 소개되지만 ‘아침뉴스타임’에서는 유가족들의 애절한 심정이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는 어떤 사람들인지 등이 상세하게 다뤄진다고 덧붙였다. 건조한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것. 이런 차별화된 방식은 다른 뉴스 제작부서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협업 시스템 덕분이다.
이 기자는 “‘아침뉴스타임’은 기자와 작가,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이 함께 만듭니다. 기자의 날카로운 시선과 분석력, 작가들의 세상을 보는 다양한 눈, VJ의 기동성과 현장 취재력이 어우러져 특별한 색깔을 내고 있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두 앵커는 “세상사를 통해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며 시청자들로부터 “당신네 뉴스는 사람 냄새가 난다”는 평가를 들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한다.
기자들은 우표 가격도 모르냐는 비난에 정정 멘트 내보내
‘아침뉴스타임’을 이끌고 있는 양영은(왼쪽)·이주한(오른쪽)앵커. 이들은 시청자들로부터 “당신네 뉴스는 사람 냄새가 난다”는 평가를 들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앵커로 호흡을 맞춘 지는 1년 6개월째. 이 기자가 양 기자보다 입사 경력은 4년 선배지만 ‘아침뉴스타임’ 앵커로는 1년 늦은 2005년부터 합류했다. 방송을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은 취재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던 체험을 녹여내며 뉴스의 앵커 멘트도 직접 작성한다. 24시간 뉴스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다 보니 퇴근을 해도 마음은 늘 뉴스와 함께한다고.
이 기자는 방송국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방송 일에 막연한 동경을 품어왔다고 한다. 88올림픽이 열린 고등학교 3학년 무렵, 미국 NBC방송이 서울 정신여고에 방송 캠프를 차린 현장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
“어려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남보다 먼저 주변에 그 사실을 알리곤 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의 큰 매력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일을 먼저 밝혀내서 많은 이들과 나눈다는 것 같아요.”
신문사 시험에 두 번 떨어지고 KBS 방송국 기자 시험에 합격한 것이 지난 97년. 그해 말 IMF 외환위기가 닥쳤고 경제부에 배치된 이 기자는 밤을 낮 삼아 일해야 했다고 한다. ‘퇴출’ ‘구조조정’ 등 지금은 흔한 단어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경제용어를 익히느라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저는 ‘일을 끌고 다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는 부서마다 사건 사고가 많았어요. 2002년에는 1년간 경남 창원에서 근무했는데 내려가자마자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가 터지고 태풍 루사가 상륙해서 저뿐 아니라 방송국 직원들이 무척 고생했지요.”
다음 해 서울로 올라와 국제부에 배치되자 이번에는 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한 달 가까이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며 눈이 발개지도록 CNN과 외신 보도를 지켜봤다고 한다.
이 기자에게는 잊지 못할 ‘방송사고’의 경험도 있다. 경제부 기자로 근무하던 초년병 시절, 우표 가격이 10% 오른다는 뉴스를 그래프까지 동원해 보도했는데 방송이 나가자마자 보도국에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고. 당시 우표 가격이 1백40원이었는데 1백50원으로 잘못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기자들은 편지도 안 부치느냐”는 비난 전화가 쏟아지자 급기야 당시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가 뉴스 말미에 정정 멘트를 내보냈고 이 기자는 심한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신참 때는 중계차를 타고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스튜디오 앵커가 제 이름을 부르며 질문하면 첫 문장이 생각이 안 나 메모지를 찾으며 우왕좌왕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앵커를 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웃음).”
카메라 렌즈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라고 생각하며 방송
주변에서 종종 ‘아침뉴스타임’을 ‘뉴스답지 않은 뉴스’라고 하지만 이 기자와 양 기자, 두 앵커는 오히려 이를 칭찬으로 생각한다며 시청자들의 아침을 편안히 열어주겠다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뉴스 앵커가 꿈이었다는 양 기자는 입사 뒤 처음으로 교통사고 현장취재를 맡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운전자가 혼수 상태였는데 가족들은 운전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정황을 들어보니 제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어요. 어떤 말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고 더구나 한 쪽은 혼수 상태라 증언할 수도 없었고요. 시간은 없고 주어진 정보도 부족하지만 신참 기자이다 보니 ‘이건 보도할 수 없다’고 결정할 수도 없었지요.”
당시의 경험을 통해 양 기자는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취재의 어려움을 실감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지금도 사고를 당해 경황이 없거나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일은 힘들다고. 양 기자는 이런 취재경험을 모아 재작년에 입사 동기인 차세정·홍희정 기자와 함께 ‘미녀 여기자 3인의 고군분투기’(문예당)를 펴냈다. 앵커와 기자 지망생들에게 생생하게 체험한 방송기자의 길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에는 방송 카메라를 마주 보는 게 참 무서웠어요. 한 선배가 카메라 렌즈를 사랑하는 애인의 눈이라고 생각하며 바라보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방송이 익숙해진 요즘도 가끔 선배의 말씀을 떠올리며 뉴스를 진행하는데 방송 후 모니터를 하면 뭔가 느낌이 다릅니다.”
양 기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2년 전 자폐 장애 수영선수 김진호군이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오던 날이었다고 한다. 당시 낯을 가리는 김 선수로 인해 인터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타 방송사에서는 김 선수를 계속 취재해왔고, KBS는 입국하던 날 처음 취재를 나간 거였어요. 공항 VIP 라운지에 KBS 기자는 아예 못 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김 선수가 낯을 가리는 편이라 그동안 친해진 취재진하고만 대화를 하고요. 인터뷰는 해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더군요.”
방송회견장에도 못 들어가고 서성이던 양 기자는 간신히 김 선수의 어머니를 설득해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에 동행할 수 있었다. 기차 안에서 가까스로 인터뷰를 마치고 겨우 방송시간에 내보냈는데 다음 날 뜻밖에도 김 선수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아침뉴스타임’에서 한 인터뷰가 자신들의 마음을 가장 정확히 짚어줬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뉴스 보도에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들어가야 한다는 우리의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기자가 자칫 ‘사실’만을 찾는 데 몰두하다 보면 다루는 대상인 사람들과의 교감을 잊을 수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주변에서 종종 ‘아침뉴스타임’을 ‘뉴스답지 않은 뉴스’라고 하지만 이 기자와 양 기자, 두 앵커는 오히려 이를 칭찬으로 생각한다며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따뜻한 애정을 담아 보도하는 방송이 돼 시청자들의 아침을 편안히 열어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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