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초 방영돼 진한 감동을 준 SBS 추석 특집극 ‘깜근이 엄마’. 필리핀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명근이가 아버지의 재혼으로 한국인 새엄마를 맞으며 겪는 사건을 그린 이 작품에서 단연 눈길을 끈 건 명근이 역을 맡은 아역 탤런트 김지한군(9)이었다. 짙고 매끄러운 피부, 깊은 눈매를 가진 그는 실제로도 방글라데시인 아빠 유스프씨(38)와 한국인 엄마 김돈희씨(38)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하지만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드라마 속 ‘명근이’와 달리 그는 인천 부평 산곡북초등학교에서 인기 만점인 ‘꼬마 스타’라고 한다. 지한군의 어머니 김씨는 “요즘 아이들은 혼혈에 대한 편견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제가 남편과 연애할 때는 둘이 팔짱만 끼고 걸어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연세 드신 분들은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까지 저희를 쳐다보셨죠. 호기심과 불쾌함이 뒤섞인 그 눈길에 얼마나 마음을 다쳤나 몰라요. 그런데 지한이 친구들은 그러지 않더라고요. 이 아이를 자기랑 똑같은 친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그래서 지한군은 혼혈아라서 갈등을 겪거나 고민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1학년 때 한번은 친구가 절 보고 ‘아프리카 시껌둥이’라고 놀리더라고요. 기분이 나빠서 엄마한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네가 기분 나쁜 걸 그 친구한테 알게 해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다음에 그 아이가 또 그럴 때 ‘너, 나한테 한 번만 더 그 말 하면 안 참을 거야’라고 했죠. 바로 ‘미안해’ 하더니 다시는 절 그렇게 부르지 않았어요.”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지한군의 표정에서는, 친구들에게 까맣다는 이유로 ‘깜근이’라는 놀림을 받는 드라마 속 명근이의 모습이 전혀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지한군은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잘생긴 편이라 여자친구가 많다고 한다. 특히 지한군의 초등학교에 있는 농구부 누나들은 대부분 그의 열렬한 팬이라고.
방글라데시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지한군은 부모와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다.
친정 식구들의 강한 반대 뿌리치고 맺은 부부 인연
하지만 이들 가족이 처음부터 이렇게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김씨는 유스프씨와 결혼하기 위해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친정 식구들이 피부색이 까만 외국인과의 결혼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저희 인연은 좀 특별했어요. 처음 이 사람을 본 건 직장 동료들이랑 회사 앞 호프집에 갔을 때였는데, 외국인이 우리말을 능숙하게 잘하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 물론 이 사람은 그때 저의 존재조차 몰랐죠(웃음). 두 주쯤 뒤에 그곳에 갔는데 또 남편이 있는 거예요. 그때도 남편은 절 못 봤지만, 전 이 사람을 분명히 기억하게 됐죠. 세 번째 남편을 본 건 다른 장소에서였는데, 그런 식으로 여러 번 우연히 마주치니까 언제부턴가 이 사람도 저를 알아보더군요.”
어느 날 유스프씨가 “차 한 잔 하실래요?”라며 말을 걸어왔고, 두 사람은 곧 불같은 연애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만난 지 한 달 만에 인천에서 동거를 시작했다고. 김씨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을 리 없었다. 김씨는 이내 서울에 있는 둘째 언니 집으로 보내졌고,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집 앞 슈퍼마켓에 갈 때조차 조카를 딸려 보낼 정도였어요. 제가 도망갈지 모른다고요. 그렇게 갇혀 살면서 매일 이 사람만 그리워했죠. 하루는 그런 제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형부가 ‘처제, 우리 나가서 한 잔 하자’며 집 앞 호프집에 데려갔어요. 한 달 만의 외출이었죠. 전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언니랑 형부 눈을 피해 남편 삐삐로 호출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호프집 계산대 앞에 서서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전화기를 홱 채가데요. 형부였죠. 형부는 이 사람이 제 인생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전화기에 대고는 ‘너 어디야! 내가 지금 갈 테니 당장 만나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어요. 그러고는 그 밤중에 택시를 잡아서 언니랑 저와 함께 인천에 갔죠. 문제는 형부랑 언니가 인천 지리를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택시가 서자마자 제가 뛰어내려서 무작정 도망쳤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어요. 그때 두 사람이 얼마나 황당하고 속상하고 제가 미웠을지 생각하면 참 미안하죠. 하지만 그때는 남편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지만, 그 뒤에도 힘든 일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유스프씨가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91년 3개월짜리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95년 당시까지 비자를 연장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었다. 언제 강제 추방될지 모르는 상태였던 셈이다. 이들 부부는 서둘러 혼인 신고를 한 뒤 합법적인 비자를 받기 위해 유스프씨의 고국 방글라데시로 날아갔다. 하지만 한국 영사관에서는 이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불법체류 전력이 있는 이에게는 비자를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주재 영사님이 절대 안 된다며 그냥 거기서 살라고 하시는 거예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남편과 제가 10번도 넘게 찾아가 부탁하니 딱한 마음이 드셨는지 결국 3개월짜리 비자를 내주셨죠.”
지한군 가족의 즐거운 한때(왼쪽). 친정식구들의 반대로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김씨 부부는 최근 아이들까지 데리고 웨딩 사진을 찍었다(가운데). 서로 피부 색은 다르지만 사랑을 통해 하나로 묶인 지한군 가족의 손(오른쪽).
이후에도 유스프씨의 한국생활은 비자 연장 문제로 피 말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씨가 지한군을 임신하고 있던 97년, 결국 유스프씨는 강제 출국을 당했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생이별하게 된 김씨는 가재도구와 끼고 있던 반지까지 몽땅 팔아 방글라데시행 비행기표를 사서 남편에게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유스프씨의 식구들과 함께 9개월을 지내며 첫아들 지한군을 낳았다.
“남편이 7남매 중 둘째 아들인데, 아주버님은 딸만 둘 있어요. 시집에서는 지한이가 장손인 셈이죠. 방글라데시도 남아 선호사상이 강한 편이라 시어른들이 지한이가 태어날 때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시어머니는 그때 산바라지를 다 해주셨으니 아이에 대한 애정이 더 깊고요. 요새도 일년에 한두 번씩 방글라데시에 가는데, 지한이를 볼 때마다 참 반가워하시죠.”
방글라데시 생활은 편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유스프씨는 김씨에게 먼저 한국에 돌아가 법무부에 진정서를 한번 내보라고 권했다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씨의 시아버지도 귀국하는 며느리에게 한국 돈으로 3백만 원을 쥐어주며 ‘조심해서 잘 가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의 국민 소득을 따져볼 때, 그 돈은 은행에 다니던 시아버지에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액수였다. 아들 가족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시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안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김씨는 그날부터 진정서를 들고 법무부에 ‘출근’하기 시작했다고. 나중에는 그곳 직원이 “아줌마 또 왔어요?” 하며 알은체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정성이 통했는지 얼마 후 법무부에서 입국허가 통지서가 날아왔고, 김씨는 유스프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유스프씨가 우리나라에 귀화하면서 이들 부부는 비자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 유스프씨는 2003년 한국 국적을 얻은 뒤부터 방글라데시를 상대로 철판 수출업을 시작했는데, 이 덕분에 살림도 크게 안정됐다고.
지한군의 드라마 출연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이 가족에게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지한군은 혼혈 어린이 지원사업을 하는 펄벅재단 회원으로, 지난 봄 한국인 혼혈로 화제를 모은 미식축구선수 하인스 워드의 방한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뉴스가 나간 지 며칠 뒤, 그 방송을 본 SBS의 한 PD가 전화를 걸어온 것. 지한군은 펄벅재단에서 추천한 다른 혼혈 어린이 7명과 오디션을 본 끝에 ‘깜근이’ 역을 맡게 됐다. 이후 PD의 권유로 연기학원에 3개월 다닌 것이 그가 받은 연기수업의 전부. 하지만 그는 난생처음 출연한 이 드라마에서 혼혈아의 슬픔과 분노를 실감나게 연기하며 주목받았다. 난생처음 배운 경상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지한군을 보며 부모조차 감탄의 박수를 보냈다고. 김씨는 지한군의 풍부한 감성이 연기에 도움을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한이는 심성이 따뜻하고 바른 편이에요. 길을 가다 연세 드신 분이 무거운 짐 들고 가는 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거든요. 꼭 다가가 거들어드리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참 결 고운 아이를 아들로 두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요.”
지한군은 김씨에게 한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친정 식구들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친정 식구들은 지한군이 태어난 뒤부터 유스프씨를 가족으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특히 그의 친정어머니는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무색치 않을 만큼 유스프씨를 위해준다고 한다. 한번은 딸 내외가 오순도순 얘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너희 부부는 참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는구나. 부부가 그렇게 정 깊게 살면 됐지, 한국 사람인지 외국 사람인지가 뭐 그리 대수라고 예전에 그리 야박하게 반대했는지 모르겠다”며 슬며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고. 2003년에 둘째 아들 지민군(4)까지 태어나 이들 가족은 더 큰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제가 인천 밤거리에 버려두고 도망쳤던 둘째 언니는 지한이를 낳은 뒤에도 한동안 저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민이가 태어난 뒤 언니가 먼저 아이를 보러 찾아오면서 다시 가까워졌죠. 지금은 첫 조카 지한이가 태어났을 때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가족 가운데 누구보다도 지한이를 아끼고 위해줘요.”
“나중에 크면 천정명 형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엄마 아빠가 인터뷰하는 내내 동생 지민군과 컴퓨터 앞에 앉아 놀던 지한군은 장래 희망을 묻자 일초의 주저함도 없이 “연기자”라고 대답했다.
“연기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이 다음에 천정명 형 같은 배우가 될래요. 원래 꿈은 축구선수였는데 이젠 연기자가 더 좋아요.”
공부는 다른 아이들 하는 만큼 하지만 그다지 재미없고, 새로 나온 컴퓨터 게임이나 오락을 하는 걸 좋아하며, 친구들과 가끔 싸우지만 하루만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고 말하는 지한군은 영락없는 대한민국의 아홉 살 아이였다.
“남편은 농담처럼 ‘이제 CF 하나만 찍으면 된다’고 하지만, 부모 욕심으로 아이에게 연기를 시킬 생각은 없어요. 이번 일로 지한이에게 자만심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늘 주의를 주고 있죠. 저희가 바라는 건 지한이나 지민이 모두 지금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반듯한 사람으로 성장해주는 것뿐이에요.”
지한군은 지난 추석 때 달을 보고 소원을 빌라고 했더니 가장 먼저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엄마가 다른 소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자주 로또 복권을 구입하는 아빠가 복권에 당첨돼 부자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빌더라고. 다른 소원은 없냐고 하자 다시 한 번 온 가족 모두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다.
인터뷰가 끝나자 바로 친구들과 놀겠다며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신나게 달려나가는 지한군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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