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할 때 입을 옷이요? 글쎄 전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다녀서….” 배우라는 직업은 ‘화려하다’는 수식어와 잘 어울린다. 그가 꼭 스타가 아니더라도 배우라면 뭔가 남다르게 꾸며야 될 것 같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티셔츠와 청바지’를 말하는 배우 김미경(43)은 좀 다른 듯했다. 목소리는 굵고 낮지만 힘을 주지 않은 말투는 털털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다음 날 그의 집 근처 일산에서 만난 실제 모습도 전화 통화할 때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배우라고 특별할 게 있나요. 배우는 그저 연기가 직업인 사람일 뿐이에요.”
KBS 일일극 ‘열아홉 순정’에서 우경의 어머니 옥금 역을 맡아 가족들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맏며느리 연기를 실감나게 선보이고 있는 그는 지난 90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았고 연극판에서는 연기력을 인정받은 지 꽤 된 배우다.
1st Turning Point … 스물둘, 무대 위에 오르다
그가 연기를 처음 시작한 것은 스물두 살 때. 안에 쌓여있는 뭔가 때문에 답답했지만 딱히 쏟아낼 대상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무용을 했고, 고등학교 때는 미술을 했어요. 그런데 둘 다 적성이 아닌 것 같아 대학은 아무 관계도 없는 곳에 갔죠. 사춘기 시절부터 20대 초반 내내 방황했고, 집에서는 물 위의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어영부영 스물둘이 됐는데 어느 날 제 친구가 선배를 만난다기에 그냥 따라갔어요. 당시 그 선배가 연극을 했는데 그런 상황에 있던 제 얘기를 듣더니 갑자기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연극을 해야겠다’고.”
그뒤, 그 선배는 그를 데리고 연우무대로 끌고갔다. 연우무대는 문성근, 양희경, 강신일, 송강호, 유오성, 김윤석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을 배출한 극단이기도 하다. 당시 김미경은 그곳에서 진행되고 있던 리허설 공연을 한동안 “넋이 나가서 봤다”고 한다.
“그전까지 딱 한 번 외국의 번역극을 봤는데 말투나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낯설어서 ‘연극은 나랑 안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연우무대의 리허설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더라고요. 연극을 다 본 뒤엔 선배가 저를 연출자에게 인사시키고 바로 입단을 시켰죠. 나중에 알았는데, 당시 연우무대가 사회적인 주제의 작품을 공연해 한동안 정지를 당했고, 배우들이 많이 빠져나가 사람이 필요하던 시기였어요. 어쨌건 덕분에 제 인생이 달라졌죠. 그 다음 날부터 포스터 붙이러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공연장 청소하면서 밑바닥부터 시작했어요. 연기가 하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문성근, 양희경 같은 선배들도 선배라고 대우받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같은 일을 하니까 어린 마음에 그런 게 굉장히 정당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이곳은 정직한 곳이라는 믿음이 있다보니까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했죠.”
‘주’급이 아닌 ‘연’봉으로 10만원을 받던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즐거웠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무대에 서게 됐다.
“입단한 지 얼마 안돼서 ‘한씨 연대기’에 캐스팅됐어요. 당시 배우 다섯 분 중 한 분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빠지고 다른 사람을 캐스팅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연출자가 어느 날 ‘미경아, 너 한번 읽어봐라’ 하시더라고요. 공연장에서 제대로 관람한 적은 없지만 한두 달 매표를 하다보니 끊임없이 공연하는 소리를 듣고, 남의 대사까지 다 외운 상태였어요. 덜컥 캐스팅이 된 거죠.”
‘연극을 해야겠다’고 한 선배의 말이 맞았다.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연극하는 게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무대에 오른 지 얼마 안돼 평단에서 좋은 평을 받고, 여러 극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특히 ‘한씨 연대기’ ‘최선생’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같은 사회성을 담은 작품을 많이 했다.
“TV로 오니 웃기는 역을 주로 맡는데 무대에서는 코미디 시켜달라고 노래를 했을 정도로 항상 무거운 역만 맡았어요(웃음). 배우로서 보람은, 아직까지는 연극할 때 더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인민혁명당 사건을 다룬 ‘4월9일’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데, 제가 맡은 역은 인혁당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부인 역이었어요. 한번은 연극이 끝나고 너무 초라한 부인이 제게 오더니 울면서 손을 잡으시더라고요. 인혁당 사건과 관련된 가족분인 줄 알고 가만히 서있는데 손가락에 껴있는 반지를 빼내 주셨어요. 결혼반지라면서 남편 생각 때문에 처분 못했는데 연극을 위해 쓰라고 주시는 거예요. 그때 정말 연극하기를 잘했다, 이런 공연을 하길 잘했다 생각했죠.”
2nd Turning Point … 무대 밖에서 아내, 엄마로 살기
공연 연출가 겸 기획자인 13세 연상의 남편 박원근씨와 함께.
85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연기하는 게 재미있어 연애를 생각할 틈도 없었고 결혼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김미경은 지난 94년 13세 연상의 연극연출가인 박원근씨를 만나 결혼했다. 서울대 상대 시절 연극동아리에 빠진 뒤 쭉 공연 관련 일을 해오고 있는 박씨는 미국 예일대에서 예술경영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예술단 기획위원, 동숭아트센터 사장과 서울예술대 교수 등을 지내고 현재 뮤지컬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남편과는 91년 연극 ‘동승’의 연출자와 배우로 처음 만났어요.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고 공연이 거의 끝날 무렵부터 그런 감정이 생긴 거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남편은 나이 차이가 너무 나다보니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대요. 저는 저대로 ‘어떻게 감히 선생님을…’ 하면서 눌렀죠. 그런데 남편이 공연 끝난 뒤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것도 사람들 많이 있는 데서 커피 마시다가 갑자기. ‘나 큰일났어. 자꾸만 좋아져…(웃음).’ 열세 살 차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이 차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사고방식 자체가 그 나이대 사람들과 달라요. 머리 좋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인데, 정신연령은 열 살이에요. 세상 물정 모르고 철이 없다고 해야 하나(웃음). 그렇게 한 3년 사귄 뒤엔 ‘엄마 나 시집간다’ 이러고 집을 나왔어요.”
독신을 고집하던 셋째 딸의 갑작스런 결혼소식에 집은 한동안 술렁였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그가 결혼식을 거부했다는 사실.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을 선언한 딸 때문에 어머니는 한동안 몸져 누우셨다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만 계신 집에서 결혼한다고 이것저것 싸들고 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거든요. 게다가 남편에게 오피스텔이 있었고, 살림도 어느 정도 장만된 상태니까 그냥 혼인신고만 하고 보따리 싸들고 나간 거죠. 저는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필요 없는 데 돈 쓰고, 결혼준비로 귀찮아지는 게 싫어서 그랬는데 나중에 주변에서 하도 뭐라고 하셔서 우리 딸 돌잔치를 좀 크게 했어요. 그때 백여 명이 놀러 와서 ‘너희 이렇게 사는구나’ 했죠(웃음).”
두 사람 사이에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 소이(10)가 있다.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덕에 “그 자체가 문화”라는 딸과 이들 부부는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최대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해요. 여행도 자주 다니고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고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 버릇이 없어질까봐 걱정이에요. 남편이 딸을 너무 예뻐하는데, 제가 가끔씩 혼내면 남편이 감싸서 제대로 교육이 안돼요. 한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회초리를 맞으려고 아이가 바지를 걷어올리고 있는데 남편이 가로막고는 ‘차라리 나를 때려라’하며 종아리를 내밀더라고요.”
3rd Turning Point … 새로운 연기, 새로운 무대를 꿈꾸다
김미경은 현재 연극무대를 벗어나 있는 상태다. 딸을 낳은 뒤 배우보다 엄마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자 공연을 쉬게 됐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시간활용이 손쉬운 TV로 활동무대를 옮기게 됐다고 한다.
“사실 아기 낳은 뒤 곧바로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연극판에서는 상당한 위치에 있었으니까 주변에서도 그렇고 저 역시도 일을 접을 생각은 못했죠. 그런데 아이를 낳으니까 그 어떤 것도 아이보다 소중한 게 없는 것 같더라고요. 한쪽 눈도 못 뜨고 응애응애하며 울던 아이에게 ‘엄마야, 울지마’ 이러면 딱 그치는데, 그 순간 일이 뭐가 중요한가 싶어서 모든 걸 그만뒀어요. 중간에 더블 캐스팅으로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자꾸 아이 생각이 나서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1,2년을 아이를 키우며 보냈지만 배우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감각을 잃게 될까 두려움은 있었다고. TV에서 연기를 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개인적으로 방송작가 송지나씨와 알고 지내는 사이예요. 한번은 지나 언니가 ‘너, 그냥 아줌마로 끝날래’ 묻더라고요. 제가 ‘아이 다 키우고 다시 할 거야’라고 하니까, 언니가 비웃으면서 ‘그때 누가 널 써주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 작품 ‘카이스트’의 매점 주인언니 역을 권해줬어요. 연극은 시간을 많이 뺏기지만 TV 조연은 상대적으로 촬영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TV를 알아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면서.”
99년 ‘카이스트’에 이어 ‘대망’ ‘상두야 학교 가자’ ‘봄의 왈츠’ 등에 출연한 그는 현재 ‘열아홉 순정’과 함께 내년에 방영될 ‘태왕사신기’를 찍고 있다.
“텔레비전 연기에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아요. ‘열아홉 순정’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일일드라마인데 저는 아직도 여러 개의 카메라가 따로 찍는 게 헷갈려요. 그래서 제 차례가 아닌데도 막 연기하고(웃음). 그래도 다들 잘 이해해주셔서 고마울 뿐이에요. ‘열아홉…’의 옥금이라는 캐릭터는 사실 좀 낯선 역할이죠. 제 성격 자체가 워낙 걸걸해서 이런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친구이자 시어머니인 혜숙이와 싸울 때도 ‘나쁜 년!’ ‘기집애!’ ‘흥!’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렇게 싸워본 적이 없거든요(웃음). 요즘은 ‘대망’을 찍으셨던 김종학 감독이 연출하는 ‘태왕사신기’에도 출연해요. 그런데 웃긴 건, 거기서는 완전 선머슴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제가 맡은 역은 광개토대왕의 갑옷을 만드는 노처녀 대장장이인데 거의 산짐승 같아요(웃음). 일주일 중 2~3일은 50대 엄마이고, 하루는 밤새도록 망치질만 하죠(웃음).”
“방송연기를 하면서 그동안 연극을 통해 쌓을 수 없었던 또 다른 능력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는 김미경. 혹시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지 묻자 “좋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기회가 되면 남편과 함께 연극 기획을 하고 싶다”는 말도 조심스레 전한다.
“남편하고 같이 연극을 만들고 싶어요. 소규모의 연극이라도 제작하고 싶은데, 남편이 굵은 연출틀을 잡으면 제가 디테일을 잡을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 극에서 제가 연기를 해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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