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정애리(46)가 지난 4월 말 원자력병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나눔’을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 그는 강연을 시작하기 전 지난해 다녀온 인도 쓰나미 복구현장의 아이들을 영상으로 보며 “그동안 저 아이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이 너무 미안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올해로 벌써 18년째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현재 월드비전, 연탄은행, 사회복지법인 생명의 전화, 독거노인, 평화의 마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동포 돕기 ‘생명의 이음줄 운동’ 후원,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연예인자문위원 등으로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지난 5월 중순에는 지난해 펴낸 에세이집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수익금 전액인 1억원을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 사업을 위해 내놓았다. 그가 들려준 오랜 세월 봉사활동을 하며 얻은 진정한 행복과 나눔의 기쁨에 대해 귀 기울여보자.
오늘은 병원에서 강연을 하게 됐는데요, 사실 병원은 제게 그리 낯선 곳이 아닙니다. 우선 제 아버지가 오랫동안 B형 간염을 앓다 간암으로 진전돼 치료를 받고 계시고, 이제 쉰 살 된 막내오빠도 지난해 방광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거든요. 다행히 지금은 수술이 잘돼 회복기에 있고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라 병마와 잘 싸워 이겨내고 있어요.
막내오빠가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입원해있을 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당시 제가 오빠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 보면 하느님이 오빠를 많이 찾으시나봐” 하고 말했더니 오빠가 “나도 몸이 다시 건강해지면 이제부터는 남을 위해 살아야겠어. 병원에 있어보니 간호사들이 정말 다 천사더라. 매일 아픈 환자들을 대하면서 어쩜 그리 안색 한번 변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는지 모르겠어”라고 그러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오빠를 보면서 또 한번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인지를 깨달았고 제 주위의 사람이 변했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요즘도 가끔 오빠에게 안부전화를 걸어 “얼른 나아야지, 그래야 남을 위해서 살지” 하고 오빠를 재촉합니다(웃음).
저는 올해로 18년째 서울 노량진에 있는 ‘성노원아기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곳은 신생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을 친부모처럼 정성껏 돌보는 기관입니다. 지난해 제가 나눔의 현장에서 느꼈던 단상들을 모아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까지 많은 가르침을 준 곳이기도 합니다.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주위분들로부터 ‘사랑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가 맞지 않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어요. 하지만 제목은 ‘사람은’이 맞습니다. 몇 년 전 성노원아기집으로 온 한 아이의 일이 지금도 잊히지 않기에 붙인 제목이죠. 그 아이는 다들 믿지 못하시겠지만 쓰레기처럼 검은색 비닐봉지에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조금만 늦게 발견됐더라도 사망에 이를 뻔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눈에 띄어 성노원아기집으로 오게 됐고 지금은 많은 사랑과 축복 속에서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 주위에서 그렇게 물건처럼 버려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혹시 알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자들의 손길 또한 얼마나 절실한지를요. 대부분의 기관이 그렇듯 성노원아기집 역시 스무 명의 아기를 한 명의 보모가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봉사자들의 손길이 많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연한 기회에 성노원아기집을 처음 찾았습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잠깐 들른 거였는데, 저도 모르게 원장님께 “다음에 다시 올게요”라는 말을 남겼어요. 하지만 당시만해도 성격이 외향적이지 못했던 터라 다시 그곳을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유는 ‘나 혼자 어디 못 가니까’였어요. 탤런트라는 직업 때문에도 그랬고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봉사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러던 중 또 다른 촬영을 위해 성노원아기집 근처를 지나치게 됐는데, 순간 정신이 번뜩 들더라고요. 얼른 수첩을 꺼내 자세한 위치를 적고 그 다음 날 저 혼자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저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그곳 식구들을 보고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몰라요. 저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분들은 저를 원망하기는커녕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셨거든요. 그날 아이들이 환영의 의미로 제게 불러줬던 노래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불렀는데,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아 “따랑으로”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이야말로 사랑을 받아야할 존재인데 어떻게 세상을 사랑으로 감싸자는 노래를 나를 향해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죠. 저의 봉사활동은 그렇게 시작됐고 미흡하지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8년 동안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탤런트 정애리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세계곳곳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돼있다고 말한다.
“‘한 깔끔’ 떤다는 제가 지저분한 아이들을 먼저 끌어안게 되던 날 감사의 눈물 흘렸어요”
처음 성노원아기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과 헤어지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아이들 역시 저와 헤어지는 걸 싫어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헤어짐이 두렵지 않게 됐습니다. 태연하게 “안녕, 우리 다음 주에 또 보자” 하고 씩씩하게 돌아서게 된 거죠. 그것은 저와 아이들이 비로소 가족이 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헤어지지만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거란 걸 저와 아이들 모두 믿게 된 것이죠. 진짜 가족이라면 아침마다 직장이나 학교에 가면서 떨어지기 싫어 울고불고하지 않잖아요. 저녁이면 당연히 다시 만날 사람들이니까요. 어떤 분들은 저를 따라 한 번 성노원 아기집을 방문한 뒤 아이들과 헤어지는 게 두려워 두 번 다시 못 가겠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저는 “그래도 한 번 더 가봐. 계속 만나다 보면 가족이 될거야” 하고 말합니다.
제가 그곳에서 하는 일은 특별한 게 아니에요.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빨래,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는 일 그게 전부죠. 처음에는 깔끔하고 예쁜 아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 아이들 역시 자신이 먼저 선택됐다는 걸 눈치 채고 너무도 당당히 팔을 벌리며 저에게 다가오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감기에 걸려 콧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 뭐가 못마땅한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이, 그런 아이들에게 먼저 눈길이 가요. 그런 제 모습을 처음 발견한 날 저는 감사한 마음에 또 한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 어쩌면 내가 이렇게 변했을까, 나름대로 ‘한 깔끔’을 떤다고 하던 내가 지저분하고 뭔가 치우쳐 있는 아이를 먼저 껴안게 됐을까’ 하고 스스로 감동했습니다. 또한 ‘비로소 아이들의 부모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야말로 제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얻은 커다란 보너스입니다.
“사랑은 표현할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합니다”
그동안 나눔의 현장을 다니면서 얻은 게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성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됐다는 거예요. 간혹 봉사하면서도 안 좋은 소리를 들을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시간 주고 마음 주고 돈까지 주면서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웬만한 일로는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아요. 정말 여유로워졌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죠. 그래서 그런지 얼굴도 예전에 비해 훨씬 예뻐진 것 같아요(웃음). 물리적으로는 젊었을 때가 더 예뻐 보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지금의 얼굴이 더 마음에 듭니다. 나눔의 현장에서 얻은 행복과 사랑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간혹 저보고 맹탕, 물탕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제가 퍼주기를 좋아하거든요. 거짓말을 해서라도 저에게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너무 이상하지 않으면 그냥 줘요. 거짓말하는 그 사람보다 그래도 뭔가를 베풀 게 있는 제가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청량리역에서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데 제가 밥장사를 참 잘해요(웃음). 식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의 숫자를 잘 가늠해서 밥을 알맞게 퍼주거든요. 제가 식사를 대접하는 날은 반찬이 좀 더 좋아서인지 평소보다 많은 분들이 식사를 하러 오십니다. 돼지고기보다 쇠고기를 볶아가고 손이 많이 가는 잡채, 달걀말이 등도 준비해 가거든요. 노숙자분들께 밥을 나눠주는 일 또한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 밥을 나눠주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밥만 본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서운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분들도 예전에는 누군가의 훌륭한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었을 테고 또 어느 위치에서 중요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누군가에게 밥을 얻어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인정했을 때, 그때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헤아리니 밥만 쳐다보는 그분들이 더 이상 원망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밥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면서 음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깨닫게 됐습니다.
강연회를 마친 뒤 자신이 쓴 에세이집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에 사인을 하고 있는 정애리.
사랑은 표현할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때만 되면 돈만 내고 봉사하는 척한다”고요. 하지만 때가 돼 돈만이라도 내놓는다 한들 누군가가 그 돈으로 인해 혜택을 얻는다면 그 마음은 귀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의 현장을 다니면서 물질적인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강연회를 다니고 책도 펴낸 것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만원의 사치’라는 말을 하기 좋아합니다. 만원이라는 돈이 어찌 보면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한 작은 돈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 한 달의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합니다. 만원의 사치 얼마든지 부려도 좋을 것 같지 않나요? 우리나라만 해도 굶는 아이들이 30만 명에 이릅니다. 다들 믿지 않으시겠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봉사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단 봉사에 뜻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몇 가지만 주의해주시길 이 자리에서 부탁드립니다. 첫째 자신의 적성에 맞는 봉사를 찾으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노인분들을 대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자기가 하는 일이 곤혹스럽다고 느껴지면 차라리 그만두고 다른 봉사를 찾는 게 현명합니다. 도움을 받는 이들도 저 사람이 진심으로 봉사를 하기 위해 온 사람인지 아니면 자기 기분을 채우기 위해 온 사람인지 다 알거든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세상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본인이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둘째, 어떤 시설에서든 그곳만의 규칙이 있다는 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처음 봉사를 시작하신 분들 중에는 시설 운영자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간혹 있어요. 봉사자는 의욕이 넘쳐 사랑을 마구 퍼부으려고 하는데 기관에서는 어느 정도의 자제를 요구하니까 그런 행동들이 불합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해봤는데 그래도 지금의 방법이 단체를 운영하기에 최선이기에 여러 가지 규칙들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아셔야 해요.
그동안 제가 실천한 나눔은 진정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 있게 말합니다. 앞으로 저는 10년 뒤에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거라고요. 여러분 모두 나눔을 통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아름다워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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