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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부부의 사랑

정신연령 다섯살로 돌아간 아내 돌보는 이길수 감동 사랑

”아내가 정말로 절 사랑한다면 언젠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믿어요”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지재만 기자

2005. 09. 12

7년 전 일어난 추락사고로 4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아내를 깨어나게 하고, 그 후로도 뇌수술 후유증으로 5세 아이가 되어버린 아내를 변함없이 돌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남편이 있다.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한 남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길수씨를 만나 아내에 대한 한없는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신연령 다섯살로 돌아간 아내 돌보는 이길수 감동 사랑

누군가 “사랑을 믿냐”고 물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사랑의 의미가 변질돼가는 요즘, 진실한 사랑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한 남자가 있다. 7년 동안 변함없이 아픈 아내를 돌보고 있는 이길수씨(48)가 그 주인공이다. 이씨의 사연은 지난 8월 초 KBS ’인간극장‘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사람들은 저더러 특별하다고 하는데, 전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보통의 한 남자일 뿐이죠. 한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내를 끝까지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특별한 사랑을 하는 보통의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전주 우석대 한방병원을 찾았다. 병실에 들어서자 그는 아내 유금옥씨(47)에게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흥얼거리는 아내 곁에서 그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씨의 아내는 7년 전 그와 함께 일을 하던 도중 약 20m 높이의 사다리차에서 떨어져 4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었다. 의사들은 모두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포기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기적을 이뤄냈다. 그의 사랑과 정성이 4년간 잠들어 있던 아내 유씨를 흔들어 깨운 것이다. 하지만 유씨는 아홉 차례의 뇌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정신연령이 다섯 살인 아이가 되어버렸다. 또한 왼쪽 몸이 마비되고 기억상실, 언어 장애, 기질성 치매 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래도 이씨는 감사하다고 말한다.
“아내가 의식이 없을 땐 깨어나서 아무 말이나 한마디하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일어나서 ‘사랑한다’는 말도 하잖아요.”
기억을 잃어버린 아내에게 그는 가족들 이름을 한자 한자 가르쳐주고, 5세 아이가 되어버린 아내를 위해 자기 역시도 5세 아이가 되어 함께 놀아준다. 그리고 소변 기저귀를 하루에 18번씩 갈고, 대변을 일일이 받아내며, 목욕을 시켜주고, 화장품을 발라주고, 투정을 받아준다. 그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남편이 아니라 머슴”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는 “내가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냐”며 웃는다.
“사고 직후 6개월 동안은 저도 원망 많이 했어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저냐고, 나쁜 짓 하지 않고 가족만 위해 살았는데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냐고 하늘에 대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물었어요. 의식도 없는 아내에게는 왜 말을 못하냐고, 왜 오줌을 싸냐고 나무라기도 했죠.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병원 성당에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막 쏟아져 오전 내내 울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원망이 없어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더라고요.”
정신연령 다섯살로 돌아간 아내 돌보는 이길수 감동 사랑

사고 전 건강했을 때의 유금옥씨 모습.


오랫동안 병원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말한다. 중환자실에 있을 땐 하루 세끼를 다 챙겨 먹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잠잘 곳도 마땅치 않았다는 것. 로비 의자는 물론 등만 댈 곳이 있으면 어디에서든 자곤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비록 병실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더라도 아내 옆에서 잘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남는 침대에서 잘 수도 있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라면을 먹든,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싸온 음식을 얻어먹든, 혹은 식당에서 사먹든 간에 세끼 식사도 어떻게든 다 챙길 수 있게 되었다며 웃는다.
“저는 아무래도 괜찮아요. 아내가 좋아지기만 한다면 이깟 고생 아무것도 아니죠. 지금으로선 아내가 혼자 화장실 가서 대소변을 해결할 수만 있어도 바랄 게 없어요. 그거 하면 다른 것도 다 할 것 같아요.”

사고 순간으로 시간 되돌릴 수 있다면 대신 다치고 싶어
정신연령 다섯살로 돌아간 아내 돌보는 이길수 감동 사랑

이길수씨는 아내 유씨가 앞으로 더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두 사람은 성당에서 처음 만났고, 그가 아내 유씨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직을 맡으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집에 찾아가니까 아이들도 없는데 빨랫줄에 기저귀가 널려 있었어요. 알고 보니, 아내가 중풍 걸린 외할머니 시중을 들고 있었더라고요. 그때 ‘아, 요새 여자 같지 않구나’ 하면서 아내를 다시 보게 됐어요.”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시장에서 어머니 대신 대야에 채소를 담아 팔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고 한다. 멀리서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아내의 당당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고.
3년여 동안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키운 두 사람은 84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이씨는 섬유회사 관리 직원이었고, 아내 유씨는 공사장에서 도색작업을 하던 기술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아내의 직업이 전망이 밝아 보여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의 조수로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함께 일을 다니니까 좋았어요. 일도 더 많이 들어오고, 돈도 꽤 모았어요. 집도 장만하는 등 정말 행복했었죠.”
그런데 계속될 것만 같았던 행복은 한순간 깨어지고, 그와 아이들의 인생은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그는 7년 전 사고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을 하기 위해 사다리차에 올라가야 해서 서로 올라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였어요. 제가 올라가려고 하니까 아내는 ‘내가 몸무게도 가볍고 일도 잘하니까 내가 올라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내가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다른 일을 하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나 어째’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미 아내가 떨어져 있었어요.”
응급차가 도착하고 대학병원까지 가는 40여 분이 너무나 길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시 사고 기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만큼 그의 고통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은 듯 보였다.
“아내가 누워 있는 동안 ‘차라리 내가 누워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수천 번도 더 했어요. 7년 전 그날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제가 그 사다리차에 올라갈 거예요.”
그는 그때 아내를 올려보낸 게 끝내 후회된다고 한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미안하고 고마운 게 아이들이에요. 부모 없는 집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기숙사와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하죠. 그런데도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준 것이 고맙고요. 딸 레지나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전액 장학금을 받기까지 했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제 짐을 덜어주니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내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아들 요한이(22)는 중3, 딸 레지나(20)는 중1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만 했기에 남매는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스럽고 자립심도 강하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그는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다고.
“지금 요한이는 군대에, 레지나는 대학 기숙사에 있어요. 예전엔 아이들에게 ‘엄마가 1번’이라고,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말라고 항상 강요했죠. 그래서 일요일엔 꼭 병원에 와서 엄마를 돌보라고 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아내에게 매여 사는 것은 저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이제는 아이들에게 자기 인생을 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난해 10월부터 그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화장품 외판원 일이다. 사실 그 무렵 그는 부동산 중개사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합격을 해서 수능시험을 앞둔 딸에게 힘을 주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었다고. 그러다 같은 병실 환자에게 화장품을 팔러왔다가 아내에게 립스틱을 선물해 알게 된 화장품 영업소장의 권유로 화장품 외판 교육을 받게 됐다고 한다.


“아내가 퇴원해 온 가족이 모여 살았으면…”
“교육을 한번 받아보았는데, 생각보다 흥미롭더라고요. 그동안 치료비 대느라 모은 돈도 다 써버리고 적지 않게 빚도 지고 있는 형편이어서 안 그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외판은 일하는 시간이 자유로워 아내를 돌보면서 하기에 적당하단 생각이 들어 시작했어요. 처음엔 화장품을 파는 남자들이 거의 없으니까 오히려 장점이 돼 잘 될줄 알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진 않네요.”
하지만 인생의 벼랑 끝까지 몰렸던 그로선 더 이상 무서울 것도 힘들 것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꿋꿋하게 화장품을 팔러 다닌다고.
그가 생계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는 동안 사촌 여동생 이경희씨가 아내를 돌봐준다. 그런데 그가 보이지 않으면 아내 유씨는 울며 떼를 쓴다고 한다. 혹시라도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갈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잠시라도 그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돌아오면 “눈물나게 보고 싶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고 한다.
“어떨 땐 죄를 짓고 형무소에 있는 사람이 나보단 낫겠다 싶어요.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 값만큼만 형을 살면 끝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시작은 했는데 도대체 끝을 알 수가 없네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니까, 앞으로도 계속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 버티죠. 아내에 대한 제 사랑이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아직 그 사랑이 남아 있다는 거죠. 전 아내를 믿고 기다릴 거예요. 아내가 정말로 절 사랑한다면 언젠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하고 믿으면서요.”
지금 그의 가장 큰 바람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사는 것이라고 한다.
“내년 12월에 요한이가 제대를 하는데, 그 안에 아내도 퇴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요.”
이씨를 만나고 돌아오며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다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라는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아직 아내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고 그래서 앞으로도 기다릴 수 있다는 이길수씨. 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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