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6월 초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국내 메이저급 이종격투기 대회인 ‘코마대회’에서 고준석 선수를 상대로 3:0 판정승을 거둔 최재식 선수(27). 어릴 적 당한 사고로 오른쪽 팔이 남보다 짧지만 14전11승1무2패, 8KO의 화려한 전적을 지닌 그는 경기 때마다 초특급 스피드를 자랑하는 발차기와 상대 선수의 얼굴에 적중하는 놀라운 펀치로 관중을 숨죽이게 만든다. 때문에 ‘외팔 파이터’ ‘육체의 장애를 넘어선 진정한 승부사’ 등의 수식어와 함께 격투기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거대한 사건은 대개 한순간의 작은 실수에서 비롯된다. 최재식 선수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가 오른쪽 손목을 잃은 것은 여섯 살 때.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친구들과 소여물 써는 기계 주위에서 놀다가 오른쪽 손목이 기계에 빨려 들어갔다.
“무척 아팠죠. 그런데 어리긴 어렸나봐요. 아프고 무서우니까 엄마가 막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엄마를 찾으러 마을 입구까지 헤매고 다녔어요. 동네 사람들은 제 팔을 보고 다들 기절할 듯 놀랐고요.”
파상풍 감염 위험 때문에 병원에서 추가 절단 수술을 받은 그의 팔은 현재 팔꿈치 아래 10cm 정도까지만 남아 있다.
사고 이후 그의 집안엔 웃음이 사라졌다. 2남1녀 중 막내아들이 장애인이 되었다는 슬픔에 아버지는 농기계를 모두 부숴버렸고, 어머니는 매일 눈물을 훔쳤다. 사고는 여섯 살의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고통이었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장애가 있기에 더욱 강해 보이고 싶었던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궁중무술과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을 배우러 다녔다.
“운동을 하면서 팔 때문에 겪은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주위에서 운동을 잘한다고 칭찬해줬죠. 제 팔을 보고 놀리던 아이들도 제가 운동을 잘하게 되니까 부러워했어요.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게 참 행복했어요.”
대학 무도학과 지원했다 신체장애 이유로 떨어진 뒤 방황
하면 할수록 운동이 재미있고, 자신의 적성에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한 대학의 무도학과에 지원했다. 팔 때문에 다른 기술을 배우기는 어려우니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는 무도학과에 진학하는 게 유일한 꿈이었어요. 그런데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좌절했죠.”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았기에 쉽게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재수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는 대입 실패 때보다 더 큰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우연히 지원했던 대학 관계자로부터 낙방의 이유가 ‘신체적 장애’ 때문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것. 그 말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노력해도 무도학과 진학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세상의 높은 벽을 실감한 그는 공부하던 책을 몽땅 불태우고, 술에 취해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아이처럼 한참을 엉엉 울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부모님한테 왜 나를 살려놨냐고 울고불고 대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부모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크게 잘못한 일이죠.”
무도학과 진학이 유일한 꿈이었기에 꿈이 좌절되자 방황하던 그는 우연히 발 기술을 주무기로 하는 태국 무술 무에타이를 접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2000년에 재식이가 수련생이 되겠다고 처음 찾아왔을 때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약해 보이는 몸으로 힘든 훈련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기본기를 익혀나가는 적응력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아주 빠르더라고요.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는 자세도 좋고요. 재식이의 약점을 보완해 파이터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가르치게 됐죠.”
2000년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자신을 지도하고 있는 천안 강성체육관 강환권 관장에 대해 최재식 선수는 “인생에 단비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는 강 관장 밑에서 무에타이 훈련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인 2000년 10월, 처음 시합에 출전했는데 결과는 KO패.
“무서웠어요. 링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맞아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잖아요.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계속해서 얻어맞다보니 그렇게 좋아하던 무술이 처음으로 두려워졌어요.”
사흘 동안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지만 더 참혹하게 상처 입은 건 그의 마음이었다. 파이터로서의 첫 도전에서 처절한 패배를 맛본 그는 한동안 운동을 완전히 접고, 체육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패배자’라는 생각을 뇌리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하던 그는 결국 1년 만에 ‘다시 링 위에 서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체육관을 찾았다.
작은 체육관 운영하며 후배 양성하는 게 꿈
최재식 선수는 무에타이를 배운 뒤로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웃어넘기며 유쾌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 그는 주먹 힘을 기르기 위해 나무 타격기를 만들어놓고 온 힘을 다해 두드렸다. 매일 가파른 산길을 달리며 체력도 키웠다. 그 결과 재기전에서 첫 패배의 상처를 딛고 1라운드 2분 만에 상대 선수를 KO시키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 후 지난 6월 경기까지 ‘14전11승1무2패 8KO’의 화려한 전적을 쌓았다.
“가끔은 ‘나한테 한 손이 더 있다면 상대를 좀 더 쉽게 제압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하지만 일시적인 생각일 뿐이고, 지금 상태로 최상의 결과를 얻는 게 더 중요하죠.”
펀치보다 날렵한 발차기를 앞세워 링 위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자신감에 찬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지만 그는 정작 부모에겐 자신이 경기 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한다.
“막내아들 때문에 20년 넘게 웃음을 잃고 산 부모님이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간혹 경기 녹화 장면을 편집해 보여드리곤 하는데 이긴 경기를 보고도 부모님은 ‘저런 걸 꼭 해야 하냐’며 속상해하셔요.”
하지만 그는 어릴 적 뛰어난 운동실력 덕분에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을 때 기뻤던 것처럼 파이터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 기쁘다고 한다. 최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홈페이지 방문객 수도 크게 늘었다는 그는 자신을 향한 세인의 급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든든한 힘이 된다고 말했다.
“제가 시합에서 지면 마치 자신의 패배인 양 충격을 받고, 이기면 누구보다 기뻐하는 팬들을 볼 때마다 고마운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 사람들한테는 제가 희망이고 저한테는 그들이 희망이죠. 잃어버린 제 오른손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그래서 어떤 경기든 꼭 이기고 싶어요. 저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거든요.”
출전하는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그이지만 오는 8월 치러질 ‘무에타이 챔피언 타이틀전’은 무에타이를 익혀 오늘의 위치까지 온 그의 파이터 인생에서 특히 중요한 경기다.
“만약 제가 그날 챔피언이 된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거죠.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는 날이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날이 될 거고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내심 세계 최강의 격투기 선수를 가리는 ‘K-1 진출’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담한 체육관의 관장이 되어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파이터라 불리면서도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무술을 할 뿐 한 번도 싸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최재식 선수. 몇 번의 좌절이 있었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뒤로는 유쾌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웃어넘긴다는 스물일곱 살의 이 청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 깊이 하나의 문장이 새겨졌다. ‘아무리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하더라도 의지가 강한 사람은 그것이 불행한 운명으로 이어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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