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월 초 방영된 SBS 특집극 ‘내 사랑 토람이’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하희라가 시각장애인 주인공 역을 맡아 열연한데다 ‘토람이’ 역을 맡은 안내견 또한 자연스러운 연기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무엇보다 드라마의 모티프가 된 ‘사람과 동물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은 전숙연씨(47).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하희라씨 연기에 제 모습이 많이 담겨 있다고 해요. 여러 사람이 ‘꼭 선생님 보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 뒤로 제가 ‘앞으로 날 하희라로 불러주세요’ 하고 농담을 던지곤 합니다.”
그는 시각장애인인 탓에 드라마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하희라씨가 제대로 시각장애인 연기를 해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 하희라씨를 만났는데 ‘드라마 대본을 읽고 감동받아 울었다’고 하더군요. 하희라씨가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직접 안내견 체험도 하고 개와 친해지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서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현재 한빛맹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전씨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한방, 침, 발 마사지, 경락 지압 등을 가르친다. 10년 전만 해도 그가 이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지만 그의 나이 34세에 일어난 농약통 폭발 사고 때문에 과수원 주인에서 특수교사로 운명이 바뀌어버렸다.
어려서부터 줄곧 부산에서 자란 그는 결혼 후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 김성민씨(51)와 함께 경남 진영의 한 농촌마을에 보금자리를 잡았다.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는 젊은 부부는 1만 평 남짓한 땅에서 감나무를 키웠고 젖소도 두 마리 길렀다. 봄날 햇살을 받아 윤기 있게 빛나는 초록색 감잎과 상앗빛 감꽃, 그리고 가을에 열매 맺는 붉은 감이 그의 삶을 따사롭게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감나무만 바라봐도 영혼이 살찌는 것 같아 더 이상의 욕심을 가진 적이 없었어요. 잘 익은 감들은 따기가 아까워 바라만 보다 물러버리기 일쑤였죠.”
92년 6월 어느 날, 그는 남편과 함께 감나무에 농약을 뿌리기로 하고 농약통에 생석회와 농약을 혼합해 두었는데 그가 농약통을 열려고 하는 순간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농약통 뚜껑이 하늘로 치솟았다. 생석회는 액체와 반응하면 끓어오르는 성질이 있는데 고무를 녹여버릴 만큼 열기가 강하다. 그런데 이 뜨거운 농약이 분수처럼 치솟으면서 한 순간에 그를 덮쳐버린 것.
“정말 고통스러운 화상이었어요. 얼굴과 목, 왼쪽 팔과 가슴에 화상을 입었고 치료를 위해 3년 남짓 병원 생활을 했어요.”
그가 시력 회복과 화상 치료를 위해 받은 수술만 해도 전신마취 수술이 7회, 부분마취 수술만 2백 회가 넘었다고 한다. 눈동자에도 농약이 튀어 화상을 입었는데 두 번에 걸쳐 각막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실명하고 말았다.
“아들 범영이와 딸 은비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어 가장 슬펐어요. 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엄마로서의 희망마저 빼앗기는 것 같았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하루아침에 시각장애인이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 힘으로는 반찬도 제대로 집어 먹을 수 없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뜨면 남편이 반찬을 얹어주었다.
“제가 마치 가족의 생명과 활기를 좀먹는 곰팡이 같은 존재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가족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혼자 서울로 올라왔죠.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혼자 밥 먹고 화장실에 가는 일상적인 것만이라도 제대로 배우려고 했던 거예요.”
그는 1년여 동안 서울 한빛맹학교에서 재활교육을 받은 끝에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경남 진영에 있는 가족을 찾아갈 정도가 되었다. 그가 서울 생활에 자신감을 붙여갈 무렵인 97년 7월, 그의 앞에 운명적인 존재가 나타났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통해 안내견 ‘토람이’를 무료로 분양받은 것이다. 여성 시각장애인으로서는 그가 안내견을 분양받은 첫 케이스다.
“토람이는 골든 리트리버 수놈으로 영국 태생인데 뉴질랜드에서 안내견 교육을 받고 두 살 남짓한 성견의 모습으로 저에게 왔어요. ‘토실토실 우람하다’는 뜻을 담아 토람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지요.”
토람이는 그의 ‘눈’이자 ‘보호자’가 되어 그가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산책도 할 수 있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토람이가 밤낮으로 그를 보호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눈을 다친 후에 특수교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해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것도 토람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동기들과 교수님이 ‘토람이에게 명예 석사 학위를 주어야겠다’는 소리를 자주 했어요. 제가 받은 학위는 토람이가 제게 준 선물이나 다름이 없어요.”
그렇다고 토람이 때문에 그가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가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토람이를 단순한 ‘짐승’으로 취급해 곤란할 때가 많았다. 음식점 출입은 물론 버스 승차도 거부당할 때가 많았다. 택시 기사들도 그를 괴롭히는 데 한몫했다.
“대부분 개를 태울 수 없다며 승차 거부를 해요. 그럼 제가 토람이는 애완견이 아니라 ‘일하는 동물’이라고 설명을 하고 하차를 거부하죠. 그러니까 어떤 기사들은 제가 말한 행선지와는 전혀 다른 곳에 저를 내려놓고 줄행랑치는 경우도 있었어요.”
하루하루가 전쟁 아닌 전쟁이지만 그는 이런 부당한 일을 가급적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더 속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슬픈 감정은 오직 토람이하고만 공유했다.
황금빛 털에 순한 눈을 가진 영리한 토람이. 토람이는 사람들이 ‘귀족’이라고 부를 만큼 외모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개’로서의 능력이 탁월했다.
“토람이는 굉장히 예민한 개였어요. 저를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에서 오는 예민함이었죠. 제가 다치지 않을까, 몸이 아픈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상황이 안전한가…. 제가 아파서 누워있을 땐 토람이도 먹지 않고 누워 있었을 정도니까요. 제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길에서 사람들이 먹을 것을 줘도 유혹을 받지 않는 녀석이었지요.”
이렇게 아들처럼 연인처럼 아버지처럼 그를 보호해주었던 토람이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2001년 8월 비장출혈로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그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직원들과 함께 토람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편히 쉬세요. 이제 제 걱정일랑 하지 말고 편히 쉬세요. 다음 생에는 꼭 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복을 누리세요. 토람아, 잘 가. 너는 나의 아버지였어!’
토람이의 죽음 이후 그의 새로운 파트너가 된 안내견은 검은색 리트리버인 ‘대양’이다.
전숙연씨는 오늘도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원래 엄마들이 첫째 아이한테는 쩔쩔매고 끌려다니지만, 둘째부터는 여유가 생겨 느긋하잖아요. 마찬가지에요. 토람이에 비해 대양이와의 관계는 좀 더 느긋해요. 토람이가 마치 ‘선수’처럼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저를 보호해줬다면 대양이는 보행하면서 딴청도 잘 부리고 여기저기 구경도 해요. 한마디로 ‘호기심 천국’이죠(웃음).”
그는 대양이에게 정을 듬뿍 주고 있지만 아직 토람이만큼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도 토람이를 떠올리면 그의 눈가가 젖어 온다고.
“토람이는 저에게 ‘첫사랑’인걸요.”
남편보다 더 가깝고 애틋했던 사이가 토람이었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비록 토람이가 동물이기는 하나 ‘절대적 사랑’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에게 소중한 존재였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토람이는 정작 전씨보다 그의 남편을 더 좋아했다고.
“그렇게 점잖은 토람이도 남편을 보면 흥분해 꼬리를 마구 흔들어댔어요. 한번은 제가 대문 밖에 남편이 서 있는 것을 모르고 잠들어 있는데 토람이가 이불을 헤치며 저를 계속 깨우더라고요.”
남편과 시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큰 힘이 돼
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를 보면 극중 남편인 탤런트 김영호가 부인을 서울에 처음 데려다주면서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당신을 가장 조금 사랑했을 때는 당신을 처음 사랑했을 때야. 살면 살수록 더욱더 사랑하니까.”
그의 남편 김성민씨는 드라마에 그려진 남편의 모습보다 더 그를 아껴주고 사랑해는 사람이라고 한다.
“저는 남편이 저한테 잘 해주는 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중도에 시각장애인이 된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 말 없이 실명한 아내를 버리고 자식들과 도망쳐버린 남편들도 많대요. 남편과 살면 살수록 ‘내가 진국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남편이 아이들 다 키우고 살림 다 하고 저 만나서 정말 고생 많았죠.”
그가 실명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데는 토람이와 남편뿐 아니라 지금은 작고하신 시어머니의 따뜻한 사랑도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제가 시집에 가면 시어머니께서 따뜻하게 아랫목을 덥혀 두었다가 거기 앉히고는 파전을 비롯해 특별한 음식을 많이 만들어 주셨어요. ‘눈이 안 보여도 잘 살 수 있다’며 다독여 주시며 늘 사랑으로 감싸주셨지요.”
시어머니를 추억하는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줄곧 지나간 아픔에 대해서도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갑작스런 실명, 치료 과정에서 쏟아 부은 돈 때문에 산더미처럼 쌓인 빚 등 가족은 여러모로 해체될 위기에 놓였지만 ‘신뢰’라는 끈을 붙들고 지금까지 견뎌온 것이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 몸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마치 암에 걸린 것처럼 사람들이 자기 고통만 아는데 상처나 좌절은 늘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인생사잖아요. 굳이 사랑이 아니라 조그마한 관심만이라도 가지고 타인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저 같은 장애인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흔들리며 발을 헛디딜지언정 결코 멈추지 않는 ‘희망’의 모습이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