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강남 브로드웨이극장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있었다. DVD로 제작된 에로물 ‘카마수트라’ 시사회가 열린 것.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닌 에로물이 처음으로 극장에서 시사회를 가진 것도 이색적이었지만, 출연배우들이 관객 앞에서 직접 시연을 해 화제를 모았다. 무대 위에 놓인 붉은색 침대에서 푸른색 슬립 차림의 여배우와 팬티 차림의 남자 배우가 해설자의 설명에 따라 섹스할 때 도움이 되는 애무방법과 남녀의 성감을 높이면서 함께 절정으로 가는 방법을 보여준 것.
5월 말 출시 예정인 ‘카마수트라’는 한마디로 섹스할 때 어떻게 하면 상대와 함께 한단계 높은 쾌락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섹스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섹스 경전이라 불리는 ‘카마수트라’에 근거해 포옹과 키스, 애무, 오럴섹스, 체위, 자위행위 등 섹스에 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보통 3천만~4천만원 정도인 에로비디오와 달리 이 작품은 4억5천만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서 만든 야심작이라고.
눈길을 끄는 것은 섹스를 통해 심신의 건강을 찾을 수 있다는 웰빙섹스를 주창하고 있다는 것. 기존의 섹스 체위 비디오에서 볼 수 있었던 오르가슴을 증폭시키는 체위뿐 아니라 눈이 좋아지는 체위, 머리 아플 때 좋은 체위, 몸이 허할 때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체위 등 건강에 도움을 주는 체위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다.
‘카마수트라’를 만든 임성관 감독(35)은 에로물 작업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동안 뮤직비디오나 CF를 주로 만들어온 것. 하지만 신인가수 BE의 뮤직비디오 ‘내가 세상에 없을 때’에서 에로틱 섹시 이미지, H의 뮤직비디오 ‘잊었니’에서 엄정화를 등장시켜 레즈비언적인 에로틱 영상을 보여주는 등 에로티시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남자들은 대부분 섹시한 것을 좋아하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 특히 저는 여자들이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를 좋아해요. 예를 들어 눈을 살짝 감았다 뜨거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순간에도 에로틱한 표정을 발견하고, 어깨를 살짝 들었다 내리는 동작이나 손끝을 움직이는 것에서도 에로틱한 느낌들을 발견하죠.”
그래서일까? 지금까지의 에로물에서 보여지던 천편일률적인 섹스 장면들이 ‘카마수트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섹스하기 전에는 남자 배우의 힘에, 섹스를 시작하면 여자 배우들의 교성에 의지하던 기존의 에로비디오와는 달리 수위가 높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에로티시즘을 느끼게 한다.
색다른 섹스 제안해도 ‘변태’라고 말하지 않는 아내
CF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인정받던 그가 소위 말하는 에로물을 찍었다는 것에 대해 그의 부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아내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나고 대학까지 나와 일본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아내에게 얘기했던 건 아니에요. 처음엔 그냥 인도에 가서 작품을 찍고 온다고만 이야기했어요. 다 찍고 와서 ‘카마수트라’ DVD를 찍었다고 했죠. ‘왜 처음부터 얘기하지 않았냐’고 하기는 했지만 비난을 하지는 않더라고요. 함께 작업한 한 스태프는 차마 여자친구한테 이야기를 하지 못했대요. 여자친구가 자신이 에로물을 찍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고요. 그런 면에서 아내가 일본문화에 익숙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임성관 감독은 CF와 뮤직비디오를 만들다 처음으로 섹스 교본 DVD를 제작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에 결혼한 임감독은 아내의 직장이 일본에 있는 관계로 한달에 한번 만나는 월말 부부생활을 10개월째 계속하고 있다. 불만이 있을 법도 하건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거나 먼저 결혼한 또래 친구들이 권태기나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면 떨어져 있어 애틋한 감정이 더한 부부관계가 오히려 더 만족스럽게 느껴진다는 것.
“결혼한 사람들은 다 느낄 거예요. 매일 먹는 반찬은 질리잖아요? 저희는 한달에 한번 만나니까 섹스할 때도 색다르죠. 늘 보고 싶고요. 허전하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또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고요.”
아내는 한국에 들어오면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간다고 한다. 그동안 그는 스케줄을 잡지 않고 오로지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맛있는 곳을 찾아놓고, 갈 만한 곳을 수소문하고, 아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미리미리 알아놓는다고.
그는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아내를 만났다. 홍보팀의 일본부서를 맡고 있는 아내를 보고 마음에 들어 먼저 프러포즈를 했는데, 아내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고.
“만난 지 한달 반 만에 여행을 가자고 했어요. 여행가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섹스도 했어요. 다소 빠른 편이었지만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주저할 필요가 있나요? 아내와의 섹스는 더없이 만족스러웠어요.”
아내는 섹스에 관한 얘기를 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고 한다. 섹스는 남녀가, 부부가 함께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섹스할 때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거나 다른 체위를 원할 때, 상대가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때 만족할 만한 지점을 찾는 데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다고.
“아내는 제가 색다른 섹스를 하자고 제안해도 ‘왜 이래~ 자기 변태야?’ 하는 법이 없어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거죠. ‘딜도나 바이브레이터를 써볼까?’ 하는 제의에도 ‘그럼 그럴까?’ 하고 답하는 게 일본 여성들의 성문화예요. 저도 아내도 틀에 얽매이지 않아서 여전히 부부 사이가 좋은 건지 모르죠.”
그에게 아내 이외의 다른 여성과 섹스를 해본 경험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진짜 기억에서 싹 지우고 싶은 섹스가 있어요. 언젠가 한번은 능동적이다 못해 과격한 여자를 만나서 섹스하게 됐어요. 만나서 서로 호감을 느낀 것까진 좋았는데 섹스하면서 이 여자가 혼자서 밀어붙이고, 위로 아래로 체위를 바꾸더니 급기야 쌍소리까지 해대면서 ‘이렇게 해줘라, 저렇게 해줘라’ 요구하는 거예요. 진짜 죽을맛이었죠. 그런데 이거 아내가 알면 안 되는데(웃음).”
당시에는 어떻게 하면 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섹스를 하는 건지 강간을 당하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고. 그 일 이후로 섹스가 남녀 사이에 얼마나 많은 소통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섹시하게 생각하는 장면들은 따로 있다.
더 큰 쾌락 위해 물고 할퀴는 작은 고통 참을 수 있어야
“저는 닿을 듯 말 듯한 시선 속에 흐르는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좋아요. 흔히 에로틱한 분위기라고 하죠? 배우들이 훌훌 벗어던지지 않아도, 낯뜨거운 정사신이 없어도 묘한 여운이 남는 베드신이 있잖아요?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씨가 보여준 베드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섹시하잖아요?”
그는 섹스 경전이라 불리는 ‘카마수트라’에 나오는 체위를 얼마나 따라 하고 있을까. 그는 원본을 보면 일반인들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체위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을 위한 체위들과 상대방과의 쾌락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전희(애무)들은 충분히 배울 만한 가치가 있고 따라할 만하다고 한다.
“원본에는 전희나 애무라는 말이 없어요. 더 나은 쾌락으로 가기 위한 섬세한 터치가 있을 뿐이죠. 예를 들면 어깨를 할퀴거나 목에 키스를 할 때도 자국이 남도록 강하게 하라고 주문해요. 섹스할 때 쾌감을 높이는 방법은 그 어느 것도 무방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인지 디자이너 출신의 러시아 여자 배우는 함께 촬영했던 남자 배우에게 호감을 느껴서 데이트하자는 얘기를 했다고도 해요. 그만큼 카마수트라가 성적으로 매력 있었다는 얘기겠죠.”
물고 할퀴고 하는 작은 고통들은 더 큰 쾌락을 가져다주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당연히 참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해석한 카마수트라의 섹스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것을 몇 편 더 작업하고 싶어요. 우선은 아내에게 허락을 구하는 일이 더 급하겠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이 ‘카마수트라’를 보면 허락해주지 않을까요? 건강을 위해서 더 나은 섹스를 하자는데 반대할까요?”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건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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