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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우리 시대의 배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광기 어린 연기 보여준 장동건

■ 글·조득진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제공

2004. 03. 04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 돌풍이 무섭다. 개봉 12일 만인 지난 2월17일 전국관객 5백만명을 이미 넘어섰고, ‘실미도’가 기록한 1천만명 관객 동원 기록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 인기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장동건. 영화 ‘해안선’ 이후 자신만의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광기 어린 연기 보여준 장동건

전국이 온통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열풍이다. 지난 2월6일 개봉한 이후 연일 관객 동원 한국 신기록을 달성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 2월17일 현재 이미 전국에서 5백만명이 영화를 보았고, 평일에도 조조부터 심야까지 매진 행렬을 지속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 홈페이지(www.taegukgi2004.com)의 일일 방문자수가 하루 평균 10만명. 인터넷쇼핑몰에서도 군용 쌍안경, 야광시계, 침낭, 물 빠진 군복 등 밀리터리룩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흐르는 애틋한 형제애를 그린 작품. 강제규 감독은 구두닦이를 하며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순박한 청년 장동건(32)이 동생 원빈을 구하기 위해 전쟁의 광기에 휩쓸리면서 무자비한 살인기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영화 속에 장엄하고도 가슴아프게 담았다.
여기에 1백47억원에 달하는 한국영화 사상 최대 순제작비와 전국 4백43개에 이르는 최다 스크린 확보라는 물량 공세가 더해져 마치 한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 특히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생생하고 엄청난 규모의 전쟁 장면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키며 관객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흥행요소는 명장 강제규 감독의 기획과 연출력, 장동건과 원빈의 열연에 있다는 것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의견. 특히 동생과 약혼녀를 챙기는 평범한 가장에서 전쟁에 미친 야수로 변해가는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한 장동건은 이 영화를 통해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눈 뒤집혀 흰자위 보이는 마지막 전투 장면 압권
“영화 개봉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부담이 됐어요. 이젠 제 이름 석자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혹독한 촬영과 눈 덮인 대관령 꼭대기에서 먹은 차가운 주먹밥, 무릎 부상으로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가네요.”
사실 이번 영화의 캐스팅을 둘러싸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강감독이 주인공 진태·진석 형제 역에 장동건과 원빈을 캐스팅하려고 하자 스태프들이 “형제가 둘 다 너무 미남이어서 영화가 가벼워 보일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 두 사람의 수려한 외모가 오히려 핸디캡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염려였다. 하지만 강감독은 “어차피 군인이 돼 얼굴에 검댕이를 묻히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두밀령 전투에서 장동건의 연기는 특히 빛났다. “형”을 부르며 오열하는 동생도 알아보지 못한 채 ‘눈이 뒤집혀 흰자위가 보이는 눈’을 하고 연신 총격전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섬뜩하다 못해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던 것.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광기 어린 연기 보여준 장동건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관객들을 보니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분들이 많더군요. 저도 첫 시사회 때 많이 울었어요. 피를 나눈 형제가 서로 총칼을 겨누며 대치하는 장면, 또 친동생과 다름없는 구두수선공 후배를 사살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군요.”
“모든 장면이 다 힘들었다”는 그는 촬영하는 내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터지는 폭탄과 총알 세례, 그리고 폐타이어가 불에 타며 뿜어내는 검은 연기 속에서 살이 긁히고 찢겨졌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는 폭파장면을 찍다가 왼쪽 무릎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하필 첫 전투 장면을 찍을 때 무릎연골을 다쳤어요. 그래도 몸 걱정보다 연기 욕심이 앞서더군요. 남은 전투 장면에서 제 생각대로 몸이 안 따라주면 어떡하나, 그게 걱정이었어요.”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영화 촬영하는 내내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연기했던 그는 영화 개봉 직전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가장 힘든 점은 ‘감정을 잡는 것’이었어요. 전쟁영화의 특성상 폭발장면 등이 많기 때문에 촬영장에 늘 부상의 위험이 뒤따르고 있었죠. 지뢰가 폭발하는 지점을 피해가며 뛰고 구르고 총을 쏘는 가운데 감정을 잡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카메라는 제 얼굴을 잡고 있을 텐데….”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재촬영을 해야 할 때는 준비시간만 최소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스태프들을 포함, 모든 연기자는 한 장면 한 장면 최선을 다해가며 촬영에 임했다고. 특히 그는 촬영장에서 많은 스태프들에게 공손하면서도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본 개봉, 미국 진출로 ‘월드스타’ 부상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광기 어린 연기 보여준 장동건

한류 열풍의 주인공인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일본 미국을 비롯한 세계무대로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국제 영화제에서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번 영화의 흥행으로 장동건은 월드스타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6월중 일본에서 개봉이 확정된 상태. 또 2월20일까지 5일간의 일정으로 미국 현지에서 유니버셜픽처스,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등 5대 메이저 배급사를 상대로 한 시사회가 열렸는데 일부 업체에서 그에게 프로모션 투어를 제의했다. 이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국을 찾아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듯 장동건과 원빈이 미국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한 프로모션을 하는 것으로, 영화의 흥행성과 두 주연배우의 스타성이 세계적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카데미상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미라맥스에서는 장동건과 원빈의 2005년도 아카데미상 진출 가능성도 배제치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야흐로 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장동건 바람’이 미 대륙에까지 불어닥칠 기세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광기 어린 연기 보여준 장동건

그는 또 최근 영화 ‘패왕별희’ 감독 첸카이거가 추진하는 3백억달러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3월 중순 촬영에 들어가는 중국영화 ‘더 프라미스(The Promise)’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 ‘더 프라미스’는 중세 어느 시점, 한 나라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액션 영화로, 그는 태생이 베일에 싸인 노비 역을 맡아 슬픈 과거를 간직한 왕비와 안타까운 사랑을 나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중국어 대사로 연기할 예정. 이 영화는 2005년 칸 국제영화제 진출을 노리고 있어 그는 여러 모로 국제영화계에 발을 내딛을 기회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 사실 별로 끼가 없는 편이에요. 연기철학, 그런 거는 잘 모르겠는데 요즘 들어 좋은 연기가 뭔지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노련하고 훌륭한 배우가 익숙하게 던지는 ‘사랑해요’라는 말보다 신인의 서툰 대사가 더 울림을 줄 수 있잖아요. 그 차이는 바로 진심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흥행 실패 이후 돌연 마음을 비우고 저예산 영화인 ‘해안선’에 출연한 장동건. 그동안 어필했던 ‘꽃미남’ 이미지를 버리고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친 그는 이번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진짜 배우’로서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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