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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안타까운 사연

생활고 비관하다 아이 셋과 함께 투신자살한 엄마의 눈물 사연

■ 기획·이영래 기자 ■ 글·차준호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2003. 08. 08

생활고를 비관하던 한 주부가 아파트 14층에서 큰딸과 아들을 차례로 던진뒤 막내딸을 안고 투신, 자살해 충격을 주고 있다. 카드빚과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진 이 주부는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평소 신변을 비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이 ‘엄마’의 사연을 취재했다.

생활고 비관하다 아이 셋과 함께 투신자살한 엄마의 눈물 사연

생활고를 비관한 30대 주부가 자녀 3명과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해 일가족 4명이 숨진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7월17일 오후 6시10분경 인천 부평구 청천동 S아파트 화단에 주부 손모씨(34·인천 서구 가정동)가 8세와 3세인 딸 2명 및 6세 아들과 함께 떨어져 있는 것을 주민 문모씨(48)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손씨와 두 딸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아들은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2시간 뒤인 오후 8시경 끝내 숨을 거뒀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14층과 15층 사이 계단 창문을 통해 10여초 간격으로 손씨가 큰딸과 아들을 차례로 던진 뒤 마지막으로 막내딸을 안고 뛰어내렸다는 것.
이 아파트 주민 문씨는 “비디오를 빌리러 가려고 복도에 나오니 한 주부가 아이들과 함께 복도 계단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며 “아이 3명이 심하게 울면서 ‘엄마 살려줘, 안 죽을래, 살래’라고 애원했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또 “이들 중 큰딸로 보이는 아이가 ‘엄마가 우리들을 죽이려 한다’고 말했으나 장난으로 생각해 아파트 현관으로 내려온 순간 아이들과 엄마가 차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13층 주민 이모씨(32)도 “복도에서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한 여자가 아이를 안고 창문으로 뛰어내리려 해 말렸으나 미처 손을 쓸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숨진 손씨의 바지 뒷주머니에서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기 싫다. 안면도에 묻어달라’는 내용이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사건 발생 뒤 손씨가 왜 아이들을 아파트 밖으로 떠밀어 죽였을까 하는 의문이 쌓였다. 경찰은 이날 손씨 고향인 충남 태안 친정에 전화를 걸어 손씨와 아이들의 사망소식을 알리고 자살 동기를 찾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손씨의 남동생(31)에게서 “매형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지내다 오래전 가출한 뒤 누나가 일용직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다”며 “평소에도 생활고 때문에 죽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손씨가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7월18일 오전 2시경 충남 태안에서 유가족들이 차례로 인천 부평 경찰서에 도착해 진술에 나서면서 자살 배경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오전 3시30분경 남편 조씨(34)도 가족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대전에서 올라와 평소 가정생활에 대해 진술했다. 경찰은 유가족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수년간 생활고에 시달린 손씨가 마지막 선택으로 자녀들과 동반 투신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남편 조씨는 다니던 가구회사가 3년 전 부도로 문을 닫자 일정한 직업 없이 일이 있을 때마다 건설현장에서 품을 팔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이 실직한 직후 막내(3)가 태어나자 손씨는 어린아이 3명을 돌보느라 돈벌이도 할 수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 생활비를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틈이 날 때마다 식당에서 시간제 허드렛일을 했다.
손씨는 은행에서 1천만원을 빌렸고 남편 명의 카드로 3천만원을 대출했다. 신용카드 3개로 빚을 돌려 막다 남편과 자신이 모두 신용불량자로 분류돼 빚독촉에 시달렸다.
손씨의 언니(36)는 “9일 전화로 아이가 열이 심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을 빌려달라고 해 5만원을 부쳐줬다”며 “요즘 왜 전화를 안 받느냐고 물으니 ‘카드사의 빚 독촉 전화가 자꾸 걸려와 전화기 코드를 빼놓고 산다’며 신세를 한탄했다”고 말했다.

생활고 비관하다 아이 셋과 함께 투신자살한 엄마의 눈물 사연

손씨 가정의 실상은 인근에 사는 중학교 동창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예방접종을 위해 보건소를 찾으면서도 돈이 없어 고민해왔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손씨 친구 이모씨(34)는 “막내딸의 피부병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한다며 가끔 1만~2만원씩 빌려 갔다”며 “항상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건이 일어난 7월17일 오후 1시경 손씨 집에 가 보니 손씨가 아이들과 함께 감자를 쪄 먹고 있었고 ‘내가 자살하면 뉴스에 나올까’라고 물어봐 장난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손씨가 살던 서구 가정동 S아파트 경비원 박모씨(71)는 “사건이 일어난 당일에도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놀아줬는데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카드빚 독촉 전화, 딸 병원 치료비가 없어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신세,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는 부모로서의 자괴감….’
손씨가 생전에 감내해야만 했던 생활 모습이다.
7월18일 오후 손씨와 자녀 3명의 시신이 안치된 부평구 청천동 세림병원 영안실에는 손씨의 남편 조씨와 남동생 등 유족 10여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정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영정 대신 네명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흰 종이가 놓여 있었다. 유족들은 취재기자들에게 “나가달라. 괴롭히면 경찰을 부르겠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소식을 듣고 이날 오전 대전에서 온 남편 조씨는 머리를 숙인 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집사람이 알뜰하게 살림을 꾸렸는데…” 하며 흐느낀 채 더는 말문을 열지 않았다.
숨진 손씨와 세 자녀의 이 세상 마지막 순간은 그렇게 비통하고 쓸쓸했다.
손씨의 큰딸이 다니던 인천 서구 K초교는 이날 비통함에 잠겼다. 조양의 담임교사는 “조양이 오늘 7월(18일) 결석해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며 “아침에 일가족 투신자살 뉴스를 접했지만 그중에 조양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큰딸은 이날 수영장으로 현장학습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참가비 3천8백원을 내지 못했다. 이 학교 교무부장은 “아이가 가정형편이 그렇게 어려운지 모를 정도로 평소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밝게 지냈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인 7월17, 18일 동아닷컴 홈페이지에도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글과 분노하는 글이 잇따랐다. 한 네티즌은 “너무 가슴이 아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이들아. 부디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렴” 하며 애도했다.
그러나 죽기 싫다고 애원하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은 손씨를 비난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아무리 부모라 해도 자식의 생명을 거둘 수 없다. 살고 싶다고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괴롭다”며 손씨의 행동을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죽음을 직감하고 공포에 떨었을 어린 영혼들…. 가슴이 울고 하늘이 운다. 눈물 같은 비가 내린다”며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조문을 하고 부의금을 내겠다는 시민들의 문의도 잇따랐다. 전북 익산에 사는 고현동씨는 “동아일보 기사를 접하고 20여분간 아무 일도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죽은 넋을 위로하기 위해 영안실을 찾아가려 하는데 연락처를 알려달라”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외에도 이런 전화가 잇달아 걸려와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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