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끝,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 위치한 미황사. 지난 4월26일 밤 8시 이곳에서 자그마한 산사 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콘서트는 80년대 시위현장의 대표곡 ‘광주출정가’의 작곡자인 법능스님(42)이 처음으로 연 공식 음악회. 불문에 들어서기 전 ‘민중가수 정세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세번째 음반 ‘삼경에 피는 꽃’을 내놓기도 한 법능스님이 마련한 조촐한 음악회였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작은 절에서 한이 어우러진 우리 가락으로 ‘나는 강이 되리니’ ‘흔들리며 피는 꽃’ ‘끽다거’ 등 12곡의 노래를 부른 법능스님의 산사 콘서트는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음반 판매에 따른 수익금이 학생수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놓인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를 살리기 위한 기부금으로 쓰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전라남도의 경우 농어촌지역 초등학교의 학생수가 갈수록 줄어들자 최근 2년 사이에 초등학교 본교 8곳, 분교 13곳이 통폐합됐다. 1학년 3명, 4학년 1명, 6학년 1명 등 총 5명이 전교생인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는 지난 2001년 통폐합될 위기에 처했다가 통폐합 결정이 유보된 상태. 내년에 다시 통폐합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분교 정상화를 위해 주민들이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이날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는 서정분교생 전원인 다섯 개구쟁이들이 꾸민 합창. 법능스님의 노래 ‘절망하지 말자’를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를 위해 마련한 법능스님 공연에 보답하는 뜻에서 앳된 목소리로 들려준 것이다.
‘절망하지 말자/ 멀지만 가야 할 길/ 오늘 비록 눈물일지라도/ 절망은 하지 말자/ 이 세상 모든 것 내게서 멀어져도/ 앞만 보고 가다 보면/ 기쁜 날 오잖겠소/ 절망하지 말자/ 멀지만 가야 할 길/ 오늘 비록 눈물일지라도 절망은 하지 말자/ 절망하지 말자/ 멀지만 가야 할 길/ 길은 비록 험하고 멀어도/ 절망은 하지 말자/ 시내물 흘러 흘러/ 큰 강물 이루듯이/ 한 걸음씩 가다 보면 새날은 오잖겠소/ 절망하지 말자/ 멀지만 가야 할 길/ 길은 비록 험하고 멀어도/ 절망은 하지 말자’
처음 무대에 선 탓인지, 노래하라며 오빠에게 눈치를 주던 홍일점 여학생, 장난기 그득한 개구쟁이, 그리고 선생님까지 어울린 공연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서정분교 5명의 어린이들에게 뜨겁게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법능스님은 “단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서정분교 살리기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전교생이 함께하는 자리를 꾸몄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이 행사에 참석한 최재범씨(49)는 “도심의 찌든 공기를 벗어나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노래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법능스님의 공연도 멋졌고, 주민들이 마련한 잔칫상도 좋았고….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노력에 우리 농어촌에 대한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미황사 야외 무대 공연에 서정분교 아이들이 참여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 지난 2001년 통폐합 위기에 놓여 있을 때도 졸업생 20명이 눈물의 교가를 불러 교육 관계자들의 마음을 ‘일단 돌려놓은’ 적이 있다.
이 콘서트를 주관한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은 “현재 농어촌의 인구는 급감하고 도시에 비해 경제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역시 소외되어 있다”며 행정 편의주의에서 비롯된 교육현실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학교운영 문제나 경제논리를 떠나 단 한명의 아이라도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농어촌 인구감소를 걱정해 귀농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의 소규모 학교를 폐지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지요.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없다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아이를 둔 젊은 부모들이 안심하고 농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할지 교육 관계자, 학부모님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의 공연이 끝나고 법능스님의 사모곡인 ‘어머니의 손’이 이어졌다.
불문에 들어서기 전 ‘민중가수 정세현’으로 활동했던 법능스님이 처음으로 연 첫 공식 음악회 장면.
‘어머니 그 두 손에 바람이 불어와 두 손을 가를 때, 어머님의 맺힌 그 한이 가슴속에 사무친다. 살아오신 그 땅에 물기 마른 그 자리에 가뭄 들고 무서리 치는 시린 그 바람을 어머닌 아시네. 어머니 그 얼굴에 설움이 몰려와 주름살 깊을 때, 어머님의 그 작은 두 눈에, 맑은 이슬 흐르신다. 흰눈 쌓인 이 땅에, 얼어붙은 그 자리에 봄이 오고, 웃음꽃 피는 다스운 손길을 우리는 알겠네.…’
아름다운 선율을 함께 전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정도로 섬세한 곡이었다. 속세에서 한 어머니의 외아들인 그의 ‘출가(出家)’는 일종의 불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눈을 지긋이 감고 애잔하게 부르는 스님의 사모곡은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에 다름아니었다.
어느덧 밤 10시에 가까워졌고, 작은 공연은 막을 내렸다. 밤하늘엔 절 뒤편의 달마산이 강렬한 실루엣을 드러냈고 땅끝마을 해남의 아름다운 봄날 저녁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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