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SBS 아침드라마 ‘외출’을 끝으로 방송활동을 접었던 탤런트 김미숙(44)이 돌아왔다. 5월12일부터 KBS FM ‘세상의 모든 음악’의 진행을 맡은 것. 또 그는 SBS 일일드라마 ‘해뜨는 집’의 후속으로 방송되는 ‘연인’으로 브라운관에도 복귀했다.
그는 사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매력을 느낀 그로서는 이런 기회가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놓칠 수 없었던 것. 그가 새로 진행을 맡게 된 ‘세상의 모든 아침’은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퇴근 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클래식, 뉴에이지, 크로스오버, 제3세계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준다.
“사실 매일 2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하지만 그 일을 13년이나 해온 걸요. 이제는 라디오 진행이 일이라기보다 차분하게 앉아서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마이크가 내 유일한 파트너이지만 두시간 내내 청취자들과 대화하는 것 같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영화와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이만한 취미생활이 없죠.”
만 3년 만에 라디오 진행을 다시 하게 된 그를 가장 먼저 축하해 준 건 역시 남편이었다.
“방송 첫날, 남편이 방송국으로 꽃을 보냈어요. ‘세상의 모든 축복이 ‘세상의 모든 음악’ 제작팀에게로’라고 쓴 카드와 함께. 남편이 제 체면을 살려줬죠. 주변에서 부럽다는 이야기도 듣고, 저도 설레더라고요. 방송 끝나고 남편을 만나 밖에서 저녁을 먹는데 남편이 “여보, 나 방송 듣는 동안 떨렸어” 그러는 거예요. 그게 이 사람의 저에 대한 애정을 역력히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바쁠수록 이 남자한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를 설레게 하는 방송활동도 올해로 네살이 된 아들 승민이와 막 생후 10개월이 지난 딸 승원이를 생각하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두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 이제 엄마가 ‘방송국’에 간다는 걸 아는 승민이는 종종 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발목을 잡기도 한다.
4월 팬미팅 행사가 열린 안면도에서 찍은 가족사진.
“오늘도 집에서 나오는데 승민이가 ‘엄마, 나가지 마세요. 우리 펭귄 사러가요’ 하는 거예요. 그냥 매몰차게 뿌리치고 나올 수 없어 ‘엄마가 펭귄 살 수 있는지 수족관 가서 알아볼게’ 하고 달래다가 시간이 한참 지체됐어요. 어떤 날은 ‘엄마, 나 배고파요’하면서 저를 붙잡아요. 배고프다고 하면 엄마가 뿌리치지 못한다는 걸 승민이가 알거든요. 제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거죠.”
아이들과 ‘이별의 아픔’을 나누는 게 싫어 그는 되도록 승민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오전 10시 이후로 스케줄을 잡도록 노력한다고.
승민이가 슬슬 엄마의 약점을 파악하고, 꾀를 내기 시작한 반면 이제 10개월 된 둘째 승원이는 딸이라서 그런지 애교가 철철 넘친다고 한다. 그는 잘 웃는 승원이가 웃을 때 입을 가리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고 했다. 아이들의 행동과 말투를 그대로 흉내내는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여전히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한쪽 손을 머리에 대고 고개를 옆으로 젖히면서) 아빠가 ‘나 이뻐요?’하는 걸 가르쳤더니 ‘나 이뻐요?’ 소리만 하면 고개를 옆으로 젖히는데 아주 애교 있어요. 천생 여자애라니까요. 승민이는 처음부터 제가 안 데리고 잤어요. 그런데 승원이는 태어나서부터 데리고 잤더니 침대에서 혼자 잘 자다가도 한번 잠을 깨면 꼭 제 품에 안겨야 잠을 자요. 그래서 그런지 생후 5∼6개월이면 기어야 할 아기가 9개월이 되어서야 기기 시작했어요(웃음).”
이렇듯 승원이가 아들 승민이를 키울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지만 사실 그는 은근히 아들을 바랬다고 한다. 아들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승민이를 생각하면 남자 형제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또한 시커멓고 커다란 고래가 품에 안기는 태몽을 꾼 탓에 그는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은 뒤 마취에서 깼을 때 “딸입니다. 너무 예뻐요. 쌍꺼풀도 있고, 코가 예뻐요” 하는 간호사의 말에 깜짝 놀랐다고.
“제가 ‘딸이 맞냐’고 세번이나 확인했어요. 서운했던 모양이에요.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는데도 ‘쌍꺼풀은 또 왜 있지?’하고 의아해했어요. 저도, 아이 아빠도 쌍꺼풀이 없거든요. 코가 예쁘다는 말엔 ‘코는 날 닮았겠다’ 생각했죠(웃음). 근데 아이를 보니까 정말 코가 오똑한 게 예쁘더라고요. 간호사가 말한 쌍꺼풀은 아빠를 닮은 얄팍한 거였고요. 그마저도 이틀 지나고 나니까 없어졌어요. 대신 막 잠에서 깼을 때는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쌍꺼풀이 살짝 져요.”
엄마와 아빠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는 여동생을 맞은 승민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우를 보는 형의 심리가 첩을 본 본마누라 질투의 네배나 된다잖아요. 제가 승원이를 안고 있으면 ‘엄마, 승원이 무거워. 내려놓아’ 하면서 동생 안아주는 걸 질투해요. 그래서 둘 다 안아주려다 보니 제 팔뚝이 굵어졌어요.”
하지만 요즘은 달라져 말 못하는 동생에게 말을 걸고 혼잣말하는 승민이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고.
“승민이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승원아 우리 보고 싶었지?’ 그래요. 가만히 앉아있는 애한테 가서 ‘승원아, 배고프지?’ 하며 말을 걸기도 하고요. 승원이가 뒤에서 머리를 세게 잡아당겨도 ‘아가가 머리 잡아당긴다’ 그러고 마는 걸 보면 남매라는 게 다르긴 한가 봐요.”
아내의 나이와 건강을 생각해 둘째를 원하지 않았던 남편도 요즘은 “어느새 내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됐냐”며 새삼 놀라워한다고. 그 역시 남편이 아들과 연인 사이처럼 지내고, 딸의 애교에 녹아나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다고 했다.
“승민이는 아빠를 부를 때 꼭 에코까지 넣어가며 ‘아빠, 어딨어?’ 해요. 그러면 남편이 조르르 아이에게 달려와요. 꼭 연인 사이 같아요. 남편은 원래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어린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면 꼴불견이라며 부모가 교육을 잘못시켜서 그렇다고 화를 냈어요. 그랬던 사람이 요새는 세상에서 자기 새끼가 최고인 줄 알아요. 제가 ‘그래서 아이들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돼’하고 말하면 피식 웃죠.”
아빠가 아이들과 너무 잘 놀아주는 탓에 집에서 그는 나쁜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그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동정심을 완전히 배제하고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 하지만, 체벌 뒤에는 반드시 애정표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네살밖에 안된 승민이가 큰 잘못을 하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회초리를 든다.
벌써 엄마 속을 꿰뚫는 아들 승민이와 딸 키우는 재미 알게 해주는 승원이
“한번은 승민이가 ‘나 이거 싫어’하면서 식탁 위에 놓인 그릇을 손으로 탁 치더라고요. 그날 아주 무섭게 혼을 냈어요. 회초리로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아이 손을 잡고 있던 제 손톱이 회초리에 맞아 부러졌어요. 아이 엉덩이가 부르트고, 손바닥이 빨개졌더라고요. 그런데 승민이는 성격이 좋아서 그렇게 혼이 나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물으면 ‘안 할거야’ 하면서 품에 꼭 안겨요. 그리고 확실히 그 뒤로는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 엄마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는 뭔가 휙 던지려고 하다가도 눈치를 살피면서 ‘어∼손이 나쁜 짓 하려고 해’하며 손을 거두더라니까요. 또 얼마나 익살맞다고요. 차가 터널을 지날 때도 ‘엄마, 이게 뭐야?’ 하고 물어 ‘터널’이라고 대답하면, ‘아니야, 널터야 널터’ 그래요.”
어느새 엄마를 웃기고 울리는 승민이는 지난 3월부터 집 앞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3시까지 승민이가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을 선택한 그의 기준이 참 독특하다.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에요. 어느 날 보니 마당을 넓히는 공사를 하더라고요. 아이들을 위한 시설투자를 하는 곳이라면 좋은 원장이나 오너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섰어요. 아이들을 위해 마당을 넓히는 모습 단 한가지만 보고 승민이를 그곳에 보내기로 결정했죠.”
하지만 그가 직접 운영하던 ‘사랑유치원’을 기억하는 승민이는 처음 한달간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문을 닫은 사랑유치원에 심었던 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 심는 날 승민이를 데려가 보여줬더니 이젠 더는 사랑유치원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나름대로 이해한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유치원 교사이던 동생 김미경씨와 지난 87년 서울 마포구 성산 2동에 사랑유치원을 개원해 16년 동안 운영해오다 올해 2월 문을 닫았다. 사랑유치원은 한때 지원자가 많아 추첨으로 원아를 모집할 정도였으나 사립유치원에 대한 국고보조가 전혀 없어 매년 적지 않은 금액의 적자가 누적돼왔다. 그는 “금전적인 손해보다 정신적 투자와 정성을 생각하면 적자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다”고 말하면서도 “그동안 유치원 원장이라는 타이틀이 나 스스로를 관리하도록 하고, 다듬어준 것은 금전으로 따질 수 없는 대단한 보상”이라며 “지금도 돌아보면 ‘내가 참 대단한 일을 해왔구나’하고 스스로 대견해한다”고 말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지만 그는 아이들을 조금은 부족한 듯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게 아니라 이유가 분명할 때만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승원이에게 “나중에 정말 예쁜 옷 한 벌 사줄게” 하고 말하면서 승민이가 입던 옷을 입히고 있다.
대학생 어머니 역할 맡았지만 하고 싶은 건 여전히 멜로 드라마
그는 삶의 활력소가 되는 아이들 때문에도 그렇지만 자신의 일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남편 때문에 새삼 ‘내가 시집을 참 잘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한다. 광고음악 제작자이면서, 지난해 ‘뉴욕블루스’라는 장편 소설을 내고, 지금은 시나리오 작업과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남편 최정식씨는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는 물론이고, 최근엔 팬 미팅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는 등 외조에 소홀함이 없기 때문. 남편이 주도해 이뤄진 이번 팬 미팅은 5년 전 결성된 김미숙의 팬클럽 ‘미숙동(洞) 사람들’과 함께 지난 4월26일과 27일, 충남 안면도에서 팬의 가족과 그의 가족이 만나는 가족 모임 형태로 진행됐다. 재미있는 건 이번 팬 미팅을 통해 남편 최정식의 팬이라고 나선 ‘정식동’도 생겼다고 한다.
“남편도 팬클럽 회원이니까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사람들과 저 모르게 저를 위한 이벤트를 꾸미며 친해진 모양이에요. 설마 제 남편이 제 팬을 뺏어가 뒤통수를 치는 일은 없겠죠?(웃음) 남편이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저와 팬의 관계를 그렇게 잘 이해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이번 행사에서 팬들은 그에게 잊지 못할 감동의 선물을 안겨줬다. 모두 똑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그를 위해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한목소리로 노래한 것. 그리고 그의 가족을 꼭 닮은 모형 인형을 선물했다.
팬들로부터 받은 깜짝 선물의 감동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요즘 부쩍 ‘지금 하고 있는 일, 사람들과 맺은 관계가 중간에 끊기지 않고 ‘네버엔딩 스토리’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문득 ‘내가 죽으면 이 사람들 중 몇명이나 나를 찾아올까’하는 생각을 해요. 이제는 옆에 있는 한사람 한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변함없이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들에 대해 진실로 감사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SBS 새 일일연속극 ‘연인’에 출연중인 그는 남편과 사별한 후 변호사와 사랑을 키워 가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드라마에서 대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로 출연하는 탤런트 여현수(21)의 실제 어머니 나이가 자신보다 한살 아래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할 나이지’하고 체념했다며 웃는다.
그는 어느새 남들은 대학생 자녀를 두기도 한 나이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선호하는 드라마 장르는 기성세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멜로드라마. 그리고 가정주부 역할만이 아니라 검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역할, 사회성을 띤 작품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태어난 승원이가 처음으로 TV에 나오는 엄마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심 설레고 기대가 된다는 김미숙. 굳이 “행복하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서는 행복한 가정의 향기가 온몸 가득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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