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겨울, 데뷔작 <두사부일체>로 전국관객 3백50만명 동원의 기염을 토하며 탁월한 코미디 감각을 인정받은 윤제균 감독(34)이 2002년 겨울 ‘풍기문란’ 섹시코미디를 표방한 영화 <색즉시공>으로 다시 돌아왔다. 임창정, 하지원이 주연을 맡고 최성국, 진재영, 정민, 신이 등 맛깔스런 조연들이 호연을 펼친 영화 <색즉시공>에서 윤감독은 자신의 독특한 코미디 감각과 영화적 재능을 맘껏 과시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서른살 이전엔 영화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이었다. 영화 공부하러 유학을 갔다오고, 영화판 조감독으로 몇년 고생해도 되기 힘들다는 영화감독의 자리를 그는 “조폭이 고등학교로 돌아간다”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로 낚아챘다.
“인생 정말 모르는 겁니다. 저는 새옹지마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제가 만일 돈이 많았더라면 이런 일은 결코 없었을 거예요(웃음). IMF 시절에 무급 휴직 한달을 받았는데 그때 제가 마침 신혼여행을 갔다온 직후였어요. 어디 놀러가려고 해도 돈도 없고, 그냥 방구석에 있자니 마음도 답답하고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죠. 그게 제 인생을 바꿔놓은 거예요.”
부산 출신인 그는 삼수 끝에 대학에 진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졸업후 취직한 곳이 광고회사. 인터뷰에 앞서 그의 이력을 보다 광고회사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알고 당연히 CF 제작 파트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그는 영상 제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다. 그는 전략기획실 직원으로 4년여 일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갑자기 영화감독이 됐을까?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IMF 시대 전직원에게 주어진 한달간의 무급 휴가 때였다. 결혼 직후인지라 그는 단체 신혼여행을 갔다온 경험을 토대로 한달간 방안에 앉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단체 신혼여행중 누군가 한명이 죽는다면?’이라는 아이디어 하나로 써내려간 이 시나리오는 이듬해 있었던 태창흥업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2000년 <신혼여행>이란 제목으로 개봉됐다.
“제가 시나리오를 써서 상을 받으니까 광고 카피 라이터를 해보라고 그때서야 제작 쪽으로 보내주더라고요. 그때도 카피라이터니까 영상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건 아니었죠. 그때 제가 만들었던 카피 중 유명한 게 ‘라끄베르와 상의하세요’ 예요. 그렇게 한 1년 일하다 2000년에 벤처 열풍이 일었잖아요. 저도 벤처 붐 따라 나오면서 영화와 간접적이나마 관련을 맺게 된 거죠.”
‘내 사업 한번 해보자’며 회사를 퇴직한 그는 ‘네티즌을 통해 펀드를 모은다’는 네티즌 펀드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본이 없었던 그는 결국 완전한 ‘내 사업’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심마니 엔터펀드의 팀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당시 맺은 인연으로 그는 영화 제작자들과 교분을 트게 됐다.
“제가 시나리오를 쓰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필름지 사장님이 저보고 혹 재미난 소스 없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조폭 두목이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스토리는 어떠냐고 한 거죠.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게 된 건데, 막상 감독을 찾으니 마땅한 감독이 안 나타나는 거예요. 한달 정도 고민하다가 제가 은근슬쩍 ‘그냥 제가 하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땅한 감독 못 찾자 제작자 설득해 감독 데뷔
유학 생활 몇년, 조감독 생활 몇년을 거쳐도 하기 힘들다는 영화감독 ‘입봉’이건만 그는 그 과정을 단칼에 치러버린 셈이다. 물론 경력 하나 내세울 것 없던 그인지라 영화 제작 초기부터 많은 곤란을 겪어야 했다. 일단 배우 섭외가 가장 힘들었다. 그를 믿고 출연을 결정해줄 배우는 없었다. 그는 정준호를 찾아가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나는 영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같이 공부하면서 해보자’는 그의 진솔한 태도가 한 사람, 한 사람 배우들의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하는 심정으로 도전했던 영화 <두사부일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총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붙었다. 관록의 감독이라도, 스타진으로 무장한 영화일지라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붙게 되면 머뭇거리기 마련이지만 그는 호기롭게 ‘오히려 잘됐다. 한번 붙어보자’며 선뜻 도전장을 내밀었다. 블록버스터의 발에 밟혀버릴 것이란 예상을 뒤엎으며 <두사부일체>는 누구도 예상못한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코미디영화 감독답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재치가 넘쳤다.
“제 영화도 메시지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런 것엔 너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마음 아플 때가 많아요. 사실 <두사부일체>는 상문고 사태를 다룬 영화거든요. 전 93년부터 상문고 사태에 관심을 갖고 지켜봤습니다. 머리 희끗희끗한 선생님이 울면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저건 안될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물론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면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형태가 될 테지만, 그 주제를 전 제 스타일로 만들어낸 거죠.”
‘재미없는 영화는 죄악이다’라는 게 그의 영화관이지만 그는 동시에 ‘내 영화에는 분명 메시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영화 <색즉시공>도 마찬가지다. 영화 <색즉시공>은 차력부 남학생들과 에어로빅을 하는 여학생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벌이는 사랑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젊은 청춘남녀들이 단순한 섹스가 아닌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사랑은 장난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이 영화의 테마임을 거듭 강조했다. 사실 <색즉시공>은 그에겐 여러모로 특별한 영화다. 먼저 그가 ‘두사부필름’을 설립한 뒤 직접 제작한 1호 영화이기도 하고, 또 그의 자전적 경험이 가장 많이 담긴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을 삼수 끝에 들어갔어요. 나이 많이 먹고 대학에 갔으니 가자마자 바로 군대에 갔죠. 다행히 제가 ‘육방’이어서 별 티는 안 났지만(웃음)…. 복학 직후 짝사랑에 빠졌는데 그 대상이 신방과에 다니던 동기 여학생이었습니다. 지금 제 와이프죠(웃음). 영화 속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나이만 먹은 은식(임창정)이 은효(하지원)를 짝사랑하는 거하고 비슷한 분위기였어요. 그냥 바라만 보는…. 게다가 저는 그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한참 어려웠던 시기였거든요.”
7년 열애, 낙태 경험 <색즉시공>에 담아
‘두사부필름’을 설립하고, 제작자로도 나선 그는 이 영화로 또 하나의 ‘샐러리맨 신화’에 도전한다.
“은효가 낙태를 한 뒤 은식이 절규하면서 병원 복도를 걷는 장면에서 전 관객이 같이 울어줄 거라 생각했어요. 정말로 그건 슬픈 장면으로 설정한 겁니다. 그런데 또 웃더라고요(웃음). 제가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건지, 관객이 메시지를 보지 못하는 건지 모르지만, 하여간 영화적인 포장만 보지 말고 메시지도 좀 봐줬으면 좋겠어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몇몇 엽기적인 장면들 또한 그의 자취생 시절 경험의 소산이다. 영화 <색즉시공>에서 손꼽히는 엽기컷이 바로 ‘정자 프라이’인데, 이는 축산대생이던 한 친구가 1만원 내기 끝에 실제 실험으로 그에게 입증해 보였던 것이라고.
또, 지하 단칸방에서 자취하던 시절, 쥐가 많이 출몰해 유효기간이 지난 식빵에 쥐약을 넣어 방 구석에 놔둔 적이 있었다. 그때 놀러온 후배가 배고프다며 그걸 먹어치운 것. 못 먹게 하려고 소리를 질렀지만 후배는 장난인 줄 알고 입안에 샌드위치를 문 채 골목 끝까지 뛰어나가며 다 먹어치웠다고 한다. 물론 후배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고, 그와 친구들은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데이트 나간다고 머리에 무스 대신 딸기잼을 발랐다가 파리가 꼬이는 것도 그의 첫 미팅 시절의 추억이다. 당시 그는 딸기잼은 아니고 요구르트를 바르고 나갔다 창피를 당했다고.
“돈이요? 성공하면 많이 벌겠지만(웃음)…. 총 제작비가 25억원, 홍보비 포함하면 한 40억원 정도 썼으니 그 정도는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면 전국 관객 1백50만명 정도여야 하는데, 그 이상은 들 것 같아요. 돈보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하고 싸워서 우리 영화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영화 <색즉시공>은 그가 ‘두사부필름’을 설립하고 ‘필름지’와 함께 공동제작한 영화다. 때문에 만일 이 영화가 <두사부일체>와 같은 흥행 ‘대박’을 터뜨린다면 그는 돈방석에 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올겨울 새로운 ‘샐러리맨 신화’가 탄생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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