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드무비>의 한 장면.
<로드무비>는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다룬 멜로 영화. 동성간의 정사 장면을 리얼하게 담아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극중 석원은 잘 나가던 펀드매니저에서 주가하락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다. 그는 서울역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약물을 복용하고 자살까지 시도한다.
“처절하게 망가지는 역할이 맘에 들었어요. 이성애자지만 동성애에 빠져드는 것도 이해가 됐고요. 무엇보다도 새롭게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깜깜한 공간 속에 펼쳐진 하얀 스크린과 커다란 영상 속으로 빨려드는 기분이 너무 황홀했다는 정찬. 그는 어려서부터 극장에 가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 사촌형과 극장에 가 펑펑 울고, 때로는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그런 그에게 영화배우가 되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95년도 탤런트로 데뷔한 후 줄곧 영화에 출연한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을 정도. 하지만 그의 첫 영화 <로드무비>는 꽤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주연 배우인 자신의 대마초 흡입 사건이었다.
연기 욕심 위해 한번 피워본 게 화근
“처음 <로드무비>의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대마초를 흡입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이 장면을 제대로 찍으려면 ‘경험’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가장 힘든 장면이었고 찍고 나서도 잘 나오지 않아 고민했죠. 그때 카메라 감독님이 대마초를 가지고 있다고 하시길래 ‘피워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대마초를 펴보고 다음날 다시 그 장면을 찍었어요. 음…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지만 연기에는 도움이 됐어요.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제가 혼자 몸이 아니라 한 집단의 생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성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후 그는 출연이 예정됐던 드라마에 출연하지 못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기가 막힌 일은 정찬이 23일간 지냈던 유치장이 정확히 1년 전 남동생이 잡혀 들어갔던 곳이었다는 것.
“동생이 운동권 대학생이었는데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쫓기고 있었어요. 언젠가는 쪽지 한 장만 써놓고 사라져 일년동안 도피생활을 한 적도 있고요. 동생이 유치장에 들어가 있을 때 제가 부모님과 면회를 갔었는데, 정확히 일년 후 같은 장소에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저를 면회 온 거예요. 어머니가 ‘너희가 어렸을 때 이민가려고 했는데, 갈 걸 그랬다’며 눈물을 보이시는데, 불효를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생은 지금도 학원강사로 있으면서 민주노총에서 일한다고 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어떤 불이익이 있어도 단행하는 동생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는 정찬. 그도 대마초 사건이후 작은 실수조차도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즐겨 피우던 담배까지 끊었다.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스쿠버다이빙, 스카이다이빙, 스노우보딩, 인라인스케이팅 등 못하는 운동이 거의 없다.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종목은 거의 다 땄다는 사실에서 그의 스포츠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정찬은 자신을 탤런트가 아닌 배우로 불러주길 원한다.
자연까지 훼손하며 즐기는 스포츠는 사양한다는 정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는 자신이 절대 부르주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스포츠 마니아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자신을 부잣집 아들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사람들은 원래 제 태생이 부잣집 아들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 사실 스포츠는 제가 연기생활을 시작하고 경제력이 생기면서 시작한 거예요. 여행 다니는 것도 그렇고요. 차도 제가 벌어서 장만했죠. 그러다 보니 통장잔고는 늘 제로예요.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물으면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통장잔고가 바닥이라서 못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최근엔 필리핀에 가서 스쿠버다이빙 마스터 자격증을 따고 돌아왔다는 그는 조만간 강사 자격증까지 딸 계획이다. 그는 이런 재주를 영화에서도 십분 활용했다.
“여배우 서린씨가 동해에 빠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날 파도가 너무 셌어요. 결국은 제가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가지고 서린씨를 바닷물로 끌고 들어갔죠. 그런데 파도가 칠 때는 팔을 잡고있다가도 놓아버리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거든요. 팔이 꺾일 위험이 있어서요. 그래서 제가 ‘안전하게 보살펴주겠다’고 말하면서 놓아도 서린씨는 자꾸 저를 잡으려고 하더군요.”
신인 여배우 서린과 정찬의 관계도 남다르다. “그렇게 야한 영화 찍다가 시집 못 가면 어쩌냐”고 고민하는 서린을 열심히 꼬셔 출연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정찬이었던 것.
“남자지만 섹스신 찍고 나니 마음이 허하고 민망했다”
<로드무비>에선 강도 높은 섹스신이 자주 등장한다. 정찬은 영화 끝장면에서 올누드로 등장하기도 한다. “남자지만 섹스신을 찍고 나니 가슴이 허하고 민망했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처음으로 섹스신을, 그것도 남자랑 찍었으니 고충이 어지간히 심했을듯 하다. 그렇다면 동성애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은 어떨까.
“동성애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다가 이해하게 되는 석원을 연기하기 위해 동성애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사람과 사람간의 애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석원의 처지가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하지만 전 완벽한 이성애자예요(웃음). 어쨌든 영화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예방접종을 충분히 했으니 이젠 동성애 문화를 접한다고 해도 새삼 놀랄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
다만 그가 동성애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생각을 좀더 넓게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로드무비>를 둘러싸고 동성애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주장을 펼치는 동성애자들의 비난이 조금은 편협하게 보인다는 것. 그냥 영화는 영화로만 봐 달라는 것이다.
그의 성격은 강한척 하면서도 약하고, 약하면서도 어줍지 않게 강한 들쭉날쭉형. 그리고 하나에 빠지면 끝장을 봐야 헤어나온다. 그래서 그는 교제하던 여자와 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이상형은 책을 좋아하는 여자. 최소한 아이 앞에서는 억지로라도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항상 책을 읽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그도 자연스럽게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는 것. 그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그밖에는 여자를 보는 특별한 조건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할 때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 배우로서 좀더 기반을 닦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은 악역. 하지만 전형적인 악역이 아니라 본래 순했던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죄를 저지르면서 갈등에 휩싸이는 복합적인 캐릭터였다면 좋겠다고 한다.
정찬은 자신을 탤런트가 아닌 그냥 배우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로드무비>의 석원 역을 발판삼아 배우로서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진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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