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은 낯선 남자와의 정사 때 느끼는 떨림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남편의 외도는 미흔의 여성성을 없애버렸어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여자가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낯선 남자와의 사랑을 통해서 자신이 여자임을 확인하려는 거예요. 섹스 후 ‘잘했냐’고 묻는 것도 자신이 여자인지,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대답을 들으려는 거고요. 이 영화에서 섹스는 말초적인 쾌락이나 단순한 욕망의 표현이 아니예요. 여자로서의 본능을 되찾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몸부림이죠.”
영화 <밀애>에서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하다가 자신도 낯선 남자와 격정적인 불륜에 빠지는 유부녀 ‘미흔’을 연기한 김윤진(29). 미흔이라는 인물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하며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슬프면서도 허무한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을 보니 “촬영 기간 내내 미흔으로 살았다”는 말이 과언은 아닌 듯했다.
<밀애>는 파격적인 성애장면이 포함된 격정 멜로물, 여성의 감성을 섬세하게 그리는 여성작가 전경린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한 영화, 정신대 할머니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의 감독 변영주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크고 작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남녀 주인공인 김윤진과 이종원의 과감한 정사신. 영화에서 네 차례 등장하는 이들의 정사신은 스태프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노출수위가 높았다고 한다.
“출연제의를 받고 8개월 동안 피해 다녔어요. 너무 부담이 돼서요. 진정한 배우라면 노출쯤은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바라보는 눈빛은 그렇지 않잖아요. 오랜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했어요. 무엇보다 제 몸이 미흔이라는 여성의 고통을 천박하지 않게 표현하리라 믿었고 탄탄한 시나리오와 감독님을 믿었죠. 상업적인 에로영화로 탄생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요. 그래도 막상 카메라 앞에 옷을 벗고 서니 너무도 민망하고 힘들더군요.”
보통 노출연기를 할 때 배우와 스태프는 촬영 전 ‘무릎까지 노출’ ‘허벅지 노출’ ‘가슴 위 노출’ ‘가슴 노출’ 식으로 일종의 약속을 한다. 촬영 전까지도 그는 노출에 소극적이었고 ‘약속’의 수위도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원래 한 ‘약속’보다 훨씬 ‘야하게’ 진행됐다고 한다. 뒷모습 누드는 물론 가슴 부위까지 모두 노출한 것. 이 문제로 스태프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지만 당시 촬영이 50% 이상 진행된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변영주 감독을 믿었기 때문에 “그럼, 그대로 가자”고 했다고.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변감독은 프로의식이 뛰어난 훌륭한 배우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사실 찍는 사람은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 잘 몰라요. 촬영 후 찍힌 장면을 보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너무 야해서요. 하지만 지금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처음으로 정사를 나누는 느낌, 그 떨림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웃음). 물론 가족들이나 어머니 친구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기는 하죠. 신문에서 ‘야하다’ ‘김윤진이 벗었다’는 식의 기사를 보신 어머니 친구분들이 종종 안부전화를 하실 정도니까요. 영화 자체가 아니라 ‘벗었다’가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죠.”
상대역인 이종원과는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스케줄이 맞지 않아 ‘애절하면서도 도발적이고 야하다’고 소문난 영화 포스터마저 따로 찍고 합성했을 정도. “노출이 많은 영화인 만큼 살을 빼고 몸을 확실히 만들기 전까지는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이종원의 ‘각오’도 크게 작용했다.
“전 상대역 없이 혼자 영화를 찍는 줄 알았어요. 이종원 선배님이 너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서. 그런데 선배님은 일부러 저랑 친해지지 않으려고 했대요. 너무 친하다 보면 에로틱한 장면을 찍기 힘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요. 하긴 찍고 나서 민망했던 걸 생각하면 선배님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아요(웃음).”
김윤진은 자신이 미흔을 맡게 된 것이 운명인 것 같다고 말한다. 2년 전쯤 아주 우연히 전경린의 원작 소설을 읽은 것. 그는 소설을 읽은 후 이틀 동안 앓아 누웠다고 한다. 미흔이라는 여자의 운명이 그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파고 들었기 때문. “미흔이라는 여성을 제대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는 것도 파격적인 노출만큼이나 영화출연을 망설이게 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출연을 결정한 후에는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까지 참여했고, 지난 여름 내내 촬영장소인 남해에 머물며 연기에만 몰두했다. 미흔이 아픈 장면을 촬영할 때는 실제로 그의 몸도 좋지 않아 따로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고. 이런 그를 두고 스태프들은 미흔의 귀신이 씌웠다고 말했을 정도다.
촬영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올 때 마치 자신도 사랑을 떠나보낸 것처럼 마음이 아려왔다는 김윤진. 그도 영화 속 미흔과 같은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까.
“격정적인 사랑은 너무 힘들어요. 어렸을 때는 불처럼 타오르는 사랑을 하고 싶었고 그런 사랑을 해본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랑, 그저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사랑이 정말 진실된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랑할 사람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결혼하고 싶은 걸요(웃음).”
그러고 보니 그의 나이도 어느새 서른을 코앞에 뒀다. 이른바 결혼적령기지만 현재 사귀는 사람은 없단다. 말 많은 연예계에 발을 들이고 보니 사람을 만나 진지한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제가 배우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할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남편이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들이 ‘너네 와이프가 예전에 누구랑 사귀었다’ 등등의 근거 없는 소문을 이야기한다고 해봐요. 남편 마음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종종 여배우들끼리 모여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줄까봐 결혼도 못하겠다고. 물론 외롭기는 하죠. 결혼해 아이 낳은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고. 특히 결혼한 언니가 네살 된 조카를 데리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빨리 결혼해야지 싶어요.”
하지만 올해는 ‘외롭다’ ‘결혼하고 싶다’ 등의 ‘사치스러운’ 감정을 가질 여유가 없었을 정도로 매우 바빴다고 한다. <예스터데이> <아이언팜> <밀애> 등 올해 그녀가 주연을 맡아 개봉한 영화만도 세편. 또 일본에서 영화 <쉬리>가 빅히트한 덕분에 일본에서 입지를 확실히 굳힌 그는 2002 한일친선외교사절로 월드컵 기간 내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했다. 외교사절이라는 ‘직책’ 덕분에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청와대에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던 일.
“처음으로 대통령을 만나는데 굉장히 긴장했죠. 그런데 대통령께서 제게 ‘김윤진양은 최근 <아이언팜>이라는 영화를 찍었지, 어떤 내용인가’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제가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인데 기회가 되면 꼭 와서 봐주세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최근
올해는 별다른 영화출연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영화 <밀애>의 홍보에만 주력할 계획. 그는 좋은 작품만 있다면 TV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한다.
한편 그는 일본과 미국으로의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실제 열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 영어가 능숙한 그는 할리우드로부터 끊임없이 출연 제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어설픈 역할을 맡아 미국 영화계에 데뷔하지는 않을 거라고.
“사실 출연제의는 꾸준히 들어와요. 하지만 제가 10년 넘게 미국에 사는 동안 가장 싫어했던 동양여자의 이미지만을 원하더군요. 영화 <미녀삼총사>에 나오는 루시 리우같이 눈꼬리가 올라가 표독해 보이면서도 섹시한 이미지요.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다고 해서 미국인들 취향에 맞춘 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가 여가시간에 하는 일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백세주 3잔에 완전히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이 약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그는 요즘 특히 미국에 있던 어머니가 귀국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신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제가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개방적이고 잘 놀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인 편이에요. 외국남자는 남자로 보이지 않을 정도인 걸요.”
그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안하면 안했지, 한번 하면 제대로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 이번 인터뷰만 해도 그랬다. 약속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사진촬영 준비를 하고 영화사 직원들과 인터뷰 내용에 대해 상의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밀애>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정말 열심히 찍었다”는 그의 말에 더욱 신뢰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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