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약사를 하기도 힘든데 거기다 변호사까지? 의사 출신 변호사와 약사 출신 변호사 올케, 그 남편들은 판·검사. 한집안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조인만 4명인 아주 특별하고도 무서운 집안이 있다.
더욱이 여자들은 모두 법대가 아닌 의대와 약대를 나와, 결혼한 다음에 사시에 합격했다. 이 전통을 잇겠다는 듯 여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만에 다시 법대에 다니고 있고, 교사생활을 하던 여동생 남편은 현재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중. 한마디로 보기 드문 법조인 가족인 셈이다. 특히 남매간에 부부가 모두 사시에 합격한 경우는 법조계에서도 전무후무하다.
화제의 집안은 대외법률사무소의 전현희 대표 변호사(38) 가족. 전씨는 90년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일해 오다 96년 사시에 합격(28기),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로펌에 들어가 실전 경험을 쌓은 전씨는 치과의사 생활의 노하우를 살려 지난 6월 후배들과 함께 의료전문 종합법률사무소를 열었다.
특히 전씨는 가난하고 힘 없는 의료사고 환자의 무료 변론도 소홀히 하지 않아 벌써부터 굵직굵직한 의료 관련 소송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 아쉽게도 남편이 ‘특수통’ 검사인 관계로 법정에서 부부간의 대결은 당분간 볼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언젠가 벌어질 남편과의 대결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게 전씨의 다짐이다.
이 집안 최고의 ‘미스터리 인물’은 전현희 변호사의 올케이자 법무법인 이산의 전순덕 변호사(37). 그의 인생은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다. 88년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월급쟁이 약사생활을 하던 그는 지난 92년 빈민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다 93년부터 본격적으로 변리사 시험을 준비했다.
남편 판·검사되자 시누이와 올케가 나란히 변호사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과보다는 문과 쪽에 더 관심이 많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었던 그는 당시 지적재산권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변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 그러다 95년 남편 전씨가 사시에 합격하자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남편도 하는데 내가 왜 못 하느냐는 배짱도 있었지만 민법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는 그는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분쟁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특허소송이나 상표소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변호사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는 사시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 만인 지난 98년(30기)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녀가 이처럼 짧은 시간에 사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변리사 공부를 한 것도 영향을 줬지만 역시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남편인 전상근 판사(36)의 ‘족집게 특강’. 하지만 그 반대로 남편이 집안일에 무관심해준 것도 전순덕 변호사가 마음 편히 사시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미주알 고주알 집안일에 참견하는 남편이었다면 아예 시험 준비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터였다.
전씨가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에 입문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전변호사의 전문성은 벌써 선배 변호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특히 그는 특허소송, 상표소송, 실용신안, 의장 등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소송에서 지금까지 패소한 적이 없다. 특히 약품·화학과 관련한 특허권 분쟁이나 지적권 소송에서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 지적권 관련 분야에 전문가가 없기도 했지만 약사 출신인 그를 일반 변호사들이 당해내기가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는 특허전문 변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변리사 사무실 생활을 거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나와서도 바로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변리사 사무실에 들어가 먼저 분위기를 익혔던 것. 이제 그녀는 ‘약사 전순덕’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적권 전문, 또는 ‘특허 전문 변호사’가 되어있다.
‘철의 여인’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전현희·전순덕 두 여성변호사의 성공에는 강직한 남편들의 부드러운 외조가 밑거름이 됐다. 전현희 변호사의 남편 김헌범씨(37)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공판부 검사. 전씨네 가족 중 가장 빨리 사시에 합격한 그는 부인보다 2년 빠른 94년 사시에 합격해(26기) 일찌감치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사시 공부를 계속했던 김씨는 당시 치과의사였던 부인 전씨의 내조를 톡톡히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씨는 전도양양한 ‘고시생’ 남편을 내조하는 착한 의사 아내였던 것이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수원지검 여주지원과 인천지검 특수부 등 외지를 돌아다니던 김검사가 최근 서울로 부임했지만 이들 부부는 하루 한 시간 이상 대화하기가 힘들다. 김검사의 퇴근이 늦은 탓도 있지만 학구파인 부인 전변호사가 언제 퇴근할지 기약이 없기 때문. 하지만 전변호사에게 있어 김검사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아낌없는 후원자임에 틀림없다. 김검사의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 전씨의 의료전문 법률사무소도 없었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전현희 변호사의 남동생이자 전순덕 변호사의 남편인 전상근 대전지법 서산지원 판사(36)는 매형인 김검사가 합격한 다음해인 95년(27기) 법조계에 발을 내디뎠다. 2차 시험에서 전체 3등을 하고도 한 과목 과락 때문에 시험에 떨어져 군대에 먼저 갔다오는 등 시험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누나 전현희 변호사보다 1년 먼저 합격했다.
전판사는 올해 2월 서울지법 형사부를 거쳐 서산지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전순덕 변호사와 주말부부가 됐다. 전판사는 워낙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타고난 판사’라는 느낌을 주는 스타일. 하지만 약사인 부인이 사시 준비를 하며, 전혀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은’ 대범한 남편이기도 하다. 아내의 일이라면 자신이 한발 양보하고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김검사와 달리, 전판사는 부인이 하는 일과 자신의 일에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도 참견은 하지 않는 공과 사가 분명한 대쪽 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전무후무한 법조인 가족이 탄생한 배경에는 이들간에 얽히고 설킨 질긴 인연이 자리잡고 있다. 우선 이들은 나이가 제각각 다른데도 서울대 84학번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매형과 처남 사이인 김검사와 전판사는 법대 동기생. 이는 전판사의 두살 위 누나인 전현희 변호사가 치대를 1년 재수해서 들어가고 남동생인 전판사가 1년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긴 일이다. 결국 서울대 약대를 정상적으로 들어간 전순덕 변호사와 시누이 전현희 변호사는 전문직 자격증을 둘이나 가진 ‘파워여성’답게 둘 다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 셈이다.
두 부부는 모두 동아리 활동을 하다 짝을 만난 것까지 닮아있다. 동아리 동료가 연인이 되고, 결국 부부가 된 것이다. 그후 긴 연애기간을 거쳐 김검사 부부는 91년, 전판사 부부는 95년 결혼했다. 전판사 부부는 만난 지 10년 만에 한 결혼이다.
결혼할 때는 각각 치과의사와 약사였지만 전현희 변호사와 전순덕 변호사는 결혼 5년 안에 모두 법조인이 됐다. 전현희 변호사는 김검사가 사시에 합격할 때까지 의사 생활을 하며 내조를 했고,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김검사는 의사인 아내가 변호사가 되겠다고 할 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검사와 전판사의 경우 법대에 진학해서 공인의 길을 정상적으로 밟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도대체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의사, 약사, 그것도 판·검사의 부인들이 갑자기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변호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현희 변호사와 전순덕 변호사의 공통적인 대답은 변호사가 의사나 약사보다 더 적성에 맞기 때문이라는 것. “부모님의 반대만 없었다면 문과로 가서 바로 법대를 지원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 당시에는 여자가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면 무조건 이과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였으니까 굳이 어머니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쨌든 지금은 의사 경력이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 전현희 변호사의 이야기다.
하지만 두 여인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전문직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이해관계 대립의 한복판에서 다툼을 벌여야 하는 직업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불이익과 부정에 맞서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해 제2의 자아실현을 하고 싶었어요.”(전현희 변호사)
“오랜 고생 끝에 특허를 따도 분쟁에 휘말려, 특허권을 빼앗기거나 억울하게 자신의 지적재산을 도용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강했어요.”(전순덕 변호사)
사실 두 전변호사는 대학 시절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묵묵히 벌여왔던 소위 운동권 출신.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의사와 약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의 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인간적 부담감을 항상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의사와 약사라는 전문직을 활용해 사회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는 가장 빠른 직업을 찾다보니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장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이 늦은 나이에 사법고시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운동을 하던 대학 동료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두 전변호사가 사시 준비를 하던 시절 많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늦은 나이에 당당히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두 ‘아줌마’들의 ‘환골탈태’는 원천적으로 시댁과 친정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교권 사회에서 남편의 권리를 일찌감치 포기한 남편들의 부모님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들의 시댁은 욕심 많은 며느리를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특히 김검사 부모는 전변호사가 고시 준비를 할 때 아이를 대구로 데려가 키워주기까지 했다. 또 전판사 부부는 아예 출산을 부인의 합격 이후로 미룬 탓에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판사 부부의 아이는 이제 겨우 세살이라고.
“며느리, 딸을 가리지 않고 빨래와 청소는 모두 내 차지였지만 어쩌겠어. 공부하겠다는데”라는 전판사의 어머니 김명순씨(66). 김씨는 아들과 사위가 사시에 합격했을 때보다 딸과 며느리가 사시에 합격했을 때가 더 기뻤다고 말할 만큼 생각이 열려있는 사람이다. 또한 김씨는 스스로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스타일로 97년 환갑이 훌쩍 지난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자격증을 따내기도 했다.
“복덕방을 차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이 법 공부를 한다기에 재미로 시작한 것이 합격으로 이어졌다”는 김씨는 자식들이 어머니 머리를 닮았냐는 질문에 “내 머리를 닮았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지”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법조인 ‘패밀리의 전통’은 전현희 변호사 여동생인 전현주(33)·김주영씨(38) 부부에게도 이어졌다. 현재 여동생 현주씨는 한국외국어대 졸업 10년 만에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 상태. “변호사는 힘들고 법무사나 다른 법조 계통의 일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그의 포부다. 만약 현주씨의 남편 김씨마저 이번 사법고시에 최종 합격하면 이 집안에는 법조인이 6명이나 탄생하게 되는 셈.
전씨의 어머니도 환갑이 지난 나이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은 의사와 약사를 하던 ‘아줌마’가 어떻게 단시간에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냐는 사실일 것이다. 혹시 이들 집안에만 전해오는 ‘비기(秘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전상근 판사는 “본래 사시 합격자가 보던 책과 노트는 모두 비기가 된다”며 “하지만 김검사와 내가 공부하던 책과 노트는 워낙 시간이 오래돼 현재까지 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답한다. 김헌범 검사 역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매년 바뀌는 시험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며 “전문직 생활을 한 게 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두 아줌마의 합격 배경을 분석했다.
“판사나 검사, 변호사 모두 법정에서 만나면 경쟁자일 수 있고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항상 따뜻한 가족의 관계에 머무를 수만은 없습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따끔한 충고와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진정한 반려자가 되어야겠죠.”
김검사의 말처럼 ‘조용하지만 무서운’ 이들 가족은 오늘도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아 하루를 힘차게 보내고 있다.
더욱이 여자들은 모두 법대가 아닌 의대와 약대를 나와, 결혼한 다음에 사시에 합격했다. 이 전통을 잇겠다는 듯 여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만에 다시 법대에 다니고 있고, 교사생활을 하던 여동생 남편은 현재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중. 한마디로 보기 드문 법조인 가족인 셈이다. 특히 남매간에 부부가 모두 사시에 합격한 경우는 법조계에서도 전무후무하다.
화제의 집안은 대외법률사무소의 전현희 대표 변호사(38) 가족. 전씨는 90년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일해 오다 96년 사시에 합격(28기),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로펌에 들어가 실전 경험을 쌓은 전씨는 치과의사 생활의 노하우를 살려 지난 6월 후배들과 함께 의료전문 종합법률사무소를 열었다.
특히 전씨는 가난하고 힘 없는 의료사고 환자의 무료 변론도 소홀히 하지 않아 벌써부터 굵직굵직한 의료 관련 소송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 아쉽게도 남편이 ‘특수통’ 검사인 관계로 법정에서 부부간의 대결은 당분간 볼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언젠가 벌어질 남편과의 대결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게 전씨의 다짐이다.
이 집안 최고의 ‘미스터리 인물’은 전현희 변호사의 올케이자 법무법인 이산의 전순덕 변호사(37). 그의 인생은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다. 88년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월급쟁이 약사생활을 하던 그는 지난 92년 빈민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다 93년부터 본격적으로 변리사 시험을 준비했다.
남편 판·검사되자 시누이와 올케가 나란히 변호사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과보다는 문과 쪽에 더 관심이 많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었던 그는 당시 지적재산권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변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 그러다 95년 남편 전씨가 사시에 합격하자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남편도 하는데 내가 왜 못 하느냐는 배짱도 있었지만 민법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는 그는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분쟁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특허소송이나 상표소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변호사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는 사시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 만인 지난 98년(30기)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녀가 이처럼 짧은 시간에 사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변리사 공부를 한 것도 영향을 줬지만 역시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남편인 전상근 판사(36)의 ‘족집게 특강’. 하지만 그 반대로 남편이 집안일에 무관심해준 것도 전순덕 변호사가 마음 편히 사시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미주알 고주알 집안일에 참견하는 남편이었다면 아예 시험 준비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터였다.
전씨가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에 입문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전변호사의 전문성은 벌써 선배 변호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특히 그는 특허소송, 상표소송, 실용신안, 의장 등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소송에서 지금까지 패소한 적이 없다. 특히 약품·화학과 관련한 특허권 분쟁이나 지적권 소송에서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 지적권 관련 분야에 전문가가 없기도 했지만 약사 출신인 그를 일반 변호사들이 당해내기가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는 특허전문 변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변리사 사무실 생활을 거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나와서도 바로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변리사 사무실에 들어가 먼저 분위기를 익혔던 것. 이제 그녀는 ‘약사 전순덕’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적권 전문, 또는 ‘특허 전문 변호사’가 되어있다.
‘철의 여인’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전현희·전순덕 두 여성변호사의 성공에는 강직한 남편들의 부드러운 외조가 밑거름이 됐다. 전현희 변호사의 남편 김헌범씨(37)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공판부 검사. 전씨네 가족 중 가장 빨리 사시에 합격한 그는 부인보다 2년 빠른 94년 사시에 합격해(26기) 일찌감치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사시 공부를 계속했던 김씨는 당시 치과의사였던 부인 전씨의 내조를 톡톡히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씨는 전도양양한 ‘고시생’ 남편을 내조하는 착한 의사 아내였던 것이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수원지검 여주지원과 인천지검 특수부 등 외지를 돌아다니던 김검사가 최근 서울로 부임했지만 이들 부부는 하루 한 시간 이상 대화하기가 힘들다. 김검사의 퇴근이 늦은 탓도 있지만 학구파인 부인 전변호사가 언제 퇴근할지 기약이 없기 때문. 하지만 전변호사에게 있어 김검사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아낌없는 후원자임에 틀림없다. 김검사의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 전씨의 의료전문 법률사무소도 없었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전현희 변호사의 남동생이자 전순덕 변호사의 남편인 전상근 대전지법 서산지원 판사(36)는 매형인 김검사가 합격한 다음해인 95년(27기) 법조계에 발을 내디뎠다. 2차 시험에서 전체 3등을 하고도 한 과목 과락 때문에 시험에 떨어져 군대에 먼저 갔다오는 등 시험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누나 전현희 변호사보다 1년 먼저 합격했다.
전판사는 올해 2월 서울지법 형사부를 거쳐 서산지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전순덕 변호사와 주말부부가 됐다. 전판사는 워낙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타고난 판사’라는 느낌을 주는 스타일. 하지만 약사인 부인이 사시 준비를 하며, 전혀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은’ 대범한 남편이기도 하다. 아내의 일이라면 자신이 한발 양보하고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김검사와 달리, 전판사는 부인이 하는 일과 자신의 일에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도 참견은 하지 않는 공과 사가 분명한 대쪽 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전무후무한 법조인 가족이 탄생한 배경에는 이들간에 얽히고 설킨 질긴 인연이 자리잡고 있다. 우선 이들은 나이가 제각각 다른데도 서울대 84학번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매형과 처남 사이인 김검사와 전판사는 법대 동기생. 이는 전판사의 두살 위 누나인 전현희 변호사가 치대를 1년 재수해서 들어가고 남동생인 전판사가 1년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긴 일이다. 결국 서울대 약대를 정상적으로 들어간 전순덕 변호사와 시누이 전현희 변호사는 전문직 자격증을 둘이나 가진 ‘파워여성’답게 둘 다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 셈이다.
두 부부는 모두 동아리 활동을 하다 짝을 만난 것까지 닮아있다. 동아리 동료가 연인이 되고, 결국 부부가 된 것이다. 그후 긴 연애기간을 거쳐 김검사 부부는 91년, 전판사 부부는 95년 결혼했다. 전판사 부부는 만난 지 10년 만에 한 결혼이다.
결혼할 때는 각각 치과의사와 약사였지만 전현희 변호사와 전순덕 변호사는 결혼 5년 안에 모두 법조인이 됐다. 전현희 변호사는 김검사가 사시에 합격할 때까지 의사 생활을 하며 내조를 했고,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김검사는 의사인 아내가 변호사가 되겠다고 할 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검사와 전판사의 경우 법대에 진학해서 공인의 길을 정상적으로 밟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도대체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의사, 약사, 그것도 판·검사의 부인들이 갑자기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변호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현희 변호사와 전순덕 변호사의 공통적인 대답은 변호사가 의사나 약사보다 더 적성에 맞기 때문이라는 것. “부모님의 반대만 없었다면 문과로 가서 바로 법대를 지원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 당시에는 여자가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면 무조건 이과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였으니까 굳이 어머니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쨌든 지금은 의사 경력이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 전현희 변호사의 이야기다.
하지만 두 여인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전문직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이해관계 대립의 한복판에서 다툼을 벌여야 하는 직업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불이익과 부정에 맞서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해 제2의 자아실현을 하고 싶었어요.”(전현희 변호사)
“오랜 고생 끝에 특허를 따도 분쟁에 휘말려, 특허권을 빼앗기거나 억울하게 자신의 지적재산을 도용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강했어요.”(전순덕 변호사)
사실 두 전변호사는 대학 시절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묵묵히 벌여왔던 소위 운동권 출신.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의사와 약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의 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인간적 부담감을 항상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의사와 약사라는 전문직을 활용해 사회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는 가장 빠른 직업을 찾다보니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장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이 늦은 나이에 사법고시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운동을 하던 대학 동료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두 전변호사가 사시 준비를 하던 시절 많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늦은 나이에 당당히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두 ‘아줌마’들의 ‘환골탈태’는 원천적으로 시댁과 친정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교권 사회에서 남편의 권리를 일찌감치 포기한 남편들의 부모님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들의 시댁은 욕심 많은 며느리를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특히 김검사 부모는 전변호사가 고시 준비를 할 때 아이를 대구로 데려가 키워주기까지 했다. 또 전판사 부부는 아예 출산을 부인의 합격 이후로 미룬 탓에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판사 부부의 아이는 이제 겨우 세살이라고.
“며느리, 딸을 가리지 않고 빨래와 청소는 모두 내 차지였지만 어쩌겠어. 공부하겠다는데”라는 전판사의 어머니 김명순씨(66). 김씨는 아들과 사위가 사시에 합격했을 때보다 딸과 며느리가 사시에 합격했을 때가 더 기뻤다고 말할 만큼 생각이 열려있는 사람이다. 또한 김씨는 스스로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스타일로 97년 환갑이 훌쩍 지난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자격증을 따내기도 했다.
“복덕방을 차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이 법 공부를 한다기에 재미로 시작한 것이 합격으로 이어졌다”는 김씨는 자식들이 어머니 머리를 닮았냐는 질문에 “내 머리를 닮았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지”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법조인 ‘패밀리의 전통’은 전현희 변호사 여동생인 전현주(33)·김주영씨(38) 부부에게도 이어졌다. 현재 여동생 현주씨는 한국외국어대 졸업 10년 만에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 상태. “변호사는 힘들고 법무사나 다른 법조 계통의 일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그의 포부다. 만약 현주씨의 남편 김씨마저 이번 사법고시에 최종 합격하면 이 집안에는 법조인이 6명이나 탄생하게 되는 셈.
전씨의 어머니도 환갑이 지난 나이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은 의사와 약사를 하던 ‘아줌마’가 어떻게 단시간에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냐는 사실일 것이다. 혹시 이들 집안에만 전해오는 ‘비기(秘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전상근 판사는 “본래 사시 합격자가 보던 책과 노트는 모두 비기가 된다”며 “하지만 김검사와 내가 공부하던 책과 노트는 워낙 시간이 오래돼 현재까지 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답한다. 김헌범 검사 역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매년 바뀌는 시험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며 “전문직 생활을 한 게 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두 아줌마의 합격 배경을 분석했다.
“판사나 검사, 변호사 모두 법정에서 만나면 경쟁자일 수 있고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항상 따뜻한 가족의 관계에 머무를 수만은 없습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따끔한 충고와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진정한 반려자가 되어야겠죠.”
김검사의 말처럼 ‘조용하지만 무서운’ 이들 가족은 오늘도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아 하루를 힘차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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