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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몸을 바로 세우니 마음도 세워졌어요” 

아이돌에서 바레 강사로, 남지현의 ‘Love My Life’

윤혜진 객원기자

2025. 09. 25

걸 그룹 포미닛 출신의 남지현이 올봄 바레 강사로 변신했다. 오랜만의 만남에서도
그에게 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분이면 충분했다. 남지현은 지금도 그때처럼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으로 K-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 가려진 면도 많다. 일단 혹독한 다이어트와 잠을 줄여가며 해내는 타이트한 일정은 기본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어려서부터 앞만 보고 달려 대박이 나도, 뜨지 못해도 각양각색의 이유로 마의 7년을 못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9년 데뷔해 2016년 해체한 5인조 걸 그룹 포미닛도 그중 하나다. 남지현, 허가윤, 전지윤, 김현아, 권소현으로 구성된 포미닛은 ‘Hot Issue’ ‘이름이 뭐예요?’ ‘미쳐’ 등을 히트시킨 2세대 대표 ‘센 언니’들이다. 데뷔 7주년을 이틀 앞둔 2016년 6월 16일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을 전한 후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떠났다. 포미닛의 리더였던 남지현은 해체 후 배우로 전향했다. 드라마 ‘마이 리틀 베이비’ ‘최강 배달꾼’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왜 오수재인가’ 등 다양한 작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해왔으나 2023년부터 활동이 뜸했다. 그러다 지난 3월 서울 청담동에 바레 스튜디오 ‘바레스퀘어’를 연 근황을 알려왔다. 바레는 발레와 필라테스, 요가를 결합한 근력 운동이다. 상명대 무용학과 출신 남지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남지현은 “꼭 운동하러 오라”며 ‘바레 전도사’가 다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포미닛 팬덤 ‘포니아’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을 글썽였다. 사실 남지현은 인터뷰를 한 번 고사했었다. “포미닛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다른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미안하고, 바레 강사들에게는 연예인의 명성을 이용해 쉽게 도전하는 걸로 비칠까 조심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 바레라는 운동을 알릴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을 것 같다”며 용기를 냈다. 남지현은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였던 포미닛 시절을 지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온 남지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예쁘게’ 말고 ‘강하게’, 에너지 되찾아준 바레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음,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웃음). 팀이 해체되고 배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맨 밑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었어요. 중간에 성을 손지현으로 바꿔 포미닛을 지우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래야 배우들에게 덜 미안하고 저도 얻는 게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쉬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거예요. 무기력감이 컸어요. 운동을 하면 그나마 기분이 좋아져서 필라테스 개인 레슨을 일주일 내내 받았어요. 그러다 필라테스, 유아 발레 등의 자격증을 10개 정도 땄어요. 바레도 그때 만났어요. 바레 덕분에 에너지를 되찾았죠.



포미닛 해체 후 배우로 전향하면서 고민이 많았나 봐요. 

스무 살에 데뷔해 쉬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번아웃이 왔어요. 매체 환경이나 배우 생태계가 바뀌면서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컸고, 자신감도 없었어요. 제가 또래보다 돈을 많이 벌어놓았다 해도, 평생 안 벌어도 될 정도는 아니잖아요. 앞으로의 생계를 생각했을 때 배우로 먹고살긴 힘들 것 같았죠. 그런데 바레는 좀 달랐어요. 그동안 공부했던 운동들이 다 접목된 덕분에 평생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도 창업은 용기가 많이 필요한데요. 

‘이 정도 준비하면 바레를 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라고, 스스로 납득이 될 때까지 3년이 걸렸어요. 진심으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뿐 아니라 주변의 시선도 두려웠거든요. 제가 원래 A부터 Z까지 다 생각을 해두는 타입이에요. 아빠가 반도체 업계에서 일을 오래 하셨는데, 엄청 꼼꼼하세요. 어려서부터 그런 아빠를 보고 자라서 사전 조사나 창업 관련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고민하던 중에 바레를 하는 고등학교 선배를 만나서 같이 창업하게 됐어요. 

일주일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쉬는 날이 거의 없어요. 수업은 물론 수강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싶어서 각종 브랜드와 미팅도 하고, 얼마 전에는 인천시에서 진행하는 ‘인천 웰메디 페스타 위크’에 초대받아 수업을 하고 왔어요. 이 외에도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고, 은행 업무 등 세상을 배우고 있어요. 스무 살부터 사회생활을 했지만 이제야 진짜 사회에 나왔구나 싶어요.

바레의 매력은 뭔가요.     

바레는 권태기가 덜한 운동이에요. 음악이 곁들여지고 춤추는 듯한 발레 동작들이 들어가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어요. 특히 바레는 짧은 시간 안에 활력을 주는 근력 운동을 하면서 여럿이 함께 즐기는 그룹 운동이란 점이 매력적이에요. 서로 감정 교류도 하면서 ‘나는 존재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이구나’를 알게 해줘요. 동시에 ‘강하게 성장하는 나’를 느끼게 해주고요. 겉으로 드러나는 선명한 근육과 코어 근육을 키워 예쁘고 건강한 몸은 자동으로 따라오죠. 저는 여성분들에게 필요한 건 ‘날씬함’이 아니라 ‘강인함’이라고 생각해요.

‘바레스퀘어’(위)와 인천시 행사에서 수업 중인 남지현.

‘바레스퀘어’(위)와 인천시 행사에서 수업 중인 남지현.

여전히 포미닛 데뷔일마다 과거 사진을 보며 추억을 되새긴다.

여전히 포미닛 데뷔일마다 과거 사진을 보며 추억을 되새긴다.

아이돌 활동기 때는 몸매 유지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을 것 같아요.  

다이어트가 일상이었죠. 지금도 아이돌들이 다이어트를 많이 하고 있을 거예요. 저는 확 빼고 또 확 찌는 편이어서 몸이 많이 상했어요. 1년 동안 생리를 안 한 적도 있어요. 돌이켜보면 제 몸을 사랑할 줄 몰라서 스스로 학대한 느낌이에요. 30대가 되니까 보이는 모습보다 체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체력이 떨어지면 일을 잘할 수가 없잖아요.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건강하게 해야 하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어떤지부터 체크해보세요.

지금은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부모님과 함께 사니까 되도록 집밥을 많이 먹으려 노력해요. 한창 활동할 때보다 4kg 정도 몸무게가 늘었는데, 근육량이 많아졌어요. 이건 단순한 외적 변화가 아니라 내적으로도 자기애와 회복력을 길러주는 경험이었어요. 작은 성취라도 스스로 칭찬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요즘 MZ세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 돌봄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내 편이 되어주고, 내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대중매체에는 거의 마른 사람만 나오잖아요. 모두가 마를 필요는 없어요.  

요즘 SNS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몸만큼 마음도 건강해 보여요. 

예전에는 제 안에 세상과 단절된 벽이 있었어요. 엄청난 톱스타는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연예인으로 살다 보니 스스로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벽을 깨고 나니까 오히려 제게 일어나는 일들에 감사하게 됐어요. 운동이 정말 큰 도움을 줬어요.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해요. 가을에 공개되는 쇼츠 드라마를 한 편 찍었는데,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면 이런 기회를 못 잡았을 거예요. 그동안 바레를 열심히 했더니 빡빡한 촬영 일정에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때 느꼈죠. 무대 위에 서는 힘, 연기를 할 수 있는 힘은 일상 속 바른 자세와 자신감에서 나온다는 걸요. 몸을 바로 세우면 마음도 세워지더라고요. 

얼마 전 데뷔 16주년에는 포미닛 멤버들에게 꽃다발과 케이크를 직접 배달했던데요.

사업을 해보니까 모든 일이 다 고맙게 느껴져요. 주변 인연도 고맙고, 제가 보고 싶어서 수업을 들으러 오는 팬들도 고맙고요. 바레스퀘어를 열고 나서 눈물이 많아졌어요. 포미닛을 해체한 지 오래됐으니까 다 잊혔다고 생각했는데, 해외에서도 찾아오시는 팬들이 계세요. 그런 팬들을 보면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싶고, 멤버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올라요. 그동안 내가 너무 멤버들을 안 챙겼다는 생각이 들어서 꽃다발과 케이크를 선물했어요. 만나서 “누구 하나 크게 걱정할 사람 없이 잘살고 있어서 다행이고, 앞으로도 더 파이팅을 하자”고 얘기했어요. 우리 멤버들, 참 멋있어요.

애틋한 포미닛 멤버들, 언젠가 무대에 함께 서길

멤버들과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나요.

연락하죠. 현아 결혼식 때도 축의금을 보냈어요. 다만 괜히 서먹서먹한 게 있었는데, 이번 데뷔일에 제 진심이 통했는지 현아도 고마워하더라고요. 멤버들이 자기 SNS에 고맙다고 글을 올려줘서 제가 더 고맙고 뭉클했어요. 

과거 인터뷰를 찾아보니 포미닛에 대해 “웃으며 떠올리기에는 아픈 추억이다”라고 말했더라고요. 지금은 어떤가요. 

다양한 감정이 들어요. 기쁨과 슬픔이 있고, 그냥 애틋해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마지막 무대 없이 팬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못 하고 헤어졌잖아요. 멤버들과도 각자 서로를 배려하느라 터놓고 말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났어요. 그래서 아팠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아팠던 시간까지도 감사해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럼 포미닛으로 뭉친 무대를 기대해도 되나요. 마침 막내 권소현 씨가 큐브 엔터테인먼트와 다시 계약을 했잖아요.

안 그래도 제가 소현이한테 얘기했어요. 다음은 저고, 멤버 한 명씩 들어가자고요(웃음). 저도 마음은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요. 다만 제가 지금 사업을 하는 중이라 일부러 소속사 없이 혼자 활동하고 있거든요. 매니저들이 저를 어디까지 케어해야 할지 어려워할 것 같아서요. 제 일 때문에 혹시라도 회사에 피해를 줄까 조심스럽고요. 포미닛 재결합은 모두의 타이밍이 다 맞아야 하니까 멤버들하고 얘기하고 있어요. 

20대 때 상상한 30대의 남지현과 실제 지금의 남지현은 비슷한가요.

비슷해요. 저는 제가 배우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코로나19 이후부터는 몇 년을 훌쩍 ‘빨리 감기’ 한 느낌이에요. 마음은 아직 30대 초반인데,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어요. 그렇다고 아쉽기만 한 건 아니에요. 이번 드라마 촬영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옛날에는 저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현장에서 애쓰는 많은 분의 노고가 눈에 직접 들어오더라고요. 이런 게 나이 들어서 얻는 장점 같아요.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아직 결혼을 안 한 건 좀 아쉬워요. 저는 서른다섯 살 전에는 결혼해 아이를 낳을 줄 알았어요. 엄마는 힘들면서도 멋진 존재라 언젠가 꼭 되고 싶고, 일단은 지혜롭게 살고 싶어요. 사업하면서 부족한 저를 계속 마주쳐요.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해 좀 더 공부해서 서로 윈윈하면 좋겠어요. 또 바람이 있다면, 나이 들어도 활력을 유지하고 탄력 있는 몸을 만들고 싶어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에게 “파이팅!” 하고 힘을 주는 활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건강이 1순위겠지만, 몸으로 표현하는 직업은 몸이 망가져버리면 돈도 못 벌잖아요(웃음). 갈 길이 멀어요.

어떤 일을 더 해보고 싶나요. 

제 인생을 잘 살아가면서 연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싶어요. 많은 분이 연예계에서 은퇴한 거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오히려 다른 일을 함으로써 현실감각이 생겨서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배우는 선택을 받는 직업이에요. 선택이 안 되면 제가 포기하고 싶지 않아도 포기하게 되는 거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연기에 대한 의지를 계속 표현하고, 힘든 기다림의 시간도 잘 이겨내려고요.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저는 목표가 없으면 앞으로 잘 걸어가지 못해요. 많은 아이돌이 나이 들면 활동이 뜸해지는데, 그래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한동안 힘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저 같은 후배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더 잘 살아가고 싶어요. 아이돌로 활동할 때는 사람들을 안 만났지만, 지금은 소통하는 법도 배우고 주변과 서로 응원해가며 지내요. 얼마 전에는 애프터스쿨의 가희 언니를 만났어요. 언니도 댄스학원을 하고 있거든요. 같이 운동하고 서로 열심히 사는 모습 보면서 영감도 받고요. 앞으로 더 성숙하게 잘 살고 싶어요.   

#남지현 #포미닛 #바레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남지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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