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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UCCESS

보통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성공 서민갑부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김성남 기자 | 디자인 · 이수정

2016. 03. 17

평범한 주부에서 억대 연봉 버는 ‘집밥 하 여사’로 하명숙 안말쉼터 사장

지난해 12월 24일, 채널A 〈서민갑부〉 53회 출연자 하명숙(62) 씨. 평범한 주부가 연매출 3억원의 주인공이 된 사연을 듣기 위해 경기도 의정부를 찾았다. 의정부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의 밥집 ‘안말쉼터’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한갓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로 난 길을 돌고 돌며, ‘굳이 그 집밥을 먹기 위해 찾아가지 않는다면 절대로 들를 일이 없는 동네겠다’ 싶었다. 이런 곳에서, 서울 도심의 으리으리한 상가 건물에서도 내기 어려운 연매출 3억원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세 번의 화재 겪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장사 시작
점심 손님이 모두 물러간 시간을 골라 약속을 정했음에도 식당은 그리 한가하지 않았다. 배달 전문 밥집치고는 테이블 수도 제법 되고, 드나드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하명숙 씨의 손을 덥석 잡으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 손님부터 아이들 손을 이끌고 온 가족 단위의 손님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손님도 있었다. 그래도 안말쉼터 운영은 ‘배달’이 중심이다. 배달은 배달인데 흔히 생각하는 중국집 배달 음식 같은 것이 아니다. 진짜 한 상 차려지는 집밥이다. 찌개며 밑반찬, 나물에 고기볶음 같은 것들도 곁들여진다. 한마디로 의정부시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함바집’이다. 의정부 시내의 대형 마트부터 크고 작은 공장, 옷 가게, 미용실, 세탁소까지 안말쉼터 배달 밥을 고정적으로 대 먹는 곳만 50군데가 넘는다.
“여기로 오기 전에는 서울 수유리의 수유시장에서 11년 동안 뜨개방과 분식집을 했어요. 거기 있는 동안 불이 세 번이나 났어요. 꽤 큰 주상복합 건물이었는데도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 화재 피해를 고스란히 업주들이 감당해야 했죠. 형편이 워낙 안 좋다 보니 별도로 보험 들 형편도 안 돼서 세 번째 불이 났을 때는 전기 공사조차 다시 할 돈이 없었어요. 이웃 가게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면서 근근이 버텼는데, 어느 날 상가협의회에서 가게 자리에 대형 마트가 들어설 예정이니 전부 나가라고 하더군요.”
수유리에서 장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씨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남편이 빚만 잔뜩 남기고 집을 나갔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장사였다. 처음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손뜨개방을 시작했는데 그마저 상가 건물에 불이 나 몽땅 타버리자 부랴부랴 업종을 바꿔 분식점을 열었다. 그 분식점에 또 불이 나자 숯검정이 시커멓게 묻은 그릇을 닦아가며 다시 밥 배달을 했다. 주저앉아 울 겨를도 없었다. 하루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당장 아이들 배를 굶길 판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울 때 나는 그릇을 닦았다”는 말이 그때의 곤궁함을 짐작케 했다.
시장에서 함께 장사하던 가게들이 하나 둘 새 둥지를 찾아 떠나는 동안에도 하씨는 끝까지 버텼다. 그대로 물러섰다간 길거리로 나앉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가게들이 모두 비워지고 하씨의 가게만 남자 보다 못한 상가협의회에서 보상금으로 1백50만원을 제시했다. 그 돈을 받아든 하씨는 수중의 돈 1백50만원을 합쳐 의정부로 왔다.
“가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인근의 공장들도 월세가 비싸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었어요. 때마침 저희 가게에서 밥을 대 먹던 신발 공장이 의정부로 이전을 하게 됐는데, 그곳 사장님이 괜찮으면 의정부로 자리를 옮겨 공장 식구들 밥을 계속 해줄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죠. 그때가 2004년인데 돈 3백만원으로 어디에 가게를 구할 수 있겠어요. 설령 가게를 얻는다 해도 인테리어며 집기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어림도 없는 일이었죠.”
하는 수 없이 의정부의 신발 공장 앞 컨테이너에서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것이 하씨에겐 인생 2막의 출발이었다.
 
메뉴 선정부터 요리와 배달까지 직접 해


방송에서 소개된 것처럼, 하씨가 하루 평균 배달하는 집밥이 2백50인 분. 집밥으로 올리는 연매출은 3억원에 달한다. 집밥을 판 돈을 모아 7억원 상당의 건물도 샀다. 그간 고생했던 세월을 생각하면 이제는 조금 편히 지낼 법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직접 새벽 장을 보고, 밥과 반찬을 만들고, 손님을 맞는다. 메뉴 선정은 물론 배달까지 직접 한다. 물론 함께하는 직원들도 있고 지난해 결혼한 딸도 수족처럼 일손을 거들고 있지만 그래도 가게에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배달은 주로 ‘마티즈’ 승용차로 한다. 흔히 사업을 하다 좀 성공했다 싶으면 멋진 외제차를 뽑아 으스대려고 하지만 하씨에게는 이 배달 차들이 영업용이자 출퇴근용 자가용인 셈이다. 안말쉼터 로고와 전화번호가 크게 박힌 이 마티즈를 타고 다녀야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배달 문의를 해온다고 한다.
“처음에 밥집을 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 말들이 참 많았어요. 이런 외진 곳에 식당이 있으니 닭백숙을 해야 한다, 빈대떡을 해봐라…. 그런데 저는 듣지 않았어요. 제 고집대로 한 거죠. 그렇다고 무조건 고집만 부린 것은 아니에요. 손님들의 반응을 열심히 귀담아들었거든요. 물론 사람마다 입맛이 제각각이니 누구는 싱겁다, 누구는 짜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무엇 하나 허투루 듣지 않았어요. 매일 다른 반찬을 준비하는 건 물론이고 거래처 손님들의 연령대에 따라서도 반찬 종류를 달리했어요. 요즘 젊은 분들은 맵고 짠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생선조림이나 튀김 같은 것들도 인기가 없죠. 반면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투박한 시골 맛을 좋아하세요. 양념도 좀 강하고, 진한 맛을 좋아하시죠. 그래서 젊은 고객이 많은 배달처에 갖다 줄 밥상은 싱거운 음식 위주로 차려요. 반찬도 고객의 취향에 맞는 돈가스나 동그랑땡, 어묵 같은 걸로 준비하고요.”
비결은 또 있다. 그가 가장 자신 있다는, 손수 담근 김치다. 재료는 하씨의 친언니가 시골에서 농사지은 배추며 고춧가루를 가져다 쓴다. 5천원짜리 백반을 시켜 국산 재료로 손수 담근 김치를 맛보기란 아무리 시골이라도 쉽지 않은 일. 갓 지은 밥에 손수 만든 김치와 정갈한 밑반찬, 푸짐한 국, 찌개까지. 배달 음식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었던 허기를 하씨의 정성스러운 배달 집밥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한번 그의 손님이 되면 두말 않고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그는 장사 대신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나눔 밥상을 준비한다. 6년 전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하던 아들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버리고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숙명처럼 찾아온 일이었다.
“제가 다시 이렇게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저희 딸 덕분이에요. 자식 먼저 앞세우고, 장사는커녕 집 밖에도 나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 저를 보다 못한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때문에 사는 자기 생각도 좀 해달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 차려지더군요.”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남동생을 위해 대학까지 포기하고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몰래 자판기 커피 재료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모으던 착실한 딸이었다. 앞뒤 돌아볼 새 없이 아등바등하던 그 시절,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라”고 매일 혼이 나면서도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아르바이트한다는 사실을 숨기던 속 깊은 딸이었다. 딸과 함께 마음을 추스른 그는 인근 동사무소를 찾았다. 지역의 어려운 청소년들과 독거노인들을 돕겠다는 그의 말에 동사무소에서도 기꺼이 다리를 놔줬다. 그렇게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햇수로만 6년째다.
3월 그는 안말쉼터 배달 반찬을 론칭할 계획이다. 그의 정성이 듬뿍 담긴 집밥을 직장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바쁜 일상 때문에 집에서조차 제대로 된 밥을 차려 먹기 힘들어지고, 가족 수가 적다보니 반찬을 다 먹지 못해 상해서 버리는 음식이 많다며 집에서도 그의 손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손님들의 하소연에 이제야 화답하게 된 것이다. ‘집밥 하 여사’의 새로운 인생 3막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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