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추석 연휴 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안철수 의원은 “올 2월 의대 2000명 증원 발표 다음 날부터, 10년 뒤 2000개의 피부과가 생긴다고 얘기했다”며 “의대 교육을 경험해보지 않고 잘 모르다 보니 정부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지 않았나 싶다. 최선의 선택은 없고 최악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안 의원은 단국대 의대 기초의학과 교수와 학과장을 지냈고, 여전히 의사 면허를 유지하고 있다. 아내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와 함께 코로나19가 심각했던 2020년에는 의사로서 의료봉사를 나서기도 했다.
의대 증원 유예로 수험생 피해 본다면 특혜 구제 지원해야
2025년 의대 증원을 유예하기에는 이미 늦은 거 아닐까요.지금 정부는 국가적으로 큰 손해 2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그중 하나는 의대 증원 계획을 유지하는 대신 의료 시스템 붕괴가 진행되는 거죠. 현재 응급실이 폐쇄되고 좀 있으면 지방 의료원이 도산될 거예요. 또 의대 본과 4학년들이 공부를 안 했으니 의사 고시를 못 봐 매년 3000명씩 나오는 의사가 한 명도 안 나올 겁니다. 같은 이유로 전문의 2800명도 안 나오고요. 그러면 내년에 병원 인턴 할 사람이 없고, 공중보건의 할 사람도 없어서 지방 보건소가 텅텅 빕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복구하는 데만 4~5년이 걸린다고 해요.
또 다른 선택은 증원을 유예하는 것이겠군요.
그렇죠.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만들어 의료 시스템을 복구하는 겁니다만, 대신 당장 수험생들이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똑똑한 학생들이 노력해온 시간이 허비되는 것 또한 얼마나 낭비입니까. 그래도 이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국가는 국민이 죽고 사는 일과 먹고사는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중에 더 중요한 죽고 사는 일에 해당하는 의료 시스템을 우선 정상화하고, 이로 인해 손해를 본 학생들에 대해서는 특례를 준다든지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1지망, 2지망 등을 받아 원하는 과를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거나, 의대 정원 확정 시 우선 지원권 자격을 준다든지 방법이 있을 수 있잖아요.
현재 의협에서는 2025년과 2026년 증원 계획을 유예하지 않으면 여·야·의·정 비상협의체에도 응하지 않겠단 입장입니다.
그게 이유가 있어요. 정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2025년에 1500명을 증원하고 2026년부터 재검토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거든요. 기존 입학 정원의 절반인 1500명의 학생을 더 뽑아 가르치려면 교수도 50% 증원해야 해요. 시설도 필요하면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음 해에 갑자기 신입생을 줄인다고 하면 교수를 자를 겁니까. (짓고 있던) 시설을 부수겠습니까. 한번 투자하면 계속 가야 하는 게 국가적으로 낭비를 없애는 일이잖아요. 처음부터 이해 관계자들을 모아 장기 계획을 세우고 학생을 몇 명 늘리려면 교수는 몇 명 필요하고 시설 확충은 어떻게 한단 식으로 접근했어야 해요.
전공의들은 사직이란 극단적 방법밖에 없었을까요. 사태가 지속되니 “자신들의 이익만 따진다”는 역풍도 불어옵니다.
현재 상황은 미래 설계를 위해 현장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아 생긴 문제인데요. 본질은 필수의료 의사가 부족하고 지방 의료가 열악한 구조는 그대로 두고 의사 숫자만 늘려 해결하려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일주일에 절반을 당직 서며 헌신 중인 의사들까지 비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병원을 지키는 분들이 있어서 의료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은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분들도 지쳐 사표를 내고 있어요.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하려면 어디부터 손을 대면 좋을까요.
정치는 우군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야 해요. 의료 분야의 경우 일단 건강보험료를 올리거나 다른 세금으로 필수의료 수가를 높이고, 수술이 많은 필수의료에서 사고의 법적 처벌을 다른 OECD 국가 수준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 의료원도 정부가 돈을 써서 지어야 합니다. 민간 의료 시스템이 중심인 미국도 공공의료기관이 30%인데, 우리나라는 10%밖에 안 돼요. 하나 더 말씀드리면, 의사 과학자도 길러야 합니다. 병의 원인을 밝히고 백신과 약을 만드는 사람이 필요해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필수의료 의사가 늘 것이고, 지방 의료원을 만드니 의사가 필요하고, 거기에 의사 과학자까지 뽑으려면 당연히 의사 숫자가 늘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식으로 진행해 숫자가 마지막에 나왔다면 반대가 없었을 텐데, 정부는 숫자부터 제시하는 실수를 한 거예요.
의대 증원의 나비효과, 이공계 기피 심화로까지
2021년 12월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 대구에서 의료봉사 중인 안철수 의원(왼쪽). 기존 정원 49명에서 125명으로 증원된 충북대 의대의 학부모 및 전국의대생학부모연합은 지난 9월 6일 증원 반대 침묵 시위를 벌였다.
지역구인 분당 서현·이매동 등이 학군지로 유명합니다. 지역 학부모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증원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부터, 이러다가 원점으로 돌아가면 이미 입학한 아이들과 준비하던 아이들, 또 학교는 어떻게 되는지 모든 부분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교육에서 중요한 건 미래에 대한 확실성이에요. 그래서 교육법에 1년 10개월 전에는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을 확정하고 그 이후로는 바꾸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데, 정부가 이를 어기면서 학부모들에게 혼란을 초래했죠. 초등학생 의대 진학반이 생기고 각종 컨설팅을 필요로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의대에 입학해도 부실 교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금 더 끔찍한 시나리오는 원래 정원이 3000명인데, 1500명을 더 뽑죠. 거기에 현재 재학생 3000명이 유급해서 내려오면 7500명이거든요. 의대는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를 못 합니다. 저 때만 해도 8명 정도가 한 조였어요. 의사 선생님 옆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환자들 진료도 지켜보고 실제로 실습도 해보면서 배우는 도제식이 의대의 전통적 교육법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의대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관광 교육’을 받고 있다고 자조적인 표현을 쓰더라고요. 보기만 하면 실습 시험에서 붙을 수가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인원이 2배 이상 늘면, 1500명을 증원해도 이 사람들이 자격이 안 돼서 의사 고시에서 다 떨어집니다. 의사 고시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이런 부분까지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는 졸업생이 의사면허 시험을 볼 수 없는데, 이번에 평가 기준이 강화됐습니다. 향후 인증을 통과 못 하는 학교가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의평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신입생을 많이 뽑은 의과대학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탈락될 가능성이 있죠. 결국 무리해서 증원을 해놓아도 교육 환경과 질이 떨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시험을 봐도 떨어지고, 아예 시험도 못 볼 수 있으니 의사 수는 늘지 않죠.
가뜩이나 이공계 기피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로 몰려갈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도 나옵니다.
몇 년 후에는 AI나 반도체 설계 인력이 굉장히 부족할 것이란 예상치가 이미 나와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 이공계 교육 시설을 확충하고 TO를 늘려 닥칠 문제에 대비해야 하는데, 이쪽에 대해서는 어떤 움직임도 없어요.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나없이 의대를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 일반 회사는 정년이 있지만 개업의는 자기 체력이 닿는 한 돈을 벌 수 있잖아요. 정년이 없다는 부분이 큰 장점인 것 같고요. 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기본적으로 의사는 자영업자거든요.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의사는 정말 적성에 맞는 사람이 해야 해요. 제 동기 중에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반대로 사교성은 좀 떨어지지만 혼자 책 보고 공부하는 게 좋은 학생이 있다고 칩시다. 주변에서 의대 가라고 해서 의대에 진학해 면허 따고 밖에 나오면 매일 하는 일이 처음 보는 환자를 진료하는 거예요. 친구 사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쉴 틈 없이 바쁜 과도 있고요. 10년 전쯤 교육부에서 진행한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는 의사가 꼴찌에서 두 번째였는데, 지금은 바뀌었나 모르겠네요.
입시를 앞두고 아이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은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제가 15년 전 카이스트 교수를 할 때 학부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이공계를 기피하는데, 오히려 이런 때가 대접받고 훨씬 더 잘될 수 있는 적기라고요. 아이의 진로를 택할 때 지금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가는 게 제일 위험해요. 10년 후에도 여전히 좋은 직장일까요. 아이의 적성을 찾아 택해야 해요. 그 일을 재미있어하고, 잘하고, 또 남에게 도움이 된다면 자존감도 올라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런 직업을 찾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어떤 직업이든 그 분야에서 잘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회가 됐다고 봅니다.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욕먹더라도 목소리 내야죠”
당내 중진 의원으로서 당이나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요.저는 예전에도 그랬어요. 한창 벤처기업 붐이 일었던 1999년 인터뷰에서 “나도 벤처기업을 하지만 벤처기업의 95%가 망할 수 있으니 조심해서 투자하라”고 말했다가 평생 먹을 수 있는 욕을 그때 다 먹은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옳은 일은 결국 증명이 되더라고요. 마찬가지로 현재의 의료 대란에 대해서도 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는 있습니다만, 지금 얘기를 해야 이 의료 문제를 해결해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고, 결국 이 정부를 실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길이라 믿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말로 하는 설득을 넘어 행동으로 옮길 계획도 있나요.
알리지는 않았지만, 사실 행동도 많이 했습니다. 용산의 고위 관계자와 의과대학교 비대위 위원장을 만나게 해서 서로 합의하도록 노력도 하고, 학생들을 만나 간담회도 하고요. 전공의들도 만나봤어요. 하지만 고위 관계자도 증원 계획을 바꾸지 못하더라고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최종적으로 대통령밖에 없어요. 결단을 내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목소리를 낼 겁니다.
그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어떤 얘기를 더 하고 싶나요.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3가지였어요. 먼저 우리나라를 공정하고 상식적인 국가로 만들고 싶었어요.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고 땀 흘린 만큼 열매를 가져갈 수 있는 나라요. 또 지금 우리가 먹고살 수 있는 게 떨어져갑니다. 메모리 반도체도 이제 얼마 안 남았거든요. 저는 박사 학위를 바이오테크놀로지로 받았고 운영한 회사는 IT 테크놀로지 쪽이었기 때문에 미래 일자리 만드는 데 자신 있어요. 마지막 이유는 우리가 급성장하다 보니 개혁할 분야가 많습니다. 연금의 경우 기성세대가 다 쓰고 그 빚을 미래세대가 갚도록 하는 식은 공정하지 않아요. 교육, R&D, 의료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하고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의대증원 #의사 #안철수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뉴시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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