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펜싱 전 국가대표 남현희(42) 씨와 약혼자 전청조(27) 씨의 인터뷰 기사가 등장한 뒤 두 사람의 이름은 최대의 뉴스 메이커가 됐다. 유명 스포츠인과 성전환, 재벌 사칭 등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키워드가 한데 엮여 있었다. 전청조 씨가 이웃에게 문자로 보냈다는 ‘I am 신뢰에요’는 밈이 되기도 했다.
11월 10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전 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전 씨는 다수의 사람에게 사업 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 수는 23명, 피해 규모는 2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본다. 사기 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한 해 27만 건 수준이던 사기 범죄 숫자는 등락을 거듭하다 지난해 32만 건으로 증가했다.
“사기는 돈만 탈취하는 게 아니라 2차 트라우마를 일으킵니다. 경제적 살인이라고 봐야죠. 사회 전체의 신뢰를 박탈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의 말이다. 경찰 시절 주로 경제범죄 수사를 담당했던 그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사기 피해자들을 다수 목격했다. 그는 영국 포츠머스대에서 사기 방지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경찰대 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국민통합위원회 민생사기 근절 특별위원회와 경찰청 사기 방지 자문위원회 소속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제1회 사기방지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한 서 교수에게 사기 사건의 현주소를 물었다.
서 교수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전청조 사건’을 두고 “전 씨는 남현희 씨의 신뢰를 얻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전문 용어로는 콘빈서(convincer)라고 합니다. 피해자를 속게 만드는 확신 요소를 말하죠. 가짜 기자나 경호원을 대동한 인적 콘빈서나 비싼 아파트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등의 물적 콘빈서도 이용했습니다.”
로맨스 스캠은 뭔가요.
연애 관계를 빙자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것입니다. 처음엔 매력적인 프로필을 제시합니다. 뛰어난 외모의 사진을 도용하거나 해외 유명 회사에 다니는데 한국에 파견을 나왔다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죠. 전청조 씨가 재벌가의 혼외자라는 걸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루밍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 운명의 상대라는 점을 강조하죠. 신뢰가 쌓이고 긴밀한 말까지 오가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돈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찔러보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처음엔 소액이다가 피해자가 돈을 잘 주면 대출받아 자신을 도와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성적인 착취로도 이어질 수 있어요.
전청조 씨가 남현희 씨에게 돈을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돈을 얻는 대신 후광 효과를 노렸다고 봐야 합니다. 남현희라는 유명인을 이용해 다른 피해자를 유인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로맨스 스캠은 다른 방식의 사기와 연관됩니다. 가짜 플랫폼에서 코인 투자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고, 환전을 핑계로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게 해 돈을 뜯어내기도 합니다. 하이브리드 사기인 거죠.
남현희 씨의 “나도 속았다”는 주장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기 범죄에 관련해 첫 번째 편견이 똑똑한 사람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사기는 누구나 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들은 인생에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기 피의자들은 이 지점을 공략합니다. 판사나 검사 같은 전문직들도 사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한 의사가 41억 원의 보이스 피싱 피해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도 사기를 당할 뻔한 경험이 있었나요.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어요. “너희 집에서 자금 세탁이 발생하고 있다”고 겁을 주며 돈을 이체하라고 하더라고요. 주소와 집주인의 이름도 알고 있었어요. 돈 없는 유학생이 아니었다면 계좌이체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사기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뭔가요.
사기 피의자들은 피해자의 취약성을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또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믿는 확증편향이 있기 때문에 그걸 조금만 이용하면 쉽게 속일 수 있죠.
사기 범죄가 증가한 이유는 뭔가요.
돈이 되기 때문이죠. 2015년 사기죄가 절도죄를 넘어선 골든 크로스가 발생했습니다. 이제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잖아요. 대부분의 거래가 스마트폰 속에서 이뤄지죠. 최근에는 조직적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사기 범죄가 돈이 된다는 걸 범죄자들이 알아챈 거죠. 조직폭력배들도 성매매업소를 운영하거나 유흥업소를 통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보이스 피싱이나 로맨스 스캠 등 온라인 사기를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한 해에 보이스 피싱으로만 77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범죄자들에겐 엄청난 시장인 셈이죠.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양상인가요.
사기는 특히 선진국에서 많이 발생하는 범죄입니다. 금융이 발달한 싱가포르에서는 전체 범죄의 50%, 영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범죄의 45%가 사기입니다. 영국 총리가 직접 사기 범죄 척결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사기 범죄의 원칙이 있나요.
항상 사기 범죄의 양상은 진화하지만 원리는 심플합니다. 욕망이나 공포를 이용하는 거죠. 17세기엔 신대륙 투자, 19세기엔 골드러시, 최근엔 가상 자산 붐이 일었습니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사기꾼들이 항상 달라붙습니다. 막대한 수익을 얻게 해주겠다는 말에 사람들이 넘어가는 거죠. 공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기관을 사칭하는 보이스 피싱이죠. 일상 속에서도 사기는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사기를 당한 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죠.
어떤 경우인가요.
법률이나 의료 분야, 컴퓨터나 차 수리처럼 사람들이 정확하게 메커니즘을 알기 어려운 서비스를 받을 때를 생각해보죠. 상대방이 제시하는 금액을 낼 수밖에 없잖아요. 이를 이용하면 피해자는 알 길이 없습니다. 전세 사기나 보이스 피싱도 같은 원리입니다. 전세 사기의 주요 피해자는 부동산 전문 지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입니다. 금융 사기는 온라인 금융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벌어지고요.
취약계층을 노리는 건가요.
생애주기를 살펴보면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취약한 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20대의 경우 취직이 잘 안 돼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가 되면 모아둔 돈을 불릴 투자처를 찾게 되고요. 고령층은 자녀 납치형 사기나 지인 사칭형 사기에 취약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대출 사기를 당할 위험이 높습니다. 누구나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죠.
불안을 이용하는 거네요.
사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습니다. 성경에도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에 속아서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잖아요. 인류 최초의 범죄라고 할 수 있죠.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 범죄라는 건 분명합니다.
2016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의 17%만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미 송금한 경우 돈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다는 것. 무엇보다 사기는 예방이 최우선이다.
사기꾼들은 과시에 능합니다. 외제 차를 탄다든가 명품을 구입하죠. 전청조는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 차를 선물하기도 했잖아요. 또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없거든요. 사기꾼 중에는 남을 조종하는 능력이 타고난 사람이 많습니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는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죠. 반대로 사기 피해를 당하는 사람 중에는 착하거나 의리 있는 분이 많아요.
사기 피해를 당한 뒤 신고까지 이어지는 비율이 20% 수준이라는 데 놀랐습니다.
스스로 바보 같다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사기 피해가 증가하면 이듬해 자살 사건이 늘어난다는 통계자료도 있습니다. 사기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시선도 신고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욕심 때문에 사기를 당했다는 비난인가요.
영국 포츠머스대에서 사기범죄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마크 버튼 교수는 사기 범죄에 휘말린 사람들은 성폭력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성폭력 피해자들이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옷을 조신하게 입지 않아서 피해를 당했다는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듯, 사기 범죄도 결국 본인의 욕심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시각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욕심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한가요.
사기 범죄의 피해금 회수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신고를 해야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10년 이하의 징역, 2000만 원 이하 벌금인 사기죄 형량이 낮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벌금 상한선은 형법이 생겨날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기는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벌금형 기준을 범죄자가 취한 이익을 감안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피해액의 2배에서 5배까지 벌금형을 내리는 거죠. 미국에서는 사기죄로도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하는 벌을 내리기도 합니다. 폰지 사기로 알려진 버나드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사망했습니다.
경찰청 사기 방지 자문위원회와 국민통합위원회 민생사기 근절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제도적 장치가 있나요.
사기 범죄를 통합해 대응할 기관이 필요합니다. 신고부터 범죄수익 환수, 피해자 케어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할 기관이 있어야 하죠. 지금은 사기 범죄를 다루는 기관이 각각 나눠져 있습니다. 금융기관과 통신 회사, 경찰청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보이스 피싱의 경우 9월 통합신고대응센터가 만들어졌지만 나머지 사기 범죄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응센터가 없습니다. 보이스 피싱에 대한 단속과 검거가 집중되면 사기범들은 재빠르게 다른 사기 범죄로 눈을 돌립니다. 또 피해 금액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지급정지 역시 보이스 피싱 외 다른 사기 범죄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서준배 #경찰대 #전청조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뉴스1
11월 10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전 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전 씨는 다수의 사람에게 사업 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 수는 23명, 피해 규모는 2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본다. 사기 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한 해 27만 건 수준이던 사기 범죄 숫자는 등락을 거듭하다 지난해 32만 건으로 증가했다.
“사기는 돈만 탈취하는 게 아니라 2차 트라우마를 일으킵니다. 경제적 살인이라고 봐야죠. 사회 전체의 신뢰를 박탈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의 말이다. 경찰 시절 주로 경제범죄 수사를 담당했던 그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사기 피해자들을 다수 목격했다. 그는 영국 포츠머스대에서 사기 방지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경찰대 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국민통합위원회 민생사기 근절 특별위원회와 경찰청 사기 방지 자문위원회 소속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제1회 사기방지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한 서 교수에게 사기 사건의 현주소를 물었다.
서 교수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전청조 사건’을 두고 “전 씨는 남현희 씨의 신뢰를 얻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전문 용어로는 콘빈서(convincer)라고 합니다. 피해자를 속게 만드는 확신 요소를 말하죠. 가짜 기자나 경호원을 대동한 인적 콘빈서나 비싼 아파트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등의 물적 콘빈서도 이용했습니다.”
“판검사, 의사도 사기 피해자 될 수 있다”
11월 10일 전청조 씨가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왼쪽).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제1회 사기방지 국제 컨퍼런스.
연애 관계를 빙자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것입니다. 처음엔 매력적인 프로필을 제시합니다. 뛰어난 외모의 사진을 도용하거나 해외 유명 회사에 다니는데 한국에 파견을 나왔다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죠. 전청조 씨가 재벌가의 혼외자라는 걸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루밍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 운명의 상대라는 점을 강조하죠. 신뢰가 쌓이고 긴밀한 말까지 오가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돈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찔러보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처음엔 소액이다가 피해자가 돈을 잘 주면 대출받아 자신을 도와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성적인 착취로도 이어질 수 있어요.
전청조 씨가 남현희 씨에게 돈을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돈을 얻는 대신 후광 효과를 노렸다고 봐야 합니다. 남현희라는 유명인을 이용해 다른 피해자를 유인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로맨스 스캠은 다른 방식의 사기와 연관됩니다. 가짜 플랫폼에서 코인 투자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고, 환전을 핑계로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게 해 돈을 뜯어내기도 합니다. 하이브리드 사기인 거죠.
남현희 씨의 “나도 속았다”는 주장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기 범죄에 관련해 첫 번째 편견이 똑똑한 사람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사기는 누구나 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들은 인생에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기 피의자들은 이 지점을 공략합니다. 판사나 검사 같은 전문직들도 사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한 의사가 41억 원의 보이스 피싱 피해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도 사기를 당할 뻔한 경험이 있었나요.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어요. “너희 집에서 자금 세탁이 발생하고 있다”고 겁을 주며 돈을 이체하라고 하더라고요. 주소와 집주인의 이름도 알고 있었어요. 돈 없는 유학생이 아니었다면 계좌이체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사기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뭔가요.
사기 피의자들은 피해자의 취약성을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또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믿는 확증편향이 있기 때문에 그걸 조금만 이용하면 쉽게 속일 수 있죠.
욕망과 공포를 이용하는 사기범들
사기 범죄는 연간 30만 건가량 발생한다. 한 해 형사 사건이 140만 건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다섯 중 하나에 해당하는 숫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5년(2018~2022)간 사기 범죄 피해 규모는 128조 원에 달한다.사기 범죄가 증가한 이유는 뭔가요.
돈이 되기 때문이죠. 2015년 사기죄가 절도죄를 넘어선 골든 크로스가 발생했습니다. 이제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잖아요. 대부분의 거래가 스마트폰 속에서 이뤄지죠. 최근에는 조직적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사기 범죄가 돈이 된다는 걸 범죄자들이 알아챈 거죠. 조직폭력배들도 성매매업소를 운영하거나 유흥업소를 통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보이스 피싱이나 로맨스 스캠 등 온라인 사기를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한 해에 보이스 피싱으로만 77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범죄자들에겐 엄청난 시장인 셈이죠.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양상인가요.
사기는 특히 선진국에서 많이 발생하는 범죄입니다. 금융이 발달한 싱가포르에서는 전체 범죄의 50%, 영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범죄의 45%가 사기입니다. 영국 총리가 직접 사기 범죄 척결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사기 범죄의 원칙이 있나요.
항상 사기 범죄의 양상은 진화하지만 원리는 심플합니다. 욕망이나 공포를 이용하는 거죠. 17세기엔 신대륙 투자, 19세기엔 골드러시, 최근엔 가상 자산 붐이 일었습니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사기꾼들이 항상 달라붙습니다. 막대한 수익을 얻게 해주겠다는 말에 사람들이 넘어가는 거죠. 공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기관을 사칭하는 보이스 피싱이죠. 일상 속에서도 사기는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사기를 당한 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죠.
어떤 경우인가요.
법률이나 의료 분야, 컴퓨터나 차 수리처럼 사람들이 정확하게 메커니즘을 알기 어려운 서비스를 받을 때를 생각해보죠. 상대방이 제시하는 금액을 낼 수밖에 없잖아요. 이를 이용하면 피해자는 알 길이 없습니다. 전세 사기나 보이스 피싱도 같은 원리입니다. 전세 사기의 주요 피해자는 부동산 전문 지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입니다. 금융 사기는 온라인 금융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벌어지고요.
취약계층을 노리는 건가요.
생애주기를 살펴보면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취약한 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20대의 경우 취직이 잘 안 돼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가 되면 모아둔 돈을 불릴 투자처를 찾게 되고요. 고령층은 자녀 납치형 사기나 지인 사칭형 사기에 취약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대출 사기를 당할 위험이 높습니다. 누구나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죠.
불안을 이용하는 거네요.
사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습니다. 성경에도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에 속아서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잖아요. 인류 최초의 범죄라고 할 수 있죠.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 범죄라는 건 분명합니다.
2016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의 17%만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미 송금한 경우 돈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다는 것. 무엇보다 사기는 예방이 최우선이다.
사기 피해 신고율 20% 수준
사기의 징후가 있나요.사기꾼들은 과시에 능합니다. 외제 차를 탄다든가 명품을 구입하죠. 전청조는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 차를 선물하기도 했잖아요. 또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없거든요. 사기꾼 중에는 남을 조종하는 능력이 타고난 사람이 많습니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는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죠. 반대로 사기 피해를 당하는 사람 중에는 착하거나 의리 있는 분이 많아요.
사기 피해를 당한 뒤 신고까지 이어지는 비율이 20% 수준이라는 데 놀랐습니다.
스스로 바보 같다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사기 피해가 증가하면 이듬해 자살 사건이 늘어난다는 통계자료도 있습니다. 사기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시선도 신고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욕심 때문에 사기를 당했다는 비난인가요.
영국 포츠머스대에서 사기범죄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마크 버튼 교수는 사기 범죄에 휘말린 사람들은 성폭력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성폭력 피해자들이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옷을 조신하게 입지 않아서 피해를 당했다는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듯, 사기 범죄도 결국 본인의 욕심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시각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욕심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한가요.
사기 범죄의 피해금 회수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신고를 해야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10년 이하의 징역, 2000만 원 이하 벌금인 사기죄 형량이 낮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벌금 상한선은 형법이 생겨날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기는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벌금형 기준을 범죄자가 취한 이익을 감안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피해액의 2배에서 5배까지 벌금형을 내리는 거죠. 미국에서는 사기죄로도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하는 벌을 내리기도 합니다. 폰지 사기로 알려진 버나드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사망했습니다.
경찰청 사기 방지 자문위원회와 국민통합위원회 민생사기 근절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제도적 장치가 있나요.
사기 범죄를 통합해 대응할 기관이 필요합니다. 신고부터 범죄수익 환수, 피해자 케어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할 기관이 있어야 하죠. 지금은 사기 범죄를 다루는 기관이 각각 나눠져 있습니다. 금융기관과 통신 회사, 경찰청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보이스 피싱의 경우 9월 통합신고대응센터가 만들어졌지만 나머지 사기 범죄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응센터가 없습니다. 보이스 피싱에 대한 단속과 검거가 집중되면 사기범들은 재빠르게 다른 사기 범죄로 눈을 돌립니다. 또 피해 금액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지급정지 역시 보이스 피싱 외 다른 사기 범죄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서준배 #경찰대 #전청조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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