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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개그우먼 3인방의 무한공감 가족 이야기

정경미·김경아·조승희

EDITOR 두경아

2020. 04. 26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요즘, 가족 사랑이 더욱 힘을 발휘하는 때다.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공연으로 널리 알려진 ‘투맘쇼’의 세 주역이 모여 현실에서 찾은 소박하지만 특별한 행복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개그우먼 김경아(39)는 최근 컴퓨터 앞에 앉아 아들 선율(10)의 학교통신문을 읽다가 머리카락이 ‘싹뚝’ 잘려나가는 경험을 했다. 여섯 살배기 딸 지율이의 “손님, 머리를 어떻게 해드릴까요”라는 질문에 통신문을 읽으며 “예쁘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정경미(40)는 아들 준(7)이가 무려 ‘스스로’ 책을 읽는 기적을 보았다. 그는 SNS에 책 읽는 아들 사진을 올리고 “이게 꿈인가? 스스로 책을 보다니 억수로 심심한 것 같다(책은 보지만 한글은 못 읽음)”고 남겼다. ‘행사의 여왕’ 조승희(37)는 지난 연말 맞췄던 노란색, 빨간색 정장을 코로나19가 창궐중이던 2월에 찾았다. 그는 “인터뷰하는 오늘이 상반기 유일하게 정장 입는 스케줄”이라며 웃었다.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 났던 힐링 개그 토크쇼 ‘투맘쇼’ 멤버 3인방의 ‘웃픈’ 요즘 일상이다. 이들은 얼마 전 지난해 공연장에서 엄마 관객들과 공감대를 이루며 나눴던 결혼과 육아 이야기를 엮은 책 ‘투맘쇼’(42미디어콘텐츠)를 출간했다. 웃음이 나면서도 슬픈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에게 따뜻한 응원과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했다고.

세 여자의 탄탄한 우정으로 탄생한 ‘투맘쇼’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됐지만 ‘투맘쇼’는 공연계를 뜨겁게 달구던 작은 공룡 같은 작품이었다. ‘준이맘’ 정경미와 ‘선율·지율맘’ 김경아, 미혼 조승희가 2016년 ‘엄마들이 공감하는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함께 기획했다. 공연 시간은 특이하게 오전 11시. 엄마들이 아이들과 남편을 등교·출근시키고 한 숨 돌리는 시간이다. 지난해까지 전국 10개 도시에서 2백 회 이상 공연됐으며, 인기가 높아지자 개그우먼 김미려를 영입해 규모를 키웠다. 결혼과 육아 생활이 주 소재로, 엄마들의 ‘힐링 콘서트’로 자리매김했다. 미혼인 조승희는 ‘투맘쇼’에서 MC이자 엄마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역할로 참여한다. 

조승희(이하 승희)_공연을 하다보면 갑자기 어느 타이밍에 관객이 다 같이 울어요. 10초 있다가는 다 함께 웃기도 하고요. 처음엔 이게 뭔지 싶고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정경미(이하 경미)_미혼은 몰라요. 개그우먼들이 가족동반으로 MT를 간 적이 있는데, 엄마들은 너무 신나서 술을 진탕 마시고 모두 뻗었어요. 다음 날 애들은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하면서 기어 다니는데 엄마들은 일어나지도 않고…. 미혼들은 그 모습을 보고 “미친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너희가 우리 마음을 아냐?”고 했죠(웃음). 

지금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지만 처음부터 ‘쿵짝’이 잘 맞았던 건 아니다. 세 사람의 첫 만남은 2008년 조승희의 KBS 입사로 시작된다. 그 전에 KBS 공채 개그우먼 20기인 정경미와 21기인 김경아가 친해졌고, 23기로 조승희가 들어왔다. 



김경아(이하 경아)_원래 한 기수 위 선배가 가장 무섭잖아요. 경미 선배가 저를 품어줘 친구가 됐다가, 나중에 승희가 입사하면서 셋이 친해졌어요. 당시 승희는 엄청 까불이였는데 경미 선배는 “정신 사납다”며 모임에 데려오지 말라고도 했죠. 한두 번 만나다 보니 경미 선배도 승희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세 사람은 ‘투맘쇼’를 통해 함께 일하며 호흡이 더 착착 맞아떨어졌다. 사업가 기질이 있는 정경미가 사업 구상·기획을, 극작가 출신인 김경아는 공연 홍보에 필요한 글과 자료 만들기, 대표인 조승희는 오랫동안 무대 위에서 단련된 순발력으로 영업을 담당했다. 공연이 흥행에 성공해 버는 돈이 많아져도 최저 임금에 준하는 월급만 받았고, 나머지 금액은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해 저축했으며 4대 보험도 들었다. 이런 체계적인 운영 덕분에 공연이 잠정 중단된 요즘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마련됐다. 

승희_친구로 지내며 나눈 케미보다 업무 케미가 더 좋아서 신기했어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위치나 장점을 인정하며 함께해나가고 있답니다. 

정경미의 남편이자 공연에서 잔뼈가 굵은 윤형빈의 조언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윤형빈은 10년 넘게 코미디 전용인 ‘윤형빈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미_형빈 씨는 처음에 걱정을 했어요. 본인은 10년 정도 공연을 해왔고, 현재 크루만 해도 40명이 넘으니까요. “공연이 쉬운 게 아닌데, 이게 될까” 하는 식이었죠. 그런데 연말에 순이익을 따져보면 ‘투맘쇼’가 더 높은 거예요. 그러더니 어느 순간 경아를 데려가 작사가로 쓰고, 승희를 영업 미팅이나 행사 때 데려가더라고요(웃음). 

정경미는 공연을 시작한 뒤 남편 일을 더욱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공연을 하지 않았으면 모를 일들이었다.

최수종·차인표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내 남편

이들의 주요 대화 소재 중 하나는 남편이다. 함께 살고 있는 남자가 ‘국민 남편’으로 불리는 최수종이나 차인표처럼 다정다감하지 않아 소재가 무궁무진하다고. 연애 시절 아프면 약 사서 달려오고, 때 되면 꽃다발을 바치던 개그맨 권재관은 김경아와 결혼 후 “어허! 어디서 여자가!”를 들먹이는 세상 둘도 없는 가부장적인 남자가 됐다. 밤낮으로 “국민 요정 정경미”를 외치던 윤형빈은 10년째 요정 아닌 공연과 사랑에 빠졌단다. 

남편한테 심쿵할 때가 언제냐고 묻자 김경아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경아_쓸모가 있을 때요(웃음). 얼마 전 침대가 꺼졌는데, 남편이 매트리스를 번쩍 들고 전동 드릴로 박더라고요. 그 모습에 ‘심쿵’했어요. 남편은 요리를 잘하는데, 제게 해주고 나서 사진 찍어 SNS에 올리라고 해요. “자상한 남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일부러 찍어도 안 올리죠. 

정경미에게는 요즘 남편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냐고 묻자 세상 모든 고민을 짊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승희가 대신 대답해줬다. 

승희_경미 선배는 형빈 선배가 팔이 빠지도록 아들과 놀아줄 때 좋아하더라고요. 아닌 척하지만, 그런 사진을 찍어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자랑해요. 

경미_연애할 때는 남편이 늘 한결같은 사람이라 좋았어요. 결혼하고 나서는 아빠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일 때 멋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개그맨 부부는 매일 재미있는 일상을 펼칠 것 같다는 기대를 한다. 이에 대해 정경미와 김경아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미_개그맨 부부라고 특별한 건 없어요. 물론 다들 모이면 철없고 진짜 웃긴 건 맞아요. 가끔 동기들 만나면 웃고만 올 정도예요. 아직도 아이템 회의하면서 총싸움하고 그러니 철들 틈이 없는 것 같아요. 

경아_개그맨 부부의 경우 남편 쪽 만족도가 더 큰 듯해요. 세상 어느 아내가 매일 자정 넘어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이해할까요? 개그우먼 아내들은 남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시스템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갈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경미_그건 맞는 것 같아요. 그달 그달 수입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요. 

승희_제가 봤을 때 개그맨 남편들은 권위적이지 않아요. 틀에 박힌 생각을 하지 않고, 자유롭고 규율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친구같이 지내는 게 좋아 보여요. 

경아_저희 남편은 제가 집에서 요리나 청소를 하면 되게 못 미더워하는 부분이 있는데, 일할 때는 전적으로 믿어줘요. 그럴 때는 ‘동기 오빠’의 모습이 나오죠. “너는 재능이 있어서 잘할 거야”라고 격려하면서요.

워킹맘의 고단함, 하지만 엄마라서 행복해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정경미와 김경아는 자신의 꿈과 엄마라는 이름 사이에서 늘 고민 중이라는 속내를 전했다. 

경미_아이 낳고 2년 정도 돼서야 엄마 역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늘 마음속에서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정경미와, 자기 일을 하라는 정경미가 7년째 싸우고 있어요. 아직 답을 못 내렸지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토요일 아침마다 “엄마, 오늘 회사 가?”라고 묻고 “아니”라고 하면 “오 예~”를 외치는 아들 준이는, 다행히도 “엄마는 사람들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알아준다고. 

김경아는 출산 후 ‘개그콘서트’ 출연과 공연을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유치원 교사의 전화를 받고 주저앉아 울었다고. 아들 선율이가 혼자 놀거나 예전에 비해 의기소침하고 말수가 줄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바쁜 나머지 아이의 도시락을 설거지가 안 된 상태로 보내기도 했다. 아무리 도와줄 사람이 있어도 아이에겐 엄마가 꼭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마침 코너에서 하차하면서 일을 조금 내려놓게 됐다. 요즘 아들이 “엄마는 왜 ‘개콘’에 안 나와” 물으면 “너랑 있는 게 더 좋으니까”라고 대답한단다. 

“지금은 ‘미스터트롯’에 워낙 재능 있는 아이들이 나와 부끄럽긴 하지만 선율이가 트로트를 잘 불러요. ‘개그콘서트’ 무대에도 올라갔었지요. ‘전국노래자랑’이 우리 동네에 언제 오냐며 기다리고 있어요. 웃긴 가발을 모은다거나 동생 옷을 입고 연기를 하는 등 아들이 집에서 ‘개콘’을 찍고 있어요.” 

김경아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네 살 때 영어 천재로 생각해 영어 방문 수업을 받게 한 것을 시작으로, 미술·태권도·수학·독서 논술까지 남들이 필요하다는 교육은 모두 시켰다. 

“5분을 책상에 앉히기 위해 24시간이 괴로웠어요. 간신히 책상에 앉히느라 진이 모두 빠졌고, 고문 같은 숙제가 끝나면 저는 좀 쉬고 싶었지만 아들은 놀자며 졸라댔죠. 피로에 지친 저는 유튜브를 보여주며 하루를 마감하고 밤마다 괴로워했어요.” 

김경아는 ‘우리가 벌써 이렇게 공부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면 앞으로 중고등학생이 됐을 때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에 빠졌고, 결국 아이가 원치 않는 사교육은 모두 그만뒀다. 지금은 그 덕분에 시간이 남아돌아 아이 스스로 숙제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만일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두 사람은 주저 없이 “지금보다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답한다. 

경미_엄마라서 행복할 때가 많아요. 승희에게도 “결혼은 몰라도 애는 낳아”라고 해요(웃음). 결혼을 안하더라도 더 잘나가는 개그우먼이 된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아요. 제게는 일보다 더 소중한 아이가 있으니까요. 

경아_인생의 중요한 숙제 하나를 끝낸 느낌이에요. ‘됐어. 애 둘 낳고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마인드가 되더라고요. 혼자였으면 이 정도로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승희_미혼 개그우먼들의 롤 모델은 경미 선배예요. 저희끼리 모이면 모두 “나도 정경미처럼 살고 싶다”고 해요. 결혼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일도 적당히 하면서요. 

이들의 끝나지 않은 흥미진진한 결혼과 육아 이야기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조만간 재개할 공연 ‘투맘쇼’나 ‘투맘쇼’ 책을 통해 더 들여다볼 수 있을 듯하다. 

경아_코로나19 사태가 끝나서 애들을 등원시킨 뒤, 청소 마치고 테이블에 차 한 잔 두고 저희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엄마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진짜 필요하거든요. 

경미_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사는 게 힘들다. 나만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 때 꺼내 읽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다 보면 ‘나 사는 거랑 다르지 않네? 내 이야기네’라며 웃을 수 있을 거예요. 

승희_‘투맘쇼’ 책을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읽으면 어떨까 싶어요. 책을 통해 아내와 며느리가 왜 힘든지 진심으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김도균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김경아 정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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