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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쉼 없는 배우 권상우의 내공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11. 03

배우 권상우를 있게 한 건 9할이 부지런함이다. 두 자녀까지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 만큼 부지런함을 타고난 그는 자영업을 했어도 성공했을 거라고 말한다.

정말이지 큰 기대 없이 언론시사회에 참석했다가 연신 키득키득 웃었다. 10월 17일 개봉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두번할까요’ 얘기다. 영화는 대학 시절 뜨거운 연애를 하다 결혼한 커플이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혼선언식을 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특히 남자 주인공 현우 역을 맡은 권상우(43)가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15년 만에 스크린에서 재회한 이종혁(고교 동창 상철 역)이나 ‘탐정’ 시리즈로 호흡을 맞춘 성동일(직장 상사 이 부장 역)과 브로맨스 케미를 발산하며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이 압권이다. 

하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지점이 군데군데 나온다. 사랑하는 연인 혹은 부부간에 지켜야 할 그 무엇에 대해,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고 할까. 드라마 ‘추리의 여왕’ 이후 2년 만에 인터뷰이로 다시 만난 권상우도 “시종일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는 반응이 반가웠다”고 털어놨다. 

영화 속 현우는 아내 선영(이정현)과 이혼한 후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속옷 회사 직원이다. 그러나 그런 자유도 잠시뿐. 오랜만에 만난 수의사 친구 상철이 마음에 둔 여자가 선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이에 반해 현실의 권상우는 그의 아내인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손태영(39)과 연예계에서 소문난 잉꼬부부다. 2008년 결혼한 권상우는 슬하에 아들 룩희, 딸 리호를 뒀으며 가족의 화목한 일상이 종종 공개돼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자신과 하는 일도, 처한 상황도 많이 다른 현우를 연기하며 권상우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두번할까요’를 보며 쌓인 궁금증을 그에게 던졌다.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박장대소를 하게 하는 장면은 없지만 각각의 신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해서 누구나 지루하지 않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모로 공감할 수 있는 면이 많고요. 

현우 캐릭터도 공감이 가나요. 

현우처럼 제가 이혼을 해본 것도 아니고 저와 하는 일도 다르지만 남자라면 충분히 공감이 가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요. 이혼을 하고 솔로 생활을 만끽하는 현우의 모습이 대리만족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막상 혼자 지내면 할 게 별로 없거든요. (이)종혁이 형이 연기한 상철이도 누구나 공감하는 캐릭터일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 한마디를 꺼내기도 조심스럽고 늘 잘 보이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하이라이트인 옥상 위 격투 신을 이종혁 씨와 재현한 장면이 신선하다는 평이에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그 신이 들어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어요. 그 장면 덕분에 이번 영화의 인지도가 더 오른 것 같아 감사하고 있어요. 추억의 영화에 나오는 두 배우가 다시 만나 재현한 장면이니 관객들도 추억을 되살리기에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종혁 씨와 15년 만에 재회해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말죽거리 잔혹사’를 찍을 당시에는 종혁이 형도 상업 영화 출연이 처음이고, 저도 신인일 때라 촬영이 끝나도 숙소에 가지 못하고 무술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발차기 연습을 했어요. 그런 과정을 견디며 동고동락해서 그 영화를 함께한 배우들은 몇 년 만에 봐도 학창 시절 동창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애틋해요. 이번 영화로 종혁이 형을 다시 만났을 때도 엊그제 본 것처럼 어색함이 전혀 없었어요. 

예전에 저와 인터뷰하면서 성동일 씨처럼 롱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옆에서 지켜본 성동일 씨를 평가한다면요. 

제가 직접 출연을 제의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성동일 선배처럼 신마다 맛깔나게 살려주지 못했을 거예요. 저와 결이 다르지만 배울 점이 정말 많은 배우예요. 코미디뿐 아니라 어떤 장르에서든 그에 맞게 연기 색깔을 내는 분이고 남의 연기에 피해가 가지 않게 아주 적절한 리액션을 해주시는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요. 타고난 코미디감이 정말 부러워요. 

이번 영화의 상대 배우인 이정현 씨와도 ‘추리의 여왕’의 최강희 씨만큼 호흡이 잘 맞았나요. 

제가 지난 1년간 이번 작품을 포함해 3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최강희 씨가 그때마다 커피차를 보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정말 의리 있고 매력 있는 배우예요. 이제 제가 그 보답을 해야죠. 정현 씨와는 최강희 씨와 ‘추리의 여왕’을 찍을 때처럼 코믹하게 붙는 신이 많지는 않았지만 워낙 성격이 좋고 현장에 잘 녹아드는 배우라서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극 중 캐릭터인 현우와 닮은 점을 꼽는다면요. 

저도 현우처럼 집 안 청소를 잘해요. 더러운 걸 못 보거든요. 와이프가 저보다 더 깔끔해서 와이프의 눈에는 부족한 면이 보이겠지만요(웃음). 

영화를 보면서 선영이가 호출하면 득달같이 달려가고 집 안 청소도 잘하는 현우가 왜 이혼까지 갔을까 의아했어요. 

우리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가 선영이 대사에 있어요. “쟤는 내가 하는 영어만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내 말도 못 알아듣는 것 같다”는 그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해준다고 생각해요. 모든 남녀의 갈등이 일반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잖아요. 싸우고 나서 여자는 남자한테 사과받길 바라고, 남자는 그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 싶어서 사과하고. 그러면 여자는 집요하게 ‘뭐가 미안한 줄 알고 사과하느냐’고 추궁하고요. 이정현 씨의 대사는 바로 그런 문제를 꼬집는 말이고, 그건 인류의 숙제인 것 같아요. 저도 와이프한테 서운할 때가 있고 와이프도 저 때문에 삐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도 오랜 결혼 생활을 통해 서로 스타일을 파악해 이해할 건 이해하고 양보할 건 양보하면서 맞춰가는 거죠.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요. 

사랑은 굉장히 불같은 것이고 그러다 눈멀어 하는 것이 결혼 같아요. 그런데 결혼 생활은 현실이잖아요. 현실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 안에서 함께하다 보면 사랑보다 견고한 그 무엇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손태영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어요. 

저는 SNS를 안 하지만 와이프가 일상에서 느끼는 육아의 기쁨을 인스타그램에 표현하는 것까지 간섭하고 싶진 않아요. 자기 일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육아에 전념하는 모습이 고맙고 예쁘기도 하고요.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요. 

결혼은 무조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결혼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았으면 삶이 엉망진창이 됐을 것 같아요. 싱글이었다면 지금쯤 훌쩍 여행 가고 그러겠죠. 그런데 지금은 여행을 가도 네 식구가 같이 떠나야 하고, 일할 때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왼쪽 팔뚝에 새겨진 그 문신(두 줄의 영어)은 뭔가요. 

드라마 ‘추리의 여왕’을 찍을 때 어머니랑 와이프, 아이들 이름과 생일을 새겨 넣었는데 어머니와 와이프한테 욕을 엄청 먹었어요. 좋아할 줄 알았거든요. 

영화에서 선보인 근육질의 뒤태가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운동을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해왔는데 이번 영화를 찍을 땐 평범한 샐러리맨 역할이라서 근육질이 과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평소보다 운동을 덜했어요. 삼시 세끼를 다 먹으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했거든요. 그 덕분에 영화에서는 적절한 수준의 근육질을 선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 들죠. 

운동을 꾸준히 해서인지 피부도 40대 같지 않게 맑아요. 

담배를 안 피우고, 술도 거의 안 마시고, 무엇보다 일찍 자서 그런 것 같아요. 와이프도, 저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에요. 둘 다 되게 부지런해요. 저는 드라마를 찍고 새벽에 귀가해도 아침 6~7시면 깨요. 군복무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에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뭔가요. 

‘부지런하자’요. 그게 제 삶의 모토예요. 남들보다 똑똑하지 않고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부지런해서 손해 볼 건 없더라고요. 촬영 현장에도 남보다 일찍 가는 편이에요. 어쩌다 부득이하게 늦게 되면 그걸 못 견뎌해요. 

매사에 부지런할 순 없지 않나요. 

빈둥거리는 게 안 돼요. 늘 뭔가를 부지런히 해요. 그렇다고 옆 사람까지 부지런하도록 강요하진 않는데 아들도, 딸도 부지런해요. 둘 다 아침에 일찍 깨요. 한 번도 일어나라고 깨운 적이 없어요. 아들 같은 경우는 지금 열한 살인데 스스로 알아서 다 해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 말이 맞네요. 높은 점수를 받는 아빠이자 남편이겠어요. 

사실 한 공간에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거지, 아이들과 잘 놀아주진 못해요. 여행을 갈 때는 가이드처럼 능숙하게 일정을 짜 가족들의 불편함을 덜어주지만 평소에는 잔소리가 많은 아빠예요. 특히 아들에게 엄격해요. 딸을 대할 때는 늘 싱글벙글하고요. 

운동처럼 즐기는 다른 취미가 있나요. 미술을 전공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싶어요. 

항상 그림 그릴 만한 도구를 준비해두고 있는데 아직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언젠가는 제가 여행을 가서 풍경이나 사람을 그린 크로키나 데생으로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20대일 때와는 다를 것 같아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어떤 작품에든 제 이름이 올라갔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 매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해요. 제가 직접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니 일이 더디게 진행될지언정 뜻한 바대로 일할 수 있는 점도 흡족하고요.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미술 교사나 미술 학원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가로 활동할 수도 있겠죠. 아마 자영업을 했어도 부지런해서 그 분야에서 성공했을 것 같아요. 그런 자신감은 있어요. 하하하. 

포털 사이트에 연관검색어로 세차장이 뜨더라고요. 

예전에 서울 성수동 폐공장을 매입했는데, 그 시기에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영화사가 부근에 많이 들어섰어요. 그래서 저도 그곳을 제가 차린 연예기획사 사무실로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조그만 공간을 썼는데 직원이 늘어나면서 규모를 늘렸어요. 영화 제작에 대한 꿈도 고려해 2층을 사무실로 활용하고 1층을 주차장으로 쓰려고 했는데 주차만 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넓어서 세차장을 만들었죠. 

재테크를 잘하는 스타로 소문이 자자해요. 

그것도 제가 부지런해서 얻은 결과예요. 예전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 발품을 열심히 팔고 관련 법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직접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은행에도 자주 가게 되더라고요. 하하하. 

특별히 제작하고 싶은 영화가 있나요. 

남녀노소 누구나 웃고 울며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추상적인 꿈은 아니고 구체적으로 준비해나가고 있는데 지금은 영화 제작보다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좀 더 많은 신뢰감을 얻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9년 차 배우로서 스스로 중간 평가를 한다면. 

운도 좋았지만 저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촬영 현장에서도 몸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촬영하며 얻은 영광의 상처가 많거든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제가 선호하는 장르가 코믹 액션과 휴먼 코미디예요.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작품을 하고 싶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요. 그래서 지난해 ‘두번할까요’와 ‘신의 한수: 귀수편’ ‘히트맨’을 찍었는데 세 영화의 개봉이 이어져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 된 기분이에요. ‘신의 한수: 귀수편’은 11월 7일, ‘히트맨’은 내년 1월에 개봉하거든요. 액션 연기에 대한 제 강점을 보여주려고 ‘신의 한수: 귀수편’을 찍을 때는 처음으로 식사량을 조절하면서 다시 한 번 회자될 만큼 몸을 만들며 열심히 촬영했어요. ‘히트맨’은 액션 강도가 세지만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아서 출연했고요.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요. 앞으로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 관객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싶어요.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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