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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잘나가는 피부과 의사 ‘국민 사위’ 되다

함익병 원장의 장모 사랑

글·진혜린 | 사진·조영철 기자

2013. 10. 15

어려운 손님 대하듯 해야 사위 대접 해준다고들 했다. 씨알 좋은 토종닭 잡아 먹음직스럽게 한 상 차려 나와야 ‘역시 사위 사랑, 장모’구나 했다. 그렇다면 사위는 한평생 처가댁을 손님처럼 찾아가야 하는 걸까?

잘나가는 피부과 의사 ‘국민 사위’ 되다


장모를 ‘바다코끼리’라고 놀리고, 장모가 끓인 국이 짜다며 타박하는가 하면, 장모가 한창 드라마 시청 중일 때 채널을 바꾸는 사위. 액면가는 ‘버릇없는 사위’인데, 연로한 장모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최근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53) 원장은 SBS ‘백년손님-자기야’(이하 백년손님)에 장모 권난섭(81) 씨와 출연하면서 ‘국민 사위’라는 호칭을 얻었다. 어색하고 어렵기만 한 장모 사위 관계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는 함익병 원장을 만나 효율적이고도 따뜻한 관계 맺음을 한 수 배웠다.

방송인, 함익병
마른 손을 쓱싹쓱싹 비비며 취재진을 맞이하는 함익병 원장은 “무엇부터 하면 될까요?”라며 선물을 풀어보기 직전의 어린아이 같은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저녁 7시, 하루 종일 이어진 진료가 모두 끝난 시간이라 지칠 법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방송 촬영은 아주 재미있어요. 진료는 늘 심각할 수밖에 없는데, 방송은 다르잖아요. 의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에요. 환자의 고민을 온전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살죠. 그런데 방송은 긴장은 돼도 스트레스가 없더라고요. 물론 직업적으로 방송을 해야 한다면 다르겠지만 방송을 통해 특별히 기대하는 게 없어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함익병 원장과 방송의 인연을 따져보려면 함 원장이 병원을 처음 개업한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른세 살의 나이에 동업의사 두 사람과 ‘이지함 피부과의원’을 설립하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에 병원 문을 열었을 때, 대기번호표를 나눠줘야 할 만큼 문전성시를 이뤘고 휴일도 없이 진료를 보며 하루 1백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개업 당시 국내 최초로 레이저 기기를 대대적으로 도입하고, 호텔 같은 인테리어를 표방하면서 환자가 전국에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 독보적인 질주가 개업 7, 8년 동안 지속됐기 때문에 병원 홍보가 따로 필요 없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환자의 남편 중 방송국 PD가 있었던 게 인연이 돼 함 원장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첫 출연을 하게 됐고, 그 뒤로도 바쁜 시간을 쪼개 방송을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진료실을 벗어나 색다른 긴장감을 맛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함익병피부과·에스더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은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예전 같지 않지만 방송 출연을 통해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방송은 늘 그에게 재미있는 경험이자 추억이다.
“특별한 목적과 의도가 있었다면 이렇게 재미있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동안 교양·정보 프로그램에만 출연한 터라 예능 프로그램은 ‘스타부부쇼-자기야’가 처음이에요. 1년 전 ‘자기야’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의사로서 의학정보를 전해주는 역할일 뿐이었거든요. 그때는 병원을 찾는 환자가 조금 늘었어요(웃음).”
이제는 ‘백년손님’으로 스타의사가 됐으니 환자들이 더 많이 몰리지 않을까?
“웬걸요? 오히려 ‘진료를 하긴 하나요?’ 하는 문의전화가 더 많이 와요. 아예 병원 문을 닫고 방송만 하는 줄 아시나봐요.”
여전히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4시 반까지 환자를 맞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집이 아닌 처갓집으로 향하는 것뿐. ‘백년손님’ 촬영은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자정까지 서른 시간가량 이어진다. 촬영을 위해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는 셈이다.
“‘스타부부쇼-자기야’가 ‘백년손님-자기야’로 바뀌면서 제 나이대 출연자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아마 저보다는 인지도가 높은 분을 찾았겠죠. 그런데 제 나이쯤 되면 장모님도 연세가 많으셔서 적당한 출연자를 찾는 게 힘들었을 거예요. 그러다가 제게까지 출연 요청이 왔는데, 예능 프로그램을 작정하고 할 것도 아니라 처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했죠. 그런데 그간 맺어온 인연도 있고, 또 저도 ‘자기야’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 출연자를 찾을 때까지만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청자의 반응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매너 좋고 지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의사가 장모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장난을 치는 모습이 처음에는 ‘반전매력’으로 다가온 동시에 ‘버릇없는 사위’로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보고 있자니 친구처럼 허물없는 장난과 농담 속에 장모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기는 애정이 녹아들어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었다. 사위와 장모. 그 가깝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어정쩡한 관계를 아름답게 엮어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알콩달콩 예뻐 보인다.

사랑과 바꿔먹은 예절

잘나가는 피부과 의사 ‘국민 사위’ 되다




“저 또한 예의와 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건 초면에, 친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거죠. 매일 만나는 사이에서 늘 격식을 따지는 것은 이상하잖아요. 저도 어디 가면 어린 나이가 아닌데, 나이가 좀 더 많다고 해서 늘 어린 사람에게 대접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의 ‘예의’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정 가까워야 한다는 것. 쓸데없는 허례허식이나 겉치레가 인간관계를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함 원장은 아주 오래전 장모와 사위 사이에 가질 법한 예의의 벽을 넘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그때, 철없던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아예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선물을 사 들고 긴장한 표정으로 장인, 장모를 찾아가는 통과의례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주말에 학생들이 데이트를 해봤자 뻔하잖아요. 경남에서 저 혼자 서울로 유학 온 처지여서 여자친구네 집으로 자주 찾아갔죠. 가면 맛있는 것도 해주시니까 동생도 데리고 가고 그랬어요. 그때 아내가 처음에는 오지 말라고, 싫다고 그랬는데, 뭐 그냥 쳐들어가는 거죠. 어머님이 저를 귀엽게 봐주셨어요. 그때는 사위라는 생각보다 그냥 딸 친구라고 생각하셨겠죠. 제가 철없을 때 어머님을 처음 뵀기 때문에 지금도 그때의 관계가 지속되는 것 같아요.”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아내는 생물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함 원장은 군의관으로 군복무 중이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더 많은 함 원장이 결혼 준비를 하면서 장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어봤단다. 의사 사위를 두려면 집, 차, 병원 열쇠 세 개가 필요하다던 그때, 형편 뻔한 처갓집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던 함 원장의 솔직함에 장모 역시 솔직함으로 응수했다.
“딸 시집보내면서 집 팔고 빚내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솔직하게 얼마나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죠. 장모님도 솔직하게 줄 수 있는 돈 액수를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모은 돈, 아내가 모은 돈, 제 본가에서 도와주신 돈 다 합해서 19평짜리 아파트를 샀어요. 저는 결혼식에 입던 양복을 입었죠.”
결혼 26년 차에, 연애기간 6년을 더하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때처럼 허물없이 솔직하게 지낸 장모는 사위에게 늘 든든한 지원군이다.
“저는 어머님께 서운한 게 없어요. 제가 원래 돈 떼먹는 거 말고는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지 않는 편이에요. 어머님과 금전적인 관계라 봐야 용돈 드리는 것밖에 없으니까, 더욱이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어머님이 언제나 제 편이니까 서운할 일이 없죠. 아내가 저와 다투고 친정에 찾아가도 어머님은 언제나 제 편을 들어주시거든요.”
함 원장은 스스로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고, 자신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사람. 하지만 세상에 홀로 행복한 사람이 없다는 게 그의 따뜻한 마음이다.
“제가 행복하려면 우선 제 옆에 있는 여자가 행복해야 하더라고요. 아내가 행복하려니 처갓집도 행복해야 하고, 아이들도 행복해야 하고, 제 주변의 사람들도 두루두루 행복해야 하죠. 결국에는 제가 행복해지려고 도울 수 있는 선에서 주변의 행복을 돕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방송에서는 연출된 상황 때문에 일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장모가 굳이 사위에게 김치를 담그라고 하거나, 밥을 차리라 하고,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등의 상황은 지금껏 없던 일이다. 거기에 1박2일 동안 벌어진 일을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해놓으니 실제 모습과는 다른 왜곡도 있고 과장도 생길 수밖에 없다.
“장모님이 ‘방송 덕에 호사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장모님이랑 친해도 사위랑 단둘이 여행을 가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니 좋아하시죠. 사실 제가 주말도 없이 일하며 1년에 5일 쉴 때는 장모님을 찾아뵙지 못했어요. 그때는 장모님이 저를 보러 오셨죠. 한 10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냈어요. 아이들은 아빠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고, 휴가도 없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장인, 장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게 용돈 드리는 것밖에는 없었고요. 장인 어른이 편찮으실 때는 더 자주 찾아뵙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그만큼 시간적인 여유도 생겨서 몸으로 해드리는 거죠.”
한편 그동안 말끔하고 잘나가는 젠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함 원장이 ‘백년손님’의 애교 섞인 행동에 ‘버릇없다’거나 ‘함초딩’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 신경 쓰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김치를 담글 때 거의 모든 것을 제가 다 하다가,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어머님께 찾아달라고 하면 마치 제가 계속 어머님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처럼 편집되더라고요(웃음). 뭐 그러면 어때요. 제가 정치할 것도 아니고, 방송으로 인기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요.”

의사, 함익병

잘나가는 피부과 의사 ‘국민 사위’ 되다

방송은 프로가 아니고 아마추어라 재미있다는 함익병 원장. 항상 웃기만 할 것 같은 그가 진료실에서는 엄하고 깐깐한 전문의가 된다.



그는 꽤 오랫동안 ‘정치인’의 꿈을 꿔왔다. 지금껏 아무리 바빠도 주요 일간지 신문 사설은 아침마다 챙겨보는 습관이 생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의 꿈이다. 막연히 대통령이니 과학자니 장군을 꿈꾸는 치기 어린 수준이 아니었다. 만화보다, TV보다, 신문이 더 재미있던 꼬마는, 커서 꿈과는 거리가 먼 의사가 됐다. 하지만 ‘아주 잘한다’는 전제 아래 여전히 세상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직업을 꼽으라면 ‘정치가’라고 대답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정치시스템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구성원이 올바른 방법으로 사리사욕을 채울 때 가장 잘 유지되도록 구조화돼 있어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익이 아닌 개인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거죠. 유일하게 정치인만이 그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택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죠. 지금의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것이 반독재 투쟁이나 혁명을 해야 할 용기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었던 거죠.”
정치인뿐 아니라 사리사욕보다 공익으로 대변될 수 있는 환자의 건강을 먼저 챙기는 것이 의사의 도리가 아닐까. 하지만 그는 의사도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에 불과하다고 용기 있는 발언을 망설이지 않았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의료 윤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죠. 의사는 수술장에 들어갈 때마다 헌법이 허락한 면책권을 부여받고 있어요. 수술 때마다 메스로 환자의 배를 가르는 상해죄를 저지르고, 그때마다 죄를 면책받는 거죠. 그 엄청난 면책권을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그 책임과 의무, 그리고 윤리를 지켜야 하는 겁니다.”
그가 생각하는 피부과 의사로서 지켜야 할 윤리 중에는 환자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에 기대를 걸지 않게 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밑 빠진 독처럼 돈을 쏟아붓게 되는 곳이 피부과니까.
“기자님 얼굴을 보니 콧등의 블랙헤드가 가장 걱정되시겠네요. 콧등 피부를 궁극적으로 뺨의 부드러운 피부처럼 만들고 싶으시죠? 그건 불가능해요. 물론 엄청 큰돈을 들이면 개선될 수 있지만 효과가 미비해요. 기자님 수입에 그만큼의 비용을 피부에 쓰느니 다른 더 뜻깊은 곳에 쓰는 게 나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좋지 않으시죠? 제가 기자님의 기대를 채워 드릴 수 없어서 냉정하게 말했기 때문이죠. 이런데도 본인 판단에 그 미비한 효과에도 만족할 수 있겠다 싶으면 해드리죠. 하지만 연고 바르고 약을 먹는 식으로 조금씩 개선해나갈 수 있는 처방을 추천해드릴 수 있어요.”
서글서글 웃기만 하던 그가 기자의 피부에 대해 조언을 건넬 땐 순식간에 얼굴에서 웃음기가 쫙 빠졌다. 그게 보통 진료실에서 환자를 대할 때 그의 모습이라고 한다. 하루 1백만 원의 수입을 기록할 때도 이랬단다. 오히려 예상한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얻은 효과에 환자들은 더 만족했다고. 달콤한 희망을 주지는 않았지만 단호한 함 원장의 진료 철학에 흠뻑 빠져 이참에 필생의 고민이던 블랙헤드를 해결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다. ‘함초딩’이 방송인 함익병이라면 ‘무한 신뢰’가 의사 함익병이었다.
원 없이 돈도 벌어보고, 대한민국 최고 인기의 피부과 병원도 운영해보고, 뜻하지 않게 ‘국민 사위’라는 말도 듣게 된 그가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버릇없는 장인, 버릇없는 시아버지가 되는 거죠 뭐(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외국에서 유학하던 두 아이 모두 다 컸어요. 스물네 살인 딸은 직장에 다니고, 스물세 살인 아들은 아직 학교에 다니는데 벌써 좋은 소식을 기다리게 되네요.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거 말고 ‘식사하셨어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 편안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 말에 사랑만 묻어 있으면 되는 거죠.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내 말로는 제가 신혼여행을 갔을 때, 60세까지의 계획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더래요. 살고 보니까 그 계획이 얼추 다 맞더래요. 근데 그때 60세까지만 계획을 세웠던 거예요. 그 뒤로는 그냥 무계획이에요. 아이들도 다 컸고, 경제적인 여유에 대한 더 큰 목표도 없고요. 그냥 생활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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