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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핸디캡 안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괜찮다’ 말해주고 싶었어요”

‘미지의 서울’ 1인 4역 연기 차력 쇼, 박보영

김명희 기자

2025. 07. 24

쌍둥이 자매의 따뜻한 성장 서사를 그린 드라마 ‘미지의 서울’.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배우 박보영이 있었다.
닮은 듯 다른 쌍둥이를 설득력 있게 만든 건 그의 연기 내공이었다.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배우 박보영(35)에게서는 미지의 환한 눈빛과 미래의 단단한 결이 동시에 느껴졌다. 2006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한 그는 앳된 외모 덕에 교복을 입는 역할이 유독 많았고, 오랜 시간 ‘국민 여동생’ ‘동안의 아이콘’이란 수식어로 불려왔다. 영화 ‘과속스캔들’ 속 미혼모 황정남과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의 정의감 넘치는 MZ 기자 도라희,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의 음탕한 처녀 귀신에 빙의된 나봉선과 ‘힘센여자 도봉순’의 초능력자 도봉순까지. 아무리 특별한 설정이라도 박보영이 연기하면 어느새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인물처럼 느껴지는 ‘생활형 판타지’를 완성해냈다. 그만큼 그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설득력 있게 넘나드는 배우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와 디즈니+의 ‘조명가게’를 통해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인물들을 그려내며 ‘위로의 얼굴’로 또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 작품 모두 각 OTT 플랫폼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박보영’이라는 이름이 진정성과 흥행을 함께 담보하는 보증수표임을 보여주었다.

그런 박보영이 ‘미지의 서울’에서 다시 한번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이강 작가의 감각적인 서사 아래, 박보영은 얼굴만 같고 모든 것이 다른 일란성 쌍둥이 유미지와 유미래를 연기했다. 천재 단거리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육상을 그만둔 미지와 병약한 유년기를 거쳐 엘리트의 길을 걸은 완벽주의자 미래. 박보영은 이 전혀 다른 두 캐릭터는 물론 서로를 흉내 내는 또 다른 변주들까지 1인 4역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몰입을 이끌었다. 현장의 배우들, 그리고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마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챌 만큼 훌륭한 ‘연기의 결’을 빚어낸 그의 연기는 ‘차력 쇼’라는 찬사를 얻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종영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보영은 ‘왜 하겠다고 했을까’ 싶을 만큼 두려웠던 순간들을 떠올렸고, 연기하는 내내 자신이 오히려 위로받았다고 고백했다. 작품에서 쉽게 빠져나오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여운이 길게 남았다는 그는 “드라마를 통해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다음은 박보영과 나눈 이야기다.

‘미지의 서울’ 종영 소감은요.

오랜만에 TV 드라마로 방영하는 작품이었어요. 매주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반응을 공유하는 게 생소하면서도 재밌더라고요. 예전에는 좀 겁이 많아서 반응을 일부러 찾아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열심히 검색하고 챙겨보면서 ‘이게 이런 재미구나’ 싶었죠. 반응도 좋고, 시청률도 잘 나와서 감사했고요. 제가 처음 대본을 봤을 때도 너무 재밌고 탄탄했는데, 배우들과 감독님이 함께 만들어가면서 더 풍성해졌어요.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도 정말 컸고, 행복하게 마무리했습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1인 2역을 넘어 1인 4역의 연기를 보여준 박보영.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1인 2역을 넘어 1인 4역의 연기를 보여준 박보영. 

드라마 전체가 한 편의 ‘시(詩)’ 같다는 평도 있었어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어땠나요.

제가 대본을 받았을 땐 방송사도, 감독님도, 배우도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건 ‘내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평소에는 ‘내게 오지 않은 건(대본) 내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처음으로 ‘내가 갖고 싶다’는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제작진과 배우들이 세팅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먼저 질러놓고 매일 대본을 읽으며 ‘진짜 어렵겠다’ 싶어 걱정하고 그랬죠. 

그렇게까지 이 작품에 끌렸던 이유가 뭘까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무엇보다 모든 인물이 각자의 상처, 결핍, 혹은 소수자의 면모를 지녔지만 그걸 무겁지 않게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 좋았어요.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겉모습은 썩 멋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좋은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는 쉽게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제게 특별했고, 또 누가 해도 좋겠지만 ‘내가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동료들은 미지, 가족은 미래에게서 제 모습 보인대요”

“1인 2역이니 출연료를 2배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있어요. 연기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요. 

아, 저는 왜 그걸 미리 생각 못 했을까요(웃음)? 사실 처음엔 미지와 미래가 박보영 1, 박보영 2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어요. ‘오 나의 귀신님’에서 빙의 연기를 하며 2개의 캐릭터를 연기한 적은 있지만, 이번엔 두 인물이 물리적으로 공존해야 하다 보니 훨씬 더 복잡하더라고요. 대역 배우가 상대역을 맡아주시긴 했지만, 미세한 시선이나 시퀀스가 안 맞으면 결국 제가 스탠드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연기를 해야 하기도 했어요. 움직임이 많을 땐 특히 힘들었어요. 동선, 시선, 대사 타이밍까지 다 계산해야 하니까요. 상대방이 없는 상태에서 리액션을 만들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그럼에도 결과물이 괜찮게 나와서 다행이고, 대역 배우분들께도 너무 감사해요.

미지와 미래 연기는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감독님(박신우 PD)이 너무 의도적으로 차이를 두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과장된 변화보다 디테일에서 차이를 주려고 했죠. 미지는 밝은 에너지를 가진 인물이라 평소 제가 쓰는 말투를 살렸고, 미래는 조금 더 가라앉은 제 모습에서 출발했어요. 친구나 동료들은 미지에서 제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하고, 가족들은 미래에서 제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외적으로는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에 차이를 뒀어요. 미래는 눈 점막을 채워 또렷한 인상을 주고, 미지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캐릭터라 눈꼬리만 살짝 빼는 정도로 디테일을 살렸어요.  

사실상 1인 4역이었는데, 연기하면서 혼란스럽지는 않았나요. 

사실 저는 미지, 미래, 그리고 서로를 흉내 내는 상황까지 기본값을 명확히 정하고 들어갔어요. 특히 미래는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미지를 흉내 내는 것도 제한적이라고 생각했죠. 반대로 미지는 장난기나 에너지가 있어서 상대방을 흉내 내는 여유도 있고요.  

미지와 미래의 상대역인 박진영, 류경수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두 사람과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을 해서 배우로서도 여러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죠. 처음에는 진영 씨가 장난기 많고 경수 씨가 차분할 줄 알았는데, 촬영하다 보니 정반대였어요. 진영 씨는 오히려 굉장히 차분하고, 경수 씨는 세진처럼 툭툭 웃기는 말을 던지는 재치 있는 사람이었죠. 호수는 저를 눌러주는 안정감을 가진 사람이고, 세진은 조용히 곁에서 “이것도 해봐도 되지 않아요?” 하면서 다가오는 존재였어요. 중간중간 상대 배우들이 미지인 척하는 미래를 보며 “진짜 미지 같다”거나, 미래인 척하는 미지를 보며 “진짜 미래 같다”고 할 때마다 ‘아, 내가 잘하고 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미지와 미래,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갔나요.

둘 다 애정이 크지만, 이해할 수 있는 폭은 미지가 좀 더 넓었던 것 같아요. 미지는 과거에 상처가 있었지만 에너지와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저와도 닮았다고 느꼈어요. 미래는 연기하면서 절제를 많이 했어요. 저는 평소에 감정 표현이 많은 편인데, 미래는 그걸 꾹꾹 눌러야 해서 더 힘들었죠. 그래도 미래가 예민할 때 모습은 저와 비슷한 점도 있었어요.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요. 그래서 미지 쪽이 좀 더 수월하긴 했어요.

연기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할머니와의 대화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얼마나 큰 나비가 되려고 그러냐. 사슴이 사자 피해서 도망가면 쓰레기니? 소라게가 껍질 속으로 몸을 숨기면 비겁한 거야? 살려고 하는 모든 행동은 용감한 거야”라는 대사에 너무 울컥했고, 그 대사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 사실 저도 배우를 하면서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대본을 처음 볼 때부터 그 장면은 정말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욕심을 많이 부렸는데, 실패도 했죠(웃음). 생각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아서 재촬영을 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정말 잘 살려서 작가님과 시청자들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은 장면이었어요.

극 중 미지는 힘들 때 한강에 가잖아요. 박보영 배우는 힘들 때 어떻게 극복하나요.

저도 한강을 좋아해요. 고향이 증평인데 서울로 올라와 적응하는 과정도 비슷했고, 정말 힘든 순간엔 울고 싶어도 울 수 있는 공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은 한강에 가서 막 울었어요. 그 이후로는 거기가 저만의 ‘스폿’이 됐죠. 지금은 울고 싶을 때 그곳에 가서 ‘지금 이 정도는 울 일은 아니지 않나?’ 하면서 스스로를 다잡기도 해요. 팬들이 주시는 메시지나 편지도 힘이 돼요. 라이브 방송 중에 편지 읽다가 진짜 엉엉 운 적도 있어요. 편지를 모아놓은 상자가 따로 있는데, 힘들 때마다 꺼내 읽어요. 그러면 ‘그래, 다시 나아가자’는 생각이 들어요. 

극중 미지와 할머니의 대사는 큰 감동을 안겼다.

극중 미지와 할머니의 대사는 큰 감동을 안겼다.

세진 역을 맡은 류경수 배우는 실제 세진처럼 재치가 넘쳤다고.  

세진 역을 맡은 류경수 배우는 실제 세진처럼 재치가 넘쳤다고.  

“저도 이 드라마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이번 드라마가 서른을 앞둔 청춘들의 이야기로 큰 공감을 얻었는데, 박보영 배우의 서른은 어땠나요.

20대 때는 서른이 되면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 같은, 대단한 나이라고 생각됐는데 막상 서른이 되어보니 스물다섯이나 서른이나 별 차이 없던데요(웃음)? ‘서른, 아무것도 아니네’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내가 너무 현실감이 없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 마흔을 앞두고는 조금씩 ‘내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생기고 있어요.

현상월 역을 맡은 원미경 배우와 같이 나오는 장면들도 좋았어요. 대선배와 함께 작업한 소감은 어때요.

아버지가 원미경 선생님 팬이세요. 그래서 처음 뵙기 전부터 저도 설렜죠. 선생님은 정말 소녀 같으세요. 미지가 자꾸 찾아가서 귀찮게 하니까 다시 오지 말라고 소금을 뿌리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마음이 약해서 제대로 못 뿌리시더라고요. 결국 감독님이 대신 뿌리셨죠. 어느 날 선생님이 “요즘엔 현장이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 하셔서 “그래도 여전히 힘들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나는 일주일에 영화 다섯 편 찍었어” 하시는 거예요. “영화를 다섯 편이나요? 어떻게요?” 물었더니, “링거를 옷 속에 숨기고 수액을 맞으며 촬영했다”고 하셨어요. 그 얘기 듣고 나서는 다시는 ‘힘들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극 중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는 대사가 화제가 됐어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대사예요. 팬들께도 자주 하는 말인데, 하루를 시작할 때 힘이 되곤 하죠. 촬영 중에도 미지와 미래의 연기에 대한 기본 세팅은 머릿속에 있는데 출력값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렇게 일이 잘 안 풀릴 때 스스로에게 자주 되뇌던 말이에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보자는 다짐이 돼주거든요.

“숨 막히는 회사 생활, 하루하루 버티는 직장인들 존경스러워요”

미래처럼 하루하루 버티는 K-직장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사무실 세트장에 들어가자마자 “와, 진짜 숨 막힌다”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책상 배치나 분위기만으로도 너무 답답하고, 내가 과연 이런 환경에서 버틸 수 있을까 싶었죠. 감독님이 “미래가 40대 가장이라고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그 순간 ‘이 인물이 왜 버티는지’가 조금은 이해됐어요. 가족을 위해, 부채 때문에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하루하루 버티며 일하시는 직장인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졌고, 진심으로 위로와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친한 친구도 직장인인데, 드라마를 보면서 미래에 깊이 공감하더라고요. 친구에게 “끝까지 봐줘. 미래가 어떻게 이겨내는지 꼭 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죠.

이번 드라마가 워낙 좋은 평을 얻어서 다음 작품을 고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선택 기준이 있다면요. 

최근 2년간 했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조명가게’, 그리고 이번 ‘미지의 서울’은 모두 따뜻하고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뭐라고 메시지를 자꾸 전하려고 하지?’ 그래서 다음 작품은 조금 더 밝고 가벼운 것, 그냥 재미를 드릴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그럼에도 작품을 만나는 건 운명 같은 일이라, 어떤 역할이 오든 마음은 열어두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이 박보영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가 될까요.

1인 2역이라는 도전 자체도 의미 있었지만, 이 작품은 기획 의도와 메시지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이걸 한 단어로 정리하기가 어려워요. 그냥 저는 이 시도가 ‘실패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연기적으로도, 작가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도요. 그 점이 제게는 큰 의미로 남을 것 같아요.

극 중 “부디 이 외롭고 다정한 아이(현상월)를 시를 읽는 마음으로 바라봐주세요”라는 김로사의 편지도 화제가 됐어요. 타인을 시로 대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따뜻할까요. 박보영 배우는 자신이 어떤 시로 읽히길 바라나요.

너무 어렵지 않은 시였으면 좋겠어요. 읽으면서 막 해석해야 하는 시 말고요. 편지처럼, 그냥 읽다 보면 마음이 느껴지는 시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미지의서울 #박보영 #여성동아

사진제공 BH엔터테인먼트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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