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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아이의 불안 잠재우는 건 정확한 정보와 루틴”

서혜진 박사가 제시하는 ‘K-마더링’

윤혜진 객원기자

2026. 04. 02

영국 런던대 교육대학원에서 ‘K-마더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서혜진 가족성장연구소 소장은 “워킹맘도, 전업주부도 한국의 엄마는 다 괴롭다”고 말한다. 엄마 역할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오래전부터 회자되는 우스갯소리 중에 “아이 입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자녀의 입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엄마는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은 죄인이 돼버린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무작정 달리는 엄마들은 물론 아이들도 행복할 리 없다. 그러나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다. ‘마더(mother)’를 동사로 표현한 ‘마더링(mothering)’이란 영어 단어만 살펴봐도 신체적 돌봄부터 자녀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자녀가 책임감 있는 개인이 되도록 가르치는 모든 일이 포함된다. 세 아이를 둔 워킹맘이자 영어 사교육 시장에 몸담아오면서 ‘K-마더링’ 연구에 필요성을 느낀 서혜진 가족성장연구소 소장은 인천 송도 학군지에서 수년간 심층 인터뷰와 질적 연구를 한 끝에 올 2월 영국 런던대 교육대학원(UCL Institute of Education)에서 ‘한국 신자유주의 교육 시장 내 모성 노동과 K-마더링 현상 분석’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고등교육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의 세계대학평가 기준에 따르면, UCL 교육대학원은 교육학 분야에서 세계 1위로 꼽히는 학교다. 최근 그간의 경험과 이론을 정리한 부모 교육서 ‘다시 시작하는 마더링’을 펴낸 서혜진 소장은 조만간 부모 대상 멘토링인 ‘마인드더갭’ 프로그램도 오픈할 예정이다. “수많은 아이를 대학에 보냈지만 교육 불평등에 일조했다는 일종의 부채 의식이 있다”는 서혜진 소장을 만나 한국적 특수성 속에서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인지 들었다. 

‘다시 시작하는 마더링’이란 제목에는 멈춤이나 실패의 경험이 전제된 것 같아요. 왜 한국 엄마들이 마더링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나요. 

사실 저의 반성을 담은 책이에요. 올 초 막내까지 대학 입시 레이스를 모두 마쳤는데, 성격도 성적도 다른 세 아이를 격렬하게 키웠어요(웃음). 특히 첫째가 중학교 3학년 무렵 ‘다른 아이 봐주느라 우리 아이를 너무 몰랐구나’ 하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고민 끝에 일을 조금 줄이고 박사 과정 공부를 시작했죠. 그때만 해도 연구 관점이 아이 문제는 엄마에게 원인이 있다는 식이었어요. 아이를 사교육에만 맡겨놓고 관심 없는 학부모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전교 1등이던 둘째가 고3 때 번아웃이 오면서 연구 주제가 바뀌었어요. 입시 전문가 엄마와 공부 잘하는 아이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가정은 얼마나 힘들까 싶은 거예요. 공감의 차원으로 주제를 바꿨죠. 

워킹맘도, 전업주부도 다 괴로운 한국 엄마들

해외에서는 ‘K-마더링’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나요.



영국을 오가며 공부할 때 학생 대부분이 전 세계에서 모인 국제학교 부장급 교사나 대학교 강사들이었어요. 각자의 연구를 들어보면, 아이를 24시간 지켜보며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텐시브 마더링(intensive mothering)’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어요. 다만 K-인텐시브 마더링의 특징은 시장화예요. 입시 위주가 되면서 감정 자본까지도 상품화됐어요. 예를 들어 요즘 유행하는 관리형 독서실은 전통적으로는 각 가정에서 할 일이죠. 심지어 “우리 아이가 공부를 안 하는데 선생님이 혼내달라”는 학부모들도 많이 겪었어요. 이런 얘기를 하면 해외 학생들은 “한국의 교육열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해요. 

세계에서 모인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엄마의 역할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세계에서 모인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엄마의 역할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연구지를 교육 1번지 대치동이 아닌 송도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런 마더링의 시장화가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건 중산층에서나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졸업 논문 연구지도 어퍼 미들 클래스(upper middle class)인 대치동 대신 신흥 중산층으로 생각되는 송도를 택한 거예요. 제가 서울 목동에서 사교육업체를 운영하다가 송도로 옮겨 현장에 대해 잘 알기도 했고요. 주로 중고등학생 부모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어요. 마더링의 적기가 고등학교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왜 마더링이 가장 필요한 때가 고등학교 시기인가요.

사실 마더링에 적기는 따로 없어요. 항상 필요하죠. 그럼에도 고등학교 시기가 특히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아이들이 매월 시험을 보면서 벼랑 끝에 몰리기 때문이에요. 제가 지켜보니 공부 안 하는 아이들도 말을 안 할 뿐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자녀의 중학교 사춘기 시절 너무 일찍 전면전을 치른 엄마들은 지쳐서 정작 중요한 시기에 마더링을 ‘아웃소싱’하곤 해요. 영어만 해도 그 많던 엄마표 영어가 다 어디 갔느냐고요.  

그럼 이 시기의 마더링은 어떤 부분이 중요한가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고, 배우고 익히는 데 책임을 다해야 해요. 대신 공부하는 것에 대한 대접을 받아야죠. 우리 집 3남매한테도 자주 한 얘기인데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왕족 대접을, 기본만 해도 귀족 대접을 해줄 거라고 했어요(웃음). 무조건 다 허용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공부하느라 애쓰는 노력을 알아주고 최대한 지원해준다는 의미예요. 실제로 3남매가 공부할 때 저는 유튜브 영상도 안방에서 보고, 약속도 되도록 잡지 않았어요. ‘혼자 외롭게 분투하고 있지 않다’는 기분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려 했어요. 학교와 집, 독서실을 서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택한 둘째의 라이딩도 제가 했는데, 아이는 성적이 떨어지면 다른 가족들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차에서 울었어요. 그럼 전 운전석에 앉아 아이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렸죠. ‘같이 있어주기’가 우리 집 아비투스였어요.

‘아비투스(habitus)’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규정한 용어다. 한 사회의 가치와 규범 등을 익히고 내면화하는 일을 의미하며, 사람들이 행하는 다양한 사회적 행동의 바탕이 된다. 서혜진 박사는 이상적인 마더링은 존재하지 않고, 자기 가족만의 아비투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대학 입시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도 사교육과 주변에 휩쓸리지 않기 때문이다. 서혜진 박사는 엄마가 겪는 불안과 죄책감, 과도한 교육비 지출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더링의 기준으로 ‘감수성’ ‘즐거운 관계’ ‘권한위임’ ‘일관성’ ‘실력 양성’ ‘성찰성’ ‘분별력’ ‘동기부여’ 등 8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아이와 끊임없이 티키타카 나눠”

박사님 가족만의 또 다른 아비투스가 있나요.

협상과 설득의 생활화요. 아무래도 3남매이다 보니 많이 싸울 거 아니에요. 싸우고 저한테 달려오면 각자 싸움에 대해 3가지로 얘기해보라 해요. 말이 끝나면 이제 입장을 바꿔 상대방이 나한테 왜 화났는지 3가지를 또 얘기하게 해요. 이 같은 ‘3가지로 말해봐’ 대화가 생활 곳곳에서 이뤄지면 아이들이 상대의 말을 집중해 듣고 생각을 구조화해 전달하게 돼요. 엄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수도 없죠. 결국 아비투스는 대자연 속 기후 같은 거예요. 맑은 날, 비 오는 날 등 여러 날씨 속에서 생명체가 적응해 자라잖아요. 저는 아이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보이지 않는 부분이 불안을 만들기도 하죠. 현 입시 문제는 불안감이 출발점 아닐까요. 

‘위험사회’라는 사회학 관련 책이 있어요. 책에 따르면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선택의 자유가 많아졌는데, 문제는 선택의 책임도 개인에게 있는 것이거든요. 결국 위험사회에서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는 교육에서 리스크 비즈니스가 왕성해졌죠. 이제는 국가가 사교육 시장을 규제하고 싶어도, 규제하면 그만큼 실업자가 많아질 정도로 시장이 커졌어요. 사교육을 없앨 수 없으므로 일단 불안을 인정하고 각자의 성장 좌표를 찾아야 해요. 이때 구체적 근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때에 따라선 믿을 만한 컨설팅업체를 통해 잘 가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박사님은 3남매의 좌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길 안내를 했나요.

첫째는 독립적이고 유쾌한 아이예요. 일찌감치 자신은 공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어요(웃음). 지방대학교 출신이지만 워킹홀리데이, 외국 인턴 생활로 다져진 영어 실력을 무기로 이번에 취직에 성공했어요. 둘째는 중학교 때 성적이 상위 30%대였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교 7~9등까지 올랐어요. 아이에게 “한 번만 전교 1등을 해보면 그 맛을 알아서 계속하게 된다. 넌 영어와 수학을 잘하니까 할 수 있다”고 꾸준히 격려했더니 1년 후에는 정말 전교 1등으로 올라갔어요.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학교에서는 자신을 주목하지 않는데, 엄마가 가능성을 믿어준 게 좋았대요. 막내의 경우 워낙 완벽주의 성향이라 불안해할 때는 입시 데이터를 찾아 보여주고, 비슷한 위기를 극복한 주변 케이스를 근거로 활용했어요. 객관적인 정보와 일관성 있는 매일매일의 루틴이 불안을 잠재워줘요. 물론 아이가 공부에 소질이 없다면 빨리 다른 꿈을 탐색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에요.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판단을 내릴 때 그 기준은 뭔가요.

우리가 착각하는 게 있어요. 공부를 좋은 대학 가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요. 그러니 서울 소재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전공도, 꿈도 바꿔요. 공부는 학생이니까 하는 거예요. 만약 예체능이 정말 하고 싶거나 다른 소질을 찾고 싶다면 균형을 맞춰야죠. 저는 아이의 소질이 공부를 넘어설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고교 졸업 때까지는 공부랑 소질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초등학생 때 발레를 하다가 그만둔 막내가 “만약 내가 무용을 하겠다 했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저는 “그럼 공부와 발레 둘 다 하라고 했을 거야”라고 답했어요. 전 과목은 힘드니 몇 과목을 정해 그 과목만큼은 100점을 맞아야 했을 거라고요.

“공개해도 되는 사진을 3남매와 함께 찾았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온 서혜진 박사. 그의 집에서는 토론과 협상이 일상이다. 

“공개해도 되는 사진을 3남매와 함께 찾았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온 서혜진 박사. 그의 집에서는 토론과 협상이 일상이다. 

각 가정에서 사교육비로 고민이 많아요.

제가 오랫동안 사교육 현장에 있어 보니 입시는 운이에요. 그렇다고 “어차피 운이야”라며 노력을 덜 하거나 “공부는 스스로 해야지”라며 환경을 갖춰주지 않거나, 기대치를 낮추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아이에게는 엄마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감이 동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사교육 예산을 아이와 함께 짜라고 추천하는 거예요. 스스로 선택하면 더 책임감 있게 열심히 하거든요. 이 훈련이 된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면 필요한 부분은 취하고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갈 수 있어요. 

마더링에 졸업과 끝이 있을까요. 

질문지를 미리 전달받고 아이에게 “엄마의 마더링에 졸업이 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봤어요. 딸이 “지금의 엄마를 동결 건조해서 내 옆에 평생 있게 하면 좋겠어”라고 하더라고요. 동결 건조 음식은 가장 맛있는 순간을 잡아놨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 먹는 거잖아요. 미우나 고우나 엄마가 항상 ‘내 편’이라고 아이가 느끼도록 하는 것, 그게 마더링의 본질 같아요. 그러니 양육은 끝이 있어도 마더링에는 졸업이 없죠.

동결 건조하고 싶은 엄마인 박사님은 좋은 엄마네요.

항상은 아닐 거예요. 마더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있잖아요. 그날그날 아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죠. 다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이 있고, 저는 거기 부합하는 듯해요(웃음). 자기의 삶이 있으면서 자녀와 끊임없이 티키타카를 나누는 엄마요. 저는 박사 학위 과정을 공부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엄마들에게도 직장이 있다면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얘기해요. 인텐시브 마더링을 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내가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너를 돌보는데 어떻게 이러니”가 되기 쉽거든요. 실제로 애들도 “엄마가 밖에 나가 나한테 신경을 덜 쓰면 좋겠다”고 그래요. 저는 엄마들이 자신의 삶을 찾고, 우리 집이란 질적 연구의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공부해보니 엄마들이 사는 게 다 비슷해요. 그래서 근거 있는 “괜찮다”를 말해주고 싶어서, 서로 힘이 되어주도록 엄마들의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어요. 

#마더링 #자녀관계 #사교육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디자인 최경희 사진제공 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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