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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꿈이 현실로!

오현숙 주부 즐거운 인생

“쉰 살에 세계일주 배낭여행, 인생 후반기 더 힘차게 살 에너지 됐어요”

글·오진영 사진·지호영 기자

2010. 11. 16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세계일주. 용감한 아줌마 오현숙씨는 마흔 여덟 살에 배낭 하나 메고 떠나 그 소원을 이루었다. 19개월 동안 전 세계 50개국을 누비고 돌아온 그의 이야기는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보라’고 속삭인다.

오현숙 주부 즐거운 인생


인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주인공 엄마는 1년 간 휴가를 내야겠다며 집을 나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엄마로 주부로 애면글면 살아온 한평생 중 1년만 오롯이 자신을 위해 써보고 싶다는 요구는 ‘폭탄선언’ 취급을 받았다. 1년은커녕 단 한 달만이라도 오직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주부로서는 여간해서 이루기 힘든 초특급 프로젝트다.
배낭여행을 떠나 세계를 돌아보고 싶었던 오현숙씨(50)도 마찬가지였다. 여상을 졸업하고 평범한 주부로, 10년 전 이혼 후로는 두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사는 동안 여행은 한 번쯤 꿈꿔보는 로망이었을 뿐, 현실적인 여건은 쉽지 않았다. 다들 그렇듯이 기다리고 고민하고 벼르기를 반복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 운영하던 공장을 세를 주고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배낭여행을 감당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쉰 살 전에는 떠나야겠더라고요. 마음 같아서는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군대에 보내고 가고 싶었는데 그러려니 가여운 생각이 들어 1학년 마칠 때까지 기다려줬지요(웃음).”

아들 군대, 딸 유학 보내고 세계여행 고고!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하는 딸은 엄마가 여행하는 동안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들과 딸에게 진작부터 “엄마는 2년간 여행을 다녀올 것”이라고 누누이 일러뒀건만 정작 떠나겠다고 하자 ‘앗, 정말 가시게요?’ 하는 기색이었다고 한다. 특히 아들이 아직은 군대 가고 싶지 않다며 미적거리는 것을 “엄마는 방을 빼야 한다”며 설득했다. 집을 월세로 내놓아 임대료를 받아 보태고 한국에 있어도 어차피 쓸 생활비를 여행비로 돌리면 얼추 경비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인터넷과 책으로 여행비용을 조사해 보니, 1년 여행에 2천5백만~3천만원 정도 드는 것 같던데, 제 경우엔 19개월에 2천8백만원이 들었습니다. 비행기값을 제외하면 한 달에 평균 백만원을 쓴 셈이죠.”
시간과 비용, 가장 큰 두 가지 조건이 해결되자 그 다음은 건강을 체크했다.
“평소 건강한 체질이긴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배낭여행을 할 체력이 될지, 좀 걱정이 됐지요. 마침 택배 서비스가 눈에 띄어서 돈도 벌고 체력 테스트도 할 겸 6개월 동안 택배 일을 했어요. 아무렇지도 않기에 이 정도면 오케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오씨가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신경 쓴 것 역시 건강이다. 특히 먹는 것을 많이 조심해서 되도록 음식 재료를 사다 직접 끓여 먹었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는 날은 급하게 돌아다니지 않고 푹 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덕분에 인도에서 배탈 설사가 한 번 난 것 외에는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다녀올 수 있었다.
2년 동안 돌아다닐 지역에 대해서는 큰 줄기의 계획만 세웠다. 중국부터 시작해 육로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육로가 없는 곳에서는 비행기를 탄다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갈 지역에 대해 충분히 알고 가려고 중국부터 조사를 시작했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공부하다 세월 다 보내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다니기로 하고 일단 출발부터 했어요.”
그렇게 해서 2008년 4월1일, 오현숙씨는 인천공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딸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등에 메는 큰 배낭 하나, 앞으로 메는 작은 배낭 하나를 들고 중국으로 향했다.

오현숙 주부 즐거운 인생

오현숙씨는 2년여 동안 세계 50개국을 여행했다. 터키 카파도키아, 루마니아 팰레쉬성,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오현숙 주부 즐거운 인생




오씨는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Thank you’가 유일했지만 19개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는 데 아무 지장 없었다고 한다. 그날 가기로 한 곳의 지명을 수첩에 적어 보여줘 가며 길을 이리저리 찾다보면 ‘영어를 좀 할 줄 아는 누군가가’ 가르쳐 줄 때도 있고 친절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고.
“서양 사람들은 여행 가이드북 들고 다니면서 그 책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절대 안 물어보던데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매일 물어보고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욱 현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친절함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란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사람에게 이렇게 순수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구나, 느끼며 행복했고 이런 즐거움은 여행이 아니었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숙소는 주로 유스호스텔과 한인 민박을 이용했는데 그 곳에서 제공하는 여행 정보를 이용하고 현지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동행도 하고 밤이면 인터넷 검색으로 다음날 갈 곳에 대한 정보, 이동 수단 등을 찾아가며 여행을 다녔다. 또 세계여행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카페 5불생활자클럽(cafe. daum.net/owtm)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외국어 못하는 덕분에 추억 더 많이 쌓아
물론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도 있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갔을 때는 숙소를 찾지 못해 노숙을 하다시피 한 적도 있다는 것. 그래도 잊지 못할 도움을 받아 감동했던 기억,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에 마주친 호의와 친절에 마음 훈훈해졌던 일이 훨씬 더 많았다. 또 좌충우돌 헤맨 끝에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무사히 다녀오며 느끼는 성취감과 재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달콤하고 짜릿했다. 그는 여행 후반기를 통해 인생 후반기를 더 힘차게 살 에너지를 얻었다고 한다.
“외국 여행을 다녀 보면 우리나라 여자 나이를 다들 젊게 봐요. 쉰살에 접어든 제가 30대로 보인다는 소리를 매일 듣고 다녔으니 얼마나 기분 좋았겠어요(웃음).”
그는 여행 중 구입한 작고 가벼운 노트북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포털 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어 매일 여행 일기와 사진을 올려가며 아들 딸, 친구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식을 전했다. 로밍폰으로 친구들의 문자뿐 아니라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위험 경고, 현지 사건사고 소식을 받을 수 있었고 휴대전화는 알람과 영어사전으로 잘 써먹었다.
아들이 입대하자마자 여행을 떠나 제대 직전에 돌아오려고 했던 계획은 불가피하게 조금 단축해야 했다. 세입자가 임대 기간을 다 못 채우는 바람에 19개월 만에 돌아와야 했던 것. 다시 세를 놓아야 해서 오씨는 아직 친정에 머물고 있고 그 사이 제대한 아들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생겨났다.
“친정 냉장고가 고장 났어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냉장고를 좀 얻어 볼까, 하는 생각에 여행 이야기를 사연으로 보냈는데 댓글 반응이 대단하다고 출연해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라디오에 직접 나가 세계일주 여행 이야기를 했더니 이번에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용기를 못 내는 평범한 주부들에게 여행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아 나온 결과물이 ‘평생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문학세계사)다.
“다음 주에는 특강 요청을 받아 TV에도 나갑니다. 떨리지 않느냐고요? 제가 미리 걱정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일이 닥치면 그 때 가서 해결하면 됩니다.”
미리 걱정하고 궁리하느라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궁하면 통하고 닥치면 해결한다’는 정신으로 하고 싶은 일은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 보통 아줌마의 용감한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가능하게 만든 건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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