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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언제나 맑음

청춘 아이콘, 주철환 늙지 않는 비결

“평탄치 않았던 유년시절의 기억,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내 청춘의 샘물”

글 김유림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2010. 08. 17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젊음’ 만큼은 겉모습을 일순위로 따질 수밖에 없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군살 하나 없는 호리호리한 몸매, 해맑은 소년의 미소를 품고 있는 주철환 PD. 그의 청춘예찬은 한여름 녹음처럼 푸르다.

청춘 아이콘, 주철환 늙지 않는 비결


“젊어 보인다. 어려 보인다”는 말처럼 듣기 좋은 칭찬이 또 있을까. 청춘은 아름답고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스타 PD 출신으로 이화여대 교수, OBS 경인 TV 사장을 역임한 주철환(55) 역시 많은 이가 부러워하는 동안(童顔)의 소유자다. 일찍이 ‘귀여운 할아버지’로 나이 들겠다고 다짐했다는 그에게 젊음은 인생의 목표와도 같다. 서울 광화문 자택 근처에서 만난 그는 분홍 티셔츠에 연두색 운동화가 잘 어울리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운동화가 편해 보인다”고 하자 “OBS 사장으로 있을 때는 양복 입고 구두 신는 게 곤욕이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껏 그의 옷차림새는 대체로 청바지에 운동화였다. 구두를 신지 않으니 양복도 넥타이도 필요 없고, 덩달아 권위와 체면도 벗어던질 수 있었다.
주철환이 젊게 사는 데는 젊은이들과의 소통이 큰 몫을 차지한다.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후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그는 군 제대 후 MBC PD로 입사, 17년 동안 ‘퀴즈 아카데미’ ‘대학가요제’ ‘우정의 무대’ 등 젊은이와 함께 호흡하는 프로그램을 주로 만들었다. 이후 2000년에는 이화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로 변신했고, 지난해 OBS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서울대와 연세대에 출강하며 애제자를 여럿 만들었다고 한다. 주철환이 학생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유쾌한 스폰서 · 전문가 되기.
“저는 일명 장학금이라 부르는데 학생들에게 용돈을 주는 겁니다. 지난 학기에는 시험 잘 본 학생 5명에게 10만원, 7만원, 5만원씩 줬어요. 또 학기 중 백일장 등 여러 대회를 만들어 소정의 장학금도 전달했고요(웃음). 지난 학기 말에는 강원도 고성으로 1박2일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비용도 일체 제가 부담했어요. 돈이 어디서 나서 그렇게 쓰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인세나 특강비 등 창작활동을 통해 번 돈 대부분은 젊은이들을 위해 쓰려고 해요. 그 돈을 축적하면 뭐하겠어요. 은행에 쌓아두고 기뻐하기보다 젊은이들의 심장에 꽂아주고 싶어요.”
또한 그는 젊은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의 앞날을 비춰줄 등대는 못되더라도 ‘손전등’ 정도는 돼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실제로 그는 PD가 되기를 희망하며 면담을 요청해오는 학생들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준다. 이런 행동의 저변에는 ‘상대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삶의 철학이 깔려 있다.

아들 친구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젊은 아빠’
주철환은 아들 오영군(24)의 또래들과도 친구처럼 지낸다. 함께 술도 마시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 아이들 역시 그 앞에서 거리낌이 없다고 한다. 7월 초 제대한 오영군은 ‘1억 만들기보다 추억 만들기가 더 낫다’는 아버지의 말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여기는 듬직한 아들이다. 이 말은 그가 아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나눴던 말로 돈 보다 추억을, 사랑을, 희망을 쌓는 게 더 행복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에게 “자식은 인생에서 어떤 존재인가”라고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이 선 이즈 마이 라이프(my son is my life)”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다고 속박하는 건 절대 아니다. 친구처럼 편하게 지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아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데는 남다른 유년시절을 보낸 탓도 있다.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주철환은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고모를 엄마라 부르며 자랐다. 슬하에 자식 없이 일찍 홀로 된 고모가 그를 입양한 것. 고모는 서울 돈암동에서 슈퍼마켓과 같은 작은 가게를 운영했는데, 다닥다닥 벌집처럼 붙은 허름한 상가 중 하나였다고 한다.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고모는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었다. 주철환은 “난 사랑을 먹고 자란 나무다. 어린 시절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지금 아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잣집에 입양될 뻔한 사건이 있었어요. 가게 단골손님 중 한분이었는데 어린 저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 맛있는 것도 주고 하더니 어느날 고모한테 저를 달라고 한 거죠. 그날 고모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 집에 가서 살겠냐고 묻기에 ‘아빠도 있고 고모도 있는데 왜 가냐’며 싫다했어요. 그랬더니 고모 표정이 금세 환해지더라고요(웃음).”
고모는 지난해 향년 97세 나이로 별세했다. “잠자는 것처럼 편하게 떠나고 싶다”는 소원대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고모 손에 자란 유년시절, 사랑 듬뿍 받고 자랐기에 사랑 베풀 줄 알아
그의 두 번째 젊음의 비결인 ‘긍정적인 사고방식’ 또한 고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어려서부터 칭찬을 많이 듣고 자란 그는 야단보다는 충고를, 비난보다는 칭찬을 즐기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주철환은 “PD로 일할 때도 칭찬에 인색한 상사를 만나면 프로그램이 잘 안되고, 날 믿고 칭찬해 주는 상사와 일하면 대박을 터뜨렸다”며 웃었다. 칭찬에 후해 가끔은 “빈말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그는 옳은 말이라도 절망의 말은 좋은 말이 아니고, 좀 틀린 말이어도 희망의 말은 좋은 말이라고 강조했다.
“박경림씨가 어느날 이런 말을 했어요. 자신이 처음 연예계에 데뷔했을 때 다른 PD들은 ‘너는 목소리가 왜 그러니. 얼굴도 사각이고’ 하면서 탐탁해 하지 않아 했는데 저만 ‘넌 참 독특한 외모와 목소리를 가졌어. 사람들이 일단 네 얼굴과 목소리에 한번 빠지면 중독될 거야. 한국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나온다면 아마 네가 아닐까’라고 했다는 거예요. 당시 박경림씨는 그 말 한마디에 자신감을 얻고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했다고 해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죠. 일상생활에서도 나의 말 한마디가 상대방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를 먼저 생각한다면 칭찬과 격려는 자연스럽게 따라와요.”
예술적 감성 또한 젊음의 친구다. 창의적인 사고는 언제나 뇌를 깨우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주철환은 젊음의 요소를 하나 더 갖추고 있다. 어려서부터 곡을 짓고 노랫말을 붙이기 좋아했던 그는 그동안 자신이 만든 곡을 모아 지난해 1집 앨범 ‘다 지나간다’를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 콘서트도 열었다. 주철환은 “음악을 선물하는 건 영혼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음악 외에도 어려서부터 그는 문학, 영화 등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제가 어렸을 때는 신문에 영화 광고가 많이 실렸는데 그걸 매일 오려서 공책에 붙였어요.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몰래 극장도 가고요. 매일 일기를 썼는데 내용은 주로 친구들에 대한 품평이었어요. 친구들을 순위 매기기 좋아했거든요. 연말이면 나의 ‘10대 친구’를 뽑아 1등부터 10등까지 상도 줬어요(웃음). 어쩌면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도 물론이지만 어린 시절 저는 남자 아이들이 하는 놀이에 잘 끼지 않았어요. 몸이 약해 아이들이 끼워주지도 않았거니와 저 역시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뻘뻘 땀을 흘리는 것보다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공상하는 걸 즐겼거든요. 당시는 외로웠을지 몰라도 그때의 제가 있기에 지금의 저도 있다고 생각해요.”
주철환은 자신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꺼려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드러내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는 “박지성 선수가 어려서부터 축구를 잘했다면 그건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얼마 전 펴낸 책 ‘청춘’에도 등장한다. 지난해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10년 더 젊게 사는 법’이라는 주제로 강론을 한 그는 그 동안의 기록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청춘 아이콘, 주철환 늙지 않는 비결


관대한 성격의 아내, 25년째 주말부부로 지내

청춘 아이콘, 주철환 늙지 않는 비결


예술적 감성으로 점철된 그와 달리 그의 아내는 비교적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현재 강원도 강릉에 있는 강릉원주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치고 있는 아내는 널리 알려진 대로 방송인 손석희의 누나다. 두 사람은 손석희의 소개로 만났고 결혼과 동시에 지금까지 25년 가까이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그는 “결혼할 때부터 좋은 조건이라 생각했다”며 웃는다.
“부부가 항상 붙어 있어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 오래 함께 산 부부들은 대체로 공감할 것 같은데, 일상이 주는 건조함 역시 좋은 건 아니거든요. 아내는 일주일에 3일을 강릉에서 보내고 주말엔 서울로 올라와요. 더군다나 1년에 두 번 방학이 있으니 실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는 좌우명대로 수많은 인간관계를 거느린 주철환. 아내 입장에서 그런 남편이 100% 좋을 수만은 없다. 다행히 아내는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관대한 사람이라고 한다. 주철환은 “결혼을 잘한 것 같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절대 안돼’를 외치는 여자들이 있어요. ‘절대 용서 못해’ ‘절대 이해 못해’라는 식이죠. 그런 면에서 아내는 참 훌륭한 사람이에요. 제가 잘못해 화가 나더라도 ‘미안~’(톤을 올려 다소 여성스럽게)하고 사과를 하면 금방 풀리거든요. 결혼을 앞둔 후배들에게도 용서할 줄 아는 여자, 포용할 줄 아는 여자를 만나라고 충고해요.”
죽을 때까지 젊은이들과 소통할 자신이 있다는 주철환. 하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두려움은 있다. 늙어 잔소리꾼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그는 “할머니들이 흔히 하는 ‘옷이 이게 뭐니, 천천히 먹어라’ 등 안 해도 되는 잔소리를 나도 하게 될까봐 겁난다”고 말했다.
그가 마음뿐 아니라 외모도 젊어 보이는 데는 몇 가지 노하우가 있다. 피부 노화를 막기 위해 되도록 자외선을 피하고, 고기보다 채소를 즐겨 먹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은 즐길 만큼만 마시는 것. 과격한 운동 대신 걷기를 즐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인터뷰를 마치고 광화문 근처 회사로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그는 “걷기 딱 좋은 날씨네요. 택시 타지 말고 꼭 걸어가세요”하고 당부 또 당부했다. 그의 순박한 웃음에 나도 모르게 “네~”하고 철석같이 대답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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