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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남다른 시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 차가운 카메라로 껴안은 따뜻한 세상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성남훈

2010. 04. 16

우리가 사는 이곳이 과연 세상의 전부일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은 ‘아니다’라는 데서 출발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18년 동안 사진을 찍었다. 에티오피아·우간다·인도네시아·티베트·아이티 등 그의 발길이 닿는 세상의 끝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사진이 탄생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 차가운 카메라로 껴안은 따뜻한 세상


강도 높은 지진으로 절망의 땅이 돼버린 아이티. 지난 2월 중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47)은 이광기·박재정·SG워너비 김용준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지진 직후 세계 각국이 관심을 가졌던 곳이지만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자원봉사자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성 작가는 “지금부터가 사람들의 도움이 더욱 절실한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지진이 일어난 직후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더라고요. 그곳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할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살아남은 자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서 촬영을 했죠.”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연예인들과 작업을 했다. 늘 혼자 오지로 날아가 촬영하던 것과 다른 방식이었지만 그는 연예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 일반인의 공감을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조력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성 작가는 봉사하는 연예인들의 인간적인 면도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얼마 전 아들을 잃은 탤런트 이광기는 아들의 옷을 깨끗이 빨아서 가져가 그곳 아이들에게 입힌 뒤 “또 다른 아들을 얻었다”며 눈물 흘려 가슴이 찡했다고. 박재정·김용준 같은 요즘 세대 젊은이들은 의외로 순수한 면을 보이며 헌신적으로 봉사해 그들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박재정은 “왜 밤에는 봉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봉사를 하러 왔으면 24시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엉뚱한 발언을 해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성 작가는 “착하고 의리도 있는 친구들이라 함께 봉사하는 동안 배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성남훈 작가는 전주대학교 경영학과 81학번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자 그는 “살면서 예술적 끈을 놓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어릴 때 미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살던 곳이 시골이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특별한 목적 없이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입학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연극에 빠져 살았어요. 예술적 욕구가 해소되기는 했는데 연극은 협업이라 성향상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같이 연극하는 친구 중에 사진을 병행하는 이가 있었는데 ‘저거다’ 싶었죠.”

다 버리고 선택한 카메라에서 의외의 재능 발견
대학을 졸업할 무렵 그는 사진을 제대로 배우기로 결심하고 짐을 쌌다. 한국에 있으면 독하게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무도 없는 프랑스로 건너갔다. 사진 전문학교인 이카르 포토에 입학했다. 그리고 딱 3년 뒤 그는 프랑스의 전통 있는 예술전 ‘르 살롱’ 사진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63년부터 매년 개최되던 ‘르 살롱’전에서 사진분야를 개설한 첫해에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가 바로 성남훈 작가였다. 그는 “사진으로 전향한 뒤 불안하기만 하던 내게 자신감을 안겨준 상”이라고 말했다.
그의 수상 작품은 파리 근교 캠핑카에 사는 루마니아 집시들의 어려운 상황을 담고 있었다. 90년대 유럽의 집시들은 동유럽권이 붕괴된 후 각국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한곳에 정착해야만 했다. 존재의 이유인 ‘자유’라는 정체성을 잃은 집시들. 성 작가는 우연히 이들을 발견하고 자연스레 접근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 차가운 카메라로 껴안은 따뜻한 세상

1 아이티 지진 발생 한 달 후, 그곳을 찾은 성 작가는 참상을 알리고자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촬영했다. 2 동티베트의 잊힌 왕국 캄에 위치한 불학원에서 수학하는 어린 비구니를 촬영한 ‘연화지정’. 3 그에게 월드프레스포토 수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 인도네시아 민주화 항쟁 당시 갈등의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집시촌이 있었어요. 사실 저도 파리에서는 이방인이라 외로웠고, 또 늦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했다는 불안감 때문에 힘들던 시기라 자연스레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죠. 다가가서 말을 걸고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교감할 수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호의적으로 곁을 내줬기 때문에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학업을 마치던 94년 그는 프랑스의 유명 사진 에이전시인 ‘라포(Rapho)’에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입단했다. 실무 강의를 나온 ‘라포’ 멤버 중 한 사람이 그를 눈여겨보고 졸업하자마자 스카우트했던 것. 이후 그는 프랑스에 머물며 민초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던 중 그는 97년 말 결혼식을 올리러 한국에 들어왔다. 이때 외환위기가 일어났고 프랑스로 다시 돌아갈지를 고민하다가 에이전시에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는 그에게 “아시아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한국에 베이스를 두고 아시아 각국의 사진을 찍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얼마 후 그는 민주화 항쟁이 고조되던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성남훈 작가가 머무르던 15일 동안 인도네시아에서는 불안한 상황이 전개됐다. 정부와 학생들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매일같이 정권을 누가 쟁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극렬하게 논의됐다. 그가 도착하고 며칠 후 정권이 무너졌고 국회의사당은 학생들이 점거했다. 성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그곳을 갔다. 일부 시민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나와 인간 장벽을 친 채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군부와 대립하고 있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모든 외신 기자가 나무 밑으로 비를 피했다. 성 작가는 그 순간 어른들 사이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내미는 소년을 발견했다. 군부의 총과 일반 시민의 인간 철벽, 그 사이에 선 소년이 오버랩되는 사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찍은 필름들을 모두 모아 ‘라포’로 보냈다. 이후 회사로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권위적인 사진재단 월드프레스포토(WPP)에서 일상뉴스 부문에 그의 사진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99년, 그가 카메라를 든 지 정확히 10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 사진을 찍어놓고도 한참 동안 잊고 지냈는데 회사에서 알리지도 않고 출품을 했더라고요. 상을 받기 위해 한 일은 아니었지만 상을 받고 보니 기분 좋았죠(웃음).”
이후 그는 ‘정치·사회·경제·전쟁 등 외부 요인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는 사람들’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보스니아·코소보·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 20개국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주제를 정하고 그 안에서 작업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닐 때 제가 사회를 보는 시각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핵심 주제가 없다 보니 사진을 찍어도 결과물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죠. 저만의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이후로 세상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곳을 다녔어요. 그러다가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잡게 됐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 차가운 카메라로 껴안은 따뜻한 세상


성 작가는 이때 찍은 사진들을 모아 2006년 사진집 ‘유민의 땅’을 냈다. 이 사진집으로 그는 많은 상을 받았지만 그보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을 하며 나아갈 방향을 찾은 것이 가장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면 집권 세력은 골치 아픈 젊은 지식인들을 없애려고 하죠. 그들이 강제로 쫓겨난 오지로 어렵게 들어갔어요.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여자 선생님들은 흙벽을 못으로 긁어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그러면 아이들은 땅바닥에다가 돌로 문제를 풀었죠. 아무것도 없지만 열의를 가지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한국에서 온 봉사단체 굿네이버스를 만난 그는 비정부기구와의 협업에 눈을 떴다. 자신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작게나마 도움을 받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요즘은 세계의 고통받는 어린이 모습 사진에 담아

첫 번째 프로젝트를 마친 그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환경의 변화에 의해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주제가 너무 커서 한동안 방황하다가 ‘아시아의 여성’이라는 소주제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환경을 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았죠. 제주도 해녀들을 먼저 찍은 이후에 동티베트의 잊힌 왕국 캄(현 중국 쓰촨성 간쯔티베트족 자치주)의 불학원(彿學院)을 알게 됐어요. 중국 청두에 도착해서 차로 3일을 달려갔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티베트의 느낌이 싫어서 색다르게 찍으려고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불학원의 비구니를 찍은 ‘연화지정’이 탄생했어요.”
고산지대에 살며 볼이 빨갛게 타버린 소녀들의 얼굴을 진솔하게 담아내 좋은 평을 얻었다. 성 작가는 불상의 얼굴이 은은하게 빛나듯 아이들의 얼굴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진에 매진한 지 20여 년. 조금 쉬어가도 될 법한데 그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열심이다. 그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비정부기구인 기아대책과 손잡고 12개국을 돌며 고통 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일을 하고 있다.
“돌아보면 사진은 어떤 형태로든 제게 영광을 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그 영광이 사회로 돌아갔으면 해요. 제가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화두를 건네면 그걸 보고 느낀 사람들이 생각하고 조금씩 변화해나가면 좋겠어요.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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