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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명품 조연 ①

느끼한 영어선생 ‘앤서니 양’ 이병준 얼굴도장 찍고 비상 준비 완료!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2010. 04. 16

주연보다 조연이 더 빛날 때가 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 에어로빅을 하며 영어를 가르쳐 화제가 된 ‘앤서니 양’ 이병준이 그런 경우다. 뮤지컬·영화·드라마를 넘나들며 이름 알린 그는 이제 어디서든 ‘한 건 하는’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쏟아지는 러브콜에 요즘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다.

느끼한 영어선생 ‘앤서니 양’ 이병준 얼굴도장 찍고 비상 준비 완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가 남다르다. 무선 마이크라도 찬 듯 울림통이 큰 성악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점잖은 교수의 분위기를 풍기며 여유롭게 말하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 형형색색 에어로빅 의상을 입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영어를 가르치던 ‘앤서니 양’은 온데간데없다. 올해로 연기 경력 20여 년을 훌쩍 넘긴 배우 이병준(46). 드라마 출연 이후 꽤 화제가 돼 달라진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
“얼마 전 딸아이 중학교 졸업식을 갔는데 학생·학부모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어요. 정작 딸과 찍은 사진은 두 장밖에 없어 아쉬웠죠(웃음). 동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데 특히 초등학생들이 좋아해요. 대학 강의를 나가면 학생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기도 하고, 사인을 받으려고도 해서 ‘인기가 많아지긴 했구나’ 싶죠.”
그는 감독들이 애드리브를 기대하게 하는 배우다. 대본에 충실한 연기보다 즉흥적으로 튀어나오는 연기가 더 재미있을 때가 많다. 이는 모두 역할 분석을 충실히 하는 그의 꼼꼼한 성격 때문이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앤서니 양’을 연출하기 위해 에어로빅 선생에게 개인교습까지 받았다. 덕분에 꿈에 그리던 CF 출연도 했다.
“가족들이 같이 다니려고 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 알아본다고…(웃음). 딸 친구들이 가끔 알아보고는 ‘너네 아빠 지나가는 거 봤어’하며 문자를 보낸대요. 딸이 애교가 많은 스타일이 아닌데 요즘에는 ‘아빠 옷 좀 잘 입고 다녀~ 운동복 같은 거 입지 말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내도 부쩍 신경을 써주는 거 같아 기분 좋아요.”

“무명이라고요? 뮤지컬 경력만 20년입니다!”

느끼한 영어선생 ‘앤서니 양’ 이병준 얼굴도장 찍고 비상 준비 완료!


어린 시절 이병준은 코미디언이 꿈이었다. 이기동·배삼룡 등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그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언을 볼 때면 막연하게 무대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조금 커서 학창시절에는 목사를 꿈꾸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주일마다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며 교회 일에 봉사했다.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공연 때 사회도 보고 성극에 출연하기도 하며 끼를 드러냈다. 그러던 중 문득 ‘목회 활동도 좋지만 배우가 돼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뮤지컬 배우의 꿈을 품고 서울예술단에 합격했다. 목소리가 워낙 좋아 당연히 성악과를 나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공은 연기라고 한다.
“원래 목소리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르바이트로 더빙을 하러 갔더니 엔지니어가 목소리를 조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저음이고 울림이 심해서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고요. 성악 레슨을 받으면서 그런 부분을 고쳐나갔죠. 실력이 좀 나아졌는지 그 이후로 뮤지컬 ‘명성황후’ ‘아가씨와 건달들’ 등 굵직굵직한 역할에 캐스팅되기도 했어요.”
90년대 그는 뮤지컬계를 주름 잡던 박해미와 호흡을 맞추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두 사람은 96년 뮤지컬 ‘장보고의 꿈’에 출연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10년 후 우리 국민배우가 되자’며 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박해미가 아들 성재를 임신했을 무렵에는 뮤지컬 ‘아이 두 아이 두’를 함께 했다.
“성재가 지금 여덟 살쯤 됐는데 시간 참 빨리 가네요. 해미와는 여러 뮤지컬을 같이 하면서 꽤 친하게 지냈어요. 성격이 비슷해서 무대에서도 호흡이 잘 맞았거든요. 웃다가 실수를 한 적도 많아요. 그럴 때면 해미가 ‘지금 대사 까먹었지? 다시 들어 갔다와’라며 애드리브를 쳐줘 위기를 모면했죠(웃음). 둘 다 뮤지컬 판에서는 이름 알려져 있었는데 해미가 먼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확 떴어요. 지금 서서히 따라잡고 있는 중이에요.”



인생의 전환점 된 작품은 영화 ‘구타유발자들’

느끼한 영어선생 ‘앤서니 양’ 이병준 얼굴도장 찍고 비상 준비 완료!


뮤지컬 판에서는 인기가 좋았지만 다른 분야에서 이병준은 신인에 불과했다. 95년 뮤지컬만 하고 있던 당시 영화 출연이 너무도 하고 싶어 무작정 영화 ‘영원한 제국’의 조감독을 찾아갔다. 배역 캐스팅이 다 끝난 상태였지만 “내시라도 괜찮다”고 사정해 엑스트라로 출연할 수 있었다. 안성기 옆에 서서 3일간 열심히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다 감독의 눈에 띄어 포도대장으로 승격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다 2006년 영화 ‘구타유발자들’에서 능글맞은 성악과 교수 역할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뮤지컬을 즐겨 보던 원신형 감독이 그의 연기에 반해 직접 출연 요청을 해왔다. 당시 내로라하는 배우가 ‘구타유발자들’의 성악가 교수 역할을 탐냈지만 감독 마음에 들지 않아 애를 먹고 있던 차였다고 한다.
“비중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고민할 것도 없이 출연하겠다고 했죠. 작품한 지 벌써 4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감독님들은 그 작품을 이야기해요. 미팅하러 가면 다들 ‘구타유발자들 잘 봤어요. 진짜 성악가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죠.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이에요.”
영화 ‘복면달호’에서는 차태현의 라이벌인 트로트가수 ‘나태송’으로 나와 기성 트로트 가수 뺨치는 실력을 뽐냈다. 캐스팅은 이경규가 직접 했다고.
“영화 속에서 임채무씨가 차태현씨를 보고 ‘저 놈이다’라고 했듯 이경규 형님도 저를 보고 ‘저 사람한테 무조건 계약서 받아와’라고 했대요(웃음). 평소 가수로 데뷔해 앨범을 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영화 속에서나마 이뤄져서 정말 기뻤죠.”
이경규는 영화에 쓰일 그의 이미지와 맞는 곡을 제작해주기도 했다. 장윤정의 ‘어머나’를 탄생시킨 작곡가 윤명선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일단 노래방으로 가시죠”라고 말한 뒤 2시간 동안 트로트·가곡·가요·팝송 등을 불렀다. 그렇게 해서 받은 곡이 ‘사나이 인생’ ‘파라다이스’였다. 영화가 히트하면서 이 곡들은 한동안 벨소리 차트 상위권에 머무르기도 했다.
“이경규 형님께 감사하죠. 그때 절 마음에 들어하셔서 소속사 계약하고 같이 일하기도 했어요. 다음 작품에도 출연해달라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예림이랑 우리 딸이 초·중·고등학교 동기라 요즘도 가족끼리 종종 만나곤 해요.”
영화가 상영관에서 내린 뒤에도 각종 행사의 출연 요청이 들어와 무대에 자주 섰다. 꿈에 그리던 음반발매 제의도 받았다. 트로트 가수로 앨범을 낼 수 있었지만 이미지가 굳어버릴까봐 참았다. 대신 연기자로 더욱 박차를 가했다.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 70s’ ‘메리대구공방전’ ‘쩐의 전쟁-번외편’ ‘탐나는도다’에 출연했다. 영화에서 드라마로 옮겨가면서 시청률의 힘도 알게 됐다.
여태껏 이병준은 느끼하면서 코믹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때문에 역할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서 트랜스젠더 술집 마담 역할을 소화한 후 온갖 마담 역할이 다 들어왔다고. 비슷한 캐릭터를 반복해서 연기하는 게 내키지 않아 모두 거절했다. 이후 그는 되도록이면 이미지가 겹치지 않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가 단 한 가지 걸려 하는 부분은 가족들. 작품에 의미가 있는 역할이라 생각되면 최선을 다하는데 “가족들이 나로 인해 오해의 시선을 받는 것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금껏 출연했던 영화·드라마의 역할 중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하나도 없어요. 비중이나 이미지에 상관하지 않고 모두 다 열심히 했죠. 그런데 트랜스젠더 같은 역할은 가족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죠. 그래도 보통은 열심히 한 결과라 생각하고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언젠가 직접 쓴 뮤지컬 작품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꿈

느끼한 영어선생 ‘앤서니 양’ 이병준 얼굴도장 찍고 비상 준비 완료!


그는 2003년부터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현장 경험을 살려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굉장히 내성적인 친구가 있었는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더니 마지막 시간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자신 있게 소리를 내지르더라고요. 그럴 때는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죠.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을 통해 배우는 점도 많아요. 젊은 친구들이 갖고 있는 그 열정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 되거든요.”
이왕 드라마·영화로 옮겨 연기를 시작했으니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하는 이병준이다. 연말에는 상도 한번 받으면 좋겠다고. 올해도 연초부터 열심이다. 얼마 전에는 케이블 방송 tvN ‘위기일발 풍년빌라’ 촬영을 끝냈고 곧 있으면 SBS 골프 드라마 ‘버디버디’ 촬영도 들어간다.
뮤지컬 배우로 시작했기에 직접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픈 꿈도 있다. 이를 실현하려고 대학원에 입학해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요즘 시간이 없어 논문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쉬울 뿐이라고. 그는 “틈틈이 대본도 쓰고 노래도 만들어 멀지 않은 시기에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며 조심스레 말했다.
“쉬는 날이면 도서관을 자주 가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죠.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네요. 국민배우로, 뮤지컬 연출가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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