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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작가의 고백

‘도시락 편지’ 작가 조양희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

글 오진영 사진 지호영 기자

2010. 02. 17

자녀의 도시락 속에 매일매일 넣어준 ‘도시락 편지’를 책으로 펴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 조양희씨가 10년 만에 장편소설 ‘분홍구두’를 펴냈다. 이번엔 팔순 어머니의 젊은 시절 추억을 담은 작품이다. 그가 털어놓은 3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

‘도시락 편지’ 작가 조양희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


조양희씨(63)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일본 유학을 다녀온 소설가였다. 조씨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유학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됐을 때, 그는 ‘언젠가 어머니 이야기로 소설을 쓰리라’고 마음먹었다. 최근 펴낸 ‘분홍구두’는 그 오랜 꿈의 결실이다. 88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겨울 외출’로 당선된 뒤 벌써 20여 년이 흘렀으니, 얼마나 농익은 이야기가 풀려나왔을지 알 만하다. “가마솥에 불을 지펴 뭉근하게 국물을 고아내는 것처럼, 어머니의 이야기를 오랜 세월 끓이고 달여왔다”고 말하는 조씨의 표정은 홀가분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등단 뒤 ‘이브의 섬’ ‘하늘빛 유혹’ ‘훈풍’ 등의 소설을 발표한 중견 작가. 하지만 조씨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건 세 자녀 진호(29)·성진(28)·다위(24)에게 보낸 쪽지를 모아 펴낸 ‘도시락 편지’다.
‘사랑하는 진호야. 네가 죽을 때까지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을 선택하는 길을 알아야 한다…언제나 끊임없이 네가 당장에 선택하는 것이 삶이란다.’(92년 3월30일)
‘사랑하는 성진. 동생에게 ‘귀가 삐었나 봐!’라고 말했지? 그 동생 귀는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놓은 귀란다. 동생이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놀리면, 엄마·아빠를 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야.’(92년 7월2일)
‘사랑하는 다위에게. 때릴 줄 아는 것이 남자가 아니라, 맞을 줄도 아는 게 진짜 사나이란다. 아이들이 널 놀리면 왜들 놀리느냐고 우렁차게 맞붙다가도, 갑자기 태도를 바꿔보렴.’(96년 4월25일)
조씨가 88년부터 근 10년간 아이들에게 보낸 1천8백여 통의 쪽지에는 엄마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과 교훈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으로 96년 당시 내무부장관이 수여하는 ‘훌륭한 부모상’을 받았고, 같은 해 ‘세계 여성의 해’를 맞아 프랑스 잡지 ‘마리끌레르’가 뽑은 ‘세계를 움직인 1백명의 여성’ 중 환경부문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다.

엄마로부터 이어진 자식 사랑

조씨는 자신에게 이런 교육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올해 86세를 맞은 어머니라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우리 엄마는 다른 집 엄마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랫목에 아이들을 재운 뒤 당신은 밤이 늦도록 글을 쓰셨기 때문이지요. 작은 밥상 위에 촛불을 켜놓고 앉은 엄마의 모습과 사각사각 종이를 스치던 만년필 소리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도시락 편지’ 작가 조양희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




어머니는 조씨가 고교 시절이던 65년 동아일보 대하 장편소설 공모에 가작으로 입선하며 소설가가 됐다. 집안 살림과 자녀 교육으로 바쁜 틈에도 늘 글을 놓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는 작가로서의 삶을 배웠다.
“부모의 삶은 알게 모르게 아이한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음악을 좋아하면 아이한테 음악을 물려주는 것이고, 엄마가 장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장사를 하게 되는 거지요. 어머니가 틈틈이 작은 상을 놓은 채 촛불 켜놓고 문학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저도 문학을 생활 속으로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씨는 가톨릭대 국문과 졸업 뒤 10년간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비행기를 탔고, 퇴사 후엔 조선호텔에서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른세 살에 두 살 연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부터 전업주부로 살았다. 아이들이 웬만큼 자란 뒤 결혼 전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에 지원, 최종 합격까지 했지만 어머니의 한마디에 마음을 접었다.

‘도시락 편지’ 작가 조양희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굳이 직장에 나가야 하겠느냐고요. 아이들은 엄마 시선 아래에서 크는 게 좋으니 꼭 일을 하고 싶으면 집에서 소설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어요.”
조씨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소설가로 등단한 건 이런 어머니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가 직장을 포기한 뒤 소설 쓰기를 시작해 만삭의 배를 끌어안고 쓴 소설이 ‘여성동아’ 장편 공모전 당선의 영광을 안은 ‘겨울 외출’이다.
조씨는 소설가가 된 뒤에도 세 아이를 돌보며 ‘아이들은 엄마 시선 아래에서 커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을 충실히 지켰다. 아이들이 잘 때, 없을 때, 혹은 작업실에서 글을 쓴 게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놀고 만화영화를 보는 바로 그곳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글에 담았다. 그 한 편 한 편이 ‘도시락 편지’다. 아이들이 유난히 병치레가 많았던 것도 그가 ‘생활 글쓰기’에 천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첫째 진호는 선천성 습진이 있었고, 둘째 성진이는 선천성 심장 결손증을 앓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골고루 음식을 먹이기 위해 매일매일 도시락 속에 쪽지를 넣어주기 시작했다. ‘작가’ 엄마답게 문장마다 문학의 향기를 듬뿍 담았다. ‘시금치를 많이 먹어 우리 몸을 공격하는 나쁜 병균을 쳐부수는 군사를 키우자’‘취나물의 독특한 향은 도라지 공주를 기다리는 취나물 왕자의 향기란다’‘바람결에 날리는 부드러운 머릿결은 대파를 먹어서 그렇게 고운 거지’…. 음식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아이들의 일상과 삶에 대한 교육으로 이어졌다. 그의 집을 방문한 기자가 부엌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 쪽지들을 신문에 보도하면서 조씨는 유명 에세이스트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내 단행본으로 출간된 ‘도시락 편지’는 발간 10년 뒤인 2002년 초등학교 5학년 ‘읽기’ 교과서에 실리는 등 세월을 넘어 계속 사랑받고 있다.

아이들 건강 위해 시작한 도시락 편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도시락 편지’를 읽고 ‘평생 읽은 책 중 가장 감동적인 책’이었다는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저희 집에 직접 전화까지 주셨던 일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죠.”
‘도시락 편지’가 대히트를 하는 바람에 소설가 조양희 대신 ‘도시락 편지’의 조양희가 된 게 섭섭하기도 했지만 초보 작가로서 과분할 정도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것은 늘 감사했다. 그는 “장편소설로 데뷔했지만 그날그날의 일상을 글로 풀어가는 게 저의 장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의 이런 장기는 지난해 딸과 함께 펴낸 에세이 ‘런던 하늘 맑음’에서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어린 시절 영국 런던으로 유학한 큰딸 진호씨는 런던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건축가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런던의 건축학교에 재학 중. 그는 “우유팩을 잘라서 반찬통 만들고 시금치 데친 물로 린스를 만들어 쓰는” 환경주의자 조씨의 영향을 받아 친환경 건축을 연구한다. 진호씨가 스모그와 최악의 대기오염이라는 과거를 딛고 환경도시로 다시 태어난 런던의 친환경 건축물들을 취재·연구한 결과가 바로 ‘런던 하늘 맑음’이다. 조씨는 딸의 연구 결과에 작가로서의 ‘공력’을 보태 매끈한 책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딸과 함께 책을 쓰면서 조씨는 어머니에게서 자신에게로, 또 딸에게로 이어진 ‘글’의 힘을 느끼고 감회에 젖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삶을 닮은 ‘분홍구두’를 빨리 완성해야겠다고 마음 먹은것도 이때부터다.
‘분홍구두’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어머니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대극.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산부인과 여의사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산부인과 여의사를 꿈꾸는 열아홉 살 장준주가 도쿄로 떠나는 연락선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10년의 세월과 한국·중국·일본을 넘나드는 파란만장한 시대극을 펼쳐놓는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연희전문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을 가셨어요. 어머니의 오빠, 그러니까 제 외삼촌은 도쿄대 유학 중에 학도병으로 끌려가 전쟁터에서 돌아가셨고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 속에는 그 시대를 살다간 우리 어머니, 삼촌, 할머니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도시락 편지’ 작가 조양희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


조씨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는 그 시대 청춘들의 사랑과 꿈, 상처와 용서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쟁 속에서도 젊은이들은 치열한 사랑을 해나갔고 죽음이 넘쳐나는 순간에조차 생명은 계속 탄생했으니까요.”
이 책에 추천사를 써준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선배 작가 박완서씨는 “문학소녀적인 풋풋함이 느껴지는 그녀 특유의 문장과, 일관되게 여자의 일생을 관조하는 웅숭 깊은 시선이 잘 조화된 조양희다운 작품”이라고 평했다. 역시 추천사를 쓴 이해인 수녀는 “청춘들의 사랑과 삶의 진지함이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분홍빛 아픔” 같은 책이라고 했다. 세 나라가 전쟁으로 얽혀 서로 물어뜯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상생의 아시아 시대를 여는 희망에 대한 것이다.
“어려서 어머니가 되풀이해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어요. 외삼촌이 전쟁터에서 돌아가시면서 ‘내 죽음이 일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위한 것이 되길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더군요. 비극적인 전쟁 중에도 경이로운 탄생과 사랑이 꽃을 피웠던 그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한·중·일의 교류와 협력으로 새로운 아시아의 시대를 열어가는 세상을 그려보길 바랍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
그는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다. 물을 아껴 쓰고, 합성세제를 쓰지 않으며, 재활용이 화제가 되기 전부터 스스로 재활용을 실천했다. 그것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씨는 지금도 도시락 편지를 기억하는 독자들로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조씨는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대답한다.
“막내아들이 중3 때 더 이상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기에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요. 저 혼자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 아래에서 펑펑 울었지만, 아들에게는 쉬고 싶을 만큼 쉬고 학교에 가고 싶을 때 가라고 했습니다.”
결국 유급하고, 3학년을 두 번이나 다닌 아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던 아들은 오히려 집에 머물면서 소설 쓰고 노래를 만드는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 창작의 관심사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누나 옆으로 가서는 자신의 삶을 찾았다. 영어를 한 번도 배운 적 없던 아이가 2년 만에 완벽한 영국 발음을 구사하는 영국 대학생이 돼 재즈 음악을 공부한 것. 지금은 입대를 위해 한국에 와 있다.
“아이가 대학 입학할 때 세상 모든 소리가 음악이고 모든 움직임이 운율이고 모든 행동이 음표라는 이야기를 에세이로 써서 높은 점수를 받았답니다. 아이들에게 많은 자유 시간을 주고 많이 놀게 해야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역시 영국에서 공부한 둘째 아들은 “앞으로는 무엇이든 영화로 통하고 영화를 빼고는 일이 안 되는 세상이 온다”면서 영화 일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모두 “엄마의 무언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조씨는 “제가 한 교육은 아이에게 늘 사랑을 표현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을 보여준 것뿐이에요. 다 우리 어머니께 배운 것이죠. 어머니가 제게 주신 것이 아이들을 통해 또다시 이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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