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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송종의 전 법제처장이 세상 아빠들에게 띄우는 편지

글 이설 기자 사진 송종의 제공

2009. 03. 23

인생의 모든 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와 그 장소에서 함께하는 그 순간은 한 번뿐이다.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가까운 사람부터 챙기라”는 송종의 전 법제처장을 인터뷰했다.

송종의 전 법제처장이 세상 아빠들에게 띄우는 편지


어느 날 한 아버지가 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뭘 쓸까 고민하다가도 펜을 들기만 하면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20일 넘게 매일같이 써내려갔다. 한나절 동안 쓰기도 했고 밤을 새우면서 쓰기도 했다. 원고지의 글을 타이핑해 출력한 분량은 무려 A4용지 309쪽, 무게 1.4kg.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에게 이토록 긴 편지를 부친 사연은 뭘까.
‘그때는 네가 울었지만 지금은 내가 이 글을 쓰면서 혼자 울고 있다. 그래! 내가 그때는 너의 다정한 아빠가 되지 못하였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이 아빠가 뒤늦게나마 너에게 어느 아버지도 해주지 못했을 많은 이야기를 남겨 그때의 어린 마음의 상처를 다소나마 어루만져주려 한다.’
편지의 주인공은 송종의 전 법제처장(68) . 30년 동안 밤나무를 가꿔온 밤나무 검사로도 유명하다. 사법시험 제1회 출신으로 대검 차장검사 등을 거쳐 98년 법제처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쳤다. 지금은 청년 시절부터 밤나무를 심어온 충남 논산 양촌면에서 양촌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쓴 편지는 책으로 엮여 지난해 말 ‘밤나무 검사가 딸에게 쓴 인생연가’(크리에디트)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세상에는 다정한 아빠보다 그렇지 못한 아빠가 더 많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자녀 곁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행동은 거꾸로 간다. 밥벌이의 고단함과 가장의 역할에 덧씌워진 책임감이 대한민국 아빠를 ‘얼굴 보기 힘든 호랑이’로 남겨뒀으니,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송 전 처장도 평균형 아빠였으나 아들의 사고를 계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호기심 속의 치기어린 행동을 준열히 나무라며 성인군자의 도덕률만을 반복하여 주입하려 했던 너의 아비는 엄한 만큼의 자애로움을 보이지 못하였더니라. …이제 와 생각하면 다 헛된 푸념이로되 너의 가슴을 쓰리게 하였던 수많은 기억과 너의 진실한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였던 아쉬움은 쉽사리 잊을 수 없구나. 우리 부모는 이 잘못을 스스로 나무라며 몇날 며칠을 울고 또 울었느니라. 이 죄를 이제는 너그러이 용서해다오.’
송종의 전 법제처장이 세상 아빠들에게 띄우는 편지

송 전 처장은 96년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아들 석윤씨는 20년을 살다 갔다. 위는 아들의 6재 즈음 쓴 ‘고유문(告由文)’의 일부. 이 글은 이후 49재에 참석한 동료가 검찰 홈페이지에 띄우면서 법조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명문으로 회자되고 있다. 송 전 처장은 “고유문을 쓰면서 나의 인생행로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세상 떠난 아들 생전에 살갑게 대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아들을 잃고 가만히 생각하니 부귀영화가 별것 아니더군요. 우리네 삶이란 불붙은 집에서 잠시 살다가는 것이라는 인생무상이 밀려왔어요. 공직을 떠나 변호사를 해서 부를 쌓아도 나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다는 마음에 법제처장을 마치고 논산 양촌으로 내려와 터를 잡았지요. 아들의 사고는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론 제 인생을 좀 더 값지게 만든 셈입니다.”
그는 엄한 아버지였다. 명심보감을 공부한 옛날 유학자의 자세로 자녀를 대했다. 이해하고 교감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기보다 그저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기 바빴다. 세월의 강을 건너면서 아들을 먼저 보낸 아픔은 희미해졌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기만 하다.
“하루는 아이에게 명심보감에 실린 ‘자허원군성유심문(紫虛元君誠諭心文)’을 무조건 외우라고 볶아댔어요. 한문도 잘 모르는 아이에게 그 어려운 내용을 외우라니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부모는 엄한 모습과 자애로운 모습 모두를 품어야 해요. 그게 부모의 도리예요. 한데 자애로움을 갖추는 게 참 힘든 일이에요. 회초리를 드는 건 쉽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부성을 발휘하려면 영 어색하거든요. 그건 우리나라의 가부장적 가정문화의 탓이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기도 합니다.”

송종의 전 법제처장이 세상 아빠들에게 띄우는 편지

송종의 전 처장은 소문난 불자. 틈틈이 충남 아산시의 봉수사를찾아 마음을 가다듬는다.


송 전 처장은 1남1녀를 뒀다. 장녀 미현씨는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느 날 항공우편으로 불쑥 날아든 편지더미에서 딸은 ‘낯선’ 아버지를 만난다. 어린 시절 피란 길에서 고아가 될 뻔한 일, 어머니와의 결혼 스토리, 고등학교 시절 1년 동안 라디오를 만든 일 등 편지에는 평소 아버지가 들려주지 않던 이야기가 가득했다. 본인의 어린 시절과 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일화와 바둑, 라디오 조립, 클래식 음악감상 등 소소한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송 전 차장은 “내가 살아온 모든 궤적을 고백하듯 적었다”고 말했다.
“검사일이란 게 워낙 바쁘잖습니까. 거의 딸아이 얼굴을 못 보고 살았어요. 전주로 대구로 대전으로 객지를 다니다 보니 떨어져 지내는 시간도 많았고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미안하더군요. 부모 살아계실 때 불효하면 한이 되듯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걸 깨달은 터라 가능할 때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아빠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그간의 소홀함이 용서될까 하는 마음에 편지를 썼습니다. 또 부모로서 살아온 인생과 생각을 알려줘야겠다는 책임감도 느꼈고요. 서로 여유가 생기면 차차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금세 시집을 가버리니 기회가 나질 않잖아요(웃음).”
미현씨 내외는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다녀간다. 지난 연말 방문했을 때는 책의 출판기념회를 겸한 자리를 가졌다. 딸 내외와 사돈 내외를 비롯한 사돈 식구들, 그리고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이상우 총장이 함께했다. 이 총장은 송 전 처장의 오랜 지기로 책의 추천사를 썼다.
처음부터 출간을 염두에 두고 편지를 쓴 건 아니었다. 우연히 원고를 본 지인이 다리를 놓아 사적인 편지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분량이 방대해 일부 글만 서술형으로 바꿔 책으로 엮었다. 편지를 받는 이가 딸과 사위이니 책의 주인공도 당연히 딸 내외. 출판기념회에서 송 전 처장은 기뻐하는 자녀들의 모습에 그저 흐뭇했다고 한다.
“여행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1년 내내 열리는 열매랑 놀고. 딸기, 포도, 밤, 유자, 사과…. 1년 내내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법이라는 건 참 어렵고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자연과 함께하면 그럴 걱정이 없어 좋아요. 원래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나오니까요.”
그는 요즘 양촌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한다. 평안남도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지만 양촌은 그에게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다. 양촌과 인연을 맺은 건 대전지검 강경지청에서 일하던 73년. 나무 심을 땅을 찾던 그에게 양촌리 이장이 이곳으로 손을 이끌었다.
“밤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 35년이 훌쩍 지났네요. 강경지청에 있을 때 심기 시작했는데 서울로 발령받은 뒤에도 계속 밤나무를 돌봤어요. 근 12년 동안 서울과 양촌리를 오간 셈이죠. 휴일에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밤나무를 보러 갔어요. 아들과는 그래도 종종 함께 갔는데 딸아이는 한창 공부할 때라 그것도 못했죠. 밤나무라면 사람들이 의아해하는데, 심게 된 동기가 있어요. 66년 법무관으로 복무하다가 월남에 파병을 갔는데, 어느 출장길에 군용 비행기에서 한국을 내려다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국토 한쪽이 헐벗어서 휑했던 것이죠. 그때 맹세했습니다. 귀국하면 꼭 나무를 심겠다고요.”
그의 영농조합 직원은 모두 지역 주민이다. 65~80세 노인들이 이 근방에서 일손을 돕는다. 전국 영농조합 숫자는 꽤 많지만 성공적으로 조합을 운영하는 곳은 많지 않다고 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만 농사는 한철 장사라 기업 형태를 유지하며 사업하기가 힘들다는 것. 그는 “나도 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서 만족하며 일한다”고 말했다.

“인생은 어떤 길을 걷든 의미 있고 복된 것”
그에게 “사업이 재미있느냐, 검사일이 재미있느냐”는 우문을 던지니 “사과가 맛있어요, 배가 맛있어요?”라는 현답이 날아온다. 송 전 처장은 “인생은 어떤 길을 걷든 간에 제각각의 맛과 보람이 있다. 모든 인생이 즐겁고 보람 있지만 스스로 그 의미를 느끼지 못할 뿐”이라며 인생 1막과 2막 모두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문난 불자다. 대보살이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음이 안정할 때나 번잡할 때나 늘 절을 찾고 염불을 드린다. 그래서일까. 오랜 공직생활을 하고 퇴임한 뒤에도 꼿꼿한 인격으로 덕망이 높다. 인터뷰 요청에도 “책에 모든 이야기가 있다. 공인이 아닌데 사진을 낼 수 없다”며 강하게 은인자중의 뜻을 고수했다. 그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물었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빠요. 가족도 돌보고 건강도 돌봐야 하는데 여유가 없죠. 변화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친구 동료와는 술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가족과는 대화가 없죠. 한 발짝 떨어져 옛날 성현들의 마음가짐으로 부모 자식 간 관계를 소중히 보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지침으로는 명심보감의 ‘자허원군성유심문’을 추천합니다. 삶의 명약과 처방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글이에요.” 다음은 그가 아들에게 외기를 권했던 ‘자허원군성유심문’의 일부다.
‘맑고 검소하면 복이 생기며 몸을 낮추면 덕이 생긴다. 마음이 안정되면 도를 얻고 온화한 사람은 장수를 누린다. 욕심이 많으면 근심이 생기고 탐욕은 재앙을 불러온다. 경거망동하면 허물이 생기고 어질지 못하면 죄를 얻는다.
그른 일을 즐겨 보지 말며 남의 부족함을 말하지 말며 마음을 경계하여 탐욕을 버리고 나쁜 친구를 따르지 마라.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나와 무관한 일에 덤벼들지 마라. 윗사람과 부모님을 잘 섬기고 어른과 덕 있는 자를 받들고 앎이 적으면 부족함을 덮어주라. 불순한 뜻이 없는 재물은 공손히 받고 이미 떠나간 것은 쫓지 마라. 내 것이 안 될 것은 바라보지 말며 과거에 매이지 마라. 총명한 듯해도 어둔 것이 있으며 계산만 앞세우면 편의를 잃게 되니 사람 잃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다. 권세를 부리면 늘 재앙이 따르니 마음을 가다듬고 허세를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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