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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시련 이기고 꽃피운 행복

암 오진, 교통사고로 맘고생한 이경애·김용선 부부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4. 23

지난 2002년 열네 살 연상의 김용선씨와 재혼해 네 살배기 딸을 둔 개그우먼 이경애. 그동안 간이식 수술을 받은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살아온 그가 지난해 또다시 큰 시련을 겪었다. 암 오진을 받은 데 이어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친 것. 이경애·김용선 부부를 만나 우여곡절 많은 지난날에 대해 들었다.

암 오진, 교통사고로 맘고생한 이경애·김용선 부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한 이경애(44)·김용선(58) 부부의 집을 방문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방문은 2년 전 여름, 두 사람이 결혼 5년 만에 인공수정으로 얻은 귀한 딸 희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그때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지난해 이경애가 암이라는 오진을 받은 데 이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거실 한가득 봄 햇살이 퍼지는 그의 집에 들어서자 ‘꼬마아가씨’로 성장한 희서가 잠에서 막 깬 듯 눈을 비비며 기자를 반겼다. 이경애는 지난해 겪은 시련에 대해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은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가 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건 지난해 2월.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가 아파 인근 내과를 찾았는데 담당 의사가 각종 검사를 한 뒤 “맹장염인 것 같지만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길로 남편 김씨는 이경애와 함께 종합병원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됐다고.
“의사가 보호자인 저를 오라고 하더니 ‘암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엑스레이에 찍힌 모양이 종양 같다는 거예요. 맹장은 원래 모양이 길쭉한데 동그랗다면서요. 만약 개복 후 종양이면 손을 쓰지 못하고 덮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수술 전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는 얘기였어요. 눈앞이 캄캄했죠.”

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 받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운 남편
하지만 결과는 다행히도 암이 아닌 맹장염이었다. 보통 맹장은 배꼽 바로 옆에 있는데 이경애의 맹장은 아래로 반 뼘 정도 내려와 있었던데다가 오랫동안 곪아 동그랗게 뭉쳐 있었던 것. 당시 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던 그는 의사를 만나고 온 남편의 눈이 퉁퉁 부어 있어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맹장염 수술은 간단한 건데 남편이 왜 저러나 싶었어요.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한테 ‘혹시 내가 수술 들어가서 잘못되면 다른 건 모르겠고 눈만 기증해달라’고 당부를 했어요. 그러자 남편이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면박을 줬죠. 남편은 8년 전 간이식수술을 받고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걷듯이 살고 있어요. 그 상황에서 저마저 암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요. 짧은 시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간 날이었죠.”
하지만 그는 오진으로 인한 아찔했던 기억이 채 가시기 전에 또다시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일을 겪고 말았다. 맹장염 수술 후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가족들과 함께 요양차 충남 서천에 있는 시골집으로 가던 중 고속도로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웠다가 뒤에서 달려오던 차에 받히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운전하다가 너무 졸려서 잠시 쉬어갈 겸 음료수를 꺼내려고 차를 세웠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가 일어났어요. 사고 낸 사람이 졸음운전을 했더라고요. 사고가 나는 순간 몸에서 ‘빠직’하는 소리가 나면서 왼쪽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팠죠. 검사해보니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관절이 탈골됐더군요. 사고 직후에는 너무 많이 부어서 바로 수술을 하지 못했고, 일주일 지나 부기가 빠진 뒤 정밀검사를 하고 수술을 받았어요.”

암 오진, 교통사고로 맘고생한 이경애·김용선 부부

당시 그는 전치 6주의 진단을 받고 6개월간 깁스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가 아니었다. 이경애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남편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던 것. 간 이식수술 후 독한 면역제를 복용하면서 만성신부전증에 당뇨까지 앓게 된 남편은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갑자기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남편이 입원해 있는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겨와 다시 입원을 해야 했다.
“하루도 방심하면 안 되는 사람인데 며칠 동안 저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탓에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어요. 원래 병원에서는 깁스를 푼 뒤 6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남편과 아이 건사하느라 그건 포기했죠. 그런데 제때 치료를 받지 않아서인지 얼마 전에는 몸 오른쪽에 마비증상이 오더라고요. 급성 위궤양이 찾아와 혈액순환이 잘 안됐기 때문인데 다행히 석 달 정도 약을 먹으면 된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지난 한 해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평생 투석기 달고 살아야 하지만 남편이 곁에 머물러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더 이상 집안에 우환이 없으면 좋으련만 오랫동안 신부전증을 앓아온 남편 김씨가 4월 말부터 투석을 시작한다. 벌써 8년째 13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기에 혈액에 노폐물이 많이 쌓인 것. 투석은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번 할 때마다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에 대해 이경애는 “투석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물론 당사자는 힘들겠지만 투석만 하면 피곤함이 덜하다고 하니까 생활하기에는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투석을 하자고 했는데 미루고 미뤄서 지금까지 왔어요. 투석은 한번 시작하면 평생 해야 하는 거라 버틸 때까지 버티자는 생각이었죠(웃음). 아침저녁으로 피검사를 하고 혈압과 체온을 재는데 예전에는 아내에게 맡겼던 걸 요즘엔 제가 다 합니다. 이제부터는 투석기까지 꽂고 살아야 하지만 아내의 말대로 좋게 생각하려고요.”
두 사람은 지난 97년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카페에 손님이 많아 빈 좌석이 모자랐는데, 김씨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이경애가 합석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이 시작됐다고. 그는 “카페 이름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였다”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각각 한 차례씩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지낸 지 꽤 오래된 상태였는데 열네 살 나이 차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편안함에 끌렸다고 한다. 하지만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김씨의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원래 간경화를 앓고 있었는데 생사의 기로에서 간 이식을 받아야할 상황에 다다른 것.
“남편은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는 죽지 못하겠다며 미국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미국에 갔더니 남편같은 알코올성 간경화 환자는 1년 동안 알코올클리닉 과정을 이수해야만 이식수술을 해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간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채 며칠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죠. 아무리 집으로 가자고 해도 남편이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러는 동안 피가 역류해 식도가 파열되는 상황까지 갔고, 병원에서도 1주일밖에 더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어요. 결국 캐나다에 있는 남편의 큰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좀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죠. 그때까지 남편의 건강이 그렇게 안 좋은지 몰랐던 아이들은 바로 미국으로 날아와 남편을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왔어요. 결국 남편은 우리나라에서 큰아들에게 간이식 수술을 받아 새 인생을 살게 됐죠.”
김씨와 처음 만날때부터 김씨의 세 자녀와 자주 왕래하며 지낸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녀들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큰아들과 나이 차가 열한 살밖에 안 나 ‘아줌마’라는 호칭을 부탁했다고. 그는 “내가 조금이라도 키웠으면 모를까 성인이 될 때까지 모르고 지내던 사이인데, 엄마라고 부르라는 건 욕심”이라며 “아이들과 모두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3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사 교육을 받은 둘째 딸이 평생 배필을 만나 선교활동을 위해 캐나다로 떠났다고 한다.
“아이들이 희서를 자기 자식처럼 예뻐해줘서 고마워요. 얼마 전에는 남편이 둘째 딸한테 ‘나중에 아빠가 죽어도 희서와 싸우면 안 된다’고 했더니 딸아이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희서가 저와 상대할 나이가 되려면 20년은 있어야 하는데, 그때 제 나이가 오십이 넘어요’ 하더라고요(웃음).”

암 오진, 교통사고로 맘고생한 이경애·김용선 부부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낳은 딸 희서는 이경애·김용선 부부에게 있어 ‘삶의 이유’와도 같다.


쉰넷의 나이에 늦둥이 희서를 본 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를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이경애는 희서를 끔찍하게 예뻐하는 남편을 보면서 아이를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결혼 후 여러 차례 인공수정을 시도한 끝에 희서를 얻은 그는 “희서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가정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간다”며 옆에 있던 아이를 와락 껴안았다.
얼마 전부터 놀이방에 다니기 시작한 희서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도 크고 말도 빠른 편이다. 생후 15개월이 지나면서 젓가락질을 해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요즘은 의자 위에 선 채로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등 깜찍한 행동으로 엄마아빠를 즐겁게 해준다고.
“희서가 아토피가 있어서 음식을 가려 먹이는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저한테 ‘엄마 저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지만 어른이 될 때까지 참을 거예요’라고 말해요. 그러면 그 말에 마음이 아파서 제가 아이스크림을 한 숟가락 떠서 주게 되죠. 어제는 놀이방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에 그럼 가지 말라고 했더니 ‘내일은 울지 않고 놀이방 꼭 갈게요’ 하면서 선수를 치는 거예요(웃음).”



아이 끔찍하게 예뻐하는 남편 보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 낳기 잘했다는 생각 들어
그는 남편과 아이 건강을 위해 식단에 많은 신경을 쓴다. 모든 반찬은 싱겁게 만들고 되도록 유기농 야채와 천연 조미료를 사용한다. 예전에는 아침마다 싱싱한 야채를 갈아 남편에게 줬는데 요즘에는 약해진 소화기관에 오히려 부담이 될 것 같아 남편이 원할 때만 준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겨울이면 늘 태국을 찾는다. 간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피부병도 생겼는데, 춥고 건조한 겨울만 되면 증상이 더욱 심해져 기온이 높은 태국에서 겨울을 난다고.
“무엇보다 공기가 좋아서 남편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져요. 콘도미니엄 스타일의 저렴한 숙소에 머무는데 물가가 싸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활할 때와 비교해 체류비가 그리 많이 들지 않죠. 태국에 한번 다녀오면 남편 얼굴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다음에 또 안 갈 수가 없어요(웃음).”
실제로 2년 전 봤을 때에 비해 얼굴에 살이 많이 오른 김씨는 그동안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온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 사이 응급실에서 피를 토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 수차례. 하지만 그때마다 불평 한마디하지 않고 자신의 손과 발이 돼주는 아내를 보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한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전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예요. 미국에서 피를 토하는 위급한 상황이었을 때 아내는 꼬박 3일을 제 옆에서 밤을 새우며 지켰어요. 나중에는 침대 옆에 박스를 깔고 잠을 청하더군요. 간이식수술을 받았을 때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는데 제가 아내 없이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는 의사에게 애원을 해 무균실까지 들어왔더라고요. 여태껏 간병인 한번 써본 적이 없어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그동안 하도 험한 풍랑을 많이 만나서 이제는 잔잔한 파도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웃음). 저라도 건강해서 남편을 돌볼 수 있는 게 다행이고 바라만 봐도 행복한 아이가 있는 데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남편이 무조건 오래 사는 거예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희서를 위해서요. 아파서 누워 있어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이에게 위로가 되는데요. 저나 남편이나 희서가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면 좋겠어요.”
그동안 남편과 아이를 돌보느라 방송활동을 제대로 못했던 그는 앞으로는 방송에도 좀 더 욕심을 낼 계획이다. 현재 KBS 아침방송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고정 출연 중인데 조만간 다른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그는 “‘방송쟁이’들은 방송을 해야만 스트레스가 풀리고 삶의 활력을 얻는다”면서 소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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