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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진솔한 고백

10년간의 방송생활 뒷얘기 담은 에세이 펴낸 김주하 앵커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베이비 뮤즈 제공

2007. 08. 22

MBC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하고 있는 김주하 앵커가 본업 외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더했다. 그간의 취재 경험과 방송 뒷얘기를 엮은 에세이집을 펴낸 것. 그가 지난 10년간의 일과 삶, 그리고 결혼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느끼는 애환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10년간의 방송생활 뒷얘기 담은 에세이 펴낸 김주하 앵커

올해로 방송 경력 10년째를 맞은 김주하 앵커(34)가 최근 자신의 취재 경험과 방송 뒷얘기를 모아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라는 에세이집을 냈다. 지난 97년 아나운서로 MBC에 입사한 그는 2003년 사내 공모를 통해 보도국 사회부 기자로 전직을 했으며 현재는 ‘주말 뉴스데스크’ 단독 앵커 겸 문화부 기자로 활동 중이다.
1년 전 아들 준서를 낳은 직후 병원에서 만난 그로부터 “책을 쓰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금방 포기할 줄 알았다. 지난 3월 출산휴가를 마치고 단독 앵커로 복귀하며 “아직도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을 때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앵커에 기자 일까지 하면서 책을 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절친한 선배인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도 김주하가 출산 휴가에 들어가면서 책을 쓴다고 하자 “아이 낳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책은 무슨 책이냐”며 극구 말렸다고 한다.

“책을 통해 진정 원하는 게 있으면 후회하지 않을 만큼 노력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휴가 동안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욕심을 냈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어요. 남편이 뭘 하자고 해도 ‘책 때문에 안 돼’라고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됐죠. 기다리다 지친 남편이 나중엔 ‘나 같으면 빨리 끝내고 털어버리겠다’고 비웃더라고요(웃음). 원래 쉽고 재밌게 쓰려고 했는데 막상 글을 쓰고 나니 논문처럼 딱딱해 고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책을 쓰는 지난 1년 동안 그는 남편과의 오붓한 여행도, 아이와의 달콤한 시간도 뒤로 미루어야 했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두려웠어요. 책이라는 게 쓴 사람의 바닥이 드러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마지막 교정을 보면서 그런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저 자신에게는 지난 10년을 정리하는 소중한 기록이 됐거든요.”
지난 6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대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 1위에 선정된 것을 비롯, 그는 닮고 싶어 하는 인물과 관련된 각종 설문조사에서 항상 수위에 오른다. 하지만 그의 시작이 처음부터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MBC 입사 시험 당시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구입한 정장과 구두를 신어 오히려 눈에 띈 응시생이었다.
“입사 당시엔 다들 화려했기 때문에 오히려 수수했던 제가 주목받았을 수도 있어요(웃음). 책을 통해서 가진 게 없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진정 원하는 게 있으면 후회하지 않을 만큼 노력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 역시 가난했기 때문에 ‘방송사에 입사하려면 배경이 있어야 한다’는 소문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들어와서 직접 경험한 바로는 그런 건 없습니다(웃음). 다만 열심히 하기에 앞서 그 일이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검증해볼 필요는 있어요. 제 경우는 아나운서 시험을 보기 전에 방송국 관계자들을 쫓아다니며 굉장히 귀찮게 굴었어요. 무작정 선배 아나운서들한테 찾아가 원고 읽는 걸 봐달라고 하기도 하고…(웃음). 제가 ‘올인’해도 될 만큼 방송에 재능이 있는지 여부가 궁금했거든요.”

10년간의 방송생활 뒷얘기 담은 에세이 펴낸 김주하 앵커

주말까지 방송에 매달려야 하는 그에게 ‘주 5일제’는 꿈 같은 얘기다. 평일에도 문화부 기자로 현장에 나가 취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친정어머니가, 주말에는 남편 강필구씨(37)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가 준서의 깨어 있는 얼굴을 보는 건 길어야 일주일에 30분.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말을 익히기 시작하는 준서한테 무엇보다 엄마의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임을 잘 알지만 그는 아침마다 입술을 깨물고 웃으면서 출근한다.
준서는 잘 크고 있냐고 묻자 그는 “잘 크고 있대요”라며 마치 남의 아이 이야기하듯 했다.
“준서를 보신 분들이 ‘뭘 먹여서 저렇게 튼튼하냐’고 물으시는데 제가 특별히 해주는 건 없고, 그냥 낳을 때부터 컸어요(웃음). 사실 거의 매일 준서가 잠든 후에 집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이 얼굴을 볼 시간이 없어요. 기껏해야 남편이나 어머니한테 오늘은 ‘아이가 어땠다’라는 얘기를 듣는 정도죠. 아이가 할머니나 아빠보다는 제게 거리감을 많이 두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때려서 오게 할 수도 없고…, 그래도 요즘엔 누가 가르쳐줬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안방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자고 있는 제 얼굴에 뽀뽀를 해줘요. 제가 사랑을 못 주니까 아이가 제게 사랑을 주나봐요.”
지난 3월 단독 앵커로 복귀할 때까지만 해도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은 양보다 질”이라며 호기롭게 말했던 그도 지난 몇 개월간 1인3역의 어려움을 겪으며 육아문제가 적지 않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30분, 남편과 준서한테 많이 미안해요”
“누구는 책을 얼마나 사줬느냐고 묻는데 사실 돌이 갓 지난 아이에게 책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런 건 걱정이 안 되는데 엄마의 부재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우리 아이가 나중에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아이가 되지는 않을지 염려가 돼요. 준서가 강하고 바르게 자라서 엄마를 이해해주면 좋겠지만…. 제 나름대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엄마들이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고요.”
지난 5월 돌 잔치 때 준서가 돌잡이로 마이크를 잡자 남편은 크게 낙심을 했다고 한다. 아내를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방송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아들까지 방송인이 되는 것만은 말리고 싶었던 것.
“하루는 남편이 저더러 ‘말이냐?’고 묻는데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었어요. 말은 시야가 좁아서 바로 눈앞의 것밖에 보지 못한대요. 제가 어떤 일에 빠져들면 다른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하거든요. 계속 불러도 대답을 안 하니까 남편이 처음엔 자기를 무시하는 줄 알았대요(웃음).”
그의 남편은 이제는 살림꾼이 다 됐다고 한다. 결혼할 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해준다고 남편이 약속은 했지만, 막상 일주일 내내 자신이 집안일을 못하니까 미안하다고 한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 또한 없었을 것이라며.
“전에는 출장을 간다고 하면 섭섭해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일주일 내내 출장을 간다고 해도 별 불평을 하지 않더라고요. ‘당신 괜찮아?’라고 물어봤더니 ‘이제 포기했어!’라고 하더라고요. 남편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 내조가 필요할 텐데 제가 배려를 받는 데 너무 익숙해져 고마운 걸 잊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는 남편에게 좀 더 잘하고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하려고 해요. 그런 환경에서라면 우리 준서도 존경과 존중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으리라 믿고요.”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커다란 행운”
10년간의 방송생활 뒷얘기 담은 에세이 펴낸 김주하 앵커

지난 5월 말 돌을 맞은 아들 준서와 함께 한 김주하 앵커와 남편 강필구씨. 돌잔치에는 양가 친지들과 탤런트 김선아·김동건 아나운서 등 지인들이 참석했다.


“김주하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은 그의 어깨에 많은 여성 후배들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미모와 재능으로 거저 얻었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성취 뒤에는 그러나 끈질긴 도전이 있었다. 뜨거운 눈물도 있었을 것이다.”(MBC 이진숙 기자)



그는 지난 5월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친정집 근처인 당산동으로 이사하면서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방송국에서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 노선이 있어 편하기도 하거니와 뉴스를 진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주로 정치인들)이 버스 요금, 지하철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른다고 보도하기도 민망해서라고 한다.
“시청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불편하지 않냐고요? 두달 넘게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알아보는 분이 한 분도 없었어요(웃음). 그러고 보니 세상이 좀 각박하게 변한 것 같아요. 버스를 타도 다들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 자기 일에 바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는 관심을 갖지 않더라고요. 노인이나 임신부가 서 있어도 신경을 안 쓰고…. 세상이 편하게 변해가고는 있지만 사람 사이는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여의도 MBC에서 그와 인터뷰하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는 많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곳곳에서 “주하야, 인터뷰 잘해라” “주하 좀 잘 부탁합니다”라는 격려와 당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방송계 안팎에서 두루 인정받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몸에 밴 겸손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남들보다 늦은 스물일곱 살에 아침 뉴스를 처음 맡았을 때도 아버지는 “너무 빨리 맡게 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단독 앵커를 맡았다는 소식에 “겸손해라”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학생들이 닮고 싶은 사람으로 저를 말할 때 칭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김주하가 아닌 앵커 자리에 앉은 김주하를 말하는 거잖아요. 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또 다른 사람이 학생들의 롤 모델이 되겠죠.”
때문에 그는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앞서 ‘뉴스’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김주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성이라는 이름에 안주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뒤에 따라오는 여성들의 길을 넓혀주고 싶다고 한다.
“원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어렸을 적 어머니께 ‘엄마, 나는 커서 뭐가 될까’라고 물어봤더니 ‘선생님. 커피 안 타도 되잖아’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 어머니의 그 말씀은 남녀평등이니, 여성인권이니 하는 말보다 더 피부로 깊이 다가왔어요. 여성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당장에 편안할 수도 있겠지만 내 딸에게, 후배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당장의 편안함보다 힘들어도 여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김주하. 10년 뒤에 그는 어디쯤 있을까.
“뉴스는 정치·경제·사회로만 나눠지는 게 아니라, 문화에도 영화·공연·뮤지컬 등 수많은 분야가 있듯이, 정치·경제도 마찬가지예요. 그걸 모두 다 해보고 싶어요.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 못할까봐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지금 당장 몸은 좀 힘들어도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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