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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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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들의 기 살리는 법’ 집중탐구한 기자 유인경

“마음 약해진 중년 남성들, 큰아들이라 생각하고 포근하게 받아주세요”

기획·김유림 기자 |/글·이승민‘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12. 06

아줌마 특유의 유쾌한 수다로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고 있는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의 편집장 유인경씨. 그가 16년간 기자로 활동해오면서 관찰한 중년 남성들에 대한 보고서를 책으로 펴냈다. “더 이상 여자만이 약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중년 남성들의 기 살리는 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중년 남성들의 기 살리는 법’ 집중탐구한 기자 유인경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지낸다는 유인경씨는 중년 남자들이 안쓰러운 존재로 느껴진다고 한다.


1990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줄곧 생활문화부와 여성부에서 근무해온 유인경 기자(46)가 최근 ‘유인경 기자의 한국 남자 기살리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 ‘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을 펴냈다. 그는 어렸을 때는 4명의 오빠들과 함께 자랐고, 대학도 남학생이 80% 이상인 남녀공학을 다녔으며, 현재 역시 남자 기자가 90%를 차지하는 신문사에서 근무 중이라 원래 남자란 존재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1년 전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남자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그동안 매 맞는 아내, 직장 성희롱, 호주제 등의 문제를 취재하면서 남성들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중년 남성들의 실상을 자세히 알게 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고. 이제 그는 “남자를 더 이상 증오와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안쓰러운 존재’로 여긴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비굴한 행동까지 불사하는 남자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어요. 일을 하는 여자들은 ‘직장 그만두면 집에 가서 아이나 보고 살림이나 하지’라는 생각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남편이 사장인 여자가 직장을 그만두면 사장 마누라가 되지만, 남자는 아내가 사장이어도 직장을 그만두면 바로 백수가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더 이상 여자만이 약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는 아내와 달리 남편들은 점점 어깨의 힘이 빠져요”
그는 남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남성론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한다. 먼저 국내외에서 발매된 50여 권의 서적을 섭렵한 뒤 남자, 특히 중년 남성들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시작했다고. 다음은 그가 말하는 요즘 중년 남성들의 모습이다.
‘디지털 시대에 한발은 디지털에, 한발은 아날로그에 두고 후들거리며 버티고 선 그들, 낡은 무기를 갖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후배들과 싸우며 전전긍긍하는 그들, 하고 싶은 말은 가득한데 정작 할 말을 제대로 표현 못하는 그들, 속으론 피 흘리고 곪아도 용감한 척 혼자 속앓이를 하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
그는 급격하게 변한 사회현실도 남성들의 위치를 많이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져 직장도 능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삶의 전쟁터가 됐으며 흔히 최고의 남편감으로 꼽히던 사(士)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더 이상 앉아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1년에 1천 명씩 쏟아지는 사법고시 합격자들로 변호사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의사도 개원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65세 정년 보장도 옛날 이야기이고, 이젠 새파란(?) 학생들에게 수업능력을 평가받으며, 제자들 취직 자리를 알아보러 동분서주해야 하는 신세이니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고.
‘중년 남성들의 기 살리는 법’ 집중탐구한 기자 유인경


“그에 비해 여성들은 중년이 되면 제 2의 전성기를 맞아요. 육아의 의무가 어느 정도 끝나면서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다시 만나고, 문화센터에 다니거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하죠. 또한 여성호르몬이 줄어들고 남성호르몬이 늘어나면서 더욱 용감하고 씩씩한 아줌마가 되기 때문에 젊어서 남편에게 주눅들었던 아내들도 나이 들면서 더 이상 남편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요.”
그는 요즘 아내들이 일주일 이상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서 ‘까불지 마라!’는 문구를 냉장고에 붙여놓고 간다는 우스갯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의미는 바로 ‘까스(가스) 조심, 불조심, 지퍼 조심, 마누라 찾지 말고, 라면 끓여 먹으셔!’의 약자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곰국을 잔뜩 끓여놓고 여행가던 아내들이 이제는 그것도 안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중년 남성들이 아내에게서 소외받는 동안 자식들 역시 아버지의 존재를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회사에 몸 바쳐(?) 일하느라 자식들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살아온 아버지들에게 아이들이 거리감을 느끼는 것. 아버지들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자란 자녀들에게 나이 들어 새삼스레 살갑게 대하기가 쉽지 않다.

‘중년 남성들의 기 살리는 법’ 집중탐구한 기자 유인경

유인경씨는 주부들에게 “중년이 된 남편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라”고 당부한다.


요즘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기러기 아빠’ 역시 아내와 자식에게 소외받는 대표적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이 만난 한 외과의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국으로 아이들과 아내가 떠나고 7년째 서울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한 의사가 어느 날 가족들에게 미국에서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아내와 아이들의 반응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현재의 생활에 매우 만족해했고, 아내 또한 미국에서 종교활동을 하느라 남편과 함께 지낼 시간이 없다고 한 것. 결국 그는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여전히 병원에서 근무하며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대화를 하면 가족 사이에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려요”
그는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 여성들의 인권이 많이 신장된 만큼 남성들을 위한 사회적 조치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여성단체는 많지만 남성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 한 예로 의료보험도 유방암에 걸리면 최고 1백만원까지 지원받지만, 전립선암의 경우 10만원밖에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이제는 남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고, 인생의 또 다른 사춘기를 맞아 힘들어하는 중년 남성들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년은 모든 남성들에게 힘든 시기예요. 제가 만나본 대부분의 남자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들 힘들어하더라고요. 하지만 중년은 인생의 제 2막에 불과해요. 중년 남성들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평소 자신이 원하던 일을 시작하든가 아니면 전혀 알지 못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인생의 활력을 찾아야 하죠. 잠시 잊고 있었던 ‘나’라는 존재를 되돌아보면서 축 늘어져 있던 어깨를 다시 한번 치켜올리는 마음의 변화가 가장 절실한 것 같아요.”
또한 그는 아내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아내의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비록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언정 아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만으로도 아내와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자녀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요즘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인지, 디지털 카메라는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등을 물어보며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보라는 것. 비록 오랫동안 대화가 지속되지 않더라도 이러한 작은 관심은 닫혀 있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고 한다.
그는 중년 남성들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남편의 기를 살리기 위한 아내들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아내들은 ‘내 남편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편의 약한 모습을 볼 때마다 큰아들처럼, 친구처럼 포근하게 받아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또한 그는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고 여성호르몬 분비가 늘어나면서 가끔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기도 하고,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물짓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늙어서 주책이야”라고 쏘아붙이기보다는 못 본 척 돌아섰다가 나중에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라고 당부한다.
“중년 남성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내라고 해요. SOS를 치고 싶지만 그동안 부려온 허세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아내가 떠나갈까 두려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죠. 이럴 때 아내들이 남편을 보듬어줘야 해요. 칭찬을 하고, 아이 아빠로서 위치도 확인시켜주고요.”
“부부의 행복한 삶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유인경씨.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너무 바쁜 스케줄 때문에 남편과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아침방송 패널로, 시사주간지 편집장으로, 무수히 많은 토론회와 세미나에 참석하고 강의를 하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원고 청탁을 소화하다 보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기 때문. 특히 요즘에는 수험생인 딸 때문에 남편에게는 더욱 소홀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남편에 대한 연민이 생겨요.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남편이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도 나이가 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남편 역시 한창 나이 때에 비해 건강이 많이 약해진 저를 보면서 안쓰러워 하고요.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중년의 시작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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