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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조언

30여년간 부부와 가정문제 상담해온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글·강지남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2005. 11. 02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이 최근 부부·가족 문제와 관련한 실제 사례와 해결방안을 담은 책 ‘결혼에 갇힌 여자들’을 펴냈다. 73년부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몸담아 결혼제도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도와온 곽 소장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조언을 들려주었다.

30여년간 부부와 가정문제 상담해온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59)은 호주제가 폐지되기까지 각종 토론회와 심포지엄, 서명운동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1956년 시작된 호주제 폐지 운동을 현실로 만들면서 뜻 깊은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그가 최근 ‘결혼이란 무엇인가’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찾아왔다.
곽 소장이 최근 펴낸 ‘결혼에 갇힌 여자들’에는 남편과의 갈등, 시집과의 불화, 이혼 등으로 고통받는 여성들과 함께 보내온 지난 32년간의 세월과 그 속에서 깨달은 결혼제도의 문제점, 부부·가족 갈등의 해결방안 등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하루에 많게는 10건이 넘는 부부갈등과 이혼, 입에 담을 수 없는 결혼생활의 부조리한 면들을 접하면서 ‘분명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그러면서 이혼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결혼이란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어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곽 소장은 결혼생활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가지는 불만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여성이 가지는 불만은 대체로 결혼제도나 결혼문화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부장적이고 시집 위주의 결혼생활에서 오는 갈등이 그것. 때문에 곽 소장은 “결혼생활에 대한 아내의 불만이 없을 때 가정문제 또한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남성들의 불만은 이와 다르다. 남편이 아내에게 갖는 불만 중 상당수가 ‘아내는 어머니 같지 않다’는 데서 온다는 것. 아무리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도 대개의 남편들은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아들로서 대접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아내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희생과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성은 결혼으로 자신과 혈연이 닿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가족이란 이름으로 얽히게 되는데, 남성들은 아내들이 그것을 위해서 결혼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오로지 남편 하나만 보고 결혼을 결정한 거지요. 이것을 이해해야 비로소 아내와 여성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새로운 ‘결혼의 적’은 위세등등한 친정과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
30여년간 부부와 가정문제 상담해온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곽배희 소장은 “이혼하려거든 제대로 준비해서 이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정폭력, 고부갈등, 부부간 대화 부족, 외도, 성차별 등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행복한 결혼생활을 방해하는 ‘결혼의 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갈등요소가 ‘결혼의 적’으로 등장했다. 곽 소장은 새로운 결혼의 적으로 위세등등한 친정과 쉽게 이혼을 생각하는 경향을 꼽는다. 곽 소장은 친정의 위상이 과거보다 높아지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시집의 불건전한 위세가 친정으로 전이된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접한다고 한다. 사위에게 폭언하는 장인·장모는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것. 곽 소장은 “부부 사이에 작은 문제만 생겨도 친정으로 달려가는 딸들의 태도 또한 무척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20∼30대의 젊은 부부들 중에는 자기 배우자가 애초에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면서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면 차라리 현명한 사고방식일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인내심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주로 이혼문제로 상담소를 찾아오는 여성들을 상담하고 KBS의 ‘아침마당’에 출연해 부부상담을 해주면서 ‘이혼 박사’란 별명을 얻은 곽배희 소장은 때때로 남성들로부터 ‘이혼 신봉자’라는 공격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곽 소장의 입장은 명료하다. ‘이혼을 하려거든 제대로 잘하라. 그러나 가능하다면 인내와 노력을 발휘하라’는 것. 그동안 곽 소장은 ‘이혼만 해주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위자료나 양육권·양육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이혼해 심각한 ‘이혼 후유증’을 앓는 여성들을 많이 봐왔다. ‘공부시켜주겠다는 결혼 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혼하려고 한다’는 등 성급하고 충동적으로 이혼을 생각하는 여성들 또한 많이 만났다. 이러한 여성들을 위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곽 소장이 10여년 전부터 도입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혼숙려제도다. 협의이혼 신청 후 일정기간 곰곰이 생각할 숙려기간을 가져 꼭 필요할 경우 준비된 이혼을 해서 성급한 이혼은 막자는 것.

“여전히 많은 부부가 재산분할이나 양육권·양육비 문제를 법원이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오해하고 있어요. 합의이혼을 하는 데는 5∼10분밖에 안 걸려요. 여타의 문제는 둘이서 해결하고 오라는 뜻이지요. 숙려기간을 둠으로써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 이혼 당사자의 피해를 줄이자는 뜻이지요.”

민주화 운동에 몸 던진 남편에 대한 믿음으로 지켜온 30년 결혼생활
30여년간 부부와 가정문제 상담해온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많은 사람들은 곽배희 소장의 결혼생활에 대해 궁금해한다. 결혼과 이혼 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의 진짜 결혼생활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서른 살 때 서른두 살인 남편(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을 만나 결혼해 지금까지 금실 좋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결혼생활이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인 남편은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결혼 후에도 몇 차례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다. 곽 소장은 ‘투옥됐을 때는 투옥이 돼서, 수배 중일 때는 어디에서 찬바람은 피하는지,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알 수 없어 항상 걱정을 안고 살았다’고 한다. 꼬박꼬박 생활비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옥바라지까지 시킨 남편과 결혼생활을 이어온 원동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곽 소장은 “믿음”이라고 답했다.
“남편이 하는 일이 정의로운 일이라는 믿음이 저를 버티게 했어요. 수배자의 아내였지만 당시의 저는 참 씩씩했어요. 동지로서, 동료로서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왔어요. 남편에게 돈 못 벌어온다고 타박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전 평생 액세서리 같은 것에 관심 한번 가져보지 않은 특이한 여자거든요(웃음).”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방송국 PD로 일하다 대학 은사인 고 이태영 박사의 부름을 받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곽배희 소장의 원래 꿈은 종군기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어요. 젊었을 때 꿈의 중심은 ‘나’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억울하고 소외당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보람을 느끼지요. 하지만 우리가 여성을 위해서만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우리는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꿈꿉니다. 아직은 여성이 차별받고 있는 세상이니 여성에게 힘이 돼주어야지요.”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1976년 여성계 인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지은 백인회관을 떠나 현재 한 빌딩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건물이 너무 낡아 정들었던 건물을 헐고 새로 짓기로 했기 때문. 이 때문에 곽 소장은 요즘 돈 걱정이 많다. 2007년 완공을 목표로 새 빌딩을 짓는 데 필요한 1백억원 가운데 30억원밖에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곽 소장은 마지막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기업이 많지만 여성운동에는 관심이 적은 것 같다”며 “안정적인 기반에서 여성과 가족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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