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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타의 명강의

20년 연기 인생, 할리우드 진출 계획 밝힌 영화배우 박중훈

■ 기획·이한경 기자 ■ 글·김희정 ■ 사진·홍중식 기자

2004. 06. 11

톱스타 박중훈이 대학 강단에 섰다. 배창호 감독 주선으로 건국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영화인과의 대화’에 초청 강사로 나선 것. 소문난 재담꾼인 그는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 갑작스럽게 미국 유학을 떠난 사연, 두번째 할리우드 진출 계획 등에 대해 털어놓았다.

20년 연기 인생, 할리우드 진출 계획 밝힌 영화배우 박중훈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장동건입니다.” 지난 5월13일 건국대학교 새천년 국제회의장에 깔끔한 검은색 수트와 자줏빛 넥타이 차림으로 들어선 박중훈(40). 예술문화대학 영화예술과가 마련한 강연에 ‘1일 교수’로 나선 그는 특유의 유쾌한 농담으로 강의실 분위기를 ‘업’시켜 놓은 후 “촬영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며 강의를 시작했다.
이번 강연은 지난 4월 안성기와 배창호 감독, 송낙원 교수 등이 함께 한 대담형식 ‘영화인과의 대화’에 이은 두번째 프로그램. 영화 ‘투 가이즈’ 촬영을 마친 후 미국 방문 일정을 앞두고 있던 박중훈은 평소 절친하게 지내는 배창호 감독의 부탁으로 강단에 섰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한국 영화계의 현황과 미래에 관한 내용.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가 어떻게 배우가 되었는지에 관한 질문이 먼저 터져나왔다. 그러자 그는 뜻밖에도 원래는 미대 진학을 꿈꾸었다고 털어놓았다.
“미대에 가려고 중학교 때까지 미술을 공부했어요. 제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자 미술 선생님이 ‘왼손잡이가 무슨 미술을 해!’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왼손으로 그려서인지 그림이 어두워서 좌절감을 느끼던 터라 그 말을 듣고 미련 없이 그만뒀어요.”
미술을 포기한 그에게 배우의 꿈을 불어넣어준 사람은 고교시절 국어교사. 그는 “어느 날 국어선생님이 ‘배우란 참 괜찮은 직업이야. 연극이 끝나고 혼자 텅 빈 객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멋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을 듣고 솔깃해 연극반에 들어가서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는 대략 37편 정도. 순탄했으리라는 짐작과 달리 그는 영화배우로 데뷔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영화계에서는 그가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영화사에서 6개월 동안 청소와 잔심부름을 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는 80, 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 하지만 지난 20년간의 배우생활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학생들의 질문에 그는 자신을 ‘행운아이자 불행아’라고 표현했다.
“대한민국에서 영화배우 최초로 개성 있는 연기를 하게 됐다는 점에서 전 행운아예요. 제가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남자배우란 그저 멋있게 분위기만 잡는 사람’일 뿐이었지만 배창호, 이명세,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개성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나이가 많으면 안성기, 젊으면 박중훈을 시켜야 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로 남자배우가 많지 않았는데, 그만큼 작업환경도 열악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는 점에서 불행아이기도 하죠.”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90년대 초반 그는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에 대해 그는 “제가 미국으로 떠난 날이 정확히 91년 1월27일이었어요” 하며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떠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누구나 저한테 친절했고 소녀팬들은 저를 우상처럼 떠받들었죠. 잘생겼다, 연기 잘한다, 하고 칭찬해주니까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왕자병에 걸렸던 거죠. 그런데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묘비명에 ‘박중훈, 영화와 함께 잠들다’라고 써줬으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유학을 떠나게 됐다는 그는 힘든 유학생활을 하면서 후회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영화배우 박중훈’을 만들어준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는 ‘투 가이즈’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세이예스’나 ‘황산벌’에서 보여주었던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통해서 20대와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가 제작에도 참여한 ‘투 가이즈’는 한탕을 노리는 두 남자 이야기로, 그는 영화 속에서 카드빚 때문에 도망다니는 차태현을 쫓는 카드깡 해결사로 나온다.

20년 연기 인생, 할리우드 진출 계획 밝힌 영화배우 박중훈

배창호 감독의 주선으로 1일 강사로 나선 박중훈. 그는 특유의 유쾌한 농담을 던지며 솔직하게 자신의 영화 인생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는 할리우드 진출 계획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가 출연할 예정으로 알려진 두번째 할리우드 진출작은 ‘비빔밥’. 이 영화는 그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인 ‘찰리의 진실’의 조너선 드미 감독이 그를 위해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더 화제가 되고 있다.
“‘비빔밥’은 조너선 드미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영화예요. 그 감독님과 찍은 ‘찰리의 진실’ 이후 할리우드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왔지만 동양계 형사나 악당처럼 빤한 것뿐이었어요. 작은 배역이라도 저에게 맞는 역할이 아니면 안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감독님이 저를 좋게 보셨는지 주연으로 캐스팅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영화 ‘찰리의 진실’ 촬영 당시 조너선 드미 감독과 각별한 우정을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비빔밥’은 한국식당에서 일하는 동양남자가 음식평론가인 여자를 만나서 벌이는 좌충우돌 로맨틱 코미디. 현재 섭외중인 여주인공은 드류 배리모어. 하지만 정작 그는 귀네스 팰트로를 기대하고 있다고 농담을 했다.
‘비빔밥’에 앞서 그는 신작 ‘천군’ 촬영에 들어간다. ‘천군’은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로 ‘황산벌’에 이어 그에게는 두번째 사극영화. ‘황산벌’의 계백에 이어 다시 장군 역을 맡은 것이 부담스럽다는 그는 “‘천군’은 장군이 되기 이전의 인간 이순신에 대해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황산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올해로 데뷔 20년째를 맞는다는 박중훈. 적지 않은 시간을 영화와 함께 했지만 아직도 영화와 함께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꿈은 “노(老)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제 마지막 소원은 70~80세가 되어서 의미 있는 영화에 출연한 후, 제 아이들과 함께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보는 거예요. 영화가 끝나면 제가 죽어 있는 거죠. 배우가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죽는다는 것 참 멋있는 일이잖아요. 제 묘비명에 이런 글귀를 써줬으면 좋겠어요. ‘박중훈, 영화와 함께 잠들다’. 늙어 죽는 그날까지 영화를 하다 죽고 싶어요.”
중앙대 연극영화과 84학번인 그는 스무살이나 어린 후배들에게 “배우가 되면 함께 공연하고 감독이 되면 자신을 배우로 써달라”고 부탁하며 강의를 마쳤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며 기꺼이 자신의 이메일을 공개하고 후배들을 격려하는 그의 모습에서 영화를 아끼는 진정한 영화인 박중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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