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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렇게 키웠어요

자신의 육아 체험 바탕으로 자녀교육서 펴낸 아나운서 김자영

“공부도 다양한 체험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2004. 03. 10

EBS 교육 상담 프로그램 ‘부모의 시간’을 진행하고 있는 김자영 아나운서가 자신의 육아 체험을 바탕으로 자녀교육 지침서 ‘초등학생 때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를 펴냈다. 그가 털어놓은 좌충우돌 딸 키우기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더한 초등학생 자녀교육 포인트.

자신의 육아 체험 바탕으로 자녀교육서 펴낸 아나운서 김자영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되면 주위에선 “이제 다 키웠네” 하고 덕담을 건네지만 정작 엄마들의 고민은 이때부터 더욱 커진다. 영어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나, 공부 습관은 어떻게 들여야 하나, 요즘은 경제교육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시켜야 하나,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친구들을 잘 사귀어야 하는데…. 더구나 ‘누구네는 이렇게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일까’ 하는 불안감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이런 엄마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 나왔다. 6년째 EBS 자녀교육 상담 프로그램 ‘부모의 시간’을 진행하고 있는 김자영 아나운서(40)가 펴낸 ‘초등학생 때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가 그것. 책엔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들과 관련해 김씨가 딸 비단이(12)를 키우며 겪은 체험담과 전문가들의 조언, 관련 정보가 꼼꼼하게 들어 있다. 일종의 초등학생 자녀교육 지침서인 셈이다.
“‘부모의 시간’은 청취자들이 자녀교육에 대한 상담을 해오면 전문가들이 나와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저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좀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비단이를 더 잘 키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죠. 그래서 그동안 쌓인 정보들을 정리하면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책으로 낸 거예요. 영·유아 관련 책은 많은데 초등학생 관련 교육서는 의외로 없더라고요.”
그는 방송을 하며 엄마들이 ‘어느 학원이 좋더라’ ‘무슨 과외는 어떻게 해야 한다더라’ 하는 정보는 잘 알아도 정작 필요한 자녀교육 방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설마 이렇게까지’ 싶은 상담을 받을 때도 있다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신도 자녀교육에 무지했다고 한다.
“비단이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돌봐주시다가 세살 때부터 동네 아주머니에게 맡기거나 어린이집에 보냈어요. 아침에 출근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아이에게 ‘빨리빨리’란 말을 무척 많이 썼어요.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줘 안좋다고 하더라고요.”

딸이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불안한 마음 생기지만 개인과외나 학습지 안 시켜
그는 93년 김민석 전 의원과 결혼, 같은 해에 비단이를 낳았다. 둘 다 서울대 출신이니 비단이에 대해 막연한 자신감과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부모들은 흔히 아이가 서너 살 때는 천재인 줄 알았다가, 일곱살 쯤 되면 평범하다는 걸 알고 실망하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지진아라며 푸념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김씨는 어땠을까.
“당연히 IQ가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단체로 IQ 검사를 했는데 두 자리 숫자였어요(웃음). 큰 충격을 받았죠. 보통 엄마들이 IQ에 큰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그런데 전문가 이야기가 IQ를 맹신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위안을 받았어요.”
그 역시 엄마로서 비단이에 대해 환상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딸이 그림을 잘 그려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천재 화가인 줄 알았다는 것. 그런데 학교에 들어간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는커녕 미술로 교내에서조차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웃었다.

자신의 육아 체험 바탕으로 자녀교육서 펴낸 아나운서 김자영

딸 비단이와 같은 공부방을 쓰는 김자영씨는 공동 서재가 아이교육에 좋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니까 미술학원에 보내요. 부모는 아이가 하겠다는 것을 밀어줄 의무가 있잖아요. 아이를 격려해주는 것은 좋지만 예단을 하거나 기대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아이에게는 모든 가능성의 씨앗이 있다고 하잖아요. 지금은 그냥 지켜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김자영씨가 사는 여의도는 강남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은 곳이다. 그런데 그는 비단이에게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에 보내 공부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학습지조차 시키지 않는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공부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다고 다짐했다가도 극성인 주위 엄마들을 보면 불안해서 과외를 시키는데 의외였다.
“학습서 한권을 하루에 두세 쪽씩 하고, 방학 때는 다른 학습서로 복습하는 정도만 하고 있어요. 고학년으로 올라가니 불안한 마음이 생기죠. 아이도 불안해하는데, 엄마 마음은 어떻겠어요. 그래도 전 아이에게 그래요. 다른 아이들은 학원선생이나 과외선생이 억지로 머리에 넣어준 것이지만 너는 스스로 깨치는 거니까 지금은 다른 아이들보다 성적이 떨어진다고 해도 더 잘하는 거라고요.”
비단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반에서 자기가 구구단을 가장 늦게 외운다는 말을 했을 때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자신할 수 없지만 아이가 지금처럼만 따라주면 이 원칙을 계속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끔 한다. 그의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공부방이다. 방 한칸에 두개의 책상이 앞뒤로 나란히 놓여 있는데 앞의 책상이 비단이 것이고 뒤의 것은 김자영씨와 김민석 전의원이 함께 쓴다.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부모가 뒤에서 볼 수 있는 구조다.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보통 텔레비전을 보는 거실이나 밥을 먹는 식탁이잖아요. 그보다는 좀더 생산적인 가족공동구역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꾸몄어요. 한공간에서 공부를 하니까 좋아요. 감시를 하자는 게 아니라 같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만들고 싶었어요.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니까요.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책을 읽는 척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웃음).”
엄마들의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가 영어교육이다. 심지어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하기도 전부터 영어비디오를 틀어놓고, 돌도 안 지난 아이를 앉혀놓고 플래시카드를 보여주는 엄마들도 있다. 김씨는 비단이가 조기 영어교육의 부작용을 경험한 산 증인라며 엄마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비디오를 잠깐 보여주는 등 그저 영어라는 게 있다는 정도의 인식만 심어준 상태에서 일곱살 때 영어유치원을 보냈어요. 솔직히 여름방학 때 맡길 곳이 없어 출근할 때 데려다놓고 퇴근할 때 데려오려는 엄마의 욕심 때문에 선택을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아이가 충격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에요.”

영어유치원 보냈다 아이에게 상처 주기도
그가 옆에 있던 비단이에게 “그때 많이 힘들었어” 하고 묻자 큰소리로 “응” 한다. 벌써 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당시의 일이 비단이에게는 상처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한달이 지났을 때 성적표를 받아보고 깜작 놀랐어요. 외국인들은 극단적인 표현을 잘 안 쓰거든요. 그런데 평가란에 ‘항상 질문에 대답하기를 주저하고 늘 대답에 자신이 없습니다. 매우 수줍어하고, 교실에서 말을 한마디도 안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한달 동안 하루 종일 말을 한마디도 안했던 거예요. 그렇게 활달했던 아이가 자신감 빵점이란 평가를 받은 걸 보고 ‘내가 잘못했구나’ 반성을 했어요.”

자신의 육아 체험 바탕으로 자녀교육서 펴낸 아나운서 김자영

초등학생 때는 최대한 놀게 하고 싶다는 게 김자영씨의 교육원칙이다. 비단이와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김씨.


그후 한동안 비단이는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영어를 가르치려고 시도를 해도 아이가 영어를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서 2년여를 쉬게 한 후 2학년 2학기 때 다시 영어를 시작했다. 그제서야 아이는 비로소 영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하니까 흡수가 훨씬 빨라요. 예를 들어 여섯살 아이가 6개월 걸리는 과정이라면 아홉살은 두달이면 끝나요. 그래서 지금은 일찍 시작한 아이들하고 차이가 없어요. 너무 일찍 아이를 고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거죠.”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중언어를 배울 환경이 안되기 때문에 섣부른 조기 영어교육은 효과도 낮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제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가 조기 영어교육의 적절성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만 4세 아이들은 평균 29.9점, 만 7세 아이들은 평균 60.6점이 나왔다. 너무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영어교육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게임을 통한 영어교육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영어게임을 해도 만 4세 아이들은 게임 규칙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흥미를 못 느끼는데 만 7세의 아이들은 게임규칙을 이해하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게임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영어교육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해요. 심지어 뇌연구가인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는 만 6세 이전의 과도한 영어교육은 스트레스증후군은 물론 학습기억 및 신경세포회로 형성에 장애를 줄 수도 있다고 경고하더군요.”
김씨의 자녀교육 방법 중에 눈에 띄는 게 비단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날그날 할 일을 스스로 기록하고 체크하게 하는 것이다. 비단이 책상에는 오늘은 ‘숙제’ ‘공부’ ‘피아노’ ‘책가방 싸기’ ‘놀기’ 등 10여 가지 항목이 적혀 있고 이미 한 것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벼룩시장에서 딸과 물건 팔아 돈의 소중함과 경제원리 알게 해
“방송을 통해 배운 건데, 처음 시작할 때는 여러 번 실패할 각오를 했는데 다행히 잘 받아들였어요. 초등학생이 되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줄 알더라고요. 아이 스스로 자기가 할 일을 챙길 줄 아니까 자립심이 생겨요.”
그는 지난해에는 한달 동안 강원도 산골로 비단이를 ‘유학’ 보내기도 했다. 남들은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보낸다는데 정반대의 선택을 한 셈이다.
“똑같은 곳, 똑같은 아이들만 보다가 전혀 다른 세계를 접하니까 사고의 폭이 넓어진 것같아요. 자연에 익숙해진 것도 좋고요. 다른 엄마들도 한번쯤 아이를 시골학교 경험을 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엄마는 매일매일 걱정을 하겠지만 아이는 적응도 잘하고 잘 지내요.”
최근 자녀들의 금융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에게도 금융교육과 관련해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고 한다.
“아이랑 길을 가다가 예쁜 은방울 목걸이를 봤는데, 비단이가 모아놓은 용돈으로 그걸 사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딴에는 생활의 지혜를 일깨워준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물건값 깎는 법을 가르쳐주었어요. 5만원이면 3만원으로 7만원이면 5만원으로 깎으라고요. 싫다는 아이를 등을 떠밀어 가게 안에 들여보냈는데 나오면서 ‘다시는 이런 일 시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저의 단순무식한 생각이 아이에게 나쁜 교육을 시킨 셈이죠.”

자신의 육아 체험 바탕으로 자녀교육서 펴낸 아나운서 김자영

김씨는 지난해 비단이를 한달 동안 강원도 산골학교를 보내 자연을 체험하도록 했다. 아이에게는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왼쪽에서 네번째가 비단이.


반면 돈의 소중함과 경제원리를 깨우칠 수 있는 경험도 있었다. 방송국에서 주최한 벼룩시장에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 함께 직접 판매를 한 것이다.
“비단이가 사람들과 흥정을 하면서 물건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어떻게 매매가 이루어지는지 등 경제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아요. 그때 총 3만원을 벌었는데 자릿값 5천원을 내고, 수고했다며 저에게 5천원을 주고는 자기가 2만원을 갖는 거예요. 제가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먹자고 아무리 꼬드겨도 저금해야 한다며 그냥 집으로 오더라고요. 돈의 소중함과 가치를 느낀 거죠. 그런 경험을 해보는 게 아이에게는 좋은 것 같아요.”
공부도 중요하고, 아이에게 많은 체험을 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설거지를 할 때 아이가 말을 시키면 귀찮아하지만 전화벨이 울리면 서둘러 달려가 전화를 받지 않느냐”며 “아이는 전화보다 더 귀중하다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대화의 시작인 것 같아요. 상대방이 들어주어야 말할 맛이 나는 거잖아요. 특히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짜증나’ 그러는데 엄마가 ‘네가 짜증날 일이 뭐가 있어’ 그러면 대화가 단절되죠. 그래서 저는 수첩에 ‘아이의 감정을 일단 받아들일 것’이라고 써놓고 매일 세뇌를 해요.”
지난 대선 때 남편인 김민석 전 의원의 행보를 놓고 지금까지도 말이 많다. 문득 김씨는 아이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평소 비단이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라 당연히 아빠의 선택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줄 기회가 있었어요. 아이도 어른들 말을 다 듣거든요. 이렇게 설명했던 것 같아요. ‘선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아빠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아빠를 싫어해 나쁜 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아빠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까지고 그에 대한 판단은 아이가 스스로 하겠죠. 비단이도 이젠 신문을 보는 나이니까요.”
그는 6년 동안 자녀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이가 모든 고민과 생각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중심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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