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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주목받는 사람

고 정몽헌 회장 49재 앞두고 만난 ‘윙크버릇 고치세요’의 주인공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정회장님, 당신에게 ‘통일 윙크’를 보내고 싶습니다”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2003. 10. 10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투신자살 이후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던 현대아산이 대북 관광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 두 회장의 등 뒤에서 묵묵히 일해오던 그는 요즘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뜨고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가 말하는 두 회장과의 관계, 대북 관광사업 계획, 그리고 아내 이야기.

고 정몽헌 회장 49재 앞두고 만난 ‘윙크버릇 고치세요’의 주인공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에 이어 대북사업을 책임지게 된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그는 두 회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그를 만난 것은 고 정몽헌 회장의 49재가 있기 이틀 전인 지난 9월19일이었다. 정회장의 장례 이후 “이제는 눈물을 닦아야겠다. 정회장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해야겠고 더는 울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말했던 그는 인터뷰 약속을 몇 차례 뒤로 미룰 만큼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미안하다. ‘파란집(청와대)’에 다녀오느라 늦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 요즘 김 사장님의 인기가 높습니다. ‘김사모’라고 김윤규를 사랑하는 모임까지 생겼는데요.
부담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모임이 아니라 제 윙크를 사랑하는 모임이겠죠(웃음). 사실은 제가 하는 대북 관광사업을 이해하기 때문에 지지해주는 것 같습니다. 원래 학교에서도 말 안 듣는 녀석을 반장 시키는 것처럼 저를 앞장세워서 사업 잘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 늘 두 회장의 뒤에서 있다가 최근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모든 인생살이가 다 그렇습니다. 친구간이거나 부부간이거나 자기 위치에서 잘하는 것이 주변 사람을 가장 잘 돕는 길입니다. 자기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말만 많은 사람들은 도움이 안되죠. 그래도 전 명예회장님 따라다니면서 텔레비전에 많이 나온 편입니다.
높은 분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군가 “왕회장님은 어떻게 저런 사람을 가까이에 두고 있을까?”하는 말을 들으면 안되지 않습니까. 이왕이면 “과연 회장님이 사람을 잘 보셨다”는 평가를 밖으로부터 받아야 하니까 사장이 되고서도 새벽에 출근하고, 주말과 휴가도 없이 일했던 겁니다. 그게 정주영식 경영기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출근하면 왕회장님 사진을 보고 “회장님, 제가 회장님한테 당한 것 아닙니까?” 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합니다만 두 회장님에게 배운 것이 많습니다.
유서 내용은 자신에 대한 애정과 사업 당부


- 이틀 뒤면(9월21일) 벌써 정회장 49재입니다. 장례 당시와는 느낌이 다를 것 같습니다.
49재는 속세를 완전히 떠나 하늘로 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왕회장님이나 정회장님이 항상 제 곁에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분들이 돌아가시지 않으셨으면 하는 생각이 하루에 열번도 더 듭니다. 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저를 도와주셨던,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분들의 자리가 얼마나 컸던가를 새삼 느낍니다. 49재가 다가오니 요즘엔 그런 생각이 더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분들이 지금도 제 주변에서 제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사무실을 나가면서 두 회장님의 사진을 보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갑니다. 그러면 일이 잘 되는데, 어쩌다 보고를 안하고 가면 일이 잘 안 풀려요. 큰일을 앞두고 묘소에 가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일이 잘되면 서류를 보여드리며 보고도 합니다. 주로 새벽에 찾아가는데, 그럴 때마다 “부지런한 놈이 굶어죽지 않는다. 젊은 놈이 무슨 잠이 그렇게 많으냐”고 야단치시던 왕회장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 정회장의 유서를 늘 품에 품고 다니시며 꺼내 보신다고 하던데…
유서가 아니라 그 문구를 수첩에 써서 지니고 다닙니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정회장님이 국문과를 나와서인지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어리석은 행동하는 저를 여러분이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하는 그 몇줄에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당부의 말이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명예회장님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 모실 때 저희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하는 말씀을 남겼는데, 제가 왕회장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기도 했지만 정회장님은 그 말을 통해 제게 대북 관광사업의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고 정몽헌 회장 49재 앞두고 만난 ‘윙크버릇 고치세요’의 주인공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현대아산 주식 갖기 운동의 접수 현장. 1주당 금액은 5천원으로 전화(02-3669-3863∼5)와 홈페이지(www.hdasan.com)에서 접수하고 있다.


- 유서 마지막 구절의 “당신, 너무 자주하는 윙크 버릇 고치세요”라는 문구가 화제가 됐습니다.
저는 처음에 ‘정회장님이 제 윙크를 보고 기분이 나빴었나’ 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눈을 고치지 못하고 일에 매달린 것에 대한 애정어린 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았는데, 아무래도 큰 사업을 하려면 건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 비행기 사고로 신경을 다쳐 윙크하는 습관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과로로 더 심해진 것 같은데 수술계획은 있는지…
통증은 없습니다. 신경과 핏줄이 닿아서 안면경련이 자주 일어나 그렇다고 합니다. 어디서는 ‘윙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통일 윙크’ ‘미스터 윙크’라는 별명이 붙어서 이 윙크를 어떻게 예쁘게 만들어 보려는 생각도 있습니다(웃음). 아무튼 건강을 위해서 의사와 제대로 상의를 할 생각입니다. 악화되지 않으면 그냥 두려는 생각도 있고, 더 심해져 눈에 이상이 생기면 일하는 데 지장이 있으니까 수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 가까이서 본 정회장은 인간적으로 어떤 분이셨나요.
국문학도라 감성이 뛰어나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정보를 습득해 아주 해박한 분이었습니다. 한번 말씀을 시작하면 한이 없는데, 워낙 과묵한 편이라 그런 경우는 몇번 없었죠. 그래도 가끔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합니다. 왕회장님에게 경영 수업을 받으며 배운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금강산·개성에 ‘평화의 민족동산’ 만들 계획

- 정몽헌 회장의 죽음 이후 국민들은 유가족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망인과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사실 요즘 일이 바빠서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만 유가족들은 요즘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에겐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구상을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잘 이겨내리라고 믿습니다.
- 현재 진행중인 대북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현재 우리나라는 북한과 분단 상황이라 대륙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섬도 아니고, 반도도 아닌 셈이 됐습니다. 저희 현대아산이 금강산과 개성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걸 기반으로 대륙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입니다. 이제 극동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주역으로 우뚝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저희 현대아산의 사업 모토인 ‘강한 나라, 강한 민족’을 만드는 길일 것입니다.
- 최근 진행하는 주식공모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현대아산 주식 갖기 운동’입니다. 현대아산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국민들이 산다는 것인데, 시민단체 등 30여개 단체가 1백만명의 서명을 받아 현대주 갖기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해오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데, 저는 이 또한 정회장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봅니다. 그동안 대북송금이다 뭐다 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회장이 자신의 몸을 던짐으로써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북 관광사업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사업이 되기 위해선 현대 혼자가 아닌, 국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1백만명이 됐든 2백만명이 됐든 현대아산의 주식을 한주라도 나눠 가지면 그것이 바로 국민주가 될 것이고, 그 길이 현대가 국민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대북 관광사업은 현대만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입니다.
- 사업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더 설명해주신다면.
우리는 개성에 50만평 금강산에 50만평, 합해서 1백만평의 ‘평화의 민족동산’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거기에 주식청약을 하신 분들이 유실수를 심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 분들이 참가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사업에 대한 책임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주주들에게 사업진행과 방향에 대해서 제대로 알리고 투명하게 진행할 것입니다.



고 정몽헌 회장 49재 앞두고 만난 ‘윙크버릇 고치세요’의 주인공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b>김윤규 사장은…</b><br>44년 수원에서 태어나 성동공고와 서울대 기계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 69년 현대건설 기계부에 입사한 이후 매일 새벽 4∼5시에 출근하는 부지런함으로 왕회장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탁월한 영어실력 때문인지 왕회장은 늘 해외출장에 김사장을 대동했다. 현대건설 사장 재직중 두 차례에 걸친 소떼 방북을 주도했고, 이후 금강산관광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정몽헌 회장과도 친해졌다고. 부인 최옥자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현재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 자연인 김윤규에 대한 궁금증도 많습니다. 사모님이 지금도 작은 사진현상소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저는 가정에선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겁니다. 우선 돈을 많이 못 벌어다주니까 그렇고, 지금까지 일한다고 집안일은 거의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저는 가정에선 퇴출감입니다. 그래도 저희 집사람은 “당신 노후대책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해줄게” 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저는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
저는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개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쁜 사람은 많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어느날은 긴 출장을 다녀와 피곤에 절어 잠을 청하는데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겁니다. 그러곤 제게 수화기를 내미는 거예요.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전화냐?” 했더니 “아무리 피곤해도 출장 갔다 왔으니 어머니께 전화 드려야죠. 걱정하고 계셨는데” 하는 겁니다. 그럴 때면 연애할 때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워 보여요.
집사람은 열평 남짓한 규모의 사진현상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 장에 180원 받아 30원 남기는 일을 하는 걸 보면 집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집사람의 내조 덕분입니다. 제가 근속 30년으로 메달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때 집에 가서 집사람의 목에 근속메달을 걸어주면서 같이 울었습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30년을 한 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겠느냐. 당신이 나를 건강하게 돌봐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았나.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왜냐면 집사람에게 제가 못했기 때문에….(감정이 북받치는지 그는 눈물을 흘렸다. 기자는 물론 인터뷰 자리에 있던 직원들도 한동안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두손으로 눈물을 닦아낸 후에야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사는 회사대로 어렵고 정회장님이 그렇게 가면서 제 마음이 많이 약해진 모양입니다.


사진현상소 운영하는 아내에게 미안해 눈물
- 사모님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신다면…
사실 몸이 약한 사람인데 제게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대기업 사장 부인들이 고급 명품 쇼핑에 골프나 치러 다니고 하면서 물의를 빚곤 하는데 그런 것도 없어요. 어쩌다 우리 직원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면 이것저것 음식을 잘해 먹여요. 그런 걸 굉장히 좋아해요. 그거 돈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전 싫은데(웃음) 그런 날이면 또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 김사장에 대해 소탈하고 서민적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어디 나가려고 하면 비서가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고 기사가 문을 열어줍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혼자 중얼거립니다. “야 임마, 안 속는다.” 지금이야 좋은 대우를 받지만 은퇴하면 누가 제게 그러겠습니까? 그때 가서 그 버릇을 어떻게 고칩니까? 그래서 요즘은 택시도 타고 지하철도 탑니다. 그러면 제가 어디 갔는지 직원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택시를 타면 기사 양반들이 룸미러로 저를 힐끔 쳐다보며 “거, 현대 사장이랑 엄청 닮았네” 합니다. 그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많이 배웁니다.
그러나 일에서는 독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세계무대에선 큰 모션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있고, 북한과의 협상에선 책상을 뒤집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대북 관광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갈수록 마음가짐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그 ‘미스터 윙크’ 덕분에 통일이 빨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제 현대아산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기업이 되었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기업으로 거듭 나겠다”며 “여성들이 사회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지고 막강한 파워를 보여주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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