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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눈물의 호소

전쟁의 '비극' 목격하고 돌아온 김혜자 한비야

“구호활동 후 새롭게 깨달은 인간에 대한 사랑”

■ 글·최숙영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2003. 05. 07

10년간의 피비린내나는 내전이 방금 끝난 곳.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코노 지역에서 김혜자 한비야가 구호활동을 펼치고 왔다. 전쟁의 폐해와 상처가 남아있는 생생한 현장에서 두 사람이 전해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전쟁의 '비극' 목격하고 돌아온 김혜자 한비야

지난 4월10일 오후 5시경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중인 한비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가서 보름간(3월24일~4월9일) 구호활동을 하고 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김혜자와 함께 다녀온 것이었다.
그런데 왠지 심상치 않은 기미가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나 말투가 평상시와는 다르게 불안정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심하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두 사람을 만났을 때, 김혜자나 한비야 모두 얼굴이 까칠하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 있었다. 특히 김혜자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의 크고 검은 눈동자는 시종 불안하게 흔들렸다. 시에라리온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비야는 이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시에라리온’이란 나라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시에라리온은 서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예요. 10년 동안 피비린내나는 내전으로 인구 5백만명 가운데 무려 1백만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죠. 김혜자씨와 같이 구호활동을 펼쳤던 곳은 ‘코노’라는 지역인데 반군들이 끝까지 저항했던 곳이라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어요. 멀쩡한 건물이 몇 없을 정도로 초토화됐고 곳곳에 총알 자국과 불탄 흔적이 있었죠.”
김혜자는 그곳을 둘러보고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사람이 무서웠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끔찍하고 엽기적인 증언들이 많았다는 것.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밤에 무서워서 잠을 잘 못 잘 정도라고 한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꿈속에서까지 시에라리온에서 들었던 증언들이 재현되기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괴로운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들었길래 저토록 괴로워하는 걸까.

전쟁의 '비극' 목격하고 돌아온 김혜자 한비야

지난 3월24일부터 보름 동안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구호활동을 한 김혜자와 한비야.


“반군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사람들을 죽였다는 거예요.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반군들이 나이 어린 소년병들이었다는 사실이에요. 나이는 열두살에서 열일곱살이 가장 많았는데 대부분 부모가 반군들에게 죽임을 당한 후 강제로 끌려왔다고 해요.”
들은 얘기에 의하면 반군 소년병들은 사람들을 아주 잔인하게 죽였다고 한다. 36세의 쿰바 아줌마는 반군의 습격을 받아 아이를 둘러업고 도망치다가 강가에서 붙들렸다. 소년병들은 아줌마에게 업고 있는 아이를 강에다 던지라고 했다. 이를 거부하자 아이를 빼앗아 강물에 던져버리고는 그 자리에서 아줌마를 집단 성폭행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쿰바 아줌마를 마을로 끌고 가서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함께 잡힌 동네 남자들의 팔뚝을 작두로 잘랐대요. 반군 소년병들은 남자들의 팔뚝을 작두로 자를 때도 먼저 ‘오른팔을 자르고 싶냐, 왼팔을 자르고 싶냐’고 물어보고는 남자들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면 양쪽 팔뚝을 잘라버렸다고 하더라고요. 또 긴소매 옷을 입은 남자는 팔목을 자르고 짧은 소매 옷을 입은 남자는 팔뚝을 잘랐다고 하는데 인간이 어쩌면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소름이 끼쳤어요.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김혜자는 치를 떨었다. 하지만 반군 소년병들의 집단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임신한 여자들을 보면 ‘저 뱃속의 아기가 남자아기일까, 여자아기일까’ 하고 성별 내기를 한 다음 칼로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서 아기를 꺼내보았다고 한다. 그런 후에 내기에 진 소년병들이 그 아기를 바위에 쳐죽이거나 팔팔 끓는 팜유에 집어넣었다고.
“가족이 포로로 잡히면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아들에게 어머니를 강간하라고 명령했대요. 아들이 싫다고 하면 소년병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죽이고 어머니를 집단 성폭행했다고 하더군요. ‘코너’지역에 사는 여자아이들 중 실어증에 걸린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일곱살 때 반군에게 끌려가서 3년간 반군들의 성노리개 노릇을 하다가 간신히 탈출을 했다고 들었어요. 아직도 그 지역에는 우물 바닥을 청소하면 시체들이 무더기로 나오고 건기 때 강바닥을 들여다보면 해골투성이래요.”
지옥이 따로 없었다. 두 사람은 이번 구호활동을 하면서 반군 소년병들이 저질렀던 행태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오, 하나님…’하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반군 소년병들을 대신하여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어떻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전쟁의 '비극' 목격하고 돌아온 김혜자 한비야

시에라리온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들을 때마다 한비야와 김혜자는 전쟁의 또다른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더욱이 이들을 놀라게 한 것은 4년간 반군 소년병을 했던 한 청년의 증언이었다. 그는 전쟁중에 부모를 잃고 반군에 들어갔다. 김혜자와 한비야가 “사람을 죽여보았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수없이 죽였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사람들의 팔 다리도 셀 수 없이 잘라보았고 성폭행도 했다고. 그러면서 “반군 지휘부가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명령에 불복하면 죽인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또 그 청년은 “다시 전쟁이 나면 반군에 합류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충격적인 대답을 했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는 것. 전쟁이 나서 학교를 못 다니는 바람에 일자무식인데다 앞으로 살아갈 희망도 없으니 힘 있는 자에게 기대어 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전쟁의 또 다른 비극을 보는 것 같았어요. 결국 가해자도 또 다른 피해자라는 걸 그 청년을 통해서 깨달았죠. 전쟁은 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고 그 사이에서 무고한 아이들과 여자들의 목숨을 빼앗죠. 그러니까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돼요. 어떤 명분도 있을 수가 없어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를 망치니까요.”(한비야)
“맞아요. 우리가 떠나올 때 내전 당시 촬영해놓은 비디오를 보니까 기가 막히더라고요.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때 좌익과 우익이 대립해서 서로 죽고 죽이고 했지만 그 나라도 반군과 정부군의 싸움이 치열했던 것 같아요. 한 반군 소년병이 정부군들에게 붙잡혀서 공포에 떠는 비디오 장면을 보니까 인간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더라고요. 그토록 잔인하게 굴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공포에 떠는 순간에는 순진한 어린아이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어요. 전쟁은 사람들을 다 미치게 하는 것 같아요.”(김혜자)
김혜자는 지금도 어린 나이에 반군 지휘부에 끌려갔다가 아이를 둘이나 낳은 18세 소녀의 초점 없는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밤마다 반군인 남편한테 구타당하면서 친척집에 얹혀사는, 그 소녀의 사정이 딱해 집까지 지어주고 왔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말하는 사이 김혜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시에라리온은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나라잖아요. 서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가장 땅이 비옥하고 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나라인데 이런 전쟁의 참상을 겪었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어요.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을 들을 때마다 김혜자씨와 저는 너무나 끔찍한 나머지 경악했고 충격을 받아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고 할까요.”
몸과 마음은 극도로 피곤한 상태지만, 시에라리온의 참상을 알리는 데 적극 앞장설 생각이라고 한다. 몸집도 작고 감성도 여린 두 여자의 어디에서 이런 강한 사랑의 힘이 나오는 걸까.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지구 어디든 달려갈 것이라는 김혜자와 한비야. 두 여자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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