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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변신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눈물 연기의 진수 보인 장진영

“핼쑥한 여주인공 모습 보여주기 위해 5kg 감량, 연기를 하면 할수록 욕심이 더 생겨요”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최문갑 기자

2003. 03. 03

장진영이 ‘눈물의 여왕’으로 변신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을 맡아 그간의 귀엽고 털털한 이미지에서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영화계와 CF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로 꼽히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눈물 연기의 진수 보인 장진영

커다란 눈망울과 까무잡잡한 얼굴, 시원한 웃음이 인상적인 영화배우 장진영(29). 그가 슬프디 슬픈 멜로영화 ‘국화꽃 향기’의 히로인이 되어 우리를 찾아왔다.
그가 분한 민희재는 미대 출신 북디자이너. 같은 대학 서클 선배였던 약혼자와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그는 대학시절부터 자신만을 바라봤던 후배 서인하(박해일)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에 아랑곳없이 9년 동안 한결같이 그녀만을 바라보는 서인하. 결국 그의 사랑에 마음을 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릴 즈음 다시 가혹한 운명이 그를 찾아오는데….
“민희재는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생의 굴곡이 많은 여자예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려다 보니 감정의 진폭이 너무나 커서 참 힘들더군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제 연기가 과연 ‘정답’일지 한편으로 걱정도 돼요.”
그러나 영화의 절반에 해당하는 장면에서 눈물 흘리는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던 영화 속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의 대답은 괜한 겸손같이 느껴진다. 그의 ‘눈물연기’는 억지스럽게 눈물을 짜내려고 하지 않고, 극중 인물의 감정상태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도 담백한 슬픔을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화꽃 향기’의 사랑은 참으로 오래 가요.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지는데, 영화에서는 건너뛰어야 하니까 몇 장면만으로 미묘하게 변한 모습을 보여야 하잖아요. 그걸 표현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어요. 영화 속 희재는 마음속에 감정을 쌓아놓고 살지만, 배우는 그걸 표현해야 하니까요.”
신인인 박해일이 의욕적으로 덮치는 바람에 키스신 원 없이 찍어
절제되고 응축된 멜로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장진영은 영화 데뷔 후 처음으로 다이어트도 감행했다고 한다. 병마에 시달리는 핼쑥한 민희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5kg이나 감량한 것. 늘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군것질을 일절 끊고 달걀과 요구르트만으로 연명해야 했다. 아울러 헬스클럽에서 규칙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살을 뺐다. 그러나 살 빼기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고생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눈발 날리는 추운 1월에 가장 중요한 장면인 목욕신을 찍어야 했어요.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 때문에 계속 NG가 났죠. 스태프들은 실내에서도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는데, 전 벗은 몸을 수건으로 감싼 채 목욕통을 들락날락했으니까요.”
유독 목욕신을 떠올리게 된 건 참을 수 없이 추웠던 그 고생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에 연기를 할 때만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병을 숨기는 희재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는 이 장면을 끝내고 나서야 희재를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상대역은 신인 배우 박해일(25). 2003년 최고의 기대주로 꼽히고 있는 박해일은 데뷔작인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이어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 출연하면서 부상하고 있는 ‘예비 스타’다.
“나이는 어리지만, 연기의 폭이 넓어 앞날이 기대되는 친구예요. 신인으로 첫 주연을 맡았으니 그 부담이 컸을 텐데, 그걸 잘 누르고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더라고요. 연기호흡요? 물론 잘 맞았죠. 솔직히 멜로영화는 호흡이 맞지 않으면 정말 연인 같은 연기가 안 나오잖아요.”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첫 키스 신을 찍을 때의 일이다. 리허설 때는 보통 시늉만 하게 마련인데, 신인인 박해일이 의욕에 넘쳐 진짜로 하는 바람에 장진영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
“본 촬영에 들어가서도 너무 세게 덮치는(?) 바람에 주변에서 웃어서 NG가 났어요. 덕분에 키스신을 원 없이 찍은 셈이죠(웃음).”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눈물 연기의 진수 보인 장진영

장진영의 추천으로 영화의 주제가를 부른 성시경도 시사회에 참석했다.


보통 여배우라면 노 메이크업으로 나서는 걸 싫어하게 마련인데, 털털한 성격의 장진영은 개의치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는 눈물 흘리는 장면이 워낙 많아 노 메이크업으로 출연한 장면이 꽤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속의 그는 너무나 예뻤다. 오죽하면 편집을 맡았던 박곡지씨가 “(진영씨) 수술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는 후문이 들려올 정도. 이 얘기를 듣자 그는 “제가 생각해도 이제껏 출연한 영화 중에 가장 예쁘게 나온 것 같아요”라며 만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스크린 퀸’으로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인기는 현재 스크린 안팎에서 고루 상종가를 치고 있다. 방송가로부터 그에 대한 러브 콜이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SBS에 가수 성시경과 동반 출연하기도 했다. 평소 호감을 갖고 있는 연예인을 서로 만나게 해주는 ‘최고의 만남’에 출연했는데 이들은 실제로 좋은 친구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장진영의 추천으로 ‘국화꽃 향기’의 주제가를 부르게 된 성시경은 2월17일에 있었던 기자 시사회장에도 참석,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다음 영화 ‘싱글즈’에서는 코믹 연기에 도전
92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 출신으로 상명여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장진영은 98년 영화 ‘자귀모’를 시작으로 ‘싸이렌’ ‘반칙왕’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린 건 2001년 영화 ‘소름’의 히로인으로 나서면서부터. 그는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당해 몸과 정신이 피폐한 여인을 실감나게 연기함으로써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후 이정재와 호흡을 맞춘 로맨틱 무비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는 지하철 유실물센터에 근무하며, 대학 동창인 이정재의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아주기 위해 팔 걷고 나서는, 차분하면서도 싹싹한 여주인공을 연기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실 ‘소름’이나 ‘오버 더 레인보우’ 모두 평단의 반응은 좋았지만 흥행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죠. 물론 평단의 반응도 좋아야겠지만, 전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무엇보다 지금 사랑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희재와 인하의 사랑을 보면 사랑의 자세란 어떠해야 하는가 다시금 고민을 해보게 될 테니까요.”
2월28일 ‘국화꽃 향기’를 개봉함에 따라 한숨 돌릴 만도 하건만, 그는 연이어 영화 ‘싱글즈’ 촬영에 들어가는 등 바쁜 걸음을 늦추지 않고 있다. 29세 여성들의 발랄 상큼한 연애담을 그린 코믹영화 ‘싱글즈’에서 그는 엄정화, 이범수, 김주혁 등과 함께 출연한다.
“이번에는 깃털처럼 가벼운 코믹 연기에 도전해요. 제가 맡은 ‘나난’은 상상력이 풍부한 웹디자이너로 29번째 생일에 직장과 남자친구를 모두 잃어버리죠. 현대적이고 도발적인 유머, 유쾌함이 살아있는 작품이라 선택했어요. 특히 극중 고교 동창이자 친한 친구로 엄정화 언니가 출연하는데 벌써 둘이 얼마나 마음이 잘 맞는지 몰라요. 개인적으로 정화 언니의 팬이라서 같이 일하는 게 즐거워 죽겠어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역할은 어떤 것이 있느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그는 “지금은 어떤 역을 해보고 싶다고 욕심부리기보다, 주어지는 역에 최선을 다할 때라고 생각한다”는 현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데뷔한 지는 햇수로 6년째인데, 생각해보니 1년에 한번 꼴로 영화를 했더군요. 조금 벅차더라도 올해는 좀더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점을 보면 인생의 전성기는 서른살부터 시작돼 서른네살까지 이어진다는 말을 들었다는 장진영.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인 그는 “이제 슬슬 (연기자로서)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밝고 예쁘고 소탈한 그가 나이 먹을수록 더 사랑받는 연기자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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