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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타초대석

KBS 드라마 <장희빈> 주연으로 열연하는 김혜수

“연기생활 시작할 때부터 장희빈 역은 제게 필생의 꿈이었어요”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2002. 12. 11

KBS 특별기획드라마 <장희빈>의 주인공으로 발탁된 톱스타 김혜수. 그는 ‘겹치기 출연’으로 약속했던 영화사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끝내 <장희빈>을 포기하지 않았다. ”장희빈을 연기하는 건 내 필생의 꿈이었다”는 그의 남다를 각오를 들어본다.

KBS 드라마   주연으로 열연하는 김혜수
궁녀라는 비천한 신분에서 왕비로 신분상승을 이뤘다가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비운의 여인.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보기 힘들만큼 극적인 요소가 풍부한 장희빈의 이야기는 TV드라마와 영화에서 숱하게 다뤄져왔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KBS 특별기획드라마 <장희빈>은 한동안 여주인공을 캐스팅하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 심은하, 이영애, 송윤아, 김현주, 장진영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1년이라는 긴 제작기간, 연기력에 대한 부담으로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드라마 자체가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될 무렵, 전격적으로 장희빈 역에 톱스타 김혜수(32)가 발탁됐다.
2000년 드라마 <황금시대> 이후 TV를 떠나 <신라의 달밤> <쓰리> 등 영화에만 전념해오던 그가 <장희빈>에 역대 최고 출연료인 회당 7백여만원을 받고 복귀했다는 소식은 방송가를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주연이 확정돼 의욕적으로 촬영을 시작했던 <장희빈>팀은 그러나 이내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야 했다. 영화사 ‘명필름’에서 계약위반을 이유로 김혜수에게 5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 명필름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 <바람난 가족>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기로 일찌감치 계약을 맺은 김혜수가 드라마 출연을 확정하는 바람에 영화 제작에 차질을 빚었다”고 밝혔다. 반면 김혜수는 “영화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둘 다 병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 일정에 차질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의 ‘읍소’에 가깝게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명필름과 김혜수는 7년여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사이. 따라서 이들의 뜻하지 않은 ‘갈등’은 주위 사람들의 우려와 안타까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칫하면 법정으로까지 갈 뻔했던 이들은 다행스럽게도 2주 동안의 갈등을 접고 11월 14일 소송 취하에 합의했다. 김혜수는 영화 제작진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 계약료로 받은 1억2천만원을 모두 반납했고, 명필름도 “그동안 배우와 제작사 간의 잘못된 계약 관행을 바로잡자는 뜻이었지, 김혜수만을 비난한 건 아니다”라며 화해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김혜수가 <장희빈>을 고집한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영화배우로 잘 나가고 있는 그이기에 더더욱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여기에 대해 김혜수는 “장희빈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배역”이란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숙 선배가 장희빈으로 출연한 드라마를 본 일이 있어요. 사약을 마시고 죽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지요. 그후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장희빈이라고 대답해왔어요. 장희빈은 연기자로서 모든 것을 걸 만한 배역이니까요. 일생 일대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가 왔기 때문에 비록 비난을 받고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연기생활 내내 품어온 꿈.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왔는데 어떻게 그만두겠느냐는 것이다. 그만큼 그에게 장희빈은 필생의 배역이었던 모양이다.

KBS 드라마   주연으로 열연하는 김혜수

김혜수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새로운 장희빈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처음에 김혜수가 장희빈으로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일각에서는 ‘파격적이다’ ‘어울리지 않는다’ ‘의외다’ 같은 부정적인 반응들이 분분했던 것도 사실이다. 글래머러스하고 현대적인 이미지에, 주로 발랄한 역할을 맡아온 그가 장희빈을 연기한다는 데 대한 우려였다.
“안 어울릴 것이라고 걱정하는 말은 저도 들었어요. 하지만 이제까지 보여드린 연기를 통해 그 선입견은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고 자신해요. 처음엔 한복차림이 어색할 거 같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하지만 보세요. 한복도 잘 어울리잖아요?(웃음)”
그동안 요부 장희빈 역에는 이미숙을 비롯해 전인화, 정선경 등 쟁쟁한 스타급 연기자들이 거쳐갔다. 역대 연기자들에 비해 김혜수는 확실히 ‘전통적인 이미지’는 약하다. 그 약점을 딛고 그가 보여줄 장희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동안 장희빈이 요부, 악녀의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면, 이번 장희빈은 달라요. 신분차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죠. 물론 음모를 꾸미고 왕을 유혹하기 위해 갖은 비법을 쓰는 장면도 있지만, 그건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그녀가 살아남으려는 전략으로 이해했으면 해요. 이처럼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표현된 장희빈이라면 제가 적임자 아닐까요?”
달라진 건 장희빈만이 아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약한 모습의 숙종 대신 칼을 휘두르고 남인과 서인이라는 두 계파를 지혜롭게 이용하는 강인한 숙종이 등장했고, 그저 ‘지고지순한 여성의 전형’으로만 그려져왔던 인현왕후에게도 생동감이 부여됐다.
“아마도 사극을 쓰시는 분이 여성작가라서 그런가 봐요. 누구 하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지 않고 복합적인 성격으로 표현해내는 대본이 좋아서, 빠듯한 촬영 일정에도 즐겁고 편안하게 연기하고 있어요.”
배역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요즘 김혜수는 온몸으로 ‘프로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9시에 촬영이 시작되면 8시부터 와서 기다리고,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용인 민속촌에서 촬영을 할 때도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고 밤샘 촬영에 임한다. 무엇보다 여자 연기자라면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피하게 마련인 ‘노출연기’마저 거부하지 않아 촬영장 안팎에서는 칭찬의 말이 자자하다. 그동안 <장희빈>에서는 ‘알몸 목욕신’ ‘숙종과의 혼욕신’에 이어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 ‘방중술’을 연마하는 장면까지 나왔는데 “시청률을 의식해 너무 벗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김혜수는 그다운 당당함으로 대답했다.
“전 대본에 충실할 따름이에요. 시청률 때문에 자극적인 화면을 계속 내는 게 아닌가 하는 분도 있는데, TV에 소개되었던 방중술은 역사적 원전에 근거한 내용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 아이를 낳게 하는 비법, 남자의 사랑을 끌어들이는 비책 같은 걸 고증해서 재현한다는 게 상당히 재미난 볼거리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건강미인’ 김혜수가 브라운관에서 핼쑥해 보이는 건 이런 강행군 탓 아닐까. 일부에서는 사극출연 때문에 살을 뺐다는 소문도 돌지만 그건 아니라고 한다.
“살은 2년 전부터 계속해서 빠지고 있었어요. 지금 얼굴이 야위어 보이는 건 몸살 후유증이에요. <장희빈> 촬영 시작 즈음에 날씨가 몹시 추웠잖아요. 그때 몸살에 걸려 2kg 가량 빠졌는데 잘 쉬지 못해서 그런지 회복이 더디네요.”
연기인생 18년 만에 그토록 꿈꿔왔던 배역을 맡게 된 김혜수. “누구보다 사랑받는 ‘장희빈’이 되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듣고 있으니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몸살쯤 거뜬히 물리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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