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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포트라이트

드라마 <야인시대>김두한 역으로 스타덤 오른 안재모

■ 글·이영래 기자(laely@donga.com) ■ 사진·최문갑 기자, 정경진

2002. 11. 10

SBS 월화드라마 <야인시대>가 시청률 50%대를 넘어섰다. 경쾌한 액션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야인시대>의 인기 핵, 안재모를 만나 보았다. 청년 김두한 안재모가 밝히는 나의 일, 사랑과 우정, 그리고 부친의 두번에 걸친 사업부도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성장과정까지 풀 고백 .

드라마 김두한 역으로 스타덤 오른 안재모
한국 현대사에 김두한만큼 드라마틱한 인물이 있을까? 당대 세도가인 안동 김씨의 자손이자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거지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는 불우한 아이. 하지만 20세의 나이에 주먹계를 평정하고 종로의 ‘오야붕’이 된 사나이. 범상치 않은 출생, 불우한 성장기, 그리고 영웅적인 활약까지 김두한의 생애엔 드라마의 기본 요건들이 충실하게 배어들어 있다.
때문에 그의 생애는 끊임없이 영화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75년 김두한 사후 3년 뒤 제작된 영화 <김두한>은 4편까지 나왔고, 81년엔 <김두한과 서대문 1번지>, <김두한형, 시라소니형>이 나왔다. 당시에 김두한역으로 인기를 모았던 이는 이대근이다. 그리고 90년 영화 <장군의 아들>이 나왔다. 서울에서만 관객동원 68만명.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고흥행을 기록하며 신인배우 박상민을 스타덤에 올렸다.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의 생애는 다시 한번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SBS 월화드라마 <야인시대>. 김두한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50%대를 넘나들며 폭발적인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3대 김두한 안재모(23) 또한 스타덤에 올랐다.
“정말 하고 싶던 배역이었어요. 그래서 직접 장국장님(장형일 PD)을 찾아뵙고 조르기까지 했어요. 한번 믿고 맡겨 달라고요. 캐스팅 가지고 말이 나올 때마다 자존심도 상했고 불안했어요. 미스 캐스팅이 아니냐, 전혀 김두한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계속 이어졌죠. 그 덕에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반년 동안 솔직히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그간 아무 일도 못하고 계속 기다리기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도리어 준비도 많이 할 수 있었고,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질 수도 있었습니다.”
<야인시대>는 2부로 기획되었다. 청년협객시대와 정치시대로 나눠 청년기는 안재모가, 장년기는 김영철이 맡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작년 겨울부터 캐스팅 물망에 올랐던 안재모는 계속 가슴 졸이는 생활을 해야 했다. 올 1월 캐스팅이 확정되고 부천 야외세트에서 기자회견도 했건만 6월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캐스팅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탓이다. 때문에 그의 각오는 비장했다.
배역을 따내고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체중 늘리기와 무술 연습이었다. 그는 액션 스쿨에 다니며, 무술을 배우느라 올 상반기를 다 보냈다. “이런 큰 배역은 다시 없다”는 각오였다. 영화 <장군의 아들> 1, 2, 3편을 비디오로 사다놓고 보고 또 보았다. 김두한의 생애를 다룬 책도 보고 온갖 자료들을 읽었지만, 나중에 느낀 건 공허함이었다.
“생애도 그렇고 성격적인 면도 그렇고, 자료마다 재현하고 있는 느낌이나 세계가 다 달랐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갈팡질팡하지 말고 대본에만 충실하자, 대본의 모습 그대로를 충실히 연기하자고요. 물론 제 나름대로 차별성을 가지려고 노력도 많이 했죠. 그전의 김두한을 연기했던 선배님들이 김두한의 ‘강함’을 연기하셨다면 저는 김두한의 ‘눈물’을 표현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강한 사람에게도 눈물과 연정이 있는 거니까요.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유년시절을 보내고,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한 분이 왜 눈물이 없었겠어요.”
<야인시대> 녹화는 일주일에 닷새. 나흘은 부천 야외세트에서, 그리고 하루는 SBS 탄현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다. 탄현 스튜디오 촬영도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터라 따지고 보면 그는 요즘 일주일 내내 김두한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 그 바쁜 와중에 그는 11월초 앨범을 발표, 가수로 데뷔할 준비까지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녹음에 들어간 그의 앨범은 타이틀곡 ‘FOR YOU’(조성진 작곡, 주태영 작사) 등 4곡이 담긴 싱글 음반으로 제작된다.

드라마 김두한 역으로 스타덤 오른 안재모
안재모는 4남 중 막내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부산에서 상당한 규모의 플라스틱 사출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남부럽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친의 사업은 부도를 맞고 말았다.
그 길로 그의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재기를 도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번 망한 사업을 다시 일으킨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불같이 다시 일어날 것 같았지만 서울살이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서울 와서 한 3년은 부모님 고생이 정말 심하셨어요. 왜 우리집은 이렇게 살까, 어린 마음에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는데, 집안이 조금씩 안정을 찾더라고요. 아버지 사업도 자리를 잡고, 살림도 나아지고….”
그무렵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그는 어느날 “탤런트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친구와 함께 연기학원에 등록, 수강하겠다는 그의 말에 부모님은 노발대발했다.
“위로 두 형이 의대에 다니고 있었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형들이 그렇게 의대에 진학하니까 부모님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저보고도 ‘너는 치과의사가 돼라’고 매일같이 말을 하셨으니까. 근데 제가 어느날 탤런트가 된답시고 연기학원 등록원서를 가지고 나타난 거예요. 뭐, 당장 난리가 났죠.”
부모님이 연기학원 수강료를 내주지 않자 그는 공사 현장 잡부일로 돈을 모아 수강료를 냈다. 고교 입시를 앞두고 부모님과의 충돌은 극에 달했다. 그가 연예인이 되는 것을 결사 반대했던 그의 어머니는 직접 학교로 찾아가 인문계 고등학교 입시 원서를 썼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작성한 원서를 찢어버리고 기어이 안양예고에 진학했다.
안양예고에 진학한 그는 충실히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그는 학교 극장에 올리는 연극마다 얼굴을 내밀며 ‘교내연극 최다 출연기록 갱신’에 도전(?)했다. 차츰 그의 열정에 부모의 반대도 누그러져갔다.
그러던 96년, 아버지의 사업이 또 한번 부도를 맞았다. 거래업체들이 연쇄 부도를 일으키면서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자 힘없이 무너져버리고 만 것이다. 채권자들이 순식간에 집으로 몰려들었고, 아버지는 그길로 집을 떠나 도피했다. 사태는 복잡했다. 연대보증을 선 탓에 의사인 형들까지 피해를 입었다. 당장 거처도 없게 된 탓에 가족들은 연고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학업을 마쳐야 했던 탓에 홀로 서울 외삼촌 집으로 보내졌다. 학교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힘들수록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상황에서 드라마 데뷔를 하게 된 거예요. 학교에 있는데 선배가 급하게 연락을 해왔어요. 지금 한 배역이 펑크가 났는데 사람을 찾으니까, 빨리 와보라고요. 그게 KBS 청소년드라마 <어른들은 몰라요>였어요. 부산에서 TV를 통해 제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너무 기뻐서 동네 분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대요. 그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아버지였어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제가 나온 프로그램은 보셨는지….”
그런 시련 속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연기에 몰입하는 일 뿐이었다. 데뷔 이후 그는 고만고만한 단역, 조연으로 다작을 섭렵한다. 드라마는 <나> <용의 눈물> <공포의 눈동자> <미우나 고우나> <학교> <어사출두> <마법의 성> <왕과 비> <귀여운 여인> 등 헤아리기도 버거울 정도고, 영화에도 만만찮게 등장했다. <파란 대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닥터 K> <휴머니스트> <조폭마누라> <제이슨 리> 그리고 11월7일 개봉을 앞둔 <유아독존>까지 무려 7편에 달한다. 물론 주연을 맡았던 <휴머니스트> 등을 제외하면 그가 무슨 역이었던가, 고민해봐야 할 정도로 극중 비중은 작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작은 단역이라도 도전하면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어떤 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2000년 KBS 드라마 <왕과 비>의 연산군 역으로 백상예술상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아버지는 전화로만 축하의 말을 전해왔다. 지금은 채무도 정리되고 가족도 다시 안정을 찾았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에 눈물이 고인다고 한다.

드라마 김두한 역으로 스타덤 오른 안재모
그가 <왕과 비>에서 ‘연산군’역으로 주목받던 시절, 스캔들이 터진 적이 있었다. 슈퍼모델 출신 탤런트 황인영이 바로 그 주인공. 2001년 여름에는 열애설에 이어 결별설까지 모 스포츠 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친하게 지내다 보니 그런 기사가 나가게 됐어요. 서로 불편한 사이면 인영이가 같은 사무실로 이사 왔겠어요? 편하고 좋은 친구 사이예요.”
묘하게도 소속사가 달랐던 두 사람은 현재 같은 소속사(JK 엔터테인먼트)에 몸담고 있어 눈길을 끌지만, 그는 단순한 친구 사이라며 교제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사랑을 말하기엔 제가 너무 어려요. 제자리를 잡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다른 걸 생각하기는 쉽지 않죠. 아직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일과 사랑, 둘 중에 뭘 선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전 일을 선택하겠습니다.”
79년생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말투와 태도는 의젓하다. 때문에 간혹 ‘나이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가 또래와 유리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안양예고,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98학번. 연기자가 되는 전형적인 루트를 밟아온 만큼 주변 친구 중엔 역시 연예인들이 많다. 그는 연예계 신세대 사조직(?) 중 하나인 ‘79클럽’의 멤버이기도 하다. 79클럽엔 강타, 신혜성, 이기찬, 이지훈 등 주로 가수들이 많은데, 그가 MC를 맡으면서 이들과 친해졌다고 한다.
“제가 선배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도 적어요. 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저하고 연배차가 큰 분들하고 같이 드라마를 해왔거든요. 사극이 그렇잖아요. 여운계, 유동근 선생님 같은 분들하고 일을 하니까 저도 많이 긴장을 했죠. 지금도 다른 출연진과 나이차가 많이 나니까 여러가지로 조심스러운 데가 있어요.”
또래 연기자가 없는 탓에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선배들과 연기하는 게 오히려 편한 데가 있다고 한다. 오래 익숙해진 덕이라는데 <야인시대>에서 가장 친한 사람은 이혁재. 이혁재가 올해 서른이니 그나마 다른 사람보다 나이차가 적은 셈이다.
그러나 역시 연기자 중 그와의 인연을 말하라면 박상면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까지 무려 5편의 영화에 같이 출연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닥터 K> <휴머니스트> <조폭마누라> <유아독존>까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웃음). 그게 인연인지, 아니면 궁합이 맞는 건지 모르겠는데 따지고 보면 5년 전에 같은 사무실 소속이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될 것 같고…. 상면이 형하고는 아파트 한동 건너에 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저녁에 술도 자주 마시고 그래요. 아껴주시고 잘못된 게 있으면 지적해주시고, 정말 고마운 선배죠. <휴머니스트>가 흥행에 참패하고 나선, 상면이 형도 섭외가 안 들어와서 고전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엔 절대 같이하지 말자고 했는데 이번에 또 했어요(웃음).”
영화 <유아독존>에서 안재모는 ‘구마적’ 이원종, 박상면 등과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형제로 출연한다. 이 영화는 8백억원의 상속을 받게 된 아기가 발단이 돼 이들 삼형제와 폭력조직이 벌이는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물로 11월7일 개봉예정이다. 그가 드라마에 이어 앨범, 영화에서까지 ‘연쇄 폭발’을 일으킬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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