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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이식 수술해야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 막막한 전성렬군 사연

“동생 골수를 이식하면 살 수 있다는데, 제발 우리 성렬이 좀 살려주세요”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임소영 ■ 사진·성경훈

2002. 11. 10

1백만명 중 한명꼴로 걸린다는 ‘선천성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는 전성렬군. 전군은 작년 9월 동생의 골수를 이식받았지만 실패, 재수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3천만원에 이르는 재수술 비용을 마련할 형편이 못된다. 가출한 어머니 대신 전군을 간호하기 위해 아버지까지 직장을 그만둬 더욱 막막하기만 한 전군의 딱한 사연.

골수이식 수술해야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 막막한 전성렬군 사연

첫 골수이식이 실패해 고통받는 성렬군과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동생 성대군(사진 뒤).

“제발, 우리 성렬이 좀 살려주세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애가 이렇게 누워만 있으니….” 전남대병원 무균실. 전남대 사대부중 3학년 전성렬군(15)은 지난해 7월 ‘선천성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판정을 받고 1년 넘게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골수이식 수술을 받지 못한 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아버지 전보선씨(41)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진작 수술을 받았어야 했는데 다 제 책임입니다. 부모가 자식한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죽고만 싶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전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한마디로 골수에서 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한번 발병하면 적혈구·혈소판·백혈구가 감소돼 결국 감염과 출혈로 사망하는 치명적 질환이다. 유일한 치료법은 골수이식. 전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녀린 여주인공이 단골로 걸리는 병으로만 알고 있었던 ‘재생불량성 빈혈’이 신체건강하고 혈기왕성하던 성렬이를 쓰러뜨릴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고 한다.
“병원출입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한 아이였어요. 웬만하면 식구들에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죠.”
그런 성렬이가 통증을 호소한 것은 작년 여름부터.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가방을 던져놓고 공터로 공을 들고 나가던 아이가 “피곤하다”며 바깥출입을 삼간 것. 아침에 제대로 못 일어나 지각하기 일쑤였고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어요. 증상이 감기랑 너무 비슷했어요. 하지만 좀처럼 엄살을 피우는 아이가 아니어서 느낌이 좀 이상했죠.” 그래서 전남대병원을 찾았다. 감기몸살이 너무 오래간다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주치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친가와 외가를 다 살펴봐도 이런 질환으로 고생한 사람이 없는데 부모로부터 유전됐다니…. ‘도대체 내 안에 무슨 나쁜 피가 흘러서 성렬이를 괴롭히나’ 하는 생각에 미쳐버릴 것만 같더군요.”
하지만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곧바로 성렬이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리고 식구들 모두 골수조직검사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성렬이와 동생 성대의 골수조직이 일치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지난해 9월,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다. 오전에 동생 성대(13)의 골수를 빼내 오후에 성렬이에게 이식했다.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두 형제는 의연하게 잘 견뎠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성렬이의 고통도 여기서 끝나는 것 같았다.
“수술이 잘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로운 줄 알았어요. 하루빨리 성렬이가 회복되기만을 기도했죠.”
하지만 전씨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렬이가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은 것. 수술 후에도 여전히 40도를 넘는 고열에 시달리고 백혈구와 적혈구·혈소판 수치 역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잦은 구토와 설사로 몸은 가시처럼 말라가고 점점 기력이 쇠약해졌다. 독한 항암치료는 성렬이의 밝고 낙천적인 성격을 공격적이고 비관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렇게 친구를 좋아하던 녀석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친구들이 병문안 오는 것조차 싫어하더라고요.”
성렬이는 친구들이 다녀간 날이면 유독 신경질을 많이 부렸다. 치료받는 것도 힘들어하고 잘 먹지도 않았다. 그런 날은 가족들 모두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즈음 전씨의 아내가 가출을 했다. 아내는 몇년 전부터 복잡한 채무관계로 전씨와 자주 다퉜는데 성렬이의 치료비로 인해 경제적으로 더욱 힘들어지자 결국 자취를 감춰버린 것. 이때부터 전씨 가족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경제적 고통은 무척 컸을 텐데 전씨는 “아직 애들이 모르고 있다”며 말을 꺼렸다.

아내의 가출 후 전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아들 치료를 위해선 무엇보다 필요한 직장이었지만 당장 성렬이를 간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렬이는 입원비가 없어 입원치료를 포기하고 아픈 몸을 이끌며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약값과 수술비 모두 보험혜택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어요.”
골수이식수술에 들어간 수술비는 3천만원 정도. 약값도 만만치 않았다. 사흘 약값에 1백25만원을 낸 적도 있다. 전씨는 급한 대로 친척이 운영하는 중국집에 배달부로 취직했다. 그래서 성렬군이 병원에 가지 않는 날은 그곳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한달 수입 70만원. 국민기초생활보장 1급에 속해 구청에서 20여만원의 보조금을 받지만 이것으로는 한달 약값도 안됐다. 더군다나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인 만큼 잘 먹어야 하는데 전씨는 아들에게 “흔한 닭고기조차 사 줄 수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일하러 가는 날이면 아픈 아이를 혼자 집에 둬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전씨가 출근하고 동생이 학교에 가면 성렬이는 혼자 지독한 통증과 싸워야 했다. 따뜻하게 보살펴줄 사람도, 음식을 먹여줄 사람도 없었다. 화장실에 갈 기력이 없었지만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병세는 더욱 깊어졌다. 지난 9월이었다.
“어느 날 출근했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으로 전화를 했죠. 한참 만에 다 죽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받더니 몸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예요.”
전씨는 즉시 성렬군을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를 받아보니 이식받은 골수가 생착에 실패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식받은 골수가 생착에 실패하면 6개월 내에 사망할 확률이 60%가 넘는다. 따라서 성렬이도 당장 재수술을 해야 했지만 수술비가 없었다. 첫수술비 3천만원은 집을 팔고 카드를 융통해서 겨우 충당할 수 있었지만 재수술비는 마련할 길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수술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곧 성렬이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성렬이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저를 팔아서라도 수술비를 마련하고 싶어요. 생때같은 자식을 그냥 어떻게 보냅니까. 수술이 또다시 실패한다고 해도 성렬이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채 마냥 골수이식 재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성렬이. 하지만 어떻게 수술비를 마련해야 할지 전씨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전씨는 결코 성렬이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성렬이가 밤낚시를 무척 좋아해요. 건강했을 때 가족끼리 자주 갔죠. 수술에 성공해서 건강을 회복한다면 우리 삼부자가 밤낚시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2년 전만 해도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밝고 활기찼던 전성렬군.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성렬이가 재수술에 반드시 성공해서 내년 이맘때에는 삼부자가 고적한 밤낚시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유능한 프로그래머로 성장해 제 2의 삶을 활기차게 열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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