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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 주용씨가 공개하는 대통령들의 단골음식점&남다른 식습관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박윤희 쭦사진·김형우 기자

2002. 10. 08

미식가 주용씨에겐 전국 팔도의 식당이 ‘부처님 손바닥’이다. 역대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한정식집에서 서민들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허름한 해장국집에 이르기까지 그가 안 가본 식당이 거의 없을 정도. 그가 말하는 대통령이 즐겨찾는 음식점 & 미식가로서의 재미.

미식가 주용씨가 공개하는 대통령들의 단골음식점&남다른 식습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민옥(서울 중구)’의 추어탕과 선지국을 즐겨 드셨다고 해요. 주인 송병준씨(73)가 청와대에 들어가는 음식을 직접 요리했는데, 이때 남대문 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음식 만드는 전 과정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서 있었답니다. 그리고 요리가 다 끝나면 안주인이 직접 먹어 보고 아무런 이상이 없어야 박 전 대통령 식탁으로 날랐다고 해요.”
미식가 주용씨(44)에겐 전국 팔도의 식당이 ‘부처님 손바닥’이다. 역대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한정식집에서 서민들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허름한 해장국집에 이르기까지 그가 안 가본 식당이 거의 없을 정도.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식당 백과사전’이 따로 없다. 특히 ‘주용표’ 식당 백과사전을 펼치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단골집 리스트가 한번에 쭉 뽑혀 나온다. 과연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을까.
“박 전 대통령은 ‘소탈한 입맛’으로 소문나 있는 분이셨죠. 주로 된장찌개와 설렁탕을 즐기셨는데 안양이나 안산 등지를 시찰할 때는 꼭 군포역 앞에 있는 ‘군포식당’을 찾아서 설렁탕을 드셨어요. 이 집은 잡고기를 전혀 쓰지 않고 사골과 양지살로만 탕을 끓이기 때문에 국물이 진하면서도 깔끔한 것이 특징이죠.”
한번은 그가 ‘떡갈비’로 유명한 ‘천일식당(전남 해남)’을 찾았을 때도 박 전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천일식당은 1924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한정식집인데, 숯불로 구어 주는 떡갈비를 비롯해서 남도의 ‘징한’ 반찬들이 30가지나 나와요. 박 전대통령은 네번이나 여길 찾았는데 그럴 때마다 식당 주인이 ‘홍어’나 ‘갈비’ 등의 값비싼 음식들을 많이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 전대통령의 젓가락은 대갱이라는 생선을 바짝 말려서 구운 ‘대갱이포’ 그릇에 머물렀다고 해요.”
박 전 대통령이 즐겨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과연 식당에 음식값을 지불했는지 안 했는지도 궁금하다.
“천일식당을 처음 열었던 고 박성순 할머니의 막내 딸 김정심씨(53)에게 물어보니까 ‘그땐 제가 어려서 대통령이 돈을 내고 갔는지 그냥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계산이 분명한 저희 엄마 성격에 공짜로는 절대 안 주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천일식당은 김대중 대통령도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자주 들렀던 곳이라고 한다.
추어탕과 선지국을 즐긴 박정희 대통령
요즘 공중파 요리프로그램이나 케이블TV 요리전문채널을 보면 중국요리연구가 이향방씨가 자주 출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점에서는 그의 중국요리 비법을 소개한 요리책이 베스트 셀러다. 이씨는 중국음식점 ‘향원’(서울 연희동)의 주인이기도 한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곳의 ‘누룽지탕’을 즐겨 먹으면서 이씨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향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곳인데, 지금도 전 전 대통령의 집에 손님 초대가 있을 경우 향원 요리사가 그 댁으로 출장을 나가 각종 음식을 만들어주고 있답니다.”
그런가 하면 이순자 여사의 환갑상을 차려준 식당도 있다.
“‘진미식당(남제주 사계리 포구)’은 제주도에서 꽤 유명한 식당인데요. 이순자 여사의 환갑 무렵 전 전대통령의 가족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다가 무척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어요. 주인 강창건씨(49)가 이순자 여사의 환갑을 축하한다며 회 접시에 장미꽃 60송이를 올려놓았거든요.”
전 전대통령은 식사 후 식당 주인에게 음식 칭찬을 아끼지 않아 인기가 많았던 대통령. 식당 주인들은 전 전대통령이 음식 남기는 것을 싫어하고 워낙 소식이라 음식의 양을 다른 상의 절반만 올렸다고 한다. 임기중에는 연희동의 ‘연희손칼국수’ ‘강수사’ 구기동의 ‘옛날 민속집’ 등 단골집을 직접 찾아가 음식을 즐겼지만, 퇴임 이후부터는 주로 경호원들이 자택 근처 단골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즐겨 찾는 식당들을 가보니까 주인들이 한결같이 ‘노 전대통령은 허세를 부리지 않는 조용한 성품’이라고 입을 모으더군요. 주로 손님이 많은 식사 시간대를 피해서 식당에 가는 게 특징이고요. 전주에 가시면 ‘한일옥’에 꼭 들러 콩나물 해장국을 즐겨 찾았다고 해요.”
이밖에 경상도식 추어탕으로 유명한 연희동의 ‘월선옥’, 강남에서 유명한 ‘팔팔민물장어’식당도 노 전대통령의 미각을 사로잡은 맛집이다. 노 전대통령도 퇴임 이후에는 직접 식당을 방문하기보다는 사람을 보내서 완전 조리된 음식을 집으로 가져간다고.
‘칼국수’를 빼놓고 넘어가면 서운한 대통령이 있다. 일명 ‘칼국수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김영삼 전대통령. 김 전대통령의 임기 당시 ‘칼국수’와 ‘칼국시’의 차이점을 묻는 우스갯 소리가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칼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면’이고 ‘칼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면’이라나.
“서울 삼선교의 ‘국시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김 전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부드러운 면발을 즐기는 단골집이에요. 구수한 사골 국물에 하늘하늘 날아갈 듯한 부드러운 면발이 정말 인상적이죠. 김 전대통령 때문에 이 집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니까 혜화동과 삼선교 일대에 칼국수 집이 하나 둘 생겨나다가 지금은 그 동네가 ‘칼국수 동네’가 되어버렸어요.”
‘∼카더라’ 통신은 범부들뿐만 아니라 대통령들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강남 압구정동 ‘안동국시’ 식당도 김 전대통령의 단골집. 노 전대통령이 칼국수를 좋아하는 김 전대통령에게 ‘이 집이 맛있다 카더라’하고 소개한 인연으로 김 전대통령이 임기중에 자주 찾았던 단골집이다.
주씨가 10여년 넘게 전국의 식당을 돌다보니 우연치 않은 기회에 대통령들의 미각까지 포착한 셈인데, 그는 이런 굵직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예상치 않은 ‘복병’을 만나 곤란한 일을 겪을 때도 많다.
“대통령들의 단골집이 아닌 어쩌다 대통령이 단 한번 들린 식당도 있을 게 아닙니까? 제가 음식점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들렀던 식당이라고 몇 군데 소개하면 그런 식당에서 ‘○○○대통령의 단골집’이라고 간판을 크게 써서 붙이는 모양이에요. 가끔 전직 대통령 경호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오고 그래요. 대통령이 다니는 음식점 소개하지 말라고 압력을 주는 거죠.”
그는 맛을 감별하는 미식가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일간지, 주간지 등에 음식칼럼을 써오다가 2000년 인터넷에 식당 소개 전문 사이트 ‘이튼쿡(www.eatncook.com)’을 만들었다.
“직접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보고 맛, 분위기, 화장실 위생 정도, 손님에 대한 서비스 등에 대해 글을 씁니다. 한번 맛있는 집이라고 소개한 집도 몇 개월 뒤에 다시 찾아가 전체적인 평가를 새롭게 하죠.”
흑산도 홍어에 빠진 김대중 대통령
그는 얼마 전 직접 ‘흑산도 홍어’를 맛보러 전남 목포에 출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전라도 사람들은 잔칫집에 아무리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이 가운데 홍어회가 빠지면 ‘앗따, 먹을 것이 하나도 없구마잉’하고 아쉬워할 만큼 코끝을 톡 쏘는 구릿한 맛의 홍어회를 좋아한다. 전남 하의도가 고향인데다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 출신인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흑산도 홍어라고 밝힌 바 있다.

“워낙 흑산도 홍어가 잘 안 잡혀서 귀하니까 정작 목포 사람들도 잘 못먹어요. 또 목포에는 많은 홍어집이 있지만 진짜 흑산도 홍어를 쓰는 집은 드물다는 얘기도 있지요. 저는 금메달식당에서 홍어회를 먹어봤는데 핑크빛인 흑산도 홍어회는 살점도 맛있고 뼈가 다른 홍어보다 유난히 오도독하니 부드러워요.”
그의 말에 따르면 홍어는 ‘코’를 으뜸으로 치고, 그 다음이 ‘꼬리’ ‘날개’ 순으로 맛이 좋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홍어가 들어오는 첫날에 ‘애’라고 불리는 홍어 간을 먹을 수 있는데, 이것을 날것으로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입에 착 감기는 윤기가 고소한 풍미를 전해준다. 또 된장 푼 물에 애와 어린 보리 잎을 뜯어 넣고 탕을 끓이면 은근히 전해오는 감칠맛이 소진한 원기를 북돋운다고 한다. 홍어와 돼지고기, 배추김치를 한데 싸서 먹기도 하는데 이것을 일컬어 ‘삼합’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음식의 찰떡궁합은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별미 중의 별미라고.
그런데 홍어 한 마리 값이 웬만한 생산직 노동자 한 달치 월급이다. 요즘 흑산도 홍어는 보통 1kg당 10만원 정도의 가격에 거래돼 7∼8kg짜리 한 마리가 8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주씨가 먹은 홍어회도 한 접시에 12만원. 얇게 썬 20여 조각 정도가 상에 올라온다고 하니까 흑산도 홍어 한 점에 대략 5천원이라는 계산이 떨어진다. 미식가가 되려면 이렇게 경제적인 투자는 기본이고 때론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황당한 일도 생긴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가 미식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복어는 목숨 걸고 상대해야 하는 미각의 결정체. 특히 종잇장처럼 얇게 뜬 황복의 회는 입에 넣자마자 눈송이처럼 사르르 녹아 버린다. 소동파는 ‘복어의 맛은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복어는 독성이 강할수록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복어의 알과 내장은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어 이것까지 먹는 사람은 없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복어알’로 담근 젓갈이 있어요. 독성이 강하긴 하지만 소금을 뿌려서 5년 정도 삭히면 괜찮아요. 그래도 치사량이 있으니까 귀지 파는 도구처럼 아주 작은 숟가락으로 복어알젓의 맛을 보죠. 복어알젓은 입에 넣자마자 박하사탕 10배 이상의 강도로 알싸한 향이 입안 가득 확 퍼지는데요. 그 맛 때문에 조금 더, 조금 더 하고 먹다가 죽은 사람들 많아요.”
두 딸은 미식가 아빠와 외식 안하는 게 소원!
그는 ‘입맛이 높다’거나 ‘낮다’는 평가는 주관적인 것일 뿐이고, 굳이 맛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음식을 먹고 난 후 뒷맛이 없고 담백, 깔끔한 것이 ‘맛있는 음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미식가는 음식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직업이지 ‘입맛이 높은 사람’은 결코 아니라는 해석이다.
주용씨의 아내 최성희씨(44)에 따르면 두 사람이 만난 건 대학 다닐 때 소개팅을 통해서.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는데, 남편이 미식가인 탓에 자신도 덩달아 미식가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대학시절 데이트를 하는데 ‘복어 지리’ 먹자고 끌고 가더라고요. 전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데 아주 맛있게 먹더군요. 그런 남편이 정말 이상하게 보였어요.”
최씨가 보기에 남편이 벌이는 엽기적인 행각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국 여행중 한 중국 레스토랑에서 팔뚝만한 새우를 날 것으로 우적우적 씹어먹는가 하면, 이탈리아 스테이크 전문점에서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4시간 걸려 먹을 스테이크 분량을 단 한 시간에 해치우는 남편이다. 그런가 하면 식당에서 설렁탕의 국물 맛을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 절대 소금이나 후추를 넣지 않고, 물냉면 육수 맛을 가리기 위해서도 역시 식초나 겨자 한 방울 뿌리지 않는다.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아이 생일 때 이탈리아 전문식당에 갔는데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안 시키고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시켜줘요. 파스타를 시켰는데 아이가 화가 나서 한 입도 안 먹더라고요. 남편 직업상 하도 외식을 많이 해서 저희 집 아이들은 외식 안하는 게 소원이에요.”
이 집 부엌에는 식탁이 없다. 집에서 밥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집에서 음식을 만든다고 해도 기껏해야 누룽지 아니면 라면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달 외식비만 해도 수백만원이 깨진다. 이튼쿡을 운영하려면 피할 수 없는 출혈이다.
“이젠 맛있는 음식하고 정을 떼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미식가랍시고 매일 외식만 하니까 고혈압, 비만 같은 성인병이 걱정돼요. 어제도 갑자기 혈압이 올라서 병원 응급실에서 링거 꼽고 누워 있었어요.”
이튼쿡 대표이사 명함을 찍으면서 주씨는 8㎏, 부인은 4㎏이나 체중이 증가했다. 직업의식에 불타서 먹는 게 ‘의무’가 되어버린 그가 맛있는 음식에서 깨달은 인생철학은 첫째도 둘째도 ‘절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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