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YLE

봄바람에 찰랑이며 흩날리는 스카프처럼 ‘펜리 에스테이트 에코 스파클링 피노 누아’

이찬주 무용평론가

2025. 02. 20

무심코 바라본 와인 라벨 속 춤. 전 세계 와인과 그에 얽힌 춤 이야기를 연재한다.

펜리 에스테이트 에코 스파클링 피노 누아(왼쪽). 세바스티아노 리치의 ‘넵투누스와 암피트리테’(스페인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둥글게 휘어 펄럭이는 스카프가 극적인 상황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펜리 에스테이트 에코 스파클링 피노 누아(왼쪽). 세바스티아노 리치의 ‘넵투누스와 암피트리테’(스페인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둥글게 휘어 펄럭이는 스카프가 극적인 상황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호주를 대표하는 와인 메이커는 1838년 설립한 톨리(Tolley) 가문과 1844년 설립한 펜폴드(Penfold) 가문이 있다. 호주 와인 역사와 흐름을 같이하는 펜폴즈 와인은 영국 출신 의사 크리스토퍼 펜폴드로부터 시작됐다. 펜폴드는 프랑스 남쪽 지방에서 포도나무를 잘라 호주로 가져왔는데, 그는 평소 와인의 의학적 효력을 믿고 있었다. 톨리 가문은 펜폴드보다 일찍 와인 생산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1945년 레지날드 레스터 톨리와 주디스 펜폴드 하이랜드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가문의 결합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1988년 펜폴드와 톨리에서 한 글자씩 따와 펜리(Penley)라는 새로운 와인 메이커를 만들었다.

펜리에서 생산하는 에코 스파클링 와인은 피노 누아만으로 만든다. 스파클링와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황금빛 화이트와인이나 핑크빛 로제와인인데 펜리의 에코 스파클링은 독특하게도 레드와인이다. 와인병을 병맥주처럼 크라운 캡으로 마감한 것도 이채롭다.

에코 스파클링의 라벨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산의 정령(님프) 에코가 등장한다. 에코는 자신의 친구가 제우스와 밀회한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일부러 헤라에게 말을 건다.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헤라는 에코에게 남이 말하기 전에는 입을 열 수 없고 말을 하더라도 남이 한 말의 끝부분만 반복하는 벌을 내렸다. 헤라의 저주를 받은 에코는 나르키소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을 사랑했지만, 고백할 수 없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육체는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은 메아리가 된다.

라벨 속 에코는 스카프로 전신을 감싸고 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스카프는 에코의 머리 위로 한껏 부풀려져 있다. 에코는 자신의 몸을 따라 흘러내린 스카프를 양손으로 느슨하게 잡고 서 있다. 스카프에 살짝 가려진 실루엣이 묘한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킨다.

발레 ‘라 바야데르’ 3막 ‘망령의 왕국’에 등장하는 셰이드 군무 장면. 환상적인 팡셰 동작을 볼 수 있다.

발레 ‘라 바야데르’ 3막 ‘망령의 왕국’에 등장하는 셰이드 군무 장면. 환상적인 팡셰 동작을 볼 수 있다.

스카프는 무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품이다. 특히 발레 ‘라 바야데르(La Bayadere)’의 3막 ‘망령의 왕국’에 등장하는 셰이드(Shades) 군무는 스카프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클래식 튀튀를 입은 32명의 발레리나가 비스듬하게 경사진 세트에서 걸어 내려오며 환상의 ‘아라베스크 팡셰’를 46회 선보이는데, 이는 ‘라 바야데르’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이때 허리까지 흘러내린 베일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배가하며 관객들을 공연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온 스카프는 지금도 자신만의 생명력을 가지고 아름답게 흩날리고 있는 듯하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얇고 가벼운 스카프를 보면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치 환상을 심어주듯 몸의 흐름을 율동적으로 보여주는 용도로 스카프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일 터이다. 라벨 속 에코는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구름 위로 두둥실 날아갈 것만 같다. 한없이 가볍고 거칠 것 없이. 그런 맛을 에코 스파클링 피노 누아가 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와인과춤 #와인라벨 #여성동아

사진제공 이찬주 
‌사진출처 국립무용단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