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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Z세대는 현금 쓴다고? 직장인의 '현금 챌린지' 도전기

문영훈 기자

2024. 01. 18

매달 카드사에서 보내주는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를 열자 일본 왕복 비행기 티켓 40만 원, 60% 세일을 하길래 홧김에 지른 코트, 수많은 택시비와 배달 앱 결제 내역이 쏟아졌다. 무지성 소비의 나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취직을 하자마자 어머니는 계속 용돈을 받는 생활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제안했다. “너의 씀씀이로 봐서는 돈을 모으지 못할 게 분명하다”면서. 당당한 사회인이 됐다고 착각한 기자는 단호히 거절했고 입사하고 만 4년이 가까워진 지금 어머니의 말은 현실이 됐다. ‘플렉스’ ‘욜로’ 같은 말이 유행한 건 2010년대 후반이지만 기자는 시대착오적인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몸소 느끼는 중이다.

서른한 살이 되는 2024년을 앞두고 새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현명한 Z세대 사이에서는 ‘현금 챌린지’가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해시태그 현금 챌린지를 인스타그램에 검색하면 3만5000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현금 생활의 준말로 ‘현생’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현금 챌린지는 카드 대신 현금을 갖고 다니며 소비하는 행위로 ‘무지출 챌린지’ ‘거지방’을 잇는 ‘짠테크’의 일종이다. 카드뿐 아니라 모바일 화폐, 온라인 결제 등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지며 발생하는 다양한 종류의 지출을 현금으로 일원화해 절약을 실천하는 것.

미국에서는 캐시 스터핑(cash stuffing)으로 불리며 2년 전부터 유행했다. 캐시 스터핑은 현금 분류라는 뜻인데, 신용카드가 널리 쓰이기 전 생활비(현금)를 목적에 따라 봉투에 담아뒀던 일에서 유래된 단어다. 2021년 재스민 테일러는 1년간의 캐시 스터핑으로 학자금 2만3000달러(약 3000만 원)와 카드 빚 9000달러(약 1170만 원)를 갚은 이야기를 틱톡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84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됐다.

현금 챌린지의 고전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월급에서 고정비를 제하고 한 달 생활비를 정한 뒤 현금으로 인출한다. 월 생활비를 다시 주 단위로 나누고 요일이나 항목별로 쓸 돈을 분류해 현금 바인더에 넣어 들고 다니는 것이다. 현금을 받지 않는 곳도 많은 작금의 현실을 감안해 페이크 머니를 이용해 매일의 소비를 돌아보는 방법도 있다. 이를 SNS에 공유하고 서로의 현생을 응원하는 것도 Z세대의 문화다. 일주일간의 현금 챌린지를 위해 바인더까지 구입해 지출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페이크 머니를 이용한 현금 챌린지에 일주일간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흘 만에 찾아온 위기

우선 현금 챌린지를 시작하기 전에 한 달 지출 상황을 점검해보고 하루에 쓸 돈을 정해둬야 한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현생 선배들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소비 습관을 점검해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갑진년 목표는 월급의 절반 이상 저축하기. 고정비는 전세대출 이자, 통신비, 보험료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카드 내역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OTT 추천 콘텐츠 기사를 쓴다는 미명하에 이것저것 구독해둔 서비스가 많았고 전기·가스 요금과 교통비 역시 고정비에 포함시켜야 했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과 저축액을 제하니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를 쓸 수 있었다. 목표는 높게 잡을수록 좋다. 한 달 생활비를 80만 원으로 잡았다. 매달 온라인 커머스에서 장을 보는 비용과 지인 결혼 등 특별한 행사가 생길 때를 대비한 20만 원 정도를 제하니 한 달에 60만 원, 하루에 2만 원을 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학 시절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때 하루 소비를 1만5000원으로 제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5000원으로 점심 식사와 커피를 학교에서 해결하고 저녁엔 친구들과 학교 근처 술집에 가서 밥과 술을 동시에 해결하던 때. 지금도 가능하지 않을까.

일요일 아침, 이와 같은 계획을 세우며 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는 대신 집에서 캡슐커피를 마셨고, 어머니가 보내준 밑반찬과 냉장고에 있는 달걀 등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일요일 쓴 돈은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서 쓴 금액을 합쳐 1만4000원, 하루에 6000원을 남겼으니 무난한 출발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월요병이 도진 나에게 치킨을 선물하는 우를 범했겠지만 하루 2만 원 소비 제한을 위해 꾹 참았다.

월요일 점심, 회사 선배에게 점심을 얻어먹었기 때문에 커피는 내가 샀다. 하루에 1만1000원 정도면 괜찮은 소비라고 생각했다. 막상 저녁 정산 타임이 되자 내가 하루에 그 돈만 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출근 전 습관적으로 미리 충전해둔 스타벅스 카드로 커피를 주문했다. 여기에 편의점에서 산 담배와 민트 캔디를 합치니 금세 2만 원이 됐다. 내일부터는 커피도 회사 커피머신을 이용해 마시리라 마음먹었다.

문제는 화요일이었다.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와 연말을 맞아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서울 지역 외식 물가는 5년 전에 비해 28.4% 올랐다. 요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술을 한잔하면 순식간에 5만~6만 원이 지갑에서 나간다. 나는 단톡방에 “연말이라 다들 약속이 많을 테니 저렴한 데서 보자”는 의견을 냈고 동의를 얻었다. 덕분에 1, 2차를 통틀어 1인당 3만8000원만 쓸 수 있었지만 3시간 만에 이틀치 용돈이 날아간 셈. 페이크 머니로 하루 쓴 돈을 제하는 현금 챌린지가 얼마나 유의미할지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상 위 6만8000원 남은 페이크 머니를 보며 남은 4일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남은 평일에는 최대한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배달 앱은 삭제해버렸다. 퇴근 후 바에 가는 대신 편의점에서 네 캔에 1만1000원 하는 맥주를 샀다. 토요일이 되자 3만3000원이 남았다. 현금 챌린지 룰에 따르면 남은 생활비는 저축해야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동안 절약한 날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와 영화를 보고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다. 달콤한 자본의 맛. 남아 있던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용카드 잠시 안녕

기자가 구입한 페이크 머니(왼쪽). 틱톡에 캐시 스터핑을 검색하면 다양한 현금 챌린지 영상이 쏟아진다.

기자가 구입한 페이크 머니(왼쪽). 틱톡에 캐시 스터핑을 검색하면 다양한 현금 챌린지 영상이 쏟아진다.

하루하루 쓸 돈을 정해두고 일주일을 지내는 건 빠듯하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특히 매일 밤, 오늘 사용한 만큼의 페이크 머니를 제하고 얇아진 돈 두께를 보며 경각심을 느꼈다.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갈 때 아무 생각 없이 택시를 탄다든가 인스타그램 광고에 이끌려 새 옷을 사는 등의 무지성 지출을 줄이게 됐다.

현금 챌린지를 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새해가 되기 전 현재 수입과 지출을 정확하게 점검해봤다는 것이다. 돈만 내고 한 달에 한두 번 들어갈까 말까 한 OTT 서비스를 해지하고, 택시 앱에 등록된 신용카드를 체크카드로 변경했다. 현금 챌린지 위크가 끝나고 페이크 머니를 이용한 현금 챌린지 대신 이번 주 쓸 돈만 월급 계좌에서 체크카드와 연동된 계좌로 옮기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신용카드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쓰지 않기로 했다. 디지털 시대에 현찰을 챙겨 다니는 현금 챌린지가 유난스럽게 느껴진다면, 우선 지난해 지출을 점검하며 하루에 쓸 돈을 정한 뒤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현금챌린지 #페이크머니 #여성동아

사진 문영훈 기자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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